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Hollywood
(1) 만화의 외연을 확장하라
박소현 2006.10.01


인터넷 서점에서 만화 섹션을 담당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두 가지 있다. “무슨 만화가 재미있어요?” 이건 고객들로부터의 질문. 공개된 게시판이 있었던 탓에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마음껏 담당자를 이용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얼마나 숙련이 되었던지 프로세스까지 만들어 둘 정도였다. 프로세스라지만 실은 간단하다. 성별과 연령, 기존에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책과 글에서 나타나는 성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장르를 정한다. 이 장르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와 판매와 무관한 추천 만화를 리스트로 만든다. 더불어 이 장르와 가장 밀접하게 접목되는 2순위 장르도 같은 방식으로 리스트화한다. 여기에 장르에 관계없이 고객이 좋아할만한 만화를 추가한다. 순식간에 수 십 개의 만화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나온 만화에 불만을 표한 고객은 없었다.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이다.

“어떤 만화가 뜰까요?”

짐작하듯 출판사로부터의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일단 멍한 표정으로 난감하게 웃다가 머뭇거리며 말한다. “잘~ 만들어야죠.” 이러면 질문한 사람도 같이 멍한 표정으로 난감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렇죠~” 이 무책임한 답변을 변명하자면 사실, 이게 딱히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무척 난감한 질문 아닌가.
뜬 만화라면 많이 산다는 뜻인데, 그러자면 고객이 스스로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하고, 사고 싶다는 것은 책의 구매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고라도(10대 고객의 경우 만화책을 사기 위해 밥을 굶어가며 알뜰살뜰 힘들게 돈을 모은 이야기, 엄마 몰래 만화책을 받기 위해 친구 집 주소를 써가며 첩보전을 벌인 이야기 등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연, 많다) 꼭 집 안에 모셔두어야 할 명분이 있다는 것이고, 책의 구매 명분이란 곧 즐거움인데, 즐거움은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거나, 그림이 정말 훌륭하거나 혹은 그 전부이거나 아니면 다른 무엇이거나 등등 아닌가. 물론 대충 요즘 뜨는 만화들의 공통점을 열거하고 여기서 추출해낸 독자들의 기호를 나열할 수야 있지만 그 요소를 갖춘다고 반드시 뜬다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아무리 ‘뜰만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도 안뜨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될 만한 ‘뜬’ 만화는 대개 현재 주류를 이루는 인기작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튀어 나왔다. <슬램덩크> 연재 당시 (만화는 작가가 아니라 편집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일본 편집부가 ‘야구는 괜찮지만 농구는 안돼. 일본에서 누가 농구에 신경 쓰나?’ 라며 작가를 압박했던 일화가 대표적인 예다. 아무튼 이 복잡하고도 오묘한 이야기를, 책으로 한 권 써도 모자랄 총체적인 문화 현상을 한 두 마디로 압축시킬 능력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매번 고민하지만 또 매번 결론이 바뀐다. 머리가 아프다. (이 문단을 쉼 없이 길게 써내려간 이유는 같이 머리 아파보자는 심보)
과연 어떤 만화가 뜰 것인가. 이건 대중의 잠재된 욕구를 읽는 능력과 작가의 창의력, 시대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하는 실로 복잡한 문제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은 만화계를 내적으로 살찌우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이 있다.

“만화를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

만화를 원작으로 한 OSMU

▲만화를 원작으로 한 OSMU. 만화는 애들 코 묻은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이 비유를 쓰며 항변하는 것도 지겹지만, 문제는 여전히 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징하다!) 들이대곤 한다. 만화는 더 이상 푼돈이 아니다.


이것은 ‘만화’라는 경계를 탈피하여 만화이면서 만화가 아닌 곳에까지 범위를 넓히는 일이 되겠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이 없었다. 출판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좋은 작가를 발굴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히트칠까, 까지였다. 만화를 만들면 책으로 만드는 것 말고는 할게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애장판으로 10년 뒤쯤 다시 찍는게 재활용의 전부.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만화 한 편 잘 만들면 그걸로 게임도 만들 수 있고 드라마나 영화도 찍고, OST 앨범도 만든다. 뮤지컬도 만든다. 게다가 솔깃한 것은 이 변형의 시장 규모가 원작 만화의 매출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핵심이다. 만화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상품 아닌가. 산업 종사자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원수연의 동명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KBS 2TV ‘풀하우스’의 성공은 만화도 된다는 것을 확인한 중요한 계기였다. 1990년대에 서울문화사의 자회사인 ‘투니아’에서 순정만화 캐릭터 팬시문구를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긴 하나, 어디까지나 만화독자들에 한한 반응이었으니 말이다. 2002년 국내 상용화된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역시 이명진의 동명작을 배경으로 국내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2006년 방영된 MBC 드라마 ‘궁’은 만화적 기법을 상당수 드라마에 도입하여 독특한 재미를 선사했다. 2006년과 이듬해 개봉하는 허영만 원작 영화 ‘타짜’와 ‘식객’도 있다. 서울문화사의 <메이플스토리>는 역으로 원작 게임을 만화화해 2006년 현재 누적판매부수 600만부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케이스. 물론 변형 콘텐츠가 인기를 얻을수록 원작만화의 판매율도 급증한다.

현재의 문화 산업 트렌드는 문화 장르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하나의 콘텐츠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는 일종의 공동연합전술이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면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는 ‘크게 한 방’을 할 수 있다. 이 ‘한 방’은 뜨면 뜰수록 한계를 모르고 주변으로 확장해 간다. ‘다시 문제는 콘텐츠다!’라는 테제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은 그 ‘한 방’의 힘이 바로 콘텐츠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궁 팬시상품
▲드라마 ‘궁’의 성공으로 (주)바른손에서 궁 팬시상품을 만들었다. 궁 팬시상품의 시장 규모는 50억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GS25에서는 올해 초 궁 삼각김밥을 출시해 호평을 받았다. 잘 키운 만화 하나, 열 영화 안 부러운 순간이다.

그게 요즘 유행인 OSMU(One Source Multi Use) 아닌가. 다행히도 만화는 상상력의 보고로, 무한한 콘텐츠가 누적의 장으로 여러 매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류의 슈퍼 히어로물의 영화가 잇달아 흥행하는 미국과 인기 만화를 TV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제작하는 일본을 보면 된다.
그래서 요즘 만화출판사들은 행복한 꿈에 젖어 있다. ‘한 방’만 제대로 나오면 9회 말 투아웃 만루 홈런으로 그냥 끝이다. 당장 매출은 줄어 배가 고프지만, 마음만은 무지 배부르다. 만화출판사는 나날이 규모를 줄이거나 문을 닫는데, 일반 출판사에서는 오히려 만화부를 신설하고 신작을 기획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쨌거나 이 발상의 전환은, 참으로, 중요하다. 게임과 동영상의 인기로 만화가 ‘죽는다’가 아니라, 그 덕분에 만화도 ‘살찐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른 어느 곳보다 만화계에 필요한 것, 그게 바로 OSMU다.(끝)

2006년 10월 vol. 44호
글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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