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
[칸2015] 1970년대 대중잡지의 성문화와 여성상(선데이서울)을 중심으로_박세현
박세현 2016.10.18
1970년대 대중잡지의 성문화와 여성상 - 《선데이 서울》을 중심으로1)
 
박세현 _ 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소장, 상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외래교수
 
주제어 : 주간지, 선데이서울, 1970년대, 대중문화, 여성상, 가부장주의, 성문화, 문화이데올로기
 
서론 : 1970년대 4,000만의 통속잡지 《선데이서울》
 
   4000만의 교양지?2) 아니, 4000만의 통속잡지 《선데이서울》은 1968년 9월 22일에 창간되었다. 포르노 공화국의 신호탄을 울린 주간지 《선데이서울》은 창간호 발매 2시간 만에 6만 부가 매진될 정도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김동원, 1995).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성스러움이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성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야한 기사와 관능적인 여성의 세미 누드 화보로 난무했던 이런 주간지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문화통제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1968년은 박정희 정권이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고 주민등록법을 강화하면서 민족중흥과 산업역군의 사명을 띤 국민 양성에 강렬하게 욕망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순결과 결집, 노동마저 국가의 번영을 위해 아낌없이 바쳐야 했던 국민들에게 세속적이고 개인주의적 분열을 조장하고 노동시간을 좀먹는 통속잡지 《선데이서울》은 악의 축이나 다름없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잡지는 상업적으로도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1970년대 대중문화의 섹슈얼리티와 산업화의 기치 아래 강요된 국민의 총체적이고 균질적인 집단 정체가 분열하는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1970년대는 ‘하나로서의 다수’를 강요하던 ‘국민교육헌장’과 ‘하나일 수 없는 다수’를 확인시킨 《선데이서울》이 공존하는 극과 극의 시기였다(김경연, 2007).
 
   이성적으로 순응해야 하는 국민과 감각적으로 욕망하고자 하는 대중 사이에서 적절히 시소를 타면서 출판대중문화의 틈새시장을 장악했던《선데이서울》은 1970년대의 성(섹스)에 대한 오락적 유희와 성(젠더) 정체성에 대한 의도적인 계몽을 동시에 주도했다. 국민 vs 대중, 섹스 vs 젠더. 양자의 대립처럼 보이는 이런 키워드들은 이 잡지 속에서는 서로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혼재돼 버린다. 이는 정치적 비판의 기능을 거세당한 신문사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대중문화라는 이름의 담론을 재생산한 경우라 할 수 있다(박성아, 2010).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대중문화라는 이름으로 퇴폐·통속 주간지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탈정치적 오락잡지를 표방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에 창간되어 1991년 12월까지 총1,192호를 출간하게 되었다. 재정형편이 어려웠던 서울신문사에게 복덩이 같은 현금 수입원이었다.
 
   1975년을 전후해 한 달 순수익이 1억 원에 달했으며, 1975년 15만 부, 1978년 23만 부, 이 후에도 20만 부 이상을 발행하면서 당시 주간지로서는 최고의 부수 발행과 최고의 광고 수입을 자랑했다고 서울신문사는 설명했다(서울신문사, 2004). 하지만 사실 당시 최고의 발행 부수를 발행했던 주간지는 한국일보사에서 발간한 《주간한국》이었다.3)
 
   언론계의 극과 극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중주간지 《선데이서울》은 1970년대 대중문화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라는 점에서 몇 가지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 3선 개헌을 획책하고 1967년 6.8 부정선거로 ‘선거제에 의한 쿠데타’를 이룬 박정희 군사정권의 언론탄압으로 척박했던 1970년대 한국 대중문화매체의 찬바람 속에서 일회용 대중잡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다. 둘째, 《선데이서울》에 연재된 <미스터 기막혀>, <고인돌>, <다모 남순이>, <임꺽정> 등은 한국 성인만화의 서막을 열었다. 이 만화들은 당시 성인만화 영역을 처음 일궈낸 고두현, 박수동, 방학기, 고우영, 이홍우, 권평국 등의 작품으로 한국만화 장르의 폭을 넓히고 내용을 살찌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손상익, 1998). 셋째, 1970년대 대중문화와 소비사회가 시작되는 시기의 대표적인 상징잡지로서 다양한 계층의 독자를 타깃으로 한 기획물이 연재되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획물들이 퇴폐적이고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는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사회상은 물론, 산업화로 급변하는 당시의 남성상과 여성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는 대???주간지 《선데이서울》에 대한 평가 가운데 세 번째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실 《선데이서울》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기사들로 채워진 삼류 잡지로 치부되거나, 혹은 언론의 정치적 비판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한 3S(sports, sex, screen) 정책의 표본이라는 이유로 기존 문화연구의 대상되지 못했지만(박성아, 2010), 이러한 기사들 속에서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었던 남성상과 여성상의 모순된 때로 현실적인 시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는 1970년대에 주간지가 오락매체로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왜 1970년대 대중은 주간지를 소비하게 되었는지, 1970년대 주간지의 대표작 《선데이서울》에 실린 기획물들을 통해서 1970년대의 성문화는 어떠했으며, 박정희 군사정권이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군사정권의 가부장적 성문화가 1970년대 여성상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살펴보???자 한다.
 
본론
 
1. 주간지, 산업집중화와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만든 문화사생아
 
   1960년대는 주간지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955년 12월 26일 창간된 《주간희망》, 1960년 5월 23일에 창간된 《주간 삼천리》, 그 해 7월 14일에 창간된 《주간춘추》에 이어, 1964년 9월 27일에 《주간한국》이 창간되었다. 《주간한국》은 1968~69년 주간지 창간의 붐을 유도하면서 1970년대 주간지 전성시대의 신호탄이 되었다. 《주간한국》의 창간에 이어, 《주간중앙》(1968년 8월 24일), 《선데이서울》(1968년 9월 22일), 《주간조선》(1968년 10월 20일), 《주간경향》(1968년 11월 17???), 《주간여성》(1969년 1월 1일)이 속속 창간되었다.
 
   《주간한국》은 대중오락잡지로서의 면모를 띠면서 도시에서 주말 시간을 소비하는 대중(대부분 산업역군으로 묘사되었던 육체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소비문화가 되었다. 이는 언론정화를 단행하고 언론통제를 자행했던 박정희 정권이 전근대적 생활관습과 고답적인 전근대 의식에 빠져 있던 국민들을 근대적 시간과 근대적 라이프스타일을 습성화하도록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그 구체적인 방도로써 대중문화의 세례(주간지)를 받게 된 것이다(전상기, 2008).
 
   1970년대 주간지 문화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었던 계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텔레비전의 보급을 통한 대중문화?? 확??이다. 국영 KBS가 1961년 12월 31일 ‘혁명정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급조되면서 텔레비전 문화의 서막을 열었다(임종수, 2003)4). 텔레비전 개국과 함께 수상기 보유에도 경쟁이 붙었다. 개국 당시 수상기가 1만 대였지만, 그 이듬해 1962년에 군사정부는 2만 대의 수상기를 미국과 일본에서 긴급 공수하여 월부로 배포하여 텔레비전 시대를 근대화의 숙명처럼 활용했다(강준만, 2007).
 
   텔레비전의 보급은 연극이나 영화, 스포츠 관람, 라디오 청취의 상대적 쇠퇴를 가져와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텔레비전은 가족 구성원간의 공유(가족)와 차이(개인)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대중문화의 탄생지는 물론,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대표매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주간지는 텔레비전이 가져다 준 개인적 소비오락문화 덕분에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둘째,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이다. 박정희 정권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기간인 1968년 2월 1일에 착공되어 1970년 7월 7일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기념비적이었지만, 무엇보다 한국 문화사를 뒤흔든 사건이기도 하다. 바로 대중과 대중문화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 초반 이후 대중문화(현상)는 전 사회적이었으며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고, 문화론의 지향과 논의 주체가 엘리트에서 대중에게로 넘어가는 시기였다(송은영, 2011).
 
   대중의 등장을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노동집약적 산업화의 앙상블이 만든 대규모 노동인구의 이동이었다. 월남 특수로 경제성장률의 올린 1960년대 후반의 한국 경제성장에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늘어난 노동인력은 기름을 부었는데, 이처럼 대도시로 유입된 노동인력이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대표????는 대중이 되었다.5)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든 경부고속도로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로선 장시간 장거리 여행을 해야 했던 여행객들이 버스에서 무료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간지 읽기였다. 시외버스 정류장마다 가판대에는 주간지들이 넘쳐났다. 여행자들은 대중지를 찾기 때문이다. 1970년대 주간지는 ‘고속도로 문화’나 다름없었다(강준만, 2002).
 
   셋째, 청각과 활자 매체 위주였던 문화패턴에서 시각매체의 소비문화패턴으로의 변화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라디오와 일간신문(혹은 문예지와 정론지) 중심의 대중매체였다(송은영, 2011). 후자의 소비자가 지식인층으로 한정되었다면, 라디오는 전 국민이 즐기는 유일한 미디어였다. 하지만 텔레비전???? 보급과 주간지의 창간 붐은 종전의 청각과 활자 매체 위주의 문화패턴을 현란한 이미지를 향유할 수 있는 시각적 문화패턴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일반 독자들은 딱딱한 문체의 시사적인 글보다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는, 화려한 화보에 눈이 끌리는 주간지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한쪽에선 채찍을 휘두르는 대대적인 언론통제(《사상계》폐간)6)를 했던 것과 달리, 다른 한쪽에선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에게 선정적인 당근을 무제한적으로 선사하는 이중적인 대중문화정책을 폈다. 이처럼 이중적인 문화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새마을운동, 산업수출국, 근대화라는 통제적 성장 이데올로기를 무리하게 수행하는 ‘근대화의 역군’ 즉 육체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육체적 피로를 상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을 대중에게 주입하는 몫을 선정적인 기사와 가십???리의 대중주간지가 담당했던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압축적 근대화를 실현하려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육체적 착취는 물론, 소비문화를 통해서 소진된 에너지를 억지춘향으로 충전해야 하는 정신적 착취까지, 다시 말해 이중착취를 당해야만 했다(전상기, 2008).
 
   그럼에도 우리는 1970년대 대중문화를 선도한 주간지를 이분법적 잣대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평가할 필요도 있다. 물론 주간지가 대중의 일차적인 욕망에서 영합하면서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것은 사실이다.7) 비판적 의식의 마비와 퇴폐적 소비풍조를 조장하는 주간지의 오락적 측면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에 의해 조장된 정직, 성실, 근면의 이데올로기와 엄숙주의적 사회분위기, 냉전체제 유지를 위한 반공 이데올로기와 대척점(송은영, 2011)에서 현실도피와 대리만족,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오락물의 유용한 기능을 담당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 주간지는 대중문화 비판자에게는 혹독한 비판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박정희 정권에게는 소진된 국민의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모르핀 효과의 역할자로 취급받았다. 결국 지배체제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 심리를 담보하는 매체의 차원이 아닌, 단지 주간지 발행사의 뱃속만 채우는 데 일조하기만 한, 대한민국 근대화와 산업집중화와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양산한 소비문화의 사생사인지도 모른다. 결국 대중은 문화의 생산자나 공유자로서의 주체가 아닌, 소비대상의 객체로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2. 주간지 읽기, 저학력·저소득·고노동 노동자의 저렴한 취미생활
 
   196~70년대 한국의 국가이념은 산업화를 통한 조국 근대화였다. 이를 위해서 근검절약과 노동윤리를 강조했다. 박정희는 ‘검소 강건한 생활기풍’을 이룩할 것과 ‘소비생활을 저축생활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고, ‘경제지상’, ‘건설우선’, ‘노동지고’ 이러한 국민의 행동강령을 제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 당시 노동자는 신성한 조국근대화를 이끄는 수출전사 (군인)나 다름없었다.8) 이런 이념의 바탕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여가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었으며, 적은 여가시간은 결국 노동자의 여가 패턴을 결정하게 되었다.
 
   영국 브루넬대학교 여가학자 크리스 로젝(Chris. Rojek)은 현대의 여가관계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권력체계의 맥락 하에서 생산/재생산된다고 보고, 여가관계를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구조와 연결시켜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해???계의 분화, 개별경쟁, 성취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여가형태는 이러한 원리들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손상시키기도 한다(신원철, 2005). 결국 계급별 여가관계는 사적 영역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판단되어져야 한다.
 
   1970년대 서울 근로자의 여가활동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고학력 관리직과 저학력 생산직의 여가 패턴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고학력 관리직은 낚시, 등산, 테니스, 심지어 골프, 요트까지 즐기면서 여가를 보냈지만, 저학력 생산직은 취미가 없다거나 무응답이 많았다(신원철, 2005).
 
   그만큼 고노동·장기 노동시간 때문에 물리적으로 여가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생산직 노동자의 유일한 여가는 텔레비전 시청과 술자??, 그리?? 주간지 읽기였다.9)
 
   1970년대 초반 당시 주간지를 읽고 소비하는 주체는 대부분 남성, 그것도 남성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기에 들면서 주간지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봉급생활자, 직장인 여성(특히, 생산직 여성 노동자), 청소년, 주부로 확대되었다. 특히 저소득 저학력일수록 주간지를 읽는 것이 취미이며, 대체로 이들의 분류는 술집접대부, 바걸, 직업윤락여성들이 훨씬 많이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학생과 중고교생도 주 독자층으로 나타났다(송은영, 2011).10)
 
   그런 주간지들 가운데 《선데이서울》은 단연 압권이자 성에 관한 이미지, 지식, 상???력의 보??였다. 출판 허가를 받은 정기간행물, 그래서 검열 필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기사 내용과 구성 그리고 소재의 화끈함과 선정성은 당대 최고라고 할만 했다. ‘색기발랄’하기 짝이 없기에 가히 ‘한국의 플레이보이’ 잡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성욱, 2004). 한국의 플레이보이 잡지 《선데이서울》은 1974년 중반을 분기점으로 이전과 이후 《선데이서울》의 기획물들이 다른 구성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주간지의 독자층에 대한 변화현상을 짐작할 수 있다.11)
 
   창간호부터 1974년 초중반까지의 기획물은 시쳇말로 잘나가는 남자들의 경력, 재산, 여성편력을 다룬 기사12), 재클린 케네디(1969년 7월 13일, 제2권 28호)나 프랑스 섹스 심볼 브리짓 바르도(1969년 12월 21일, 제2권 51호), 마릴린 먼로(1971년 3월 28??, 제4권 12호) 등 해외 유명인의 섹스 스캔들, 해외 유명 섹스촌 탐방기13), 국내 유명 살롱과 카페의 마담 소개14), 윤정희 등 국내 유명 여배우의 섹스 스캔들 등과 같이 섹스 스캔들 가십거리기사와 섹스 관련 도색적이고 야한 기획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선데이서울》이 창간 당시에는 평균 독자층을 남성(특히, 샐러리맨 남성이나 남성 노동자)으로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974년 중후반부터 섹스 관련 기사가 조금 줄고 국내외 연예계 소식이나 여성 연예인들의 남성관 앙케이트 조사, 일반이나 여성 노동자들의 성실한 삶에 대한 소개15), 행복한 결혼생활과 가족계획을 다룬 기사16), 담배 피는 여성이 알아야 할 매너(1975년 4월 6일, 제8권 13호), 대학가 탐방(1978년 5월부터 연재), 여고생이 본 한국의 며느리상(1976년 3월 28일, 제9권 12호), 주부들의 알찬 부업 소개, 검정고시 광고 등장(1976년 12월부터) 등 같이 다양한 일상적 소재의 기획물을 다루면서 《선데이서울》은 대중문화 연예잡지로 변화를 모색했다.17)

   언론인 송건호는 주간지의 독자층 가운데 서민층(그는 서민층을 가난한 사람으로 간접적으로 규정한다)이 51%라고 조사되었다고 발표했고, 오인환은 당시 대학생과 중고교생의 10~20%가 정기독자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실었으며(송은영, 2011, p.202 재인용)18), 1978년 12월 1일에 《경향신문》이 ‘한국문화의 현주소’를 조사한 기사를 살펴보면, 1970년대 주간지의 주된 독자층은 성별로 보면 당연히 남성이며, 연령층, 거주지, 교육수준, 직업 및 소???층 별로 보면 30~40대, 농촌과 중소도시, 초등학교 이하의 낮은 교육층, 농업종사자와 서비스업 종사자, 그리고 월 수익 5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송은영, 2011, p203 재인용).
 
   이런 조사결과를 보면 주간지의 독자층의 폭이 한정적으로 넓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주간지의 독자층은 계층별 수직구조에서 확대된 것이 아니라, 하위 계층 내에서 수평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낮은 교육, 저소득, 농촌, 노동자, 서비스업(바걸, 윤락녀, 판매원 등) 등에 속하는 계층 구성원들만의 유일한, 그것도 싼 값19)으로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출판오락문화였던 셈이다.
 
   산업화 시대에 맞는 독서물로서 주간지는 다양한 ??재의 감각적인 ??성과 분량과 내용의 간편함이라는 원칙을 따름으로써 독서의 긴 시간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독서의 생각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일회성으로 소비돼야 하기 때문이며, 읽는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그 외의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퇴근용 및 주말용 읽을거리라는 용도에 맞게 양식화되어야 했다.
 
   그래서 대중이 부담 없이 읽고 난 다음에 휴지통에 버려도 아깝지 않는 10~20원이라는 저렴한 값으로 책정되었다. 결국 대중은 산업화 시대의 충실한 산업전사로서,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사안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가벼운 흥밋거리만을 찾는 ‘주간지 소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전상기, 2008).
 
   당시 지식인들은 1970년대 주간지의 선정성과 퇴폐성, 반문화성, 반근대성을 지적??면서 주간지 독자??이 하류계급에 편중된 원인을 남성 노동자, 주부, 직업여성, 청소년, 하층민을 통제하려는 군사정권의 문화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도시의 공장노동자와 여공, 식모, 직업여성, 청소년 들이 실제로 주간지를 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주간지에 심취한 무식한 하층민들이었으며, 주간지의 범람, 더 나아가 1970년대 문화퇴폐성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비판하는 1970년대 대중문화담론은 근거 없는 허상이나 다름없다.20)
 
3. 《선데이서울》, 1970년대의 억압된 성문화를 스펙터클하게 까발리다
 
   대중문화는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라고 일컫는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신문, 잡지, 음반, 만화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 쉽게 접근하여 즐길 수 있는 ‘통속적’이고 ‘가벼운’, ‘시간 때우기’ 오락물을 의미한다(박성봉, 1994). 그래서 대중문화는 고급예술이 지향하는 진지성에 비해서 통속성을 띤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대중미학자 박성봉은 대중예술(대중문화)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1) 대중예술(대중문화)은 전통적인 제도권의 예술 논의에서 대체로 소외된 장르를 묶은 일련의 문화산물이다.
  2) 대중예술(대중문화)은 전통적인 제도권의 예술 논의에서 소외된 대중성 또는 통속성을 띤다.
  3) 대중예술(대중문화)은 자신의 통속성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제도권의 예술 논의에 포함될 수 있는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21)
 
   대중문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통속성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현실도피나 오락만을 추구하면서,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흥밋거리만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는 폭력과 섹스 같은 소재를 다룸으로써 독자들의 이성과 현실인식을 마비시키거나, 사회적 윤리성을 훼손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속성22)을 띤 대중문화는 고급예술의 미학적 관점에서 평가되거나 이해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사회적·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혹은 규정하는 기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중문화 이론가들도 있었다.
 
   대중문화 이론가 존 카웰티(John Cawelti)는 《대중문화의 미학(Aesthetics of popular culture)》(1971)에서 ‘대중문??의 친구이건 적이건 간??? 대중예술의 문화산물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효과적이고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마음 속 가치를 형상화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상업주의적 대량생산과 대량분배의 구조 속에서 놓여 있는 대중문화의 통속성은 그 시대 대중의 심리, 더 나아가 대중의 계급의식을 반영하기도 하고 그것을 규정하기도 한다.
 
   197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통속성에 대한 평가는 1960년대 전 세계를 휩쓴 변혁운동의 분출과 자유의 표상이 된 포크와 록의 유입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960년대 미국에는 흑인인권운동,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반전운동, 프리섹스로 표상되는 여성운동, 서구 전통사회에 대한 반란의 깃발을 치켜든 히피문화들로 가득했다. 이런 반제도적, 반체제적 문화현상의 유입과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등 혁명적 기류를 보여준 음악적 표현들이 1970년 세대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1970년대는 대중매체에게 부정적 존재, 부정적 대중문화의 생산자로, 저급 이데올로기와 저급 문화의 확산자 그리고 외래 문화의 브로커라는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대중문화가 우리나라 고유문화 즉, 민족문화를 손상하는 것으로 취급했으며, 1970년대 대학문화, 즉 청년문화도 저급한 것으로 간주해 대대적인 대중문화 정화운동을 벌였다(원용진, 1996). 가장 대표적인 정화운동이 대중가요계에 몰아친 대마초 사냥과 외국 가수를 흉내 냈던 장발에 대한 단속, 그리고 대중가수들의 영어 이름을 국어로 바꾸기였다.23)
 
   1970년대 대중문화는 논쟁 vs 확산, 수용 vs 단속, 청년문화 vs 군사문화, 복종 vs 대립, 미국식 vs 한국식, 강요 vs 도피 등 얽히고설킨 문화적 혼란의 사슬 속에서 급속??? 발전하는 미디어 환경 덕분??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70세대들은 자본주의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본격적인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유신시대의 폭압성과 우리 사회의 전통적 폐쇄성을 잔존했던 시기에 전 세계를 휩쓴 히피문화와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은 1970년대 세대들에게 현실도피라는 숨통을 터줬다. 이런 숨통 터주기에 한몫을 담당한 것이 바로 성(sex) 문화, 즉 섹슈얼리티의 향취다. 전방위 문화평론가 이성욱은 ‘섹슈얼리티 문제는 전혀 손색없는 우리 시대(1970년대 세대)의 딜레마’라고 토로할 정도였다(이성욱, 2004).
 
   ‘이 문제(섹슈얼리티)에 대한 아랫세대의 보다 자유로움, 윗세대의 보다 완고한 신념 등에 비교해 보면 성에 대한 우리 세대의 태도나 표상은 자기 혼란의 와중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할 터이다. 위아래 세대 양측이 끌어당기는 원심력에 의해 찢어질 지경이다. 이미지 문제에 관한 한 윗세대는 우리와 동병의 이웃일 수 있지만 성문제에 관해서는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성 문제는 이미지의 ??제보다 오히려 더 큰 강도의 파동과 파괴력으로 우리 세대를 괴롭히고, 교란시키고, 무너뜨리고, 혼란스럽게 하며 찢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해서 그 양상은 우리 세대들로 하여금 기왕의 것과는 아주 다르고도 새로운 성윤리나 성과학에의 급진적 질문을 요구하고 동시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엄정한 해명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24)
 
   섹슈얼리티 문제만큼은 낀 세대가 돼버린 1960~70년 세대. 하지만 주간지 《선데이서울》은 마땅히 성적 욕망을 표출할 수 없었고 성에 대한 호기심에 비해 성 관련 지식이 부재했던 ‘이 낀 세대’의 억눌린 섹슈얼리티 향취를 유감없이 충족시켜 주었다. 돈이 없는 자들이 직접 즐기지 못하는 대신 보는 것만으로 대리만족하려는 ‘시각쾌락증(scopophilia, 박종성, 1996)의 일환으로 시대의 양면성을 반영했던 것이다.
 
   사실 섹슈얼리티의 충족은 직접적 촉각(섹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시각쾌락증과 관음증(voyeurism)은 남성에게 가장 자극적인 시각을 통한 성적 쾌락을 능동적으로 즐기는 것이다.
 
   특히 주간지라는 인쇄매체는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텔레비전이나 많은 관람자들의 동일한 시선을 유도하고 통제하는 영화와 달리, 개인의 시선을 따라 대상을 향유하는 지극히 사적인 매체다.25) 이처럼 다른 관람자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내러티브 구조방식은 관음적 쾌락을 더욱 배가한다. 그런 점에서 《선데이서울》은 대중의 민감한 말초신경을 각개전투(개별적으로) 식으로 적절하게 건드려 주면서, 적당히 정치권의 권위를 동시에 세워주고, 자신(발행자인 신문사)도 적당히 편승하여 즐기면서 남는 장사를 했던 것이다. 결국 최소한의 값으??? 최대의 성적 대리만족과 정치적 ???압수단이라는 일거양득을 이뤄냈다.26)
 
3-1. 망각의 모르핀으로 작용됐던 섹스 기획물과 컬러 누드 화보
   1968년부터 70년대 초반 남성의 섹스 호기심과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선데이서울》의 기사들은 국내의 이야기들보다 해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아마도 국내 자료가 많지 않았으며 취재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섹스 가십거리나27) 해외 유명 여배우들의 섹스 스캔들을 소개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유명인의 섹스 스캔들 가운데 흥미가 갔던 기사로 미국의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의 영부인으로서 우아함의 상징처럼 세계 모든 여성들이 선망했던 대상이었던 여자, 재클린 케니디. 하지만 신비화된 재클린의 이면에 정숙하지 못한 생활(섹스 스캔들, 낭비벽, 히스테리 성격 등)을 여실 없이 까발리는 기획기사를 독점적으로 연재했다(1969년 7월 13일, 제2권 28호/1970년 2월 8일, 제3권 6호).28)
 
   다음 <표 1>을 보면 선정적인 기획물은 1970년대 내내 다양한 주제로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1> 선정적인 기획물
박세현-1.jpg
 
   지금 인터넷 동영상 포르노그래피 세대에겐 약???이 떨어질지 모르나, 이 기획물들은 1970년대 대부분 남성들의 성적 욕망과 충족되지 못한 관음증을 보충해줄 만한 내용이었으며, 부재한 성지식과 성교육을 자극적으로 알려주는 10~20대들의 성문화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기사 텍스트와 함께 버무려져 삽입된 사진들은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자극하면서 텍스트 읽기에 대한 흥분을 더욱 배가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전방위 문화평론가 이성욱은 이 당시 《선데이서울》의 섹스 기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성과 관련된 무궁무진한 기사는, 관심 대상에 대한 호기심의 점착도가 생애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던 나에게 보면 보는 대로 피가 되고살이 되는 텍스트였다.’29)
 
   이런 섹스 기사 읽기?? 한껏 흥분된 성적 상상력에 기름을 부??? 것은 해외 여배우들 컬러 누드 화보였다. 사실 《선데이서울》을 보는 가장 큰 재밋거리는 역시 관능적인 여자들의 벗은 몸을 볼 수 있었다는 데 있었다. 그것도 흑백이 아닌 컬러로 비키니 수영복을 입거나 상반신을 아예 벗은 여자의 누드를 말이다. 점잔 빼는 한국 사회의 출판매체에서 여자의 벗은 몸을 여과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아닐 수 없었으며, 1970년대 남성들에게 여성 육체에 대한 교본이 될 법한 기획물이었다. 이 컬러 누드 화보 때문에 주간지 《선데이서울》은 포르노그래피에 준하는 호색 잡지라는 오명이 덧씌워졌으며, 반대로 이 컬러 누드 화보 덕분에 《선데이서울》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성욱은 이 컬러 화보에 대한 추억도 남겨놓았다.
 
   ‘잡지 뒤편에 실린 해외화보 같은 것에서는 여성의 나체를 수시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여성의 맨가슴을 ???대로 보여 주는 대단한 스펙터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스텍터클로서의 나체 사진과 그것을 보는 눈 사이에 오갔던 긴장도와 에너지의 밀도 또는 거기에 서린 기(氣)는 먼지 하나 틈입할 수 없는 완벽한 강도의 피드백이었을 터이다. 비록 키치 수준이었을지라도 거기서 아마 나는 육체를 감싸고 흘러내려가는 선의 미학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벌거벗고 백주대로를 질주하는 스트리킹 사진 같은 것도 나체의 인화임은 분명했다. 스트리킹은 이를테면 60~70년대에 폭발하던 근대주의에 대한 반란적 표현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것의 의미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스트리킹은 단지 성적 호기심을 위한 즉시적 오브제로만 다가왔을 뿐이다.’30)
 
   이런 상업적 컬러 화보의 기원은 1940년대 미국에 유행했던 ‘핀업걸(pin-up girl) 아트’에서 찾을 수 있다. 1940년대 미국의 대중예술가들은 프랑스 만화잡지에 등장하는 보헤미안 경향의 유럽 여자 캐릭터에 ???혹되었었다. 그런 보헤미안의 집시 캐릭터???서 착안돼 창조된 히로인 캐릭터가 바로, 미국식 발랄하고 명랑하며 섹시하기까지 한 ‘핀업걸’이었다. 사실 핀업걸 아트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할 병사들을 모집하는 포스터에 이용(목적을 위한 예술)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결국 핀업걸 아트는 제2차 세계 전쟁에 참여할 청년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들었으며, 전쟁참여는 애국자나 성공적인 미국 남성의 의무라고 조작했던 미국 정부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었다(박세현, 2012).
 
   “더 이상 대중의 사고는 신성하다거나 특별히 현명하고 고결하지 않으며, 대중의 사고는 결국 대중이 신뢰하는 지도자와 여론 조작에 능한 사람들에 의해 조작될 뿐인 것이다”(에드워드 버네이스, 2009)라는 말처럼, 1940년대 미국 정부는 핀업걸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미국 청년들을 피 흘려야만 하는 전장으로 몰아 넣었고, 1970년대 한국의 군사정권은 주간지 《선데이서울》에 등장한 컬??? 누드 화보를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에 찌든 남성 노동자들에게 망각의 모르핀을 주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문화의 상품으로서 《선데이서울》은 수용자(독자) 집단의 공통분모를 확보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통속적 취향, 도식화, 모호성에 대한 거부, 새로움과 관습의 조화, 센티멘털리즘, 현실도피주의, 대리만족, 유치함, 관능성 등의 특징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런 특징들은 서로 배타적 것이 아니라, 겹치기도 하고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김혜련, 2005).
 
   이런 특징을 다시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뻔한 이야기 틀을 갖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야기에 빨려 들고, 손에 땀을 쥔다(유치함과 도식성). 로맨스와 폭력, 섹스 같?? 것은 일시적으로 강한 자극성과 현실도피를 제공한???(현실도피주의).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지만 그 범위는 전통문화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새로움과 관습의 조화).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제공한다(센티멘털리즘). 대중문화는 너나 나나 다를 것 없는 족속으로 인정하며 나를 억압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를 인정하고 후원한다(통속성). 진짜가 아니면 어때! 대중문화의 관능성이 생존을 위한 노동으로 찌든 몸과 마음의 긴장과 고단함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배설하게 하는, 억눌린 성의 표현의 장(場)이다(관능성).31)
 
4. 《선데이서울》, 군사정권의 유흥문화와 호스티스 문화를 미화하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매매춘 문제에 대한 군사정권의 대대적인 단속이 벌??졌다. 모든 정권의 초기가 그러하듯 군사정권는 퇴폐풍조와 매매춘 자체를 완전히 근절하겠다는 정화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달러를 벌 수 있다면, 박정희 군사정권은 예외를 두었다. 미군 위락 시설을 위해 건립된 워커힐은 마땅한 휴양지가 없어 일본으로 떠나는 주한 미군의 달러를 벌기 위해서 구상된 매춘굴, 카지노, 미인 호스티스 등을 갖추었다. 그래서 일까. 워커힐은 당시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미군에 충성스런 군사정권의 잔머리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미군 장병 유치에 실패한 워커힐은 박정희의 기생 파티를 위한 안가가 돼버렸다(강준만, 2012).32)
 
   1973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외화 벌이를 위해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매춘부들에게 허가증을 주어 자유롭게 호텔을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매매춘 장려 정책은 ‘수출 정책’의 일환이었으며 한국관광산업의 효자 노릇을 담당했던 ???이었다. 이는 국민을 정치적 관심이나 저항을 무력화시??려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통제 이데올로기였다.
 
   이처럼 박정희 군사정권은 매매춘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매매춘 여성을 외화를 버는 애국자, 심지어 ‘민간외교관’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강준만, 2012, p.101, 재인용). 정치인이나 군부 고위층이 즐기던 요정에서 봉급자와 일반 서민층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이유로 ‘빠’와 ‘카바레’를 더욱 활성화하는 정책을 폈다. 즉 고급 요정의 대중화 혹은 범용화라고 할 법하다. 결국 군사정권은 자기들만의 요정문화를 유흥문화의 평등주의라는 명목으로 베푼 셈이 되었다.
 
   매매춘 행위와 권력은 태생은 같으나 어쩌면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너무도 다른 환경 속에서 비슷하게 커간 ?? 생명체의 이종동본(heterogeneous  homogeneity)이나 다름없다. 속성상 일란성 쌍생아의 태생적 한계를 면키 어렵다. 억압할 수 없는 성 본능의 발산이 허용되는 사회. 그것을 알면서 근거리에서 위협하는 국가. 권력으로 포장한 감옥과 제도 권력의 영속적 지배욕구. 감시와 처벌이 끝없는 반복. 배설과 즉시적 욕망의 재충전이 빚어내는 자발적 복종 기제의 순환논리. 도피와 억압의 공포가 반복되는 매매춘 사회의 구성원들은 철저한 외압과 기만적 자기충족의 논리 속에서 끊을 수 없는 공생틀과 끈끈한 서식조건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박종성, 1996). 그럼에도 군사정권은 요정 단속은 시늉만 했고, 늘 단속에 걸려든 것은 요정이 아닌 일반 유흥업소들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유흥업소문화가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 사회의 ‘끼리끼리’라는 기형적 공동체33)와 접대 문화가 사회에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압축성장의 후유증과 부작용 해소를 위해 사람들은 술과 종교에 의지해???만 했다(강준만, 2011). 특히 음주, 가무, 호색은 국민적 놀이 문화가 부재했던 시대에 가장 화끈한 스트레스 해소문화였다.
 
   다른 한편으로 유흥업소문화가 1970년대의 기이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호스티스 문화였다. 이런 호스티스 문화를 꽃피우는 데 한몫을 담당한 것이《조선일보》가 1972년 9월 5일자부터 연재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호스티스 우경아였다.34)
 
   이 소설 속 비운의 여자 주인공, 호스티스 우경아는 유흥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호스티스들을 매료시켜 자신의 가명을 ‘경아’로 바꾸게 할 정도의 반향을 일으켰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성공하자, 조선작의 《???자의 전성시대》(1974), 조해일의 《겨울여자》(1976) 등과 같은 ??설이 호스티스 문학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70년대 호스티스 문화에 대해 영화평론가 호현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0년대에 이르면서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향락산업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경기가 좋아진 기업인, 주머니에 여유가 생긴 샐러리맨들, 수출로 신이 난 사장들이 점점 늘면서 시중에는 고급 술집인 ‘룸살롱’ 같은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거리는 향락으로 흥청대기 시작했다. ‘호스티스’라는 새 유행어도 등장했다. (중략) 박정희 정권 역시 퇴폐적인 사회풍조에는 오히려 너그러울 정도였다.
 
   물론 표면상으로 장발단속, 퇴폐풍조 일소 등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고급 술집 룸살롱은 주로 신흥재벌과 소비성 장사꾼들의 사교장인 반면, 도시의 뒷골목에 있는 사창가, 유흥업소는 대???이 성을 배설하는 곳이었다. 이러한(호스티스) 영화가 대중에게 흥미 있는 소재가 된 것은 당연했다.”35)
 
사실 룸살롱의 매출은 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얼마나 괜찮은 호스티스가 있느냐에 결정되었다. 호스티스가 1970년대 밤문화의 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데이서울》에 호스티스를 미화하는 기획 인터뷰가 생기기 시작했다. 술집마담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었으며, 돈 잘 쓰고 사치하고 남자교제를 많이 하는 그런 여자라는 식의 개념으로 술집마담을 쳐다보지 말라는 충고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1급 정보’라는 타이틀 제목을 달았지만, 나중에는 ‘봉수아 마담’, ‘호스티스’ 등 직접적으로 직업명을 내세워 아름다운 야화를 좋아하는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당시 마담에 대한 소개는 좀 남달랐다. 마담?? 직업여성과 같은 등급이 아닌 화려한 전직을 가진 교양과 지조를 갖춘 조선기생 황진이나, 1970년대의 성실한 직업인으로서 평범한 사회의 한 구성인자로 되려고 노력하는 산업역군으로 묘사했다.36) 이런 호스티스,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의 마담에 대한 인터뷰 기사는 1970년 중반에 조금 뜸해졌다가 1977년 1월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강남(지금 영동), 명동 지역을 중심으로 카바레, 바, 나이트클럽 들이 서울의 유흥문화를 주도했는지, 이 당시에는 강남 지역의 바, 클럽, 나이트클럽 등의 광고가 주로《선데이서울》에 등장했다. 그러다 1976년부터 서울의 유흥가 판도가 강남과 명동에서 북창동, 종로 국일관, 신촌로터리, 영등포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기획물 ‘서울 유흥가의 새판도’가 있었다. 경제개발과 고성장 산업화 덕분에 샐러리맨들이 여러 지역에서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는 ???런 기획물은 수요(샐러리맨)가 늘면 당연히 공급(유흥업소)이 느는 자???주의 유흥문화의 시장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위에 소개된 지역 내의 중국집, 맥주 집, 나이트클럽 심지어 호텔에 대한 위치까지 세세하게 제공한 이 기획물은 심지어 윤락의 단속이 심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마저 만화지도로 그려 넣어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여기에 아리따운 호스티스가 술을 따르고 있는 만화장면도 그려 넣어 남자들의 소비욕구를 직간접적으로 부추겼다(1976년 9월 19일, 제9권 37호).
 
5. 1970년대 여성상 = 현모양처 아니면 공순이, 그것도 아니면 포르노 배우
 
   이미 논의한 대로, 1970년대 여성의 현실을 가장 도식적으로 보여주었던 대중문화는 문학 장르에??? 나왔다. 바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으로 이 작품은 천박한 호스티스 소설의 원조이며 포르노 상업주의 문학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업주의 소설의 대명사처럼 여기진 작품이지만 작품의 내용으로 보면 1970년대 일반적 여성의 현실과 상황을 변증하는 작품적 가치를 지닌다’거나 여주인공인 ‘경아’는 산업화로 인한 이농인구의 도시노동자화, 서비스업 종사의 등장이라는 당대 상황을 반영한 ‘현실의 적극적인 축도’라는 점에서 1970년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으로 긍정적이기도 하다(김은하, 2003). 경아는 근대화된 사회가 요구하는 전사적 여성상을 대변하지만, 결국 남성적 문화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군사정권의 퇴폐문화라는 3박자가 난무하는 도시에 의해 희생된 인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경아라는 캐릭터는 ‘타락한 사회 속에서 소외된 타자’였다.37)
 
   그런 관점에서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여성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노동집약적 산업화와 타락한 사회라는 앙상블이 만든 소외된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부언한다면,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만든 소외된 타자’를 추가할 수 있다. 이 3가지 키워드는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여성관을 고찰하는 시발점인 동시에 도착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장의 결론부터 말하면, 《선데이서울》은 철저히 남성 중심의 상업적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1970년대 여성을 도식화하고 개념화했다. 물론, 1970년 중반에 들면서 1970년대 신여성의 권리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여대학생들의 성과 술, 그리고 담배의 자율권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논조의 바탕에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평가 잣대는 가부장적 남성의 시선의 틀을 벗어나지 않거나, 여성은 산업화를 위해 계몽돼야 할 존재라는 점이었다.
이번 장의 연구는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여성관을 다음 세 가지 시선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5-1. 억척스러움은 근대화 여성의 덕목이자, 전통적 이조여인의 승계
   20세기 초 미국작가 헨리 아담스(Henry Adams) 는 유럽에서 성은 힘이자 에너지였지만 미국 자본주의에서 성은 에너지가 상실되었다고 말했다. 이때 성의 에너지 상실은 주로 여성에게 해당되는데, 바로 엄마로서의 성, 즉 “모든 에너지 중에서 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신비스러운 것”으로서의 재생산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신여성’은 독신여성이나 노처녀, 남성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여성 동성애자 등이 여성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공격받??던 데에는 여성성은 곧 모성이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정소영, 2004).
 
   1970년대 여성성은 두 가지 담론으로 형성되었다.
첫째, 여성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순혈적 전통주의에서 신성화된 모성 이미지로 강요받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담론이 바로 ‘이조여인’이다(정지영, 2007). 이 시기의 ‘이조여인’의 모습은 국가 주도의 지배담론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조국근대화와 탈식민 국가건설, 가부장이 상실된 가족의 새로운 가장, 신사임당의 순수정신 계승자, 여성동원의 주체 등 복합적인 이미지로 형성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이조여인’에 주목했던 이유는 1970년대가 추구하는 여성(특히 어머니)상은 한국적 전통을 지켜나???는 주인공으로 ‘안방마님과 같은 이조여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억압과 수모를 견디며 남편과 가족의 버팀목이 되는 여성들 위에 구축된 만들어진 ‘근대화된 이조여인’의 이미지였기 때문이었다.38)
 
   1960~70년대에 재현된 근대화된 한국적 여성상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억척스럽게 꾸려가는 캐릭터로 압축된다. 한마디로 이 시대의 주부는 ‘억척 아줌마(엄마)’의 표상인 셈이다.39) 《선데이서울》은 한국 여성 특히 어머니를 강인하고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은 채 남편과 자식을 봉양하며 노동하는 억척스런 엄마(혹은 아줌마)40)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부럽지 정보(1970년)’, ‘예비재벌(1970년)’, ‘맹렬 여성(1972년)’, ‘여류 경영자(1974년)’, ‘여걸열전(1976년)’ 등 여러 제목이 시기에 따라 다르게 붙었지??, 결국 이 기획물들은 인내와 희생을 덕목으로 삼으면서 ‘실사구시의 덕목을 ??춘 능동적 이조여인’(정지영, 2007)의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조장했던 것이다(<표 2> 참조).
 
다른 하나는 산업근대화라는 목적 앞에서 1970년대 여성은 남자가 벌어다 주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능동적 존재였다. 이 때 여성은 도시에서 부족한 노동력의 산업역군으로, 술과 노름으로 찌든 농촌을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변혁해야 할 진취적인 여전사로 형상화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모성의 권위와 신성함은 희석되고 그 자리를 노동력으로 무장한 여성 노동자, 즉 ‘여공’이라는 개념이 대신하게 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라는 앙상블이 소도시와 농촌에 있던 많은 여성(누이)들이 대도시로 몰려 들어왔다. 생계유지, 신분상승 등의 욕망을 안고 도시로 공단으로 몰려 들어온 그들에게 주어진 이름이 바로 ‘여공(공순이)’이었다. 본 연구자는 앞서 논의한 1970년대 여성상의 특징에 ‘억척 아줌마’와 함께 ‘억척 여공’을 하나 더 추가한다.41)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은 여공을 산업근대화의 전사로서 남성과 같은 계급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여공은 무시와 차별 그리고 계몽의 대상이라는 지배담론이 깔려 있었다. 남성 노동자와 동일한 계급적 존재로서 여성 노동자가 되고자 했던 그들이었지만, 여공들은 도덕적인 주체인 중심부 남성(혹은 여성)에 의해 계몽, 선도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목적을 위해서 여공의 정체성은 근면과 성실이라는 덕목 안에 갇혀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세 가지밖에 없었다. 과도한 노동과 가족생계를 위한 저축, 그리고 신분상승을 위한 결혼.
 
<표 2> 억척 아줌마(어머니) 관련 기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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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부터《선데이서울》에 여성 노동자의 생활을 다룬 기획물이 늘기 시작했다. ‘일 잘하는 아가씨 현장 인터뷰(1975년)’, ‘밝은 내일을 사는 젊은이(1976년)’, ‘여사원의 하루(1977년)’, ‘푸른 내일을 산다(1977년)’, ‘직장 아가씨들의 보람과 꿈(1977년)’, ‘여성 시리즈(1978년)’, ‘알뜰 안내양들의 생활(1978년)’ 등의 연재물이 여공이나 서비스업(대부분이 버스안내원이거나 백화점 판매원)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실은 기획물들이다.
 
   이들 인터뷰 기획물의 제목을 들여다보면, 이 시대의 여성상이 얼마나 도식적이고 획일적으로 조장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매달 월급을 ???껴 적금을 하며 억척같이 사는’, ‘2년 안 돈 벌어 동생들 자립시키겠다는’, ‘???보다 갑절을 산 11년 여공의 알찬보람, 낮에는 직장 밤에는 풀빵장수 누에치기로 오빠와 세 동생 공부시킨’, ‘봉제공 9년 만에 지각 두 번뿐인 처녀가장’, ‘경리사원과 호스티스 이중생활을 청산하고 통닭구이집 사장이 된 처녀주인’, ‘가장 노릇을 하는 여공들, 저축으로 좋은 남자 만날 거예요’, ‘꽃다운 아가씨들, 이들은 여공이 아닌 여사원의 대우를 받으면서’, ‘억센 남자도 지쳐 쓰러져 갈 때 혼자 잠 안자고 일했다’ 등이다.
 
   이들 기획물들의 공통 키워드는 ‘성실’, ‘근면’, ‘억척스러움’, ‘저축’, ‘소녀가장’ 그리고 ‘결혼’이다. 1970년대 《선데이서울》은 여공들에게 생존본능에 입각해서 어떤 어려움과 외로움이 와도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굳건하게 ‘공장’과 ‘버스’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저축을 하면 언젠가는 장밋빛 미래가 올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여기서 여공들의 장밋빛 미래?? 그동안 뒷바라지 했던 오빠나 남동생의 후원(?)이거나 성실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자와의 결혼이었다. 사실 오빠나 남동생들의 후원은 요원하고 그녀들의 유일한 생존전략과 계급이동은 결혼을 통해서 여공계급과 먼지투성이 공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저축이었고, 다른 하나가 외모 가꾸기였다.
 
   특히 《선데이서울》은 후자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기획물43)을 통해 여성 독자들을 흡수하려 했고 박정희 군사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당시 다수 여공들은 자신들의 훼손된 여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여대생 등 중산층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김원, 2004).
 
공장에서 여공에게는 여성으로서 성적 주체성은 ??거되었고 여성의 몸은 노동이라는 담론 하에 무성(無性)화 되어갔다. 이렇게 훼손된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하려는 여공들의 순수한 욕망을 전략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한 셈이다.
 
   특히 여공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여대생의 대학가 문화(이대나 명동의 양장점과 화장품점 , 먹거리 소개)와 일상과 그들의 패션 스타일을 소개한 기획물은 “너도 열심히 일하면 이렇게 될 수 있어”라는 암묵적인 열등감과 주된 소비층으로 떠오른 여공들의 소비풍조를 부추기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런 열등감의 반감으로 여대생의 외양을 모방하는 유행이 여공들 사이에 급속하게 번졌다. 작업장의 리본(본래 중산층 대학생들의 유행인데 여공들에게 전파됨), 화장, 고가의 할부 옷 구입 등으로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본 여공들은 여대생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치시키려 했다. 또한 그녀들에게 잃어버린 여성스러움을 증명하는 길은 버스비와 월급을 아껴 마련한 멋진 옷을 야유회나 회식 때 입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으로 남겨두는 일뿐이었다(김원, 2004).44)
 
5-2. 여성의 육체는 성기관이 아닌, 성감대
   사실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연재된 많은 선정적인 기사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화보들은 당시의 전형적인 한국 남성상을 제시한다기보다, 실추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권위와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는 남성 콤플렉스를 만회하고자 하는 자기 타협점이라 할 수 있다.45) 이러한 타협점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적 관음주의로 해석된다.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여성을 남성적 시선의 대상으로 객체화시키는 주물주의(fetishism)는 남성의 거세 콤플렉스에 대한 반감에서 형성되었다. 여성의 노동가치가 상승된 1970년대의 노동시장에서 남성은 자신의 노동력 상실에 대한 원인 제공자로 여성을 지목했으며, 여성을 낮추어보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공격성을 드러내게 되었다(정유??, 2003).46)
 
   이런 현상은 할리우드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와 일맥상통하는데, 영화는 대부분 능력 있고 행동적인 남자주인공에 의해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어떤 욕망을 가지는 것에서 비롯하여 그가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욕망을 성취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이수연, 1995). 할리우드 영화에서 대부분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보조적 역할47)이거나, 남자 주인공을 위협하는 듯하지만 결국 남자 주인공의 성취욕을 고취시키고 성욕을 자극하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48)
 
   팜므파탈은 ???성을 죽음이나 절망적인 상태로 몰고 가는 요부, 창녀 또는 악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팜므파탈의 부각은 문화적 측면에서는 근대적인 예술정신으로 이해되지만, 사회적 측면에서는 19세기 초 자본주의 사회의 남성과 여성 간의 계급적 분쟁과 갈등을 담고 있다. 팜므파탈을 소재로 한 그림들은 대부분 남성적 관점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그림 속 여성들은 섹슈얼리티가 부각되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근대화와 함께 여성의 성적 자유와 사회적 지위 상승이 대두되면서 남성들의 상상력이 극단화되었기 때문이다. 팜므파탈의 화신이 된 여성은 이브, 들릴라, 막달라 마리아, 다나에 유딧 그리고 살로메 등이다. 결국 팜므파탈은 19세기 남성들이 거세 콤플렉스에 대한 대항으로 만든 여성 판타지였다.
 
   1970년대 주간지 《선데이서울》에서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팜므파탈 이미지?? 두 가지 성향으로 압축된다. 하나는 남자들도 성공하기 힘든 사회에서 어려움을 딛고 돈과 명??를 이룬 여성 기업인이며, 다른 하나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대리충족해 줄 객체로서 존재하는 여성이다. 전자의 여성상은 ‘5-1. 억척스러움은 근대화 여성의 덕목이자, 전통적 이조여인의 승계’에서 충분히 논의되었기에, 후자의 여성상을 중심으로 논의할 것이다.
 
   1970년대 대중문화가 만든 팜므파탈 형 여성상은 19세기 예술에서 발현된 팜므파탈과는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19세기 예술작품에 나타난 팜므파탈 이미지는 거세 콤플렉스에 대한 남성의 수동성(공포)이 엿보인다면, 1970년대 대중문화 속 팜므파탈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격성(폭력)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1970년대 《선데이서울》의 기획물 속에서 드러나는 남성의 공격성은 물리적 폭력이 아닌, 시각적 관음증 폭력과 가부장적 여성관에 대한 강요로 압축될 수 있다.
 
   영국 페미니스트 영화평론가 로라 멀비는 시각적 관음증 폭력은 남성을 시선(욕망)의 소유자로, 여성을 그 시선(욕망)의 대상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남성을 능동적으로 욕망하게 만들고, 여성은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성차별적 관람방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결국 시선(남성적 주체) : 대상(여성의 육체 이미지)의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박진형, 2001). 여기서 여성의 육체는 주체가 아닌 소외된 타자로서 존재한다.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소외된 타자가 돼 버린 여성의 육체는 생물학적 기관(몸)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공략해야 할, 혹은 남성의 쾌락에 종속되어 있는 성감대로만 치부된다.
 
   이처럼 여성의 육체를 성 기관이 아닌 성감대로만 인지했던 부분을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연재된 선정적인 기획물에서 쉽게 찾을 수있다.49) 다?? 사례는 선정적인 기획물(<표 1> 참조) 가운데 여성의 육체를 하나의 성감대로만 표현한 기사들이다.
 
사례 1) ‘아마추어 인상학’(1969년 9월 28일, 제2권 39호)
여자들의 애정생활, 여자의 입을 보면 섹스 감도를 점칠 수 있다!
? 아래가 위가 다 두꺼운 입술은 정력적인 여자로 남자는 최고의 행복을 맛보게 된다. 이런 입술을 가진여자와 맞는 남성은 오히려 입술이 얇은 것이 좋다.
? 모서리가 팽팽한 입술은 내성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여자로 욕구불만에 빠지기 쉽다.
? 조그마한 입술은 사교성이 좋으며 상대를 배반할 타입이다.
? 늘어진 입술은 어???광을 부리면서 지낼 타입의 여성이다.
? 입가를 비트는 버릇이 잇는 여성은 섹스를 즐기는 타입이다.
 
사례 2) ‘남자들이 가장 끌리는 여성의 타이프’(1972년 5월 21일, 제5권 21호)
스웨덴 남성 100명을 인터뷰한 내용.
? 남성은 얼굴보다 몸매부터 먼저 본다.
? 히프 큰 여자는 매력 없으며 긴 머리는 섹시해서 좋다.
? 초육체파, 말라깽이 싫어한다.
그 외 어떤 히??에 끌리나, 어떤 헤어스타일에 끌리나 등을 그림 자료를 삽입하여 자세히 설명함.
 
사례 3) ‘얼굴만 봐도 아는 침실의 감도’(1974년 2월 3일, 제7권 15호)
얼굴을 인체에 비유하는 침실 관상을 알아냄.
플레이보이는 코 뿌리 높고, 쌍꺼풀눈이 관심이 더 간다. 귀가 붉으면 건강하고, 두툼한 입술은 평범한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코 날개가 크면 남성 심벌이 크고 정력왕성하다, 얇은 입술은 섹스에 담백하다, 콧날이 뾰족한 남자는 섹스 테크닉이 뛰어나다
 
사례 4) ‘첫눈에 알 수 있는 여성 감별법’(1974년 2월 10일, 제7권 6호)
아내를 삼아도 좋을 여자와 그렇지 ???한 여자를 감별하는 비결 소개.
남자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매가 날씬한 여자라면 좋아하기 쉽지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그저 놀아 줄 상대와 결혼상대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 아내로 삼아선 안 될 여자 : 눈(흰자위가 탁한 여자), 눈썹(찔끔거리며 이야기하는 여자), 코(뭉툭한 코는 공격적), 살결(윤기 없이 허예면 불감증), 입술(윤곽이 희미한 여자)
? 유혹에 약한 여자 : 머리를 자주 만진다. 가슴이 드러나거나 초미니 등 화려한 옷차림, 무릎 살이 찌고 발목이 잘록하다. 다리가 가늘고 털이 많다, 엉덩이가 처져 있다. 여자와 팔짱을 잘 낀다.
? 손 : 손가락을 벌린 채 내놓는 여자는 성생활도 개방적이다. 담배를 깊이 낄수록 남자 경험이 많다. 손을 꼭 모아서 내미는 여자는 조심성이 깊다. 새끼손가락을 떼어놓는 여자는 우아하다.
? 앉음새 : 오른쪽 무릎을 올려놓는 여자는 성생활에 집념이 세다. 발을 벌리는 모양은 여자는 자신의 탄력을 나타낸다. 의자를 앉아서 발을 뒤로 끌어들이는 여자는 자의식이 강하고 칭찬에 약하다
 
사례 5) ‘부위별 여성의 성감대’(1975년 1월 19일, 제8권 2호)
두 명의 백인 여성의 나체 사진 위에 성감대가 극히 민감한 곳, 조금 약한 곳으로 친절하게 표시해놓았다.
? 극히 민감한 곳 : 귀, 뒷목, 입술과 혀, 목, 유방, 성기와 치골, 허벅다리
? 조금 약한 곳 : 머리칼, 이마, 히프, 겨드랑이, 아랫배
 
5-3.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만든 짝짓기의 표본으로서 현모양처
   1970년대 내내 《선데이서울》에 연재된 기획물 가운데 단 한 번도 연재 타이틀이 바뀌지 않은 게 딱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딸자랑’이란 연재물이다. 1969년에 10월에 시작된 이 기획물은 1979년에도 계속 연재가 되는데, 국내 사회적·문화적·경제적으로 유명한 명사들의 딸자랑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실었다. 이런 명사들의 프로필은 살펴보면 쟁쟁했으니, 그 딸들의 입지조건(대학, 직업, 취미 등)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50)
 
   이 연재물에 실린 각 딸의 소개한 수많은 문구들51)에서 재미난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현모양처’다. 당대 유명인의 모든 딸들은 ‘알뜰살뜰하며’ 거기에 ‘고상하고 우아하며’ 더 나아가 ‘현모양처로 딱 어울리는’ 신붓감으로 통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고급문예지도 아닌 주간지 《???데이서울》을 ‘잘나가고 값진 신랑감’을 구하는 중매쟁이로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매주 10년 동안 연재되었으니(1970년대에 한정할 경우) 족히 400여 명이 넘는 유명인사들의 딸들이 소개된 셈인데, 짝짓기 경쟁 앞에서 그 많은 딸들은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소곳한 현모양처며 고상한 요조숙녀’였다.
 
   1970년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남성중심적 역할관계가 조금씩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여전히 남편의 내조자로서 역할분담, 가정과 사회의 권력관계의 보수성을 유지하겠다는 남성의 헤게모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업근대화가 가져다준 1970년 가정주부의 역할과 지위 상승에 대한 남성의 우려가 짝짓기 경쟁 앞에서는 여성의 젠더역할을 무기력화시켰던 것이다. 가족, 모성,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등은 가족과 주부,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하는 일에 대?? 긍정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여했다.
 
   ‘가사’는 더 이상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니라, 애정과 헌신의 표현, 상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재구성되었다. 전통적 가부장제가 직접적으로 여성을 예속화시키는 억압체계라면, 근대적 가부장제는 ‘형식적 평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장미경, 2007, 재인용). 이러한 형식적 평등은 결국 여성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권력자로 만들고자 하는 지배계급(혹은 남성계급)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52) 이런 남녀 간의 형식적 평등은 심지어 당시에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노동계의 남자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습성처럼 만연해 있을 정도였다.53) 결국 남성들은 계급평등을 인정해도 양성평등을 본능적으로 바라지 않는지도 모른다.
 
   짝짓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현모양처 만들기 이데올로기는 ‘딸자랑’에서처럼 ‘귀한 집 귀한 딸들’에게만 통용된 것만도 아니었다. 주부, 직장여성(흔히 OL), 여대생, 여공, 심지어 여중고생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충고하는 기획물도 많았다.54) 학교에서 교육이 가능했던 여중고학생들과 달리, 제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직장에서 교육이 쉽지 않았던 직장여성이나 여공 들에게는 잡지를 통한 현모양처 세뇌는 나름 중요했던 것이었다.
 
   이 당시 《선데이서울》의 현모양처 기획물은 여공들에게는 ‘순결 이데올로기’를, 직장여성에게는 ‘상사와 동료에 대한 예절’을 세뇌했다. 한편 아내에게는 외모나 예절을 가꾸?? 것까지도 현모양처 형의 내조라고 설파했다. 아내는 항상 정돈성이 있어야 하며, 몸가짐, 살림, 그리고 사고??? 이르기까지 정돈이 있어야 어떤 경우에도 부닥쳐도 명석한 판가름을 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장미경, 2007, 재인용. 《여원》, 1968, p.262).
 
다음 사례들이 대표적인 기획물들이다.
 
사례 1) ‘사랑받는 여성이 되려면 : 매너와 상식 테스트를 통해본 사랑받는 여성과 여성직장인의 본보기’(1975년 4월 6일, 제8권 13호)
? 사무실에선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엘리베이터에서는 상사나 손님에게 먼저 양보한다/퇴근 시에는 자기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책상까지 정리정돈 한다/상사에게 서류를 건넬 때에는 양손으로 공손히 전한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상사를 보면 깍듯하게 인사한다/화장실에 갈 때에는 최소한 눈에 안 띌 정도로 빨리 다녀온다/상사가 접대 중일 때 귓속말로 소곤소곤 이야기한다/화장실에서 나오는 상사와는 약간 목례로 인사한다/상사와 복도를 함께 지날 때는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간다/선배에게 일에 대한 질문을 할 때, 방해되지 않게 한다/상사가 병으로 결근하면 안부인사를 꼭 한다.
? 결혼식에 초대됐을 때 신부다음으로 멋있다는 말을 듣는 차림
결혼식에는 순백의 옷을 입지 않는다/축사를 거절하지 않고 반듯하게 이야기한다/식장에는 15분 전에 미리 도착한다/두 집안의 부모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넨다/먼저 자리를 떠야 할 때는 웨이터에게 메모를 남긴다
? 맞선에서 첫눈에 들도록 하기 위한 차림
상대방의 위아래를 훑어보지 말고 미간 사이를 보고 이야기하라/?? 데이트에서 남성이 팔짱을 끼려 하면 자연스럽게 이것을 피하라/맞선시간에는 10분전에 가고 남성이 들어오면 백을 손에 들고 일어선다/식사가 끝나면 “잘 먹었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한다/밝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금물이다/둘만 있게 됐으면 2시간 정도에서 일어선다/ 이야기 중간중간의 상대방의 이름을 섞어서 질문한다
? 품위 없는 식사태도
나이프, 포크, 젓가락 들을 휘저으면서 수다 떨지 마라/빈 접시를 절대 겹쳐두지 마라, 그건 설거지할 때나 하는 짓이다/나이프와 포크를 접시에 닿는 소리가 안 나게 하라/작은 접시에 덜어서 음식을 얌전하게 먹어라/젓가락을 무는 것 핥는 것은 금물이다/한식의 경우 식탁 위에 손이나 팔을 짚고 먹지 말라/조미료를 쓰지 말라
? 그를 따분하게 만드는 비상적인 매너들
그가 보는 데서 루즈를 고치지 ??라/스트로로 테이블에 낙서를 하거나 빠는 소리를 내지 말라/그를 제쳐두고 웨이터에게 주문하지 말라/상점에 데???가서 쇼핑에만 열중하지 말라, 만약 쇼핑을 골딱지 한 번 안 내는 남자는 바보거나 당신의 육체만을 바라고 온 남자다/어머 그래요,를 연발하지 말라/음악에 맞춰 흔들거나 장단을 맞추는 건 천박한 행동이다/데이트할 때 길을 가다 마주친 친구와 오래 수다 떨지 마라
? 키스의 에티켓
입내는 그로 하여금 정나미 떨어지게 한다/이가 더러운 것도 파행길이다/말수가 적은 것은 입내의 원인이다/남성을 리드하는 키스는 금물이다/가슴에 딱딱한 브로치, 펜던트를 달지 말라.
 
사례 2) ‘바람직한 직장여성상’(1978년 1월 7일, 제11권 1호)
1978년 통계에 따르면, 산업취업자 1,408만 명 가??데 40% 586만 명이 여성이라고 한다. 대우 면에서는 남성보다 못하다는 게 많은 직장여성들의 말이다. 왜 그럴까? 기업이나 동료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직업여성이란 어때야 할 것인가 얘기를 들어보자.
? 원인 : 일에 보람을 못 찾아/자기영역개발에 소극적/결혼 뒤에도 계속 일할 수 없어
? 남성 직장인이 바라는 여성상 : 여성다움 잃지 않고 분위기에 동화돼야/어려운 일은 서슴지 말고 동료와 상의를/동료와 상사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여사원/화장실을 출입할 때 거울보고 옷매무새를 다듬는 여사원/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동료들에게 상냥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여사원/사환 애의 손이 모자랄 때 옆 동료의 사무용품을 챙겨주는 여사원
? 보기 흉한 여성 직장인 : 출근길에 버스 속에서 졸고 있는 여성/출근시간에 늦어 계단을 뛰어올라 숨을 할딱거리며 사무실에 들어서는 여사원/책상 앞에 앉아 거울을 자주 꺼내보는 여사원/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책상에 엎???려 훌쩍거리는 여사원/친구가 찾아오거나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어머나 높은 기성을 질러는 여사원
 
사례 3) ‘담배 피는 여성들이 알아야 할 매너’(1975년 10월 19일, 제8권 41호)
필터에 루즈 묻히면 꼴불견/담뱃불 끝이 아래로 향하게 되면 천박하게 보여/팔에서 손을 비스듬히 한다/입에 담배를 물때에는 입술 1/3 위치에/연기의 행방도 고려해서 내뿜는다/빨 때는 고개를 갸웃거린다/숨을 일단 멈추고 내 뿜는다/담배를 불에 가져가는 것은 금물/불을 붙이기 전에 담배를 물지 않는다/스스로 불을 붙이지 않는다/절반가량 피웠을 땐 깨끗이 꺼버리도록
 
사례 4) ‘당신의 의자에 어떻게 앉나 : 여자들이 의자에 앉는 자세에서 그 여자의 성향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1973년 11월 5일, 제5권 45호)
다리를 위로 포개 앉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여자다/헤벌렁이 자세는 재교육이 필요하며 의지가 박약하다/한쪽 다리를 꼰 자세는 사치를 좋아하는 여자다
 
사례 5) ‘성교육의 부재가 부른 외국인과 쾌락에 빠진 성맹 세 아가씨’(1974년 6월 6일, 제7권 1호)
20대의 세 아가씨가 외국과 모르는 사이인데도 서로 쾌락의 구렁에 떨어진 원인은 성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 풍조를 덮어 놓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올바른 이성관계가 필요하다. 아가씨들은 윤락녀가 아닌 여염집의 딸들로 호기심에 자신도 모르게 일을 저질렀다. 여고를 나와야 직장을 다니건만 마리화나 피우며 자극적인 조명을 켜놓고 섹스를 즐겼다. 오히려 그들은 “사랑하는 게 뭐 나쁘
냐!” 고 말했다고 하는데, 제 정신이 아니다.
 
사례 6) ‘여공 아가씨들은 중매결혼이 좋아’(1976년 7월 4일, 제9권 26호)
혼전 순결, 지켜야 한다(94%), 둘만 낳겠다(62%). 400호 특집으로 400명의 여공을 인터뷰 하여 그들의 순결과 결혼관을 들어보았다. 그녀들의 정조관념은 의외로 보수적이었으며 배우자는 외모보다 건강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기를 원했으며, 매달 저축하는 알뜰한 예비신붓감이었다.
 
결론 :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그리고 남성의 배설 잡지 《선데이서울》
 
   이 연구는 1970년대 대표적인 대중잡지로서 20여년 이상 지배적인 위치를 점???던 《선데이서울》을 개관하고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떤 여성상을 표상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1970년대 주간지 《선데이서울》은 기본적으로 억압적 정치경제문화적 환경에 처해 있던 당시 남성들의 억눌린 섹슈얼리티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매체였다. 그런 만큼 《선데이서울》의 텍스트들은 여성에게 착취적이고 사악하기까지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성적 담론을 넓혀 연예인, 유명인의 사생활이나 취향 등을 건드림으로써 여성 독자를 겨냥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선데이서울》은 대중적인 관심사와 욕망을 건드려 줄 뿐만 아니라 대리만족까지 선사함으로써 적당히 유신지배의 권위를 세워주면서 경제적 성공도 거두는 성과를 이뤄냈다. 선정적인 기사와 선정적인 몸이 드러나는 《선데이서울》의 텍스트들은 1970년대 가부장적(혹은 군사정권) 유흥문화를 미화했으며 포르노그래피 대중문화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 연구에서 주목했던 《선데이서울》이 표상하는 여성과 섹슈얼리티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남편과 자식들을 봉양하며 억척스레 살지만 무성화, 탈성화 된 아내 혹은 어머니, 둘째 현모양처 혹은 산업역군으로 예비된 미완의 성으로서 여대생 혹은 여공(혹은 직업여성), 셋째 여성에 대한 관음증은 물론 분절화 된 성 육체 등이 그것이다. 여성이 근대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전통적 여성상의 근대적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현모양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성의 성적 매력이나 성적 주체가 들어설 여지가 그리 없어 보인다.
 
   《선데이서울》도 이러한 여성상을 칭송하지만 성적인 면에서만큼은 ‘노력’이 요구되는 타자일 뿐이다. 여대생이나 공순이로 알려진 여성들은 미완의 몸으로서 미래의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수련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남성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전환되는 존재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철저하게 몸의 인격체보다 성을 수행하는 분절적 몸으로 해체되어 관음증과 행위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진다. 이 같은 시각은 대체로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유흥문화, 다시 말해 매매춘, 호스티스 문화와 결부된다. 그 층위와 무관하게 『선데이서울』은 철저하게 남성의 지배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여성을 근대적 주체로 상정하지 못했던 1960~70년대 근대화 프로젝트의 ‘문화적 근대성’으로 풀이된다. 이는 또한 여성의 성에 대한 남근적 로망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그 로망은 당시 체제가 유신이라는 절대 강자의 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보면, 현실에서는 어떤 문화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성적 상상력’으로 그 허기를 대신해야 했던 사악함과 허약함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이 《선데이서울》의 독자연구가 아니어서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내용이나 소비 정도를 통해 ???추해 보면, 그들은 성 지식이나 태도 등이 여물지 않았지만, 성적 욕망을 소비하게끔 하는 사회적 조건을 회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19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생물학적 혹은 해부학적 실체로서의 자연적인 요소를 지니지 못한 채 남성적 담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통제되었다. 실제로 당시 여성의 성과 몸은 제도 안에서만 용인되었던 데 비해 남성의 성이 결혼제도 안팎에서 자유로웠는데(유진월, 2011), 이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상상력은 물론이고 실천적 차원의 소비도 가능케 했다. 《선데이서울》은 이 같은 남성-여성의 불균등한 성적 주체의 조건에서 가장 잘 기생할 수 있었던 잡지였다. 따라서 그 속의 인물들, 특히 여성의 몸은 소비사회의 심리코드와 맞물려 섹슈얼리티로 포장된 가상의 아름다움, 즉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섹슈얼리티 시뮬라크르(sexuality simulacre)였다. 생물학적 성(sex)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성(gender) 또한 남성(여기서 남성은 군사정부나 가부장체제를 상징하기도 한다)적 시선에 의해 형상화되고 조작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여성을 ‘소비’하게 하는 불균형적 남성-여성 주체??계성과 당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제공된 이같은 성적 상상력은 《선데이서울》이 1970년대식 ‘성정치’(sexuality politics and gender politics)의 공간이었음을 함의한다. 《선데이서울》은, 유신의 엄혹함으로 보면 성은 물론 문화적 상상력의 확장에 기여한 텍스트로 읽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의 확장, 다시 말해 서울이 지방을, 고학력자가 저학력자를, 자본가가 노동자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일관한 성정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선데이서울》은 근대화된(혹은 근대화 되고 있는) 국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노동이 아닌 여가의 시간에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듯 보이는 성을 통해 억눌린 상상력을 촉진하면서도 매우 농도 깊은 권력작용을 수행해낸 대표 텍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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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이 원고는 《한국문학연구》(2013)에 게재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2) 서울신문사는 자사의 주간지 《선데이서울》을 ‘4천 만의 교양지’로 기록했다. 대중의 구미에 맞는 ‘넘치는 멋’과 ‘풍부한 화제’ 그리고 ‘감미로운 내용’을 모토로 80쪽 잡지를 비교적 싼 값인 20원에 내놓아 일약 인기 상품으로 만들었다며 자평했으며, 독자층을 회사원이나 중견 직장인, 사회지도층, 가정주부, 근로자 등 거의 전체 층을 망라하고 있어 이른바 ‘4000만의 교양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서울신문사, 2004). ??울신문사의 자평과 달리, 《선데이서울》은 당시의 사회윤리관념상 ‘낯뜨거운’ 내용을, ‘야한 기사’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화보’ 등으로 가득 찬 통속주간지로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대중통제 이데올로기인 포르노 공화국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김동원, 1995).
3) 1964년 9월 27일에 발간된 《주간한국》은 타블로이드판 32면으로 ‘심층 뉴스나 생활주변의 화제를 재미있게 보도’한 것으로 대한민국 주간지 시대를 연 장본인이었다. 《주간한국》이 발간되는 토요일이면 새벽부터 신문사에 가판 소년들이 떼로 몰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주간한국》은 20만 부 발행을 보이던 《선데이서울》과 달리, 43만 5000부까지 발행되었다(강준만, 2007, p.425).
4) KBS TV의 개국은 군사정권의 군사작전식 일 처리방식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1961년 11월 6일 텔레비전 방송국 기공식이 거행되었고, 11월 8일 공보부에서 공모한 제1기 텔레비전 방송요원들이 배속되었고, 12월 10일 미국에서 방송기자재가 도착했다. 남산에 방송국사를 짓는 공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날씨가 추어지자 콘크리트가 얼까봐 소금을 섞어가며 강행군을 했다. (중략) 남들 같으면 아무리 빨리 해야 2~3년은 걸려야 했을 일을 불과 3개월도 안 걸려 해치웠다(강준만, 2007, p.409~410).
5) 급격한 산업구조의 고도화, 군사주의적 성장 정책의 핵심에는 이에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한 농촌의 해체, 이른바 ‘이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평균 이농 인구는 1960~65년에 매 연 27만 명, 1966~70년에는 59만 명, 1970~75년 사이에는 50만 명, 1975~80년에는 66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농은 농촌 인구의 급속한 감소를 가져왔다(김원, 2005, p.200)
6) 1953년 장준하에 의해 창간된《사상계》는 박정희 정권과 맞서 싸우다가 1970년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었다는 이유로 폐간 조치되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사상계》에 대해 이른바 ‘반품공작’으로 탄압했다.《사상계》가 출간되면 대량으로 주문하여 가수요를 창출한 다음 3개월 뒤에 고스란히 반품으로 ???돌려 보내는 방식으로《사상계》의 재정에 큰 타격을 입혔다(강준만, 2007, p.415).
7) 《선데이서울》은 1970년대 내내 매년 새해에 출간하는 잡지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의 청사진을 장밋빛으로 칭송한 만화를 연재했다. 대표적인 홍보만화로 ‘만화로 본 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76년 파노라마’(1969년 10월 12일, 제2권 41호), ‘잘살게 될 내일의 살림, 일하는 정부의 미래 설계도’(1971년 4월 18일, 제4권 15호), ‘무엇이 달라졌나, 대통령 취임 한돌’(1972년 7월 16일), ‘희망 부푼 76년 우리 살림’(19 76년 1월 25일, 제9권 3호), ‘여의도의 새 명물 KBS 방송센터’(1976년 11월 7일, 제9권 44호), ‘우리도 잘살게 된다
: 대통령 연두회견으로 내다본 올해의 살림’(1977년 1월 23일, 제10권 3호), ‘더 좋아집니다. 78년 청사진 : 박대통령 연두 회견 내용을 그림으로 쉽게 풀어 보면’(1978년 1월 29일, 제11권 4호) 등이 있었다.
8) 박정희는 모든 길은 수출로 통한다는 슬로건 아래, 수출 전사로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했다. 자신의 집무실엔 기업별 수출 현황을 막대그래프로 그려 놓게 했으며, 수출 실적을 매달 체크하면서 관계부처와 기업들의 ‘고지 점령’을 독려했을 정도였다(강준만, 2002, p.24).
9) 1970년대 생산직 노동자의 노동시간 추이에 대한 노동부의 ‘노동통계연감’에 의하면, 1974년과 1978년을 비교해보면 218시간에서 260시간으로 노동시간은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월 노동시간은 1980년에 이르기까지 25~27일로 늘었다. 그러나 이는 잔업 등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노동시간은 더욱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김원, 2005, p.203).
10) 언론인 송건호는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가 조사한 주간지 내용 분석’을 인용하면서, 주간지 독자층을 “생활수준에 따라 분류해보면 상류층이 21.1%, 중산층이 25.5%, 서민층이 51.4%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주간지를 보는 율이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돈 많은 주간지가 아니라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은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들처럼 다른 오락을 즐길 수 없는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라고 분석했다(송은영, 2011, p.203 재인용). ‘주간지의 문제점’,《고난의 길 진리의 길》, 한길사, 2002, p.297.
11) 이런 분기점의 요인을 박정희 군사정권의 경제개발 계획단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같다. 경제개발 계획단계는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문화재 개발 5개년 계획(1969~1974)’과 ‘문예중흥 5개년 계획(1974~1978)’로 나누어져 있다. 1974년을 중심으로 전통성 고수를 넘어서 근대화 개발의 과속화가 드러난다(임종수, 2003, p.100 참조).
12) 남성적 관점에서 기획된 연재기사들은 창간호부터 있었다. ‘인기영화감독의 신상조서(1969년 7월 6일, 제2권 27호)’와 ‘인기가요작곡가의 신상조서(1969년 7월 27일, 제2권 30호)’ 등에서 대중적 유명인?? 재산, 경력, 취미, 잡기뿐만 아니라, 술과 여자관계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 외에는 ‘예비재벌’, ‘30대 사장’, ‘재벌 2세’ 등 성공한 남??들의 성공담과 사적 취향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13) 섹스촌 탐방 관련 ‘흑민빈민굴의 섹스 실태 보고서’(1970년 2월 1일, 제3권 5호), ‘덴마크의 집단가족 사회의 공동섹스 공동육아’(1970년 3월 22일, 제3권 12호), ‘미국 워싱턴 정계의 사교 고발’(1970년 12월 13일, 제3권 50호), ‘술따라 여자따라 특파원 풍류 실험여행’(1969년 7월 27일, 제2권 30호), ‘북유럽 복지국가의 성 해방과 자율, 그리고 다부다처제의 실체’(69년 10월 19일, 제2권 42호)
14) ‘봉수아 마담’(73년 7월 22일, 제6권 29호), ‘밤과 돈 그리고 인생, 그 이름 호스테스’(73년 11월 18일, 제6권 46호)
15) 직장인 여성을 다룬 기사들로는 ‘일 잘하는 아가씨’(75년 7월부터 연재), ‘밝은 내일을 사는 젊은이’(1976년 3월 21일, 제9권 11호), ‘여사원의 하루’(1977년 3월 13일, 제10권 10호), ‘푸른 내일을 산다’(1977년 3월 20일, 제10권 11호) 등이 있다. 이처럼 기사의 연재 제목만 바뀌었지만 기사의 중심은 직장인 여성이나 여공을 인터뷰한 것들이다. 대부분 성실하게 산업역군의 몫을 이뤄내면서 저축까지 하는 알뜰한 여성상을 칭찬하는 기사들이었다.
20) 송은영의 논문 ‘1960~70년대 한국 대중사회와 대중문화의 정치적 의미’, 《상허학보》(32호), 2011. p.205를 의미에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구자가 재작성했다.
21) 박성봉(1994),《대중예술의 이론들 : 대중예술 비평을 위하여》, p.22, 동연.
22) 본 연구는 ‘통속성’의 개념 논쟁에 초점을 두지 않으며, 대중문화이론가 로버트 패티슨(Robert Patison)의 ‘통속성’ 정의를 따르고 있다. ‘통속성은 세련된 교양의 결핍이며, 세련된 교양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통속적이다. 통속성은 범속하고, 소란??고, 조잡하고, 무엇보다도 비초월적인 것을 뜻하며, 통속적인 인간이 존재하게 되는 본래의 환경은 소란스럽고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군??이라고 하는 집단이다(박성봉, 같은 책, p116~117).
23)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국어사랑정책’은 영어로 된 가수 이름을 모두 국어로 바꾸라고 규제했다. ‘어니언스는 양파들로’ ‘투코리언즈는 두 한국인으로’ ‘라나에로스포는 두꺼비와 개구리로’ ‘투에이스는 금과 은으로’ ‘패티김은 김혜자로’ ‘김세레나는 김세나로’ ‘키보이스는 열쇠소년으로’(이성욱, 2004, p.55).
16) 대한가족계획협회의 주관으로 피임을 권장하는 계몽성 광고도 등장했다. ‘피임하여 건강한 생활을 합시다’(1975년 2월 2일, 제8권 4호), 1974~75년 이전에는 성병 치료에 대한 광고들이 많이 등장했다면, 그 이후에는 즉석 피임약 광고가 많이 등장했다. ‘레이디 시대, 즉석 피임약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었습니다’(1976년 7월 25일, 제9권 29호) 등.
17) 이런 기사들과 함께, 《선데이서울》의 독자층 추이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잡지에 게재된 광고???다. 1970대 초반에 게재된 광고는 ‘남성 기성복 광고’ ‘냉동기술학원’ ‘자동차운전면허학원’ ‘탈모증 치료제’ ‘고급 스테레오 전축’ ‘성병 치료제’ ‘맥주홀이나 나이트클럽’ 등이었다면, 1970년 중후반의 광고는 ‘영화’ ‘피임약’ ‘생리대’ ‘화장품’ ‘유망직종 미싱자수’ ‘검정고시학원’ ‘결혼용품’ ‘껌’ 등이었다. 여기서 보면, 전자는 성인 남성을 겨냥한 광고라면, 후자는 여성, 청소년 등을 타깃으로 하는 광고들이다. 따라서 광고의 변화가 《선데이서울》의 독자
층 변화를 간접적으로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18) 오인환, ‘주간지 자극적인 범죄기사가 22%’, 《동아일보》, 1975년 11월 28일.
19) 선데이서울》은 창간 당시에는 지면 80쪽에 값이 20원이었??, 1978년에는 지면 132쪽으로 52쪽이 늘었으며 값도 200원으로 올랐다(서울신문 100년 편찬위원회, 2004, p.412).
24) 이성욱, 같은 책, p.82.
25) 주로 텍스트로 이루어진 대량인쇄 매체물은 그 속성상 맨투맨의 소비구조를 따르고 있다. 생산자의 텍스트 형성은 다수를 상대로 진행되지만, 소비의 주체는 한 개의 인쇄물을 읽는 ‘나’라는 개별 독자로 지정된다.
26) 1970년대 후반부터는 섹슈얼리티 욕구를 대리만족해주었던 대중문화는 에로 영화였다. 흔히 ‘여자’ 시리즈로 알려진 이 에로 영화의 주된 소재는 유흥업소의 호스티스들이었다. 음성적인 포르노그래피라고 할 수 있었던 에로 영화는 포르노그래피의 대용물이라는 기능을 담당했고, 1980년대를 접어들면서 그 공급과 수요는 급격히 증가되었는데, 종로 세운상가나 청계천이 시쳇말로 ‘삐짜’ 포르노테이프의 메카로 떠올랐다(박진형, 2001). 1960년대 대중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욕망을 흡입한 세운상가(쇼핑공간과 유흥공간의 상징)는 산업자본주의의 전성기인 197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이동연, 2009).
27) 1970년대 한국 남성의 여성관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기획물이 1969년 송년호에 실렸다. ‘60년대 세계 여성을 논하다 : 서울신문 기자 7명이 모여 세계 여성을 논하다’(1969년 12월 21일, 제2권 51호)의 이야기들을 잠깐 보자. “노랑머리 좋다 해도 한국 아가씨가 역시 좋아.” “공창하면 역시 서독이죠. 입구 정리는 기마 경관이” “얼굴은 인도, 몸매는 태국, 서구선 스웨덴 여성을 쳐” “이색적인 터키의 공장가, 간통한 여인은 봉사 속죄” “한국 남성도 자신 가질 만, 반하는 외국 여성들 많아” 등.
28) 그 외에 프랑스 패션계의 대모로 86세에 컴백한 코코 샤넬의 남성편력(1970년 1월 18일, 제3권 3호). 미 대통령 백인 비서가 흑인으로 분장하여 흑인 빈민굴의 퇴폐적인 섹스 실태를 잠입하여 취재한 보고서(1970년 2월 1일, 제3권 5호), 재산도 섹스도 아이도 공동 소유하는 덴마크의 ??단가족사회의 성문화(1970년 3월 22일, 제3권 12호), 미국 워싱턴 사교계의 성욕의 삼각관계를 다룬 르포기사(1970년 12월 13일, 제3권 50호), 마릴린 먼로의 ???생활 밀착 취재(1971년 3월 28일, 제4권 12호) 등이 있었다.
29) 이성욱, 같은 책, p.87. 30) 이성욱, 같은 책, p87~88
31) 이 글은 김혜련(2005)의 ‘대중예술의 센티멘털리즘의 원천’에 실린 대중예술의 특징을 재구성한 것이다. 김혜련(2005), 《아름다운 가짜, 대중문화와 센테멘털리즘》, p81~107 참조.
32) 박정희가 워커힐 건설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거의 매일 왕래했다고 한다. 그런 왕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지은 도로가 바로 1969년 3월 22일에 준공된 3·1고가도로(청계고가도 1로)였다(강준만, 2012, p.78). 박정희는 야당 정치인들에게 정치 보복을 하더라도 여자관계만큼은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기생 파티의 가치를 인정하고 높게 평가한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에 육??수 여사와 육박전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강준만, 2011, p.39).
33) ???계에 따라 서열화된 경직된 단일주체로 독점과 지배를 도맡아온 권력지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어른, 중산층들이 ‘따로와 끼리 문화’를 만들어냈다. (중략) 이를 각 개인의 생김에까지 쓰며들도록 “일상생활의 영역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가부장주의 또는 부계 혈통주의와 결합함으로써 파시즘의 아비투슬 강화”시켜 나간다(정유성, 2001, p.23).
34)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은 이 소설을 보기 위해 《조선일보》를 산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73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소설은 1975년까지 40여만 부가, 지금까지 100만 부 이상 판매가 되었다. 그리고 1974년 4월 26일에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로 상영되었으며, 같은 해 8월 8일까지 105일간 46만 4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대기록을 세웠다. 강준만(2011),《룸싸롱 공화국》, p.48~49, 인물과사상사
35) 강준만(2011), 같은 책, p.51.
36) 전국피겨스케이팅 챔피언에서 살롱 마담이 ?? 홍성애(1969년 11월 16일, 제2권 46호), 전위미술학도로 유학자금을 벌기위해 마담이 된 쉘부루의 정강자(1973년 7월 29일, 제6권 30호), 단 한 번의 사랑도 해본 적이 없는 31살 순수파 마담 쉐리의 백숙(1973년 9월 16일 제6권 37호), 동생을 위해서 첫사랑도 버린 가장마담 예그린의 민진숙, 목돈 만들려고 일숫돈 부어 비어홀 차린 로열박스 윤미현, 사랑에 속고 돈에 운 26세의 N 나이트클럽 이호선, 죄인처럼 가슴 죄는 여대생으로 가족의 생계와 학비를 버는 F살롱 박미애(이하 1973년 11월 18일, 제6권 46호)
37) 경아의 욕망의 대상은 딱히 ‘도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현모양처의 삶이며, 파멸의 원인은 가부장제의 가족 질서 속으로 들어갈 자격 상실의 징표인 순결을 상실한 몸의 ‘불구성’ 탓이기 때문이다(김은하, 2003, p.272).
38) 정지영(2007), 1970년대 ‘이조여인’의 탄생 : ‘조국근대화’와 ‘민족주체성’의 타자들, 《여성학논집》(제24집 2호), p.51 내용을 참조하여 재정리함.
39) 1960~70년대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가정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억척스러움을 재현하는 영화들이 많았다. <모범운전자 갑순이>(1972), <왈순 아지매>(1963), <나는 여자 운전자>(1965), <날개 부인>(1966) 등이 대표작품이다. 특히 당대 최고의 스타인 윤정희와 신성일이 주인공이었던 <모범운전자 갑순이>는 “억울하면 돈 벌어라. 행복을 물어뜯는 왈가락 아가씨”라는 카피로 ‘코믹 청춘영화’로 홍보했지만,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가 나오는 첫 장면, 청계고가도로를 달리는 택시, 한복차림의 갑순이와 유니폼 차림의 왈순이의 대조, 근대적 고급 노동인력을 상징하는 운전면허증, 핫팬츠와 선글라스를 낀 갑순이의 모습 등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에 대한 함축적인 홍보 아이콘이었다(황혜진, 2009, p.121~122).
40) 억척 엄마 이미지는 현대 사회에서 선거 전략에도 많이 활용되고 ???다. 이를 뉴마미즘(New Momism)이라고 하는데, 뉴마미즘은 여성 정치인의 선거 전략에서 점점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런 모성정치는 여성 리더가 모든 여성을 ??표한다는 상징성을 의도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엄마의 마음으로 남성 정치인이 놓치는 감성주의를 마케팅하는 효과를 준다(권김현영, 2012, p.28).
41) 이 시대의 많은 가정이 엄마, 특히 누이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본 연구자의 가족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연구자의 두 명의 누이도 학업(중학교)을 포기한 채 가족의 생계와 두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산업화의 역군으로 내몰려야 했다.
42)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큰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사법시험에 합격시키고, 둘째 아들까지 사법시험에 합격시킨 장한 어머니 황을연 여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사 바로 옆 커다란 세로형 박스 안의 표어다. 그 표어의 문구는 ‘유신의 횃불 아래 뭉치자 너도나도’로, 이 당시《선데이서울》의 매체적 정체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글귀다.
43) 이런 기획물로 표지 모델들의 패션 스타일, 인기 연예인들의 관심사와 남성관, 수영복 스타일, 직장 여성들의 화려한 유니폼, 여대생의 하루와 먹거리 문화 그리고 연애이야기, 대학가의 유행, 가슴을 탄력있게 가꾸는 미용체조, 미니와 미디의 유행 스타일, 톱디자이너가 추천하는 패션 스타일 등이 있었다.
44) 이 당시 여공들의 여대학생 모방하기 유행에 대한 부작용을 보여주는 기사가《선데이서울》에 실린 적이 있었다. ‘가짜 꽃뱀 여대생 사건 : 남학생을 후린 가짜 여대생(1975년 6월 8일, 제8권 22호)’라는 제목의 이 기사를 보면, 20살 아가씨가 서울대학교 캠퍼스를 누비며 남자 대학생을 상대로 사랑과 돈을 갈취하다가 사기혐의로 경찰에 잡혔다. 가슴에 배지를 달고 옆구리에는 책을 낀 이 가짜 여대생에게 1년 동안 5명의 남자 대학생이 재물과 순정을 바쳤다. 그중 한 학생은 이 여자 때문에 어이없는 탈선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했다. 1974년 서??대학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한 후 부모에게는 합격했다고 속이고 초등학교 가정교사로 전전긍긍하다, 대학에 못 들어간 것에 대한 분풀이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다. 이 기사는 병(여성의 욕망) 주고 매(주홍글씨)까지 주는 주간지《선데이서울》의 교활한 기획의도를 가늠해보게 한다.
45) 남성의 가부장적 위치는 텔레비전의 보급 덕분에 서서히 가정에서부터 실추되기 시작했다. 그 예로 1960년대 후반 가정에서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이 남편이 아닌 아들딸과 아내에게 더 많았다는 데 있다. 임종수는 이런 현상을 생득적 지위(ascribed status)를 가진 남성과 성취적 지위(achieved status)를 보유하게 된 여성의 존재론적 특성이라고 설명했다(임종수, 2003, p.102 참조)
46) 1970년대 실추되고 있는 가부장성을 우려하는 남성들의 걱정을 반증해주는 ‘한국 최다처 최다산 기록의 매머드 가족(1974년 1월 13일, 제7권 2호)’라는 기사를 살펴보자. 호적상 부인이 12명에 33명의 자녀를 둔 매머드 가장이 한국에 있었단다. 경남에 사는 C??에 본적을 둔 이 행복한(?) 가장의 호적원부는 무려 1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었다. 호적대로라면 본 부인이 15명의 자녀를 낳았고 혼외 출생이 18명. 쌍둥이 3번, 3쌍둥이를 1번 낳았고 1960년에는 무려 6명의 자녀를 얻기도 했단다. 본부인이 딸만 낳은 4명을 낳아 아들이 필요해서 혼외 자식을 얻었던 게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었던 당시의 남자들은 기가 찼을까, 아니면 부러워했을까.
47) 여자 주인공의 보조적 역할은 1970년대나 지금 할리우드 영화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2013년 어린이 애니메이션에도 남자 주인공의 강인함에 비해 요조숙녀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로보카 폴리>에는 4명의 주인공 트랜스포머(폴리스카 폴리, 소방차량 로이, 앰뷸런스 엠버, 헬리콥터 헬리)가 등장하는데, 그 중에 앰버는 여자다. 주제곡을 들어보자. ‘폴리는 용감하고 빠르죠, 로이는 누구보다 강해요, 앰버는 상냥하고 똑똑해’다.
48) 매스미???어에서 여배우는 배우 자체의 캐릭터를 넘어, 여전사 이미지로 나오지만 결코 종국적으로는 남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더 나아가 대중의 욕망을 창???하고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섹슈얼리티로 가득한 상품가치로 평가된다(정소영, 2004, p.50 참조).
49) 1970년대 《선데이서울》의 선정적인 기획물을 몇 가지 키워드로 압축해보면 다음과 같다. ‘에로 여배우’ ‘여자의 과도한 욕망’ ‘성전환자의 실체’ ‘누드 모델’ ‘여비서와 애정행각’ ‘야수들의 성생활’ ‘성형 부작용’ ‘고령 남자와 처녀의 결혼(혹은 그 반대, 고령 여자와 총각의 결혼)’ ‘섹스 비법’ ‘관능적 여자(혹은 남자) 되기’ ‘헌팅 속공법’ ‘관상과 인상, 혈액형, 색깔로 본 섹스 성향’ ‘남편의 바람기 vs 아내의 바람기’ ‘직업여성(고고걸, 호스티스, 다방 레지, 매춘부 등)’ ‘성병’ ‘여성의 성감대 해부’ ‘유명인의 섹스 스캔들’ ‘요정 혹은 유흥업소 탐방기’ ‘해외 유명 섹스촌 밀착 취재’ 등이다.
50) ‘딸자랑’에 실린 딸들의 부모의 직업군이 당시 한국 사회를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숙명여대 총장 이인기 박사, 서울대학교 음대 이왕규 교수, 한일은행 조달과?? 정종식, 대미산업주식회사 강대석 대표, 대한어머니회 총무 김연신, 서울식품공업 대표, 현대모직주식회사 차정규 대표, KAL 경리이사, 해외개발공사 월남지사장 김병길, 대한항공협회협회 회장 김동배, 농어촌개발공사 총재, 경희대 음대교수 홍종균, 오뚜기식품 성태호 대표 등. 편집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었다. ‘딸자랑’ 코너 다음에 ‘여공’을 다룬 기사들이 있거나, 혹은 그 반대 순서로 편집이 구성된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51) ‘딸자랑’의 각 카피들은 다음과 같다. ‘언제나 재치 있는 위트로 딸 4형제의 교량역 맡는’ ‘모양 안 내도 타고난 미모에 바느질이 취미인’ ‘지성미 겸비한 현모양처’ ‘예능, 스포츠 뭐든지 하는 스튜어디스,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지는 아가씨’ ‘어려서부터 집안의 기둥, 바쁜 엄마의 오른팔 노릇까지’ ‘아버지의 멋을 연출하고 수예 솜씨로 안???장식도 하는 살림꾼’ ‘고교 때부터 부엌일 돕고 아빠 시중 잘 드는 글래머’ ‘무용가 꿈꾸던 재롱둥이, 요즘은 충실한 주부지망, 묵화와 글씨 배우며 틈틈이 양재공부도’ ‘엄마 솜씨 익히려고 부엌도 자주 출입하는’ ‘엄마 없는 집안일 도맡은 차분하고 알뜰한 살림꾼’ ‘아빠 내조에 정성 다하는 다재다능한 1급 신붓감, 새 올케, 식모와 의좋게 지내기도’ ‘딸 부잣집의 살림꾼으로 자라 엄마 도우며 다섯 동생에겐 용돈도 주기까지’ ‘사치, 낭비 모르는 건실한 성품에 허약한 체질을 의지로 이겨낸 여의사’ ‘너그럽고 꾸밈없는 아가씨 수업 끝나는 즉시 집에 와 가사돌보기도’ ‘착한 딸, 너그러운 큰 어니, 고전적인 아름다움 그윽, 신부자격 모두 갖춘 훌륭한 색싯감’ ‘곱게 자란 딸, 사윗감은 생활의욕이 강한 남성을’ ‘조용하고 순종적인 성격’ ‘타고난 고운 마음씨, 미장원 모르는 소박한 일상, 신부수업도 착실히’
52) 현모양처 형 여성상을 계몽하는 역할은 남성들만 담당했던 것은 아니라, 흔히 제도권이나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계급들도 1970년대 여성상을 현모양처 ??으로 규정하고 무지한 여성은 계도되어야 한다는 글을 실었다. 19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린 기획물 가운데 여성 지도층이 여성(특히 여공)의 순결, 근면, 성실, 내조를 강조하는 기사로 ‘젊은 풍속도를 진단한다 (1975년4월 6일, 제8권 13호)’가 있다. 목영자라는 병원장의 기고연재글로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여자가 겁도 없이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자는 행위는 금해야 하며’ ‘결혼할 상대는 철저하게 완전무결해야’ ‘후회하는 신세대보다는 차라리 보수적인 여자가 낫다’ ‘술집 드나들며 호기부리다 남자와 어울려 불장난까지 그 책임은 모두 여자에게 있다’ 등 주로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성에 대한 차이점을 구술하면서 보수적인 성 관념을 계몽하는 기고기사였다.
53) 1970년대 노동현장에서 남성 노동자들에게 의해 작업장 폭력을 당한 여성 노동자의 사례는 흔하다. ‘사나이다움’이란 미명 하에 자행된 성폭력, 성관계, 폭행 등은 노동계급 남성들에 게 \'자존심‘처럼 여겨졌다. 이런 작업장 내의 여성 폭력은 심지어 노조운동 내부에서도 일어났다(김원, 2005, p.346~356 참조).
54) 1970년대에 여학생의 경우는 남학생보다 가방이나 블라우스 색깔은 물론 스커트 길이, 신발, 양???, 머리핀의 종류와 색깔, 크기 등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규제에 노출되었다. 이 당시 여고생들은 방학기간 동안 강원도에 위치한 신사임당 교육원에서 이삼일 간의 훈련을 받았고, 그 훈련의 내용은 ‘현모양처’에 관한 것으로, 한복 입는 법, 차 끓이는 법, 서예 하는 법, 예절 교육 등이었다(나윤경, 2008, p.323~3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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