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왕국 일본은 없다
무기력 세대에게 어떤 만화를 팔 것인가
이현석 2013.01.22
얼마 전, 이전에 연재작품의 시나리오 관련 일 때문에 모 유명 애니메이션 각본가 분과 이야기를 길게 나눈적이 있었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미 십 수년간 텔레비전에 방영중인 장편 애니메이션 각본과 현재 높은 시청률을 기록중인 어린이 애니메이션 수편의 대표 각본가 (시리즈 구성작가라고도 말한다) 를 맡고 계신 중견작가분이셨다.
 
이분과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다가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이분이 말한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요즘 시청자는 제가 한창 각본가가 되려고 할 때... 1980년대일까요... 그때의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 업계 분위기처럼 강렬한 메세지나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듭니다. 그냥 캐릭터들의 온 퍼레이드와 가벼운 분위기... 그리고 화려하고 수려한 캐릭터 디자인과 능수능란한 작화같은 것이나 원하는 것 같습니다. 메세지 같은 것은 그냥 패션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고요. 이전부터 중시해오던 각본가가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함축해낸 [테마]나, 강렬한 욕망을 지닌 캐릭터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 같은 건 이제는 싫어하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건 해피엔드냐 언 해피 엔드냐 인데... 다들 언 해피 엔드는 질겁을 하고 반발을 해요. 조금만 주인공이 불행해져도 바로 작품이 어둡다고 항의합니다"
 
"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몇편이나 담당을 하지만, 그래서 요즘 애니메이션들은 거의 잘 보지를 못하겠어요. 속이 텅 비었다고 할까... 요즘 인기있는 [프###]만해도 이전의 [세일러 문]이나 [밍키모모]같이 이 애니메이션의 위치에 있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내부에 뭔가가 꽉 차 있었죠. 지금은 그냥 공허한 느낌이랄지. 장사로만 만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물론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는 몇몇 애니메이션들이나, 최근에 우로부치씨가 각본을 담당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키]같은 작품은 대단히 완성도가 높고 테마등의 측면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서 있었죠.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일부 이런 작품이 있는 것은 인정을 하지만, 업계전반에 이런 무거운 주제의식을 다룬 작품보다는 가볍고... 요즘 일본 애니의 주력소비층인 오타쿠들의 즉물적인 욕구에 대응하는 상품을 만들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러다보니, 새롭게 영입되는 각본가 후배나 신인 각본가들 중에서도 나는 각본가고 이런 이야기를 그린다! 라는 의욕같은 것으로 정신무장을 한 사람이 드물어진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대략 이러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요약을 하자면 지금의 애니메이션 시장의 분위기는 진중하고 무거운 테마를 다룬 어려운 작품보다는 가볍게 즐길수 있는 오타쿠(일본적 매니아 집단)들을 타겟으로 잡은 작품들이 시장전체의 메인 스트림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들은 비단 애니메이션 업계 현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만화를 편집하고 만드는 만화편집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문제다. 진중한 극화나 치밀하고 읽는데에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는 만화보다는, 헤비급 만화독자인 오타쿠에게 어필하거나 가볍게 읽을수 있는 만화들이 팔린다.
 
그러다보니 실적을 우선 올릴려고 하는 신인 편집자들은 이런 작품들을 우선 만들려고 한다. 한가지 오해는, 이러한 가볍고 팔리는 작품들을 편집부 수뇌들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획 회의에서 항상 요구되는 것은 좀 더 광범위한 잠재적인 독자들을 만화독서로 끌어들일만한 진중하고 무거운 작품이나 작화등의 측면에서 괴장한 밀도를 집어넣어 독자가 만화라는 표현양식에 발을 들여놓는 촉매가 되는 작품에 대한 요구도가 높다. 하지만, 좀체로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런 반론도 있다. “만화라는 것은 오락매체인데 가볍고 트렌디한 풍의 작품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라든지, “그러한 문제는 언제나 지적되어 오던 문제로, 젊은 편집자나 제작자에 대한 나이든 세대의 문제지적은 항시 있어왔다”라는 반론이 그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콘텐츠 제작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장르 편중 현상은 심각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 이면에는 닥쳐오는 곤란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여 뭔가를 쟁취하는 주인공의 투쟁을 다룬 이야기나,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심각한 문제를 전면에 다루어 보는 이에게 뭔가를 전하려는 작가주의에 부담을 느끼고 회피하려는 사회적인 분위기 ? 점 더 파고들어 말해보자면, 지금 주력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젊은이 계층의 의식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거부를 하며, 이전의 세대가 생각하는 출세나 사회적인 의무나 욕구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 그런것을 다루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거부를 한다. 한회전의 칼럼에서도 이런 세대의 편집자들에 대해서 조금 다뤄보았다. 이번엔 조금 더 지면을 할애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왜 이런 사회분위기가된 것일까? 그리고 이 모습은 한국의 만화업계에도 해당이 되는 것 일까?
 
지금의 일본사회에 막 진출하기 시작한 세대를 일컬어 잃어버린 20년 세대라고 불린다. 일본은 1990년대 초, 1980년대 까지의 경제적인 번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경제가 붕괴하고 기나긴 장기 불황의 터널로 들어섰다. 완전고용 신화나 종신고용 신화, 1억 총중산층 신화가 차례차례 붕괴하였고 1990년대 초에는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수많은 직장인이 차례차례 또 전철에 몸을 던진다.
 
지금 이전 세대, 즉 20대 후반세대까지는 이전의 1980년대의 거대한 경제적인 번영-버블경제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나 환경과 비교를 하거나 열심히 일해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다는 이전 세대의 개념을 조금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불황이 심각해지는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유명기업들이 도산하는 것과 과거일본의 빛나는 모습을 만든 사람들인 아버지 세대가 냉정하게 회사에서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보면서 자란 세대이다. 이들이 사회에 막 진출하는 2000년대 후반의 일본은 이런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함께 찾아온 저출산 문제, 낮은 취업률등의 문제를 정면에서 맞닥뜨려서 장래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회에서 지금의 새로운 일본의 세대에 대해서, 그리고 각 매체에서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대안을 조금 다뤄보자.
만화왕국 일본은 없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복잡화된 세계, 소박한 선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이현석
2013.06.25
현재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항시 불황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흘러넘친다. 외유내빈. 외부에서는 굉장히 화려한 이미지와 절대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는 분야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며 1990년대 과열기미까지 보였던 애니메이션 업계의 확장세가 수그러들고, 이른바 오타쿠 애니메이션이 횡행하면서 작품성이 퇴조하고 있다는 등의 의견이 내부에서 계속 나오는 등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이다.
만화 <암살교실>에 비친 이 시대의 이상적인 선생님 상
이현석
2013.05.28
일본 슈에이샤의 잡지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중인 <암살교실>이 인기다. 단행본 제1권이 누적 100만부를 돌파하며 인기몰이 중이며(제2권은 예약까지 합쳐서 160만부를 돌파), 침체기라는 일본 만화 업계 안에서 최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공개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진격의 거인>과 더불어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무기력 세대에게 어떤 만화를 팔 것인가 2
이현석
2013.02.19
이번회에서는 지난회에 이어서 일본 콘텐츠 업계의 세대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해법은 과연 있는 것일까? 일단 먼저 지금 일본에서 가장 만화를 소비하는 주력 계층으로 꼽히는 20대 초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시작해보자.
무기력 세대에게 어떤 만화를 팔 것인가
이현석
2013.01.22
얼마 전, 이전에 연재작품의 시나리오 관련 일 때문에 모 유명 애니메이션 각본가 분과 이야기를 길게 나눈적이 있었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미 십 수년간 텔레비전에 방영중인 장편 애니메이션 각본과 현재 높은 시청률을 기록중인 어린이 애니메이션 수편의 대표 각본가 (시리즈 구성작가라고도 말한다) 를 맡고 계신 중견작가분이셨다.
세대(世代)라는 화두
이현석
2012.11.20
필자가 일하는 잡지는 다른 잡지가 창간되면서 많은 사람이 그쪽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잡지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등의 인사이동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젊은 편집자가 들어오면, 그 편집자를 이해해보기 위한 이런 탐문이 시작된다. 대학은 어디 출신인지 이런 일반적인 질문을 일단 먼저 해본다.
만화 콘테스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이현석
2012.09.28
최근에 필자에게 오는 많은 문의 메일이나 블로그 등지에 올린 글들에 달리는 덧글을 보면, 일본의 콘테스트에 대해서 여러가지 문의를 주는 글들이 특히 많았다. 오늘은 일본의 편집부에서 바라본, 콘테스트(공모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한다.
일본 진출을 생각하는 작가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
이현석
2012.08.28
지난호에는 한국 작가분들이 일본에 진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즉 비주얼적인 부분보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잘 전달해내는데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이번호에서는 지난호 말미에 말씀드린대로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 진출을 생각하는 작가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1)
이현석
2012.06.22
일본의 잡지 만화 시장에 한국 작가분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고 어언 10여년이 지났다. 한국 만화 시장에서의 잡지 시스템이 난조를 보이고(다만, 필자는 이 지면에서 여러번 말했지만, 한국의 만화가 위기는 절대로 아니라는 입장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
이현석
2012.05.21
최근 한국에서는 <바쿠만>등의 만화가 히트를 하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는 작가분들이 늘어나고 인터넷 등의 루트를 통하여 이전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일본 만화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 편집자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알려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돌아다니는 정보량이 늘어난 것은, 2인3각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만화 제작 특성을 이해하는 것에는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면에 정보라는 것이 가지는 특성상 여러가지 오해를 사기도 한다.
2011년 일본 만화업계관련 주요뉴스 정리
이현석
2012.01.10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던 2011년이 지나고 2012년이 밝았다. 이번 이 칼럼에서는 2011년간 일본만화 업계에 연관된 여러가지 뉴스 중에서 주요한 몇 가지 관심사를 뽑아보았다.
모에만화, 오타쿠 만화는 정말로 일본의 만화 주류인가?
이현석
2011.12.07
코스플레이어가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성하게 인기를 얻고 동인지 문화가 들어와 한국에서도 동인지 판매회가 정착될 정도니 얼핏 정말 일본은 오타쿠 문화나 후죠시 문화가 굉장히 주류문화로 인정받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만화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마치 일본 전체가 이러한 문화에 침식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러할까?
유명 웹툰 만화 <신과 함께>, 일본 출판만화계에서 리메이크
이현석
2011.11.01
오늘은 한가지 중요한 사례를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 내용으로 진행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유명 웹툰 만화의 일본 출판만화 이식, 즉 리메이크 관한 것이다.
일본의 만화 편집부 체제에 대해서 (4)
이현석
2011.09.27
지난호에서는 편집부 안에서 가장 상층부에 위치한 사람. 즉, 편집장의 업무를 훑어보았다. 이번호에서도 이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해 보자.
일본의 만화 편집부 체제에 대해서 (3)
이현석
2011.08.29
지난 호까지는 일본 만화 편집부 내부에서 중간 관리자에 해당하는 부편집장의 업무를 조금 엿보았다. 이번호에서는 그위의, 편집장이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일본의 만화 편집부 체제에 대해서 (2)
이현석
2011.07.25
지난호에서는 일본의 편집부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인 일선 편집자들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알아보았다. 오늘은 이들 편집자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편집진들의 상위에 존재하는 부편집장과 편집장의 업무 등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일본의 만화 편집부 체제에 대해서 (1)
이현석
2011.06.27
최근 <바쿠만バクマン>(오오바 츠구미(글), 오바타 타케시(그림), 슈에이샤)등의 만화를 통해서 베일에 가려져있던 일본의 만화 출판 편집자들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만화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편집부 편집자와의 이인삼각으로 만들어나간다는 인식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2011년 대재해 이후, 일본 만화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현석
2011.05.31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일본의 동북지방을 진도 7급의 강진이 덮쳤다. 아마 이번 지진은 일본사회를 대지진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눠지게 할 것이다. 이 지진과 만화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오랜만에 뵙는 독자분들에게 전해드리면서,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010년의 일본 만화계 동향에 대하여
이현석
2010.12.21
21세기가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는 이야기가 나올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12월, 한해를 정리해야 할 시점이 왔다. 2010년간 일본 만화계에서 오고간 화재거리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보았다.
만화 [진격의 거인 進?の巨人]
이현석
2010.10.16
2010년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만화업계는 불황이 여전한 가운데, 기존의 잡지들이 폐간되거나 휴간되고 또 새로운 잡지가 여러경로로 등장하는 등으로 어수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만화업계가 역시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은 업계에 충격을 가하고 새로운 만화독자를 창출할 대형신인 작가, 인기작품의 등장이다. 최근, 일본 만화업계의 이러한 바람에 부응하는 듯한 인기작품이 메이저 출판사를 통해서 등장했다. 이사야마 하지메가 그리고 고단샤의 월간 만화잡지 [별책 소년 메거진]에 연재 중인 이 만화의 제명은 [진격의 거인]이다.
일본 만화의 최전선을 달리는 사람들 (17) : 만화가 박정기 씨 편
이현석
2010.09.14
일본만화계에 한국인 작가가 진출하고 있는 일은 이젠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은 이미 몇번이나 드리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웹만화 잡지 중 하나로서 가장 성공한 모델로 인식되고 있는 스퀘어 에닉스의 웹만화 잡지 [간간 온라인]을 통해서 데뷔하는데 성공한 만화가 박정기씨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