연구자료
[만화포럼 칸 2016] 만화비평을 위한 방법론 試論_박기수
박기수 2017.05.23
만화비평을 위한 방법론 試論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 만화의 정체, 건강한 개방과 확장의 無限 根力
 
방법론에 관한 탐구는 연구 대상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탐구는 기존의 논리적 토대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긴장을 내포한다. 이율배반적 긴장은 방법론을 탐구하는 내내 연구 대상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에서 출발해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규명과 갱신의 연속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론의 탐구는 창작, 유통, 향유의 만화 생태계를 전제로 한다. 만화 생태계라는 유기적인 거시구조 안에서 창작 주체, 유통 구조, 향유 양상의 미시구조를 파악하고, 이 세 요소가 상호 연동함으로써 연출하는 총체적 상관관계의 다양성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을 신뢰할 수 있다면, ‘만화비평을 위한 향유방법론 탐구’는 만화의 정체와 향유 방식에서 출발하여 만화비평의 목적 및 방법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안을 각 구성 요소의 상관망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규명해야만 한다.
 
만화의 정체(正體)에 대한 규범론적 정의1)나 범주론적 정의2)는 지금 이곳의 논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접근은 지극히 현재 중심적인 방식으로 현재까지의 만화만을 논의할 수 있는 지극히 정태적인 접근에 머물 뿐, 만화가 지닌 언어와 표현의 ‘건강한 개방성’과 감각적 표현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무한 확장의 가능성’과 같은 역동적인 양상들을 제대로 포착해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동안 우리 만화는 1) 치열한 작가의식의 창조 행위냐 / 가장 저급한 상업문화의 결과물이냐, 2)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냐 / 왜곡된 현실의 의미 없는 과잉이냐, 3) 전 연령이 향유 할 수 있는 문화냐 / 아이들만의 하위문화냐, 4) 웹툰은 만화의 독립적인 영역인가 / 하위 영역인가 등등의 만화를 둘러싼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작위적인 이항대립처럼 보이는 이 논란은 후자의 현실태(現實態)와 전자의 당위적 요구가 평행을 이루며 합의 불가능한 기형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오히려 양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란의 전선을 구체화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만화와 상관하여 ‘지금 이곳’에서 포착할 수 있는 변화의 징후들과 현실과 당위의 생산적 긴장을 통해 표현 언어, 구현 방식, 취급 소재, 주제의 깊이, 사회적 맥락과의 상호관계, 향유 양상 등을 풍성하게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방적인 산업 종속과 문화 수준의 정체(停滯)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견지했어야만 한다.
 
만화는 창조적인 언어예술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가능한 일체의 언어를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만화의 표층 / 심층을 구성하는 언어, 가시적 / 비가시적 언어, 언어 계열체(Paradigme) 간의 결합 방식을 통해 생산되는 새로운 형질의 언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만화 언어의 변별적 자질을 전제하고, 거기에 각 언어의 상호 조합까지 고려한다면, 만화의 언어는 무한 가능성의 영역이며 지속적인 개방과 확장이 가능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만화 언어를 단지 글과 그림의 창조적인 결합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소박하다. 디지털 문화 환경의 도래 이후 다양한 언어들이 만화 언어의 장으로 창조적으로 수렴되고 있고, 그 수렴의 결과가 만화의 고유한 문법까지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화는 언어의 조형과 문법의 갱신을 반복3)하면서 그 정체와 지평을 지속적으로 개방하고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만화가 지닌 언어예술로서의 무한 창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만화담론이 풍요롭지 못한 것은 만화 생태계의 역동성을 만화 안으로 온전히 수렴하지 못한 탓이 크다. 만화를 구성하는 창작자, 텍스트, 향유자, 유통업자, 플랫폼 등의 최근 역동적인 행보를 고려할 때, 만화는 자기 정체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개방성과 확장 가능성을 파악하여 그것을 내부로 수렴함으로써 새로운 정체를 조형(造型)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만화 스스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창작자, 텍스트, 향유자, 유통업자, 플랫폼 등 만화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거시 구조 안에서 총체적으로 상관-연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결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의 가장 큰 힘은 자유다. ‘질펀하고, 넘쳐흐르고, 흩어지고, 어지럽다’는 만(漫)의 축자적 의미(literal meaning)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화는 소재나 주제에서부터 구현 언어나 소통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지향한다. 이러한 자유의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누가(소통의 주체), 언제(맥락의 시의성), 어디서(상황성), 왜(소통의 원인), 무엇에 관하여(소통의 주제), 어떤 효과를 노려서(기대 반응), 누구(향유자)에게 말하는가’라는 소통과 향유의 기본 모델 안에서 최적화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자유로의 지향은 스스로의 구속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경쾌한 변화를 추구한다. 때문에 스스로 구속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만화는 경직된 고정태(固定態)라기보다는 부단히 변화하는 살아있는 모습이어야 한다. 여기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은 만화의 구현 언어, 술화(述話) 방식, 주변 장르와의 관계, 향유자와의 상호작용 방식과 결과, 사회문화적 맥락성 등의 변수가 끊임없이 개입하는 ‘지금 이곳’의 상황에서 스스로 최적화 방식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다양한 변수들의 개입과 상호 충돌은 만화의 다층성(多層性)과 다성성(多聲性)을 강화할 수 있는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2. 만화비평, 기대지평 확장과 가치 평가 사이
 
모든 비평의 시작은 리터러시(literacy)4)다. 리터러시는 텍스트와 향유자 간의 가장 적극적인 대화다. 리터러시는 텍스트에 대한 변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읽고, 그것의 내재적 문법 및 세계와의 상관성을 규명하기 위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대화과정이다. 때문에 리터러시는 비평가가 고유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읽고 평가하는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텍스트의 구성 요소 간, 텍스트와 향유자 간, 텍스트와 세계 간,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각기 다른 차원과 층위의 대화를 창조적으로 수렴-조합-확장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이다. 텍스트와 향유자간의 대화는 수용미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용’(Rezeption)과 ‘영향’(Wirkung)5)의 구체화과정인 까닭에 새로운 경험지평을 창출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비평은 이와 같은 리터러시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대화에 출발한다. 비평은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미학적 장치나 의미의 망을 읽어내고 새로운 준거를 마련하여 가치를 발굴하고 그 성취를 평가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만화비평도 리터러시를 토대로 비평의 대상과 관점을 제시하고 텍스트의 가치를 발굴하여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만화비평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만화미학이나 텍스트의 완성도를 귀납적으로 지향하는 것보다 새로운 창작자, 미디어 환경, 독서체험의 변화에 따른 텍스트의 변화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각 요소의 층위와 상관망을 개방적인 자세로서 포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개방적인 자세를 바탕으로 텍스트의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함으로써 텍스트의 기대지평(Erwatungshorizont) 확대하고 거시적으로는 만화미학 개발과 평가의 토대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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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로만 야콥슨의 언어적 의사소통의 도식
 
좀 더 구체적으로 로만 야콥슨의 언어적 의사소통의 도식7)(그림1)을 만화비평의 맥락에 비추어 변형해본다면, 그 대상은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창작자/텍스트/향유자/미디어 등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창작자 중심으로 살펴보면, 작가의 정체성, 작가의 전기적 탐구, 만화미과 만화수사학 등의 생산중심 미학 탐구, 창작 방법론, 작가와 세계와의 상관성, 작가의 창작 환경 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2) 텍스트 중심으로 살펴보면, 구현 언어, 서사 구현 요소와 방식, 장르, 텍스트와 구현 미디어의 관계, 상호 텍스트성,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향유 활성화 전략의 텍스트 내 수렴 여부 등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3) 향유자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향유 양상, 해석 공동체(interpretive community)의 정체, 수용미학, 해석론, 상호작용의 구조,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 팬덤(fandom)의 양상과 생산성 등을 탐구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향유자의 기대지평과 연관되어 “선험, 경험, 전통, 습관, 상식, 교육 등으로 초래된 지식이 내재화”된 양상8)으로 구현된다. 이것은 다시 만화의 규범이나 장르의 내재적 이론과 연관되거나, 다른 작품이나 다른 장르의 텍스트와 상호 텍스트성을 구성하거나, 사회문화적 컨텍스트와 연관됨으로써 구체화된다. 4)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구현 언어, 구현 방식, 사용자 환경(User Interface, UI), 유통 방식 및 과금(課金) 체계, 최적화 구현 양상 등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다만 이상과 같은 창작자/텍스트/향유자/미디어의 구분은 논의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실제 만화의 장(場) 이거하듯 만화비평도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논의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텍스트 해석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구조, 작가 심리학, 해석의 체계와 구조, 향유 양상, 상호작용의 전개 양상 및 텍스트 수렴 양상, 구현 미디어와 최적화 구현 양상, 기존 만화미학의 수용과 극복 등의 여러 요소들이 다양한 상관 조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글에서 언급한 만화비평의 대상들은 그들 간의 다양한 조합을 통하여 구현될 뿐만 아니라 하위에 수다한 개별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복잡하고 쉽지 않은 양상을 드러낸다. 거기에 만화비평 각각의 목적과 개별 관점이 개입한다면 그 양상은 더욱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만화비평에서 전체를 온전히 다 말하겠다는 의욕은 일종의 실현 불가능한 의욕 과잉일 수 있다. 오히려 비평 목적과 대상을 초점화 하고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하여 그 안에서의 충실도와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비평의 목적은 미시적으로는 텍스트의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하는 일이며, 거시적으로는 즐겁고 의미 있는 향유를 강화하고, 창작 및 리터러시 능력 향상을 통하여 풍요롭고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따라서 만화비평은 항상 텍스트와의 건강한 견제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건강한 견제와 독립성은 텍스트의 의미지평을 발견-확장하고 만화미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지적인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도전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만화비평은 만화와의 상보적 긴장을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만화 창작-제작-유통-향유의 생태계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만화가 고유의 언어로 허구적인 것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 기원이 창안, 발상, 새로운 고안 등을 의미한다고 할 때, 만화비평의 몫은 분명해진다. 허구적인 것을 생산하는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동인(動因)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실한 언어를 찾았는가? 적실한 언어를 통해 형상화의 차별적인 미학을 창출하고 있는가? 그 차별적 미학은 만화의 새로운 지평에 일조하고 있는가? 이와 같이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 만화비평의 몫은 다시 만화 창작-제작-유통-향유의 상관망으로 환원되어만 한다. 최근 웹툰의 압도적인 전개를 보면, 제작-유통의 지배적인 힘이 창작과 향유의 양상 자체를 강하게 변화시키고 있고, 변화된 창작과 향유의 양상이 다시 제작과 유통을 상호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요소들의 하위 요소들에 대한 변별적 접근도 요구된다는 점에서 논의의 어려움과 복잡함이 있다. 가령 창작을 규명하기 위해서 텍스트에 구현된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그 성취의 정도와 상관없이 그것이 지닌 특수한 사회문화적 기능양태 안에서 분석하고 평가해야만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맥락을 토대로 할 때, 만화비평은 이론비평(theorytical criticism), 실천비평(practical criticism), 메타비평( criticism)으로 나누어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 만화비평이 이렇게 나뉘어 구현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만화비평이 의미 있는 실천으로서 생산적인 결과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평의 세 양상이 상보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로 구현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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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만화비평의 세 종류
 
‘이론비평’(theorytical criticism)은 만화의 장(場)을 구성하는 창작자, 텍스트, 향유자, 미디어 등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이론적 준거를 탐색하는 비평이다. 동시에 이론비평은 텍스트 분석과 해석의 합의 가능한 논리적 준거, 분석 방식과 해석의 방법론과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일련의 비평을 총칭한다. 만화의 정체와 역할을 중심으로 한 고유의 미학을 찾아가면서 동시에 텍스트의 리터러시 방법과 체계, 사회문화적 맥락의 해석체계, 구현 미디어와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다. 변별적인 만화 고유의 미학 구성과 규명을 지향하는 이론비평은 1) 여타 예술장르의 예술적 성과를 창조적으로 수렴하고 기존의 만화미학과 융합해나가는 과정과 2) 새롭게 등장하는 새로운 형질의 만화로부터 만화미학을 찾음으로써 그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까지 지속적이고 개방적이다.
 
‘실천비평’(practical criticism)은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비평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비평의 형태가 실천비평이라 할 수 있다. 실천비평은 이론비평이나 메타비평의 성과를 토대로 텍스트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이해, 심층구조의 의미에 대한 해석, 텍스트의 가치 발굴 및 의미지평 확장, 텍스트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 등으로 구현된다. 실천비평은 객관성을 지향하지만 비평가의 교양, 관점, 세계관, 미학관 등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관점을 내포하고 있어서 양자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그 성패의 첫 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실천비평은 이론비평에 의존함으로써 합리성과 체계성을 갖출 수 있고, 이론비평은 실천비평의 결과들이 축적됨으로써 넓이와 깊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보적인 순환관계를 구성한다.
 
‘메타비평’( criticism)은 비평의 자의식을 마련하고, 비평의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비평에 대한 비평을 말한다. 기존의 ‘실천비평’과 ‘이론비평’을 대상으로 그것의 관점, 방법론, 해석체계 등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평가를 수행함으로써 비평의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이와 같은 비평의 세 양상이 ‘지금 이곳’의 만화비평에서 얼마나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소박한 해설이나 사적 전개의 정리, 신작 소개 수준으로 전개되는 ‘지금 이곳’의 만화비평을 고려할 때, 그나마 대부분이 실천비평에 편중되어 있고 본격적인 의미의 이론비평이나 메타비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학술논문을 중심으로 이론비평과 메타비평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역시 해외 이론을 토대로 한 매우 고답적(高踏的)인 양상이기 때문에 웹툰과 같은 최근 만화의 역동적인 전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며 선도하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지금 이곳의 대부분 만화비평이 스토리 요약이나 인상비평에 머물고 있는 것(그마저도 지극히 제한적인 수혜라는 점이 더욱 슬프지만)도 큰 한계로 볼 수 있다. 만화비평 자체가 만화생태계 안에서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까닭에 비평으로서의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할만한 원고 분량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10장에서 30장 내외의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텍스트에 대한 정치한 분석이나 이론적 전개 그리고 철학적 깊이를 가질 수 있는 담론 생산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요구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원고 분량이 적다는 것은 발표 매체가 양적/질적으로 열악하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원고료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하고, 결국 전업 비평가로 생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만화비평이 온전히 제 정체성과 지향을 가지고 독립적인 더 나아가 만화 생태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원인으로는 만화비평의 역할에 대한 낮은 기대치와 작가와 비평가 사이의 불신이 꼬리를 물고 도는 뱀처럼 맞물려 있다. 그러한 기대치나 불신은 만화비평의 현실적인 역할에 대한 회의와 만화비평가의 전문성에 대한 불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만화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라면 후자는 비평가의 데뷔, 대중적 인지를 확보하기까지의 인큐베이팅,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독립적인 비평 활동 등을 전개할 수 있는 만화비평의 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만화비평의 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은 독립적인 비평가 집단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비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고, 그들이 지속적인 전문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매체나 지면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다보니 만화 향유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만화비평을 대표하는 비평지나 발표매체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 만화비평의 방법론, ‘따로 또 같이’의 다양성
 
만화비평의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그것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전략적으로 매우 유효하다. 이론비평이든, 실천비평이든, 메타비평이든 간에, 그것을 의식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방법론의 전략적 선택은 만화비평에서 가장 필수적인 전제이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창작자/텍스트/향유자/미디어의 복잡한 조합과 그 하위 요소들의 무한에 가까운 상관망을 모두 다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며, 또한 전체를 이야기하는 넓이보다 일반적으로 비평은 특정 관점을 렌즈로 하는 선택적 깊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된 방법론들은 텍스트의 총체성을 지향해야 하며, 개개의 방법론이 거시 구조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은 확보하고 있어야만 한다.
 
방법론에 관한 고민은 객관적 인식과 합의 가능한 논증 그리고 납득 가능한 가치 평가를 탐구하고 체계화하려는 논리적 탐구과정이다. 그것은 비평 대상을 독립시켜 변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를 마련하고, 고유의 내적체계와 논리 준거를 구성해냄으로써 분석과 해석9) 그리고 평가의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구성하고 객관적으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은 비평이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듯, 부단히 조형적으로 구성해 나가야할 성격의 것이다.
 
본격적으로 만화비평의 방법론을 고민하기 위해서 목적과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화비평은 만화의 언어적, 구조적 특성을 변별적으로 파악하고, 만화의 의미 지평을 확대하고, 그것이 성취한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만화비평의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둘 때, 만화비평의 방법론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화비평이 고려해야할 요소들과 전통적인 비평의 방법들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수렴할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만화비평의 목적을 고려할 때, 텍스트를 중심으로 사회문화적 맥락과 그것의 향유방식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다른 장르에서 이미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는 비평 이론들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비평 이론 위에 역사 비평, 사회학적 비평, 정신분석 비평, 원형 비평, 독자반응 비평, 형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등이 될 것이다. 또는 그것을 크게 범주화하여 실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마르크스주의 비평, 해석학적 비평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가 지닌 복합성, 다층성(음향, 단어의 의미, 반영된 현실 요소들, 문체, 장르법칙들, 사회적 맥락과 의미 관련성 등) 등을 염두에 둘 때, 기존의 어떤 이론도 선행이론과의 변증법적 전개 위에서 등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총체적 양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종래의 만화관이나 이론도 정태적 시각에서 역동적인 방향으로 확연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소박한 의미에서 전통적인 만화의 내포나 외연이 확충되고 있다는 의미이며, 적극적인 의미로 만화 자체의 뚜렷한 형질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격랑 위에서 만화비평의 자의식에 대한 고민과 그 방법론에 대한 실천적 탐구는 어쩌면 제일 먼저 풀어야할 과제라 할 수 있다.
 
만화가 문화콘텐츠로서 문화산업의 체제 유지적, 현실 추수적 경향을 내포하고 후기 산업사회의 논리에 맹목으로 따라간다는 식의 논리는 당위적이고 이데올로기 중심적인 사고다. 중요한 것은 개별 텍스트의 의미 생산 구조 및 그것의 향유 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이 소통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상관하여 어떠한 리터러시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책읽기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텍스트 향유 체험은 체계화될 수 없다. 언어예술로서 만화는 다양한 비언어적 구현 전술들을 수렴하여 자기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만화미학을 토대로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규범을 정하는 일은 무모하거나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신뢰할만한 전문적인 향유자의 경우에도 주관적 관점을 통해 차별적인 가치를 확보한다는 태생적 이율배반성과 그가 구현하는 비평 양상 역시 그것의 목적, 타깃, 텍스트의 특성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평가는 1차적으로 향유자로서 주어진 텍스트와 관계하며, ‘수용’과 ‘영향’이 전제된 대화과정을 통하여 그 텍스트의 의미론적 구조와 잠재적 기능은 향유과정에서 구체화될 뿐이며, 그 결과는 해석적 언술을 통해서 구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화비평은 다양한 방식의 제한 없는 다차원성을 전제해야만 한다. 다만, 만화비평의 실천을 통해서 ‘총체적 언어’를 제공하고 텍스트를 새로운 소통의 탐험적 결과물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화가 지닌 근원적인 의미론적 중의성과 구현 전략의 자유로움, 예측 불가능성은 향유자를 매료시키는 가장 강력한 향유의 기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화비평에서 텍스트와 향유자 간의 대화성, 과정성, 개방성, 자발성,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주목해야만 한다. 상호대등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입장과 자격에서의 대화적 성격을 전제로, 대화의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윤리적 측면을 고려할 수 있지만, 텍스트의 지속적인 개방성과 생산성 그리고 과정중심의 향유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리터러시의 구성요소인 인지-해석-평가의 상관적 체계를 구현하는 맥락 위에서 텍스트 고유의 특수성을 확보하여 미학적, 현실 반영적, 향유경험의 체계와 구조를 파악해야만 한다. 만화비평은 만화의 리터러시 맥락을 바탕으로 심미적 이해를 포함한 역사적, 사회문화적 인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탄력과 개방 그리고 확장 가능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언어예술로서 만화의 소통이 일반소통과 다른 것은 그것이 정보와 미학의 잉여성과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 체험이나 역사적 경험 그리고 사회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컨텍스트는 기존 질서에 대한 종속과 동시에 저항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해온 결과다. 더구나 새로운 만화적 소통에서 개방성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는 시점에서 그것의 끊임없는 갱신성과 과정성은 창작의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만화비평은, 텍스트 해석의 마지막 지평은 ‘의미’가 아니고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담론 구조’이며, 평가의 준거는 ‘규범적 완성도’가 아니라 ‘개별 텍스트의 변별적 특성과 그것의 구현 정도’를 지향해야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 생태계의 개별 구성 요소와 그 전체의 구조 그리고 그들 간의 콘텍스트를 종합적으로 관찰 할 수 있을 때, 만화비평의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상의 전체 콘텍스트 위에서 분석된 개별 정보는 계기화(繼起化)된 의미잠재력을 지닐 수 있고, 그 잠재력의 구현태가 텍스트의 의미지평을 확장하게 될 것이고, 다양한 구현 전략은 고유의 문법을 형성하는 특유의 향유구조를 창출할 것이다. 이러한 향유구조 위에 앞으로의 만화, 그리고 만화비평은 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만화비평의 방법론 역시 이러한 맥락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 글은 앞으로 만화비평의 다양한 양상을 점검하고, 그것이 새로운 만화문법과 만화형질에 최적화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기 위한 시론적(試論的)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탐구는 만화비평의 변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만화비평가의 자의식이 차별적 미학으로 전개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할 것이다. 문학, 영화, 연극, 미술, 음악 등 주변 장르에 축적되어온 비평이론과 방법론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필요한 요소를 어떻게 벤치마킹할지에 대하여 실천적인 고민도 병행해야하는 고단한 작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만화의 장르적 차별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지속적인 모색과 만화비평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방적인 시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참고문헌
차봉희 편, 《수용미학》 문학과지성사, 1985.
윌 아이스너 / 이재형 역, 《그림을 잘 엮으면 만화가 된다Ⅰ》 현실문화연구, 2000.
레이먼 샐던 / 현대문학이론 연구회 역, 《현대문학이론》 문학과지성사, 1990.
S.J. 슈미트, H.하우프트마이어 / 차봉희 역, 《구성주의 문예학》 민음사, 1995.
박기수,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구조와 전략》 논형, 2015.
 
각주
1) 만화에 대한 규범론적 정의로는 “병렬된 이미지들의 연속성으로 구성된 연속예술”(윌 아이스너 / 이재형 역, 《그림을 잘 엮으면 만화가 된다Ⅰ》 현실문화연구, 2000)이 대표적이다. 만화에 대한 규범론적 정의는 최소한 필요충분조건만을 이야기할 뿐 만화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를 위한 토대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2) 만화에 대한 범주론적 정의로는 카툰화법(cartooning), 글과 그림의 이코노텍스트(iconotext), 이미지의 연속성(narrative) 등이 대표적이다. 만화에 대한 범주론적 정의 역시 만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 전개의 시작점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3) 언어는 기존의 의미와 맥락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모색하며, 기존 언어의 강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한다. 언어는 언어 공동체의 합의된 소통 방식을 토대로 하지만 형상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맥락과 새로운 구현 방식을 도모함으로써 의미 조형과 문법 갱신을 반복적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전개의 반복과정을 통하여 언어 자신의 정체를 갱신하고 확장한다.
4) 리터러시는 축자적으로는 문해(文解), 해독(解讀) 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글에서는 그것을 단지 읽고 쓰는 능력에만 국한시켜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어 그래도 리터러시라고 쓴다. 이글에서 리터러시의 의미는 미디어교육에서 이야기하는 리터러시에 착안하여, 텍스트 자체의 변별성을 전제로 향유자의 주체적인 읽기의 과정으로서, 텍스트의 소통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부단히 창조적으로 나누는 대화를 의미한다.
5) 수용은 “독자 내지 수취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 즉 창작 텍스트가 수용자에 의해서 구체화될 때 수취인(독자)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고 영향은 “작품이 구체적으로 읽혀질 때 텍스트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의 측면을 가리킨다.”
차봉희 편(1985), 《수용미학》 문학과지성사,p.29
6) H.R. 야우스의 용어로서 사용자가 지닌 창작 작품에 대한 이해의 범주 및 한계를 의미한다.
7) 야콥슨의 언어적 의시소통도식은 레이먼 샐던 / 현대문학이론 연구회 역, 《현대문학이론》 문학과지성사, 1990을 바탕으로 도식의 설명을 위해 필자가 박스 밖의 내용은 추가한 것임을 밝힌다.
8) 차봉희, 앞의 책, p.34.
9) 해석의 실제적 과제는 구현된 소구 요소의 이해가 아니라, 오히려 텍스트 체험 전에 인지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어떻게 향유자의 체험을 압도했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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