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준기의 만화원론
풍자와 유머, 해학과 비평의 유쾌한 도발
백준기 2004.06.01


⊙ 들어가는 말 
  
 재미와 오락은 만화에 결부된 언급 중에 아마도 가장 일반적이며, 시인성이 높은 정의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요인으로 유 머ㆍhumour, humor을 적극 수용하고 있었다.
그에 관한 기록으로 고대 생리학에서는 유머를 인간의 체내를 흐른다고 하는 혈 액, 점액, 담즙 등의 체액을 의미하였다. 당시에는 이들 체액의 배합 정도가 사람의 체질이나 성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했고, 나아가서는 이 말이 기질, 기분, 변덕스러움 등을 뜻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행동, 언어, 문장, 이미지 등이 갖는 웃음의 뜻, 그 리고 그러한 웃음을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능력의 뜻까지 지니게 되었다.
한편 오늘날 만화의 내용면에서 흔히 쓰고 있는 수사법으로 <풍자ㆍ諷刺>의 원 뜻은 이 말의 출전(出 典)인 중국의 시서(詩書)인「시경ㆍ 詩經」에 "시에는 육의 (六義)가 있는데 그 하나를 풍(風)이라 한다. 상(上)으로써 하(下)를 風化하고, 하로 써 상을 風刺한다. …이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
(http://100.naver.com/100. php?where=100&id=183235 참조要) 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를 후세 사람들이 요약하여 풍자라고 표현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라틴어의 satura (原意는 매우 혼잡 함)에서 나온 영어의 새타이어ㆍsatire을 이에 원용하여 쓰고 있 다.
또한 해학ㆍ諧謔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익살궂은 말이나 짓을 의미하지만, 일견 문화적인 교양과 상식을 전제하는 대상 사물과 사건에 대한 재치와 익살ㆍjoke을 내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조선조의 미술과 공예를 일컬어 익살과 해학이 반영된 미술이라 칭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우리의 미술은 다른 어느 민족과 문화권의 미 술보다도 만화의 에센스를 잘 포착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구한말의 해외 민족지 중에서 만화를 제일 먼저 취급한 신문으로 「新韓民報」를 들고 있다. 미주의 통합 단체로 국민회가 조직되고 「共立新報」가 「신한민보」로 그 題號를 변경하던 1909년경, 처음으로 만화가 지상에 선을 보이게 되는데, 이즈음 의 만화를 가리켜 해화ㆍ諧畵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李海暢, 韓國時事漫畵史, 一志 社, 1982., p. 36) 한일 합방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미묘한 사건과 상황에 대해 당시의 삽화들은 의미심장한 망국의 회한을 토로한 풍자화들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때문 에 당시 구한말의 식자층들이 자조적ㆍ自嘲的인 심사와 흉중을 토로하는 의미에서 사용한 용어로 추론된다.
그 외에도 익살과 해학, 기분과 기질 등으로 알려진 유머와 비슷한 말에 위트ㆍ wit(기지 )가 있다. 이는 유머가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슬픈 천성으로 웃음의 대상에 동정과 연민을 수반하는 정서적인 포괄성을 지니는 데 비해, 순수 지적 능력의 작 용 결과라고 하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하여 초연한 태도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내려 다보는 웃음이기 때문에 다분히 관조적이며 명상적이다.
이처럼 풍자와 유머, 해학과 비평의 웃음과 침묵 속에는 우리의 감각적 현실에 대한 한계상황과 더불어, 꿈과 이상에 대한 격절과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그곳에 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고, 인간사에 대한 심정을 솔찍히 고백하는 곳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어느 경우에는 멘트ㆍment로 화답하며 조우하고, 코멘 트ㆍcomment로 지적하며 각성하고, 크리틱ㆍcritic로 비판하며 판단하고 평 가하는 우리의 시대 미학이 잠복해 있는 곳이다. 
  
 ⊙ 풍자와 해학의 고발

 
  
 그 예를 우리는 19세기 전반 프랑스인 필리봉(Charles Philipon, 1800~1862)(【그림 1-ⓐ,ⓑ】)과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1808-1879)의 그림들(【그림 2】,【그림 3 】,【그림 4】) 그리고 장 제라르(Jean Ignace Isidore Grared)의 경우는 그랑비유(Grandville, 1803. 9. 13~1847. 3. 17)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그림들(【그림 5】,【그림 6-ⓐ,ⓑ】, 【그림 7】)을 통해서 확연히 볼 수 있다.
필리봉은 당시 1831년 11월 14일자의 「라 카리카튀르」紙(1830년 11월 4일, 24세의 화가 필리봉에 의해 「La Caricature」는 창간되었고, 매호 2회씩 정치 풍자화를 실었다. 이로부터 5년 뒤 검열이 부활됨에 따라 폐간되었으나, 당대의 문학과 연극 등에 인간유형의 사실적인 모습으로 기초를 제공했으며, 뛰어난 풍자예술의 토양이 되었다.)에 국왕 루이 필립(L- ouis -Philippe)의 얼굴이 차례로 배를 닮아가는 그림을 게재했다. 그의 이 해학적인 우의화는 법정에 서 스캔들을 일으켰다. 재판에서 필리봉은 "제 1의 그림이 국왕을 닮았다는 이유 로 죄가 된다면 제 2의 그림도 죄가 되고, 제 3의 그림을 닮은 제 4의 배 그림도 죄가 된다. 그렇다면 배를 재배한 농민은 모두 유죄인가" 배와 유사한 형태의 물건 은 모두 국왕을 모욕한 것으로 고발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필리봉은 유죄 판결을 받아 6개월의 금고와 2,프랑의 벌금에 처해졌다.(박홍규, 오노레 도미에, 소나무, 2., pp. 94~95)
도미에 또한 해학과 비평으로 당시의 사회와 기득권층에 대한 습속과 비판을 가 한 풍자화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다. 1830년 「라 카리카튀르」지 에 초빙되어 풍자화를 그렸고, 1832년에는 국왕 루이 필립을 공격하는 정치 풍자화 를 그려 투옥되기도 했다. 1835년 왕정의 언론탄압에 의한 이 잡지의 발행 금지 이 후에는 사회 풍자화로 전환하여, 주로 「르 샤리바리」紙(필리봉이 옥중에서 창간한「Le Charivari」는 악마를 퇴치하는 야단법석이라는 뜻을 지니는 이름으로, 1832년 10월에서 1893년까지 61년간 이어졌다.)에서 활약했다. 이 시기에 그는 민중의 분노와 고통을 호소하는 인간 의 모습을 휴머니스틱하게, 때로는 풍자와 유머, 해학과 비평을 담아 그렸다.
그 후 40여 년간은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행태를 풍자했다. 방대한 양의 석판화를 주로 제작했으며, 이것으로 그는 생계를 지탱했다. 이 시기는 또한 서민들의 일상생 활을 테마로 한 유화나 수채화를 연작하여 1862년 <3등 열차> (【그림 4】)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 정치가와 법관, 의사들의 악덕과 모순, 비리, 그리고 시대의 불평등 과 갈등에 풍속과 비평을 가하는 드로잉과 페인팅은 아직도 그것을 능가하는 이가 없으리 만큼, 도미에의 업적은 그 시대(19 세기 전반에서 중엽에 이르는 프랑스)가 외치는 명백한 예술적 품격이기도 했다..
그랑비유는 도미에의 명성에 가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매우 풍자 와 유머가 풍부한 내용의 그림들을 그려 보였던 인물이다. 1828년부터 ‘29년에 이 르는 그의 <시대풍 변신담>(메타모르포시스ㆍmetamorphosis)은 머리가 동물이고 몸 은 인간인 변신을 통해 왕정 복고시대의 귀족과 부자들의 생태를 풍자했다.【그림 5】의 <스카라베 일가>에서 예수회 신부들이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행진하는 모습 을 곤충의 변태로 그렸다. 옆에 붙은 해설에는 "악덕은 자기 전용 의상을 갖지 않 는다. 그래서 악덕의 망토를 걸치고 우리를 속인다"(Ibid. pp. 89~90)고 쓰여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검열 탓으로 1830년 7월 혁명 이후에 발표되었다.
그 외에도 인간과 동물(【그림 6-ⓐ,ⓑ 】), 어류(【그림 7】)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우화적인 방법으로 인간 존재와 가치의 전도를 그려 보였다. 1835년 검열법에 걸려 투옥된 뒤에는 초현실적이고 반사회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정신 이상으로 1847년에 죽었다.
 
  
 ⊙ <시대 미학>이 잠재된 유머와 비평
 
  
 1918년 듀샹은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하는 (【그림 8】)이라는 의미 없 는 제목을 가진 대작의 그림은 놀랄 만큼 창의성에 차 있으며, 시대를 훨씬 앞선 것이어서 반세기가 지난 197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중요성이 평가되었을 정도였 다. 이 그림은 각양각색의 모순된 실재들을 결합 또는 조화시키고 있다. 즉, 배경에 는 텅 빈 공간을 암시하기 위하여 미묘하게 그늘이 주어지고 있으며, 좌측 상단의 모서리 쪽으로 물러가는 겹쳐진 마름모꼴의 컬러 샘플에 의해, 그리고 중앙에 가까 운 부분의 리얼리스틱한 간판 그림쟁이의 손에 의해 강조된 착각 등이 결합되어 있 다. 더욱이 이 공간은 평면 스크린인데 그 위에 자전거 바퀴, 병마개 따는 오프너, 모자걸이 등이 투영되어 있다. 캔버스에는 균열까지 만들고, 안전핀으로 봉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 균열은 가짜, 즉 그려진 것으로 일루전ㆍillusion일 뿐이다. 이에 비 해 안전핀은 실물이다. 이들과 이웃하여 흰 병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서 실물의 병 닦 는 브러쉬가 튀어져 나와 있다. 실끈은 되풀이하여 선과 줄의 토막을 떨어트리고, 그것들이 마루 위에 만들어 내는 곡선의 정확한 형태를 기록했다. 현실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런 혼합은 1960년대의 팝 아트ㆍPop Art과 옵 아트ㆍOp Art 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각종 취향의 대부분을 앞지르며 선행하는 작품의 실예 였 다.
재료가 화면의 앞 쪽으로 관람자를 향하여 튀어 나온다는 그림 제작을 착상한다 는 것은 놀랍게도 1844년에 프랑스의 낭만파 삽화가 그랑비유가 일찍이 시사한 것 이다. 그는 특이하게 독창적이고 기이한 상상력을 발휘하던 삽화가, 즉 오늘날의 날 카로운 카투니스트였다. 루브르궁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미술 전람회를 보여 주려 했던 그림(【그림 9】)에서 그는 새들이 쪼아 먹으려 할 정도의 리얼한 3차원의 과 일이 있는 정물화(실제를 방불케 하는 포도송이를 그려서 새들을 유인했다는 고대 화가 제욱시스 ㆍZeuxis의 일화다. 플리니우스(A.D. 23~79)의 <박물지>에 실린 대목을 근대 화가들은 자연과 예술 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새들이 머리를 부딪혀서 ‘자연주의적 죽음’을 당했다고 읽었다. 훗날 지오토 ㆍGiotto(1266~1337)가 스승의 그림에다 파리를 그려 넣자 이를 본 치마부에ㆍCimabue(1240~1302) 가 팔을 몇 차례 휘둘러 쫓으려고 했다는 일화가 나와서, 고대 그리스의 거장과 현대 이탈리아의 화가를 비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우리의 경우는 신라 24대 진흥왕 때의 화가 率居가 黃龍寺의 외벽에 그려, 새가 날아들었다는 <老松圖 >의 일화가 있으며, 지리산 斷俗寺의 <觀音像>과 함양 용추사의 <維摩 居士像>도 실물처럼 보였다 한다. 이 또한 實在와 일루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를 왼쪽 벽에 배치했고, 그와 비슷한 양식으로 회랑을 가로질러 말의 다리, 무기, 군인의 신체 일 부가 관람자를 위협하듯, 전투장면의 그림 틀 밖으로 튀어 나오도록 했었다.
위의 그림을 보고 몇 년 뒤에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다다이스트인 막스 에른스트 (Max Ernst 1891.4.2~1976.4.1)는 그가 바로 자기 미술의 선배라고 추켜세웠다. 이로 미 루어 볼 때 듀샹 역시 바로 이 그림에서, 그의 장차의 모든 시도는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이처럼 당시 미술계의 상황과 처지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한 그랑비유의 경우, 풍 자와 패러디를 넘어서 미술사상의 앞날을 예고해 주는 작품의 향도적 기능과 역할 을 갖기도 했다. 
  
 ⊙ 나오는 말; 패러디! 일상 속으로...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시사 패러디ㆍparody(희랍어의 파로디ㆍparodie은 樂 語로서 비트는 것을 의미한다. 기성 악곡에서 선율, 또는 가사를 빌어 작곡하는 수법이었다. 이것 이 미술에서는 남의 작품에 수정과 첨삭을 가하여 작자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개작하는 포스트모던 미 술의 주요 테크닉의 하나가 되었다.)는 사진이나 인쇄물, 영화 포스터에 그치지 않고 만화 에서의 카툰, 캐릭터,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까지 다양한 제작 기법ㆍtechnics 과 툴ㆍtool, 개인적인 다양한 방법ㆍmanner으로 제작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라디오(MBC)의 저녁 8:10분대에 개그맨 두 사람이 진행하는 3김 퀴즈나, TV 방 송뉴스를 패러디한 인터넷 방송 헤딩라인 뉴스과 같이 공중파 방송에까지 진출 하고 있을 만큼 대중일반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위와 같은 패러디물은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 및 초상권 침해>라고 하는 시시비비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패러디란 원작을 베껴야 탄생하고, 풍자와 유머, 해학과 비평의 메시지를 담지 해야만 하는 숙명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법조계에선 2001년 가수 서태지가 패러디 가수 이재수의 노래를 상대로 한 제소가 실질적인 패러디물 저작권 소송으로 본다. 당시 서태지는 이씨가 자신의 대표곡인 컴백홈의 제목과 가사를 바꾼 컴배콤이란 노래를 불협화 음으로 부르자 "변형곡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시 법원은"저작물에 대한 비평이나 풍자 등 패러디로 보호되는 부분이 담 겨 있지 않을 뿐더러 상업적인 이유로 원곡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서태지의 손을 들어 줬다. 이른바 "인격권 침해 조항"에 근거한 판결이었다. 국내에서는 패러디 물에 대한 법적 판단이 주로 저작권법을 근거로 이뤄지고 있으나, 법조항에 모호한 부분이 있고, 소통 및 표현매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시대 미학 적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판례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 단연코 풍자와 유머, 해학과 비평의 유쾌한 도발을 핵심으 로 하는 패러디 세상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때만 이 경직한 편협성을 지양할 수 있다. 그래야만 다원성을 전제한 풍요로운 복지사회 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그곳은 우리의 지루한 일상과 상투적인 의식에 생 기를 불어넣는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해주는만화 세상이다. 그 속에선 로또 복권의 인생역전광고는 인생여전이 되어 우의적이고 교화적인 내용으로 우 리 인생의 무상함을 경고한다. 한 카드사의 광고 카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은 열심히 빚진 당신, 갚아라!로 다시 태어나, 마치도 영원한 형벌을 받는 시 시포스(Sisyph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 인간 가운데 가장 교활한 인물이다. 죽 은 뒤에 신들을 기만 한 죄 값으로 커다란 바위를 산 꼭대기에 영원히 되풀이 하여 밀어 올리는 형벌 을 받고 있는 망자이다. 그러나 호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시시포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 중한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의 노역과 좌절, 그리고 절멸ㆍ絶滅이라고 하는 몰락의 미학 데카당스ㆍdecadence을 체감케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일반 네티즌들에 의해 이미지 합성이나 동영상 제작으로 패러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곧 문화 예술계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허무는 일로서, 의미 있는 현대미술 최근의 추세(1992년의 Whitney Biennale에서 로드니 킹사건을 다룬 무명의 회사원이 제작한 비디오 출품작을 기점으로 함.)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교하고 세련된 플래시 애니메이션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카툰을 이용한 이미지가 더욱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고, 갈수록 유머와 비평을 동반한 명료한 메시지의 패러디를 선호하고 있 다. 그들에게 패러디물은 답답한 세상에 숨통을 터주는 통로로서 감정의 배출구가 되었다.
이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 프린팅과 스캐닝에 의한 몽타쥬, 꼴라지, 동 영상까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패러디 전성시대를 맞아들이게 되었고, 더욱 대중들에게 다가설 전망이다. 그 한 예로 패러디물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거리 의 간판에서부터 방송, 영화, CF 등의 오프라인까지 장악하고 있다.
유적(愉適ㆍdelight)한 도발!, 보상ㆍ報償이 없는 무목적적 통쾌함이나 웃음을 전 하는 것으로 충분한 그곳에서, U. 에코의 말대로 "괴물을 어린아이로 변형시키며, 시인으로 만드는 긴장과 격정, 알레그로ㆍallegro과 론도ㆍrondo의 형식이 들어 있다."


▲ [그림01-ⓐ] Philipon, , Le Charivari, 17 January 1831., 필리봉의 이 그림 이후 국왕이나 무능한 인물을 묘사하는 화가들에게서 배그림의 풍자화가 범람했다. 뿐만 아니라 군중들로부터의 폭발 적인 반향을 불러들인 결과 어린 학생들은 배모양의 눈사람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며 「라 마르세이 유」를 불렀다. 식당에서는 배를 디저트에서 빼는 곳도 생겼다. 벽보 금지라고 쓴 밑에배도 금 지라는 말이 덧붙여지기도 했다.(박홍규, 「오노레 도미에」, 조합공동체 소나무, 2., pp. 93~96 참조要) 이와 같은 당대의 반향은 필리봉의 시대정신과 아울러 그림의 사회 문화적 가치, 기능과 역할 등을 확 인케 해주는 그림이다.


▲ [그림01-ⓑ] 1835년 5월 1일 자의 「Le Charivari」 표지로서, 풍자적인 소책자ㆍpamphlet로 정치적인 조례의 가압류 처분을 당한 필리봉의 작품이다. 1835년 9월법의 제정으로「라 카리카튀르」가 폐간되 었으나, 당시 발행 부수는 1천부 정도였고, 「르 샤리바리」지가 1천 7백부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는 완전한 적자로 끝났으나, 후자는 재정적인 면에서도 흑자를 낸 셈이다. 그는 62년간의 생애를 반권력적인 태도로 살았다. 그는 본질적으로 사색하고 철학하는 인간이었다. 따라서 정치적인 적은 있 어도 인간적인 적은 없었다 한다. 저널리즘과 사업에 모두 뛰어났던 그는 대중과의 끊임없는 접촉으로 성공했다. 동시에 그는 재능있는 화가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탁월했다. 도미에에 이어 그가 마지막으로 발굴한 화가는 Gustave Dore였다.(박홍규, Ibid., pp. 93~96, 참조 要)

▲ [그림02]도미에가 그린 <1831년의 마스크>이다.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Etienne, Guizot, Madier de Montjau, Thiers, Athalin, Lameth, Dupin, roi Louis-Philippe, DArgout, D. de Keratry, Barthe, Lobau, Soult, Shonen 으로 당대 왕을 상징하는 배와 그를 둘러싼 정치가들을 신품종의 배로 풍자해 놓은 그 림이다. 이 그림을 본 필리봉은 "새로운 배의 품종이 발견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맛은 없다. 그 배 이름은 필립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도미에의 그림에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유머, 통렬한 비판과 해 학의 정신이 깃든 유적한 도발의 시대미학을 그려 보였다. 이 점에서 그의 그림은 통합적인 평가 와 조명이 선행되어야 만 한다. 즉 사회 문화적 견지에서, 윤리 도덕적인 견지에서, 미학 미술사적인 견지에서의 복합적인 해석과 분석을 전제할 때, 그의 그림과 작가로서의 위치가 온전히 해명될 수 있 을 것이다.(Judith Wechsler, 「A Human Comedy」, thames and Hudson Ltd, London, 1982., p. 73 참조 要)


▲ [그림 03] Daumier, Honore Victorin(1808.2.20~1879.2.11), , 1838., ―<부랑아>; 당신 의 경우는 가망이 없어/ 당신은 전에 내게 부탁했어야만 돼. <역전된 자>.;당신은 항변 해야만 돼, "나는 탁월하다"고/ 그래! 그렇게 말이야!― 라는 부제와 지문을 달아두고 있다. 도미에는 각기 다 른 페이지와 장면 마다, 두 프로필을 보여 주었다. 하나는 위-아래이 역전되어도 똑같이 대조적인 무드를 유지하는 캐릭터이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얼굴에서 두 가지 표현을 동시에 보여주는징후학 -덧없고 무상한 표현- 으로부터 산출되는 관상학적 인상학-캐릭터의 표현이 내재된- 도미에 특유의 명백하고 현저한 사례이다. 도미에의 캐리커쳐는 전통적인 어휘로서 이미 1838년에 정착하고 있었다. 그의 표현은 현실 속에서의 인상학, 도회인들의 우연한 만남과 정시적 대면 속에 내재된 표현의 문제 에 집중되어 있다.(Ibid. pp. 140~142,)


▲ [그림 04] 도미에, <사진을 예술로 높인 나다르ㆍNadar Elevating Photography to the Level of Art>, 1862., 나다르는 자신의 사진관에서 1874년 제 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이미 1858년에 기구ㆍ氣球를 타고 세계 최초로 공중 촬영을 시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진술의 발 명으로 인한 화가들의 충격은 매우 커서 "회화는 죽었다!"고 단언할 정도였으나, 추상회화와 같은 신개념의 미술을 산출하는 기폭제 역할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도미에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 문인들, 미인들의 기념사진을 찍어 초상사진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정착해 주었다. (Judith Wechsler, Ibid., p. 20, 박홍규, Ibid., pp. 212~217, 참조 要)



▲ [그림 05] Grandville(1803. 9. 13~1847. 3. 17), <스카라베 일가>, 그랑비유는 1828년부터 29년에 걸쳐 71점의 채색만화 「시대풍 변신담」에서 머리가 동물이고 몸이 인간인 변신을 통해 왕정복고 시대의 귀족과 부자들의 행태를 풍자했다. 당대의 아실 꽁트(A. Comte, 1798-1857)는 그 책의 서문에서,"이것은 우리 사회 풍속의 생생한 묘사이고, 여러 제도에 대한 풍자다."라고 썼다. 이 그림 역시 예수회 신부 들이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행진하는 것을 곤충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옆에 붙은 해설에는 "악덕 은 자기 전용의 의상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악덕의 망토를 걸치고 우리를 속인다."고 적혀 있다. 이 작품은 검열 탓으로 7월 혁명 이후에 발표되었다. 1835년 검열법에 걸려 투옥된 뒤에는 초현실적인 작 품을 그리다가 정신 이상으로 1847년에 죽었다.(박홍규, Ibid., pp. 89~90, 참조 要)


▲ [그림 06-ⓐ] 그랑비유, <동물들의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의 한 장면들>, 1842., "방문객들은 동물원에서의 불쾌감 때문에 새로운 수용소를 천거하지 않았다."라는 부제를 달아 두고 있는 그랑비유 특유의 변신담ㆍmetamorphose인 동물이 인간의 의상을 입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도 역시 그는 인간을 동물로ㆍMan to Animal 혹은 동물을 인간으로ㆍAnimal to Man로도 보이도록 전화하는 혼란을 독자들에게 주고 있다. 동물이 인간처럼 옷을 입고 인간처럼 생활하는 모습은 이집트 미술에서 의 신화나 이솝 우화로부터 17세기 라 퐁텐 우화에 이르기 까지 하나의 유럽적 전통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 맥이다.(Judith Wechsler, Ibid., pp., 100~101, 박홍규, Ibid., pp. 89~90, 참조 要)


▲[그림 06-ⓑ] 그랑비유, <동물들의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의 한 장면들>, 1842. "사육제는 동 물들 위에 인간을 세울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그들을 위한 창안이어서 제소할 수 없었다."(Judith Wechsler, Ibid.,) 그랑비유의 그림에서 인간과 동물의 상관관계와 설정은 매우 풍자적이고 해학성을 띨 뿐만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세계ㆍAnother World를 창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반면교사ㆍ反面敎師의 볼거리와 가르침을 제공한다.


▲[그림 09] 그랑비유, <금년과 과거와 미래의 파리 살롱의 모습>, 「Un Autre Monde」에서 발췌, 18- 44., 목판화ㆍwood-engraving, 13.3×13cm, 이 그림에서 우리는 역사의 물리적인 시ㆍ공간을 초월하는 한 화가의 창조성의 영역과 상상력의 팬터지는 가능한 것일까? 미술사의 영역을 넘어서서 통시적인 절대성의 지점은 확보될 수 있을까? 라는 본체론적인 물음을 상기케 하는 한 장의 조그마한 그림이다. 오늘날의 미술이 스크린을 기반 환경으로 하는 디지털 서사ㆍnarration와 수행ㆍperformance, 그리고 연극성ㆍtheatricality 을 핵심으로 하는 주요 키워드임을 감안 할 때, 그림으로 보여준 그랑비유의 구상력과 상상력은 퍽 示唆的이다.(Ibid. p. 626)
 
  
  
 백 준기 - 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부 교수(e-mail: jkbaek@kongju.ac.kr)

백준기의 만화원론
멀티플 서사와 하이퍼텍스트
백준기
2005.05.01
우리가 평소 일상에서 접하는 서사는 사람들이 하는 일 모두에 관계된다. 개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거대담론ㆍgrand narrative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해 매체와 미디어 전반을 통하여 전달되는 다종다양한 종류의 서사가 있을 수 있다. 일간지와 잡지, 오디오와 비디오, TV와 영화, 수필과 소설, 사진과 만화, 대중가요,친구와 나누는 전화 통화 속에서도 서사는 살아있다. 보잘것없고 진부해 보였던 일상성에 주목하여 그 밑에 숨겨진 풍요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일 또한 ...
패널과 프레임에 은폐된 시대 미학의 잠복성(part 2)
백준기
2005.01.01
1960년대 위트니 경(Whitney Sr)에 의한 컴퓨터의 도입을 거쳐서, 1958년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아날로그 컴퓨터를 사용한 에드워드 자작( Edward Zajac)과 자료를 가시화 하기위해 컴퓨터가 만든 필름을 사용(50년대 말~60년대 초)한 마이클 놀(A. Mich- eal Noll)에 의해 컴퓨터가 만들어 낸 <Mondrians>과 <Gaussian Quadratic>이 있었 다.
패널과 프레임에 은폐된 시대 미학의 잠복성(part 1)
백준기
2004.12.01
한 시대와 상황, 국가와 민족, 혹은 집단에서 예술작품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역 할은 다종다양하게 작용한다. 특히 메시지를 담지한 전언의 메신저이거나 소통을 전제하는 표현매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리얼리티와 팬터지의
백준기
2004.10.01
영상, 상상(想像)의 어원은 그리스어의"現出시키다ㆍphantasein"에서 나타내듯 이 의식 속에 직관적 심상을 떠올리는 작용을 의미한다. 이미 칸트도 "상상력ㆍ einbildungskraft"이 대상의 현존재를 기대하지 않고 직관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상상은 지각과 달라서 외계 사물을 대상으로 갖지 않으며, 더욱이 명백한 직관성을 갖춘 심상을 의식 중에 생기게 한다....
리얼리티와 팬터지의
백준기
2004.08.01
새 앨버트로스ㆍDiomedea albatrus(信天翁/나그네 새)의 비행은 아름답다! 먼 바다 한 가운데서 태어나 상어 떼와 같은 큰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한 그들의 처절한 비행 연습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이 때 그들을 먹이로 삼 는 표범상어는 앨버트로스에게 훌륭한 조련사인 셈이다.
풍자와 유머, 해학과 비평의 유쾌한 도발
백준기
2004.06.01
재미와 오락은 만화에 결부된 언급 중에 아마도 가장 일반적이며, 시인성이 높은 정의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요인으로 유 머ㆍhumour, humor을 적극 수용하고 있었다.
테마와 모티브의 메시지를 넘어서
백준기
2004.04.01
기존의 만화는 가벼운 주제ㆍtheme와 모티브, 그리고 부담없는 기술ㆍtechnique 및 기법의 한계상황으로 말미암아 각 시대 마다의 예술문화 조건이나 문화담론, 예 술 비평의 대상으로부터도 일찌감치 제외....
글과 그림의 도상성과 묘화력
백준기
2004.03.01
글(텍스트)과 그림(이미지)의 해석과 그 의미작용에 대해서는 지난 회에 서술한 바 있다. 이른바 자연 환경과 문화 관행, 민족심리학에 따라서도 다를 수밖에 없는 텍 스트와 이미지의 차이를 확인하고, ㆍ생략예술ㆍEllipsis Artㆍ로서의 간결성과 명료 성(형식면에서), 환상성과 선정성, 오락성(내용면에서)과 더불어 사유의 공유성을 전제한 기술이었다.
공유개념을 전제한 사유의 이미지
백준기
2003.12.01
글과 그림·text & image에 대한 해석과 그 의미 작용은 기후, 지리, 민족의 문 화 관행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텍스트를 일컬어 글 또는 서적을 의미 하는 것 외에도 교과서, 원전, 원본, 또는 출처와 전범의 뜻을 갖고도 있다. 이에 비 해 유럽에서의 텍스트는 전적으로 기호화된 지식체계의 산물이다.
대중예술 문화의 텍스트성
백준기
2003.10.01
최근에 우리는 고급예술과 서민예술, 엘리트문화와 하위문화, 소수 전문인 의 예술문화와 다수 대중들의 예술문화가 점차 그 구별이 좁혀지거나 모호 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차라리 그 간격을 메우는 일 자체가, 현대 예술문화의 전 영역에 머물고 있는 작가들과 전문인들에게는 하나의 목표 이자 자기미학의 확립이나 구현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소통매체>에서 <표현매체>로 부상하는 제 3의 장르
백준기
2003.08.01
만화에 관심을 표명하는 대중일반의 입장과 전문인들에게는 대체로 두 가 지 이유, 그러나 서로 상호 교류하는 특성을 각기 지니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만화의 상업적인 측면으로 고부가 산업의 창출이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도 부인해서도 안된다. 이는 물론 만화의 부차적인 기능과 역할이라고 하는 비예술적 대상이기는 하나, 예술적인 고려와 적용 없이는 상업적인 성공 또한 보장하기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할 때, 매우 복합적인 문화적 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두번째이야기(2/2) : <소통매체>에서 <표현매체>로 부상하는 제 3의 장르
백준기
2003.06.01
1980년대에서 90년대 까지 최근의 10 수년에 걸쳐 눈에 띄게 두드러진 현 상으로, 각 분야마다 급격한 예술개념 및 매체의 변화와 더불어, 문화의 전 면에 대두되는 대중 매체의 부상을 들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사진과 만화, 필름매체를 통한 비디오 등의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등이 그러하다.
첫번째이야기(1/2) : <소통매체>에서 <표현매체>로 부상하는 제 3의 장르
백준기
2003.04.01
최근에 우리의 예술문화계 일각에서는미술 속의 만화-만화 속의 미 술혹은 현대미술과 만화와의 상관관계를 새로이 규정하고 상정하는 전시 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1999년과 2000년 7월에 대학의 만화 관련학과 교/강사들(대부분이 현역 Fine Art의 작가들이었음)을 주축으로 기획된
만화사원론 ; 만화의 현실과 현실의 만화
백준기
2003.02.01
현실의 만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만화사회의 작가와 기획자 , 비평가와 저술가, 제작자와 후원자들은 특히도 디지틀 미디어의 환경에 대한 선행되는 이해와 지식, 그리고 그에 따르는 실천과 결과물을 산출해 내야 한다, 그래야만 대안적 삶의 방식(alternative way of life)을 추구하는 일반 독자들과 더불어 만화사회를 다듬고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만화는 헌신적인 문화 수호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만화사 원론 ; 만화원형을 찾아서
백준기
2002.11.01
인류 문명의 시작 단계에서 보여지는 성인들의 그림이나, 시지각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어린이들의 무수히 많은 드로잉과 페인팅을 다루는 미술사의 기술과 미학적 조명에는 아직도 미해결의 해석학적 오류, 또는 변증법적 모순으로 남아 있는 해묵은 과제들을 도처에 남겨 놓고 있다. 관점을 달리할 때마다 새로운 국면이 발생하는 미술의 궤적은 역사 서술의 문제아일 뿐더러, 호흡을 지속하는 생물학적 대상이기도 하다. 미술사는 인간 역사의 살아있는 삶이며 흔적인
[만화 원론]을 시작하며
백준기
2002.06.01
이 글은 우리의 척박한 예술문화 현실에서 만화예술의 이디엄과 문맥의 발생에 주목하고 고심하는 [만화사회ㆍCartoon & Comics Circle](작가와 비평가, 미학/미술사가와 저술가, 제작자, 예술 행정가와 전문관료, 흥행사ㆍimpressario, 신문 잡지의 예술란에 기고하는 전문기자, 그리고 장차의 예비 만화가인 미술학도와 만화학도들로 구성된 집단)에 사유의 단서와 공유성을 제공하는 학예적 발상과 더불어 새로운 만화문화의 구축을 위한 하나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