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만화축제
「만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에서 즐겨라」 제19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심포지움 현장스케치
서은영 2016.08.11
제19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심포지움 현장스케치
 
 「만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에서 즐겨라」  
 
서은영(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포럼 위원)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의 화두는 “만화의 미래, 2030년”이었다. 이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논의들을 불러일으키는 생산의 장(場)이 되었다. 과히 역동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강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유명한 저서인 『만화의 이해』와 『만화의 미래』를 집필한 스콧 맥클라우드의 강연은 “만화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는 미래가 과거와 현재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흔히 미래라고 하면 지금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을 상상하지만, 사실 미래에도 과거의 산물은 여전히 소비되고 있으리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할 뿐이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정체성을 재언급하면서 미래의 만화가 현재의 만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는 국제심포지움이었던 <2030, 만화의 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심포지움에서는 한국, 일본, 프랑스 3개국 만화의 현재를 살펴보고 각 국의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현재 각 국이 처한 만화의 환경은 곧 과거로부터 구축된 것이며, 이것은 다시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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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VR> 세미나는 그야말로 다가올 미래를 실감나게 재현한 주제발표였다. 이 세미나의 연사들은 VR 기술을 구현한 콘텐츠 제작자들로 구성되었다. 아직은 상용화되지 않아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특히 이 세미나에서는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콘텐츠에 어떻게 적용되어 왔으며 어떤 장단점을 지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 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낯선 기술인만큼 VR이 만화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흥미로운 세미나였다. 무엇보다 연사들 모두가 공감한 것은 “스토리의 힘”이었다. 주로 게임과 전시 분야 콘텐츠에 주력하는 이들이 보기에도 기술의 변화에 앞서 중요한 것은 바로 “스토리”였다. 기술이 변화하면 그것에 적합한 스토리의 개발과 적용이 성공한 콘텐츠를 만들며, 그것은 기술의 성패를 가늠하기도 한다. 결국 만화의 미래는 기술의 발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할 “스토리”의 발견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심포지움의 주제였던 박기수 교수의 <2030, 미래의 만화환경>은 만화의 미래를 예측할 많은 시사점들을 제시해주었다.  
 
1) 장(場, field)의 변화와 향유자
 
최근, 연일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된 뉴스로 "포켓몬 GO"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포켓몬 GO와 관련한 뉴스 중에서도 단연 이목이 집중되었던 것은 속초와 울산으로 몰려든 플레이어들의 소식이었다. 속초와 울산이 “포켓몬 GO의 성지”로 알려지면서 게임을 즐기려는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그 주에만 평시 관객의 3-4배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속초와 울산에 머물렀다. 갑자기 몰려든 플레이어들에 그 지역 상권은 때 아닌 특수를 누렸으며, 지역 상인은 물론이거니와 지자체마저 뜻밖의 횡재(!)에 얼떨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뉴스는 현재 우리가 처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의 변화가 시장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생산자나 사업자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유도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포켓몬 GO의 서비스가 되지 않았고1), 그렇기에 포켓몬 GO와 관련해 어떠한 개입도 없는 상태였다. 플레이어들이 속초와 울산으로 몰려든 것은 어디까지나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정보 공유와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듯 인터넷이라는 웹 디지털 환경은 장(場, field)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콘텐츠 장(場) 내부에서 새롭게 구동되고 있는 움직임들, 징후들을 포착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 2016년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심포지움에서 박기수 교수는 만화 장(場) 내에서의 이러한 변화들을 포착하고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2030년의 미래를 예측하고 발전적인 방향의 논의점들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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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급변한 디지털 환경에서 박기수 교수가 만화 장에 주목한 것은 여러 콘텐츠 가운데서도 만화가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다양한 시도가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예로 <야매토끼>와 <이말년씨리즈>, <조선왕조실톡>을 들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만화가 가지는 특성에서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특성들을 구현하며 꽤 성공한 콘텐츠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들을 교조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것을 지양하고, 되려 “이런 새로운 변화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변화하고 있는 것들 안에서 새로운 정체와 위상을 실천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 안에서 박기수 교수가 제시한 만화의 장은 “창작-유통-소비라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 요소의 일방성이나 서열성을 거부하고 향유를 매개로 운동하는 활동의 장”이다. 즉 그간 생산자와 사업자에 의해 일방향성, 편향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밖에 없었던 만화 장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던 향유자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며, 생산자-사업자-향유자를 동등한 위치에서 재구조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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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장(場) - 박기수, 「만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에서 즐겨라」,
<부천국제만화 컨퍼런스 자료집>, 215쪽 도표.
 
만화 장 안에서 향유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해 열렬히 지지를 보내는 것을 너머 공유하고 참여하며, 직접 체험하길 원한다. 마치 포켓몬 GO의 플레이어들이 직접 게임을 즐기기 위해 속초와 울산을 자발적으로 찾아간 것과 같은 행위들이 만화 장 내에서는 이미 발생하고 있었고, 그 이상의 행위들이 수행되고 있다. 박기수 교수의 말처럼 만화 장 내에서의 향유는 “자발성, 개방성, 수행성의 즐거움에서 출발하는 참여적 수행으로, 텍스트를 매개로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수행(performance)을 전제로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향유는 다양한 매체를 횡단하며 지속, 강화, 확산되어 스토리 월드(story world)를 확장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이다.
 
2) 향유로서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한동안 문화산업에서는 OSMU가 산업계 전반을 휩쓸었다. OSMU는 One Source Multi Use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원천소스(One Source)를 어떻게 Multi Use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잘 만들어진(Well-made) 원천소스를 찾는 데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원천소스가 좋으면 다른 매체로 전환 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적어질 것이라는 일종의 ‘미신’ 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일례로 대중성에서 성공한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실패한 사례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원천소스에 대한 기대가 생산자와 사업자에 의해 일방향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OSMU의 개념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향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박기수 교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란 “향유를 기반으로 탈중심적 자기증식적 서사를 가지며, 텍스트의 독립성이 탄력적이고 비순차적인 과정으로 발생하며 적극적인 팬덤까지 포함된다”고 정의한다. 그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 향유를 활성화함으로써 콘텐츠의 가치를 늘 현재진행형의 상태로 유지하려 한다.
?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실천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 스토리월드를 구성하는 핵심 정체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개방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 텍스트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모듈로서만 완결될 뿐이다.
? 끊임없는 자기증식과 구현 매체 및 기술, 주변 장르와의 융합(convergence)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체험하고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 우리가 ‘향유’라고 했을 때 읽고 즐기는 1차적인 수준을 생각했다면, 디지털 환경에서 향유는 이것을 넘어 선다. “텍스트가 하나의 모듈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스토리는 이제 최초의 원작자의 손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향유자에 의해 N개의 이야기로 무한증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흔히 네티즌이라 명명되는 웹툰의 독자들은 댓글과 펌질, 짤방, 멀티미디어 활용 등을 통해 새로운 텍스트 쓰고 공유한다. 그리고 공유된 것 역시 새로운 텍스트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원본중심주의, 텍스트중심주의의 신화들이 붕괴되었으며,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융합들의 가능성 역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모듈로 존재하는 스토리는 원자화되어 다른 원자들 간의 융합을 통해 다양한 생성들이 가능해진다.
박기수 교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웹툰에서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미생>을 들고 있다. 윤태호의 웹툰 <미생>은 포털사이트에 연재될 당시부터 인기를 끌었으며, TVN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보다 대중화되었다. 아래의 표처럼 <미생>은 모바일 무비, 극장판 영화, TV드라마, 패러디 드라마 등으로 트랜스 미디어화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모든 미디어에서 구현된 텍스트의 독립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변화된 환경 안에서 향유의 방식 역시 변화했으며, 그에 따른 융합들이 환경적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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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기수, 「만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에서 즐겨라」, <부천국제만화 컨퍼런스 자료집>, 222쪽)
 
3) 결국 향유가 만화의 미래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기원을 “풍경의 발견과 내면의 발견”으로부터 서술했다. 풍경은 원래 존재하는 것, 혹은 자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술자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고 사유화되는 것이다. 모든 풍경은 관찰자로부터 관찰당하는 것이기에 모든 풍경이 동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즉 풍경의 발견은 주관(주체)와 객관(객체)의 인식론적 공간 분할을 의미하며, 내적인 인간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2) 그래서 근대문학은 ‘사소설(私小說)’이라는 전통 위에서 출발하며, 작가의 권위가 절대적이다. 인쇄?출판이 주류였던 근대는 이러한 환경 안에서 원작의 권위가 우세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텍스트는 해체되고, 작가의 권위는 추락했다. 텍스트는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지고 있으며,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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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장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환경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박기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에서 작품은 “생산자와 향유자의 경계를 넘어서서 ‘읽고 쓰는 연속체’일 뿐이며,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을 설계한 맨 처음 쓴 사람일뿐 스토리월드 전체를 소유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패러디 드라마 <미생물>은 웹툰 <미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TV드라마 <미생>의 성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텍스트였다. 결국 패러디 드라마와 웹툰 간의 거리가 말해주듯 윤태호의 <미생>은 스토리월드에서 원작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 다만, 이때 남는 것은 저작권의 문제일 뿐이다. 박기수 역시 저작권의 범위에 대한 논의를 세분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모듈로서 독립된 텍스트들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것 역시 포스트모던적 환경 변화의 한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대체 어떤 스토리가 향유로서 적합할 것인가이다. 모든 스토리가 스토리월드를 구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미생>의 성공 이후에 그럴듯한 스토리월드를 구현한 콘텐츠가 더 이상 나와 주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 박기수는 “미디어, 장르, 플랫폼 등에 따른 최적화 스토리텔링 전략은 탐색의 놀이로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창작이나 소비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향유의 장을 구현하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스토리들이 생성되고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참여-즐거움-공유-참여의 선순환은 더욱 강화되면서 스토리월드를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미래의 만화는 “향유자들의 참여와 공유, 상호작용성이 강화된 형태, 그리고 감각을 최적화하는 기술의 적용이 가속화될 것”이다. 언급된 모든 것들이 “향유”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며, 사실은 더 많은 향유의 방식들이 포진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향유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들을 구현하는 일에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인쇄?출판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순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인쇄?출판 매체 중에서 소설과 시가 환경의 변화를 아주 더디게 밟아가는 것에 비해, 만화는 변화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수용한 매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의 장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는 것은 다른 매체들이 직면할 미래를 조망하는 데 일면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만화의 장에서의 향유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장(場)과의 융합을 구현하며 새로운 스토리월드를 구축해갈 지도 모른다. 미래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과거와 현재의 모습으로부터 예측할 수는 있다. 불과 15년 남짓한 시간 뒤인 2030년의 만화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지는 오늘날 만화가 처한 환경으로부터 예측가능할 것이다. 
 
주석
 
1) 당초 한국에서 포켓몬 고 서비스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부가 구글에서 요청한 지도(구글맵)을 보안상의 이유로 반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국토교통부에서는 이를 반박했다.
2) 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민음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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