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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3) 노인
서찬휘 2007.05.07

01. 우리나라도 점차 고연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인구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국민연금 같은 걸로도 말이 많고, 정년을 어디까지 두어야 하느냐 같은 문제로도 가끔 신문 사회면이 시끌시끌하죠. 평균 수명이 홱 늘어나 이젠 70세 정도로도 아직 정정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요즘 같아서는 어느 정도를 ‘노인’이라 이야기해야 할 지 가끔은 좀 막막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노인이라는 화두가 사회 전반에 떠오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02. 각설하고, 그런 노인층을 만화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요.
사실 만화에서 노인의 비중은 대단히 낮은 편입니다. 이를테면, 노인 캐릭터는 만화에서는 이른바 ‘손’ 같은 존재입니다. 조금이라도 그림 연습을 해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손은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 신체 부위입니다. 아예 「헬싱」의 히라노 코우타 같이 ‘손을 잘 못 그리는 단점을 등장인물 전부에게 죄 장갑 끼게 해서 스타일로 승화해놓는’ 괴이한 짓을 하지 않는 바에야, 표현에서 작가의 내공이 가감 없이 드러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노인 캐릭터에는 이마의 주름 하나, 대사 하나에서 살아온 세월을 담아내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실제 사람이 분장을 하고 나와 대사를 육성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캐릭터의 절반 이상을 표현할 수 있다지만, 만화는 그렇지가 않죠. 펜 끝만으로 살려내기엔 너무 난도가 높은 편입니다. 노인의 주름을 표현하는 데에서 작화 실력이 있는 대로 드러나고 마니 쉽게 손대기 곤란하죠.
근데 외양 문제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상업 만화의 주 독자층인 청소년들과 엇비슷한 주인공 연령대를 부각시키려면 그들의 생활 속에 참견꾼을 최대한 배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 부모조차도 잘 그려내지 않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죽할까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만화를 재밌으려고 보지, 뭔가를 꼭 배우려거나 얻으려고 보진 않습니다. 설령 학습만화 딱지를 붙이고 있어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대체로 만화 속에서 흔히 비중이 옅은 엑스트라일 뿐이거나, 아니면 아주 괴팍하게(또는 주책 맞게) 나오거나, 인생을 앞서 산 이로서 방향을 짚어주는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괴팍하지만 나이를 그냥 먹은 게 아님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보통 때에는 능청맞기 이를 데 없어도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현실을 오롯이 반영했거나 비판적 시선으로 담아내는 차원으로 볼 수 있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노인들이 만화 속에서 그저 조연으로만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소위 메이저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노인들을 화두로 삼은 작품들이 적지만 있습니다. 이들 작품에서 노인은 주변부 인생이라기보다 여전히 자기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인상이 강합니다. 이를테면 폐경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성욕을 지니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라든지 말이에요. 영화에서도 다루어진 화두기는 합니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이유로 만화에서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데에는 상당히 깊은 내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을 전면에 내미는 경우는 좀 드물지요.

03. 노인이 지닌 자산이란 오랜삶에서 우러나오는 성찰과여유, 또는 경험치입니다.

뒤집자면 살아온 햇수답지 않은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반전’ 내지는 ‘일탈’을 야기하는 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앞서 노인을 ‘손’과 같은 존재들이라 했듯 만화에서 그런 노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곧 인물 표현력이 단조로움을 말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공부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스테레오타입을 적당히 따라가는 안전함을 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노인을 나오지 않게 하거나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작품은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지만, 노인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을 잘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만화의 깊이를 드러내는 게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노인을 정말 맛깔스럽고 공감 가게 그려내는 작품들이 좀 더 많이 우리 만화에 등장해주기를 바라봅니다. 작화로든, 소재로든.

 

이 만화들을 읽어보세요.

도쿄 바빌론

도쿄 바빌론

현대 시대의 부조리함을 투영한 CLAMP 초기작.
없는 형편에 고생하는 딸네 집에 얹혀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가 팬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부모의 대화를 듣고는 쪼르르 와 할아버지 언제 죽냐고 묻는 아이의 순진한 눈매가 지금도 서늘하네요.

 

아즈망가대왕

아즈망가대왕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를 미소녀 캐릭터만 잘 그리는 작가에서 사람을 잘 그리는 작가로 다시 보게 한 게 마지막 권에 나오는 수의사 할아버지입니다. 치요의 둥글둥글함과 대조적으로 주름 하나하나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탄탄한 작화력이 인상 깊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리오모테 산고양이를 데려 온 치요와 사카키의 사정을 조용히 넘겨주는 여유 있는 배려도 일품입니다.

 

용비불패

용비불패

한국 무협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품답게 주름 하나하나의 표현에서 내공이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파황신군 현재양. 끝 모를 방랑벽과 심후한 내공, 어떤 순간에도 잃지 않는 능청맞은 여유와 개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인물입니다. 여담이지만 현재양은 또 한 편의 인기 무협물 「열혈강호」의 작가 양재현 씨의 이름을 뒤집은 것이죠. 「열혈강호」에 등장하는 ‘도제’의 본명은 문정후. 「용비불패」의 작가 이름입니다. 만만찮은 괴짜 할아버지죠.

 

老망스 & 황혼유성군

老망스 & 황혼유성군

영화 「죽어도 좋아!」와 마찬가지로 노인들의 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때론 있는 그대로, 때론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종종 잊곤 하지만 노인분들도 욕구가 있고 그 해소처를 찾게 마련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보니 현실에서도 박카스 아줌마들이 괜히 있는 건 아님을 실감하게 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4월 17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강풀의 「순정만화 씨즌3」. 70대, 살 만큼 살았고 알 만큼 아는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어떤 작품 가운데에서도 가장 노인들의 ‘심리’와 ‘생각’에 충실한 이야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직 초반이지만 강풀표 만화 특유의 흡인력은 여전하네요.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 동물의사 Dr 스쿠르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
동물의사 Dr.스쿠르

괴인의 영역을 넘어 괴수의 영역에까지 진입할 법한 괴짜 노인들이라면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의 다마 할머니와 「동물의사 Dr.스쿠르」의 우루시하라 교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보고 있자면 정신이 말 그대로 안드로메다로 향할 것 같은 이들의 모습은 서로 궤는 다르지만 민폐덩이라는 점과 (자기를 위해서라면) 노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스태미너(?)와 끈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노인의 희화화라는 면으로는 그 어떤 캐릭터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The Tragic Kingdom & 마법선생 네기마

The Tragic Kingdom & 마법선생 네기마

이 두 작품에는 외모는 어린 아이지만 속은 수백, 수천 살인 흡혈귀가 나옵니다. 「The Tragic Kingdom」에선 로메인, 「마법선생 네기마」에서는 에반젤린. 에반젤린은 꼬마의 모습이지만 알고 보면 중세시대부터 살아왔고, 로메인은 로마시대부터 살아왔습니다. 소악마적 기질과 원숙미를 겸비하고 있으며 경험도 풍부하지요. 게다가 둘 다 외모에선 떠올리기 힘든 노련함으로 주인공 일행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해 줍니다. 다만 에반젤린이 자신을 악당으로 규정지으며 자기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여준다면(가끔 귀엽게 망가지긴 하지요) 로메인은 노인다운 모습과 어린아이 같은 모습 사이에서 종종 괴리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곤 합니다. 이 둘은 외모와 실제 연령의 부조화에서 오는 반전성을 개성으로 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카페 알파

카페 알파

저녁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 작품에서,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과 그만큼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알파나 코코네 같은 로봇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고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남겨주는 의사 선생님과 할아버지의 존재는 무심한 듯 애잔함을 끌어내는 장치가 됩니다.

 

와탕카

와탕카


그 옛날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있었다던가 없었다던가 하죠. 아들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늙고 힘없음을 한탄하지만 굶어는 죽어도 들짐승 먹은 못되겠다며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들놈 앞에 곰 한 마리가 쿵 하니 놓입니다. 말 그대로 힘이 없어 버림받았으니 힘을 길러 돌아온 것이지요. 바람의 파이터, 아니 바람할매가 되어 돌아온 어머니는 이후 「와탕카」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합니다. 노인이 힘없고 나약하다는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 반전을 선보인 셈이죠. 개그 캐릭터지만 그 반전이 개그가 될 수 있는 현실에서는 다소 가슴이 아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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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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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박약. 주변을 돌아보면 한 명쯤은 있죠.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막상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우왕좌왕하거나 어떤 사안이 닥쳤을 때 견뎌내질 못해 쉽게 무너지고 마는 인간형 말입니다.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7) 여장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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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인 차이와 한계(애덤스 애플부터 시작해 성기, 골격 등 모든 부분에서)로 말미암아 여성성이 지나치게 강한 남성은 아무리 잘 봐줘도 ‘분장’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여자애가 남자 바지를 입는 거와 남자가 여자애 미니스커트를 입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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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5) 이단자
서찬휘
2007.07.10
독자들은 만화 속의 이단아들에게서 시대를 비추어 보기도 하고, 대리 전복을 꿈꾸기도 하며, 때론 고정관념과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일탈하는 쾌감을 얻곤 합니다. 어떤 점에선 이들의 활약은 물론, 존재 자체가...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4) 스승
서찬휘
2007.06.07
만화 속에도 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모로 주인공들을 끌어주고, 때론 질책도 해 주고. 아니면 함께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때론 절벽 밑으로 걷어 차 주기도 하지요. 직업으로서의 선생님 뿐 아니라, 스승으로서 주인공들의 앞에 서 있는 이들이야말로 주인공이 그 모습으로 자리하게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3) 노인
서찬휘
2007.05.07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국민연금 같은 걸로도 말이 많고, 정년을 어디까지 두어야 하느냐 같은 문제로도 가끔 신문 사회면이 시끌시끌하죠. 평균 수명이 홱 늘어나 이젠 70세 정도로도 아직 정정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요즘 같아서는 어느 정도를 ‘노인’이라 이야기해야 할 지 가끔은 좀 막막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노인이라는 화두가 사회 전반에 떠오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서찬휘의 만화 즐기기 :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2) 학생
서찬휘
2007.04.10
성인도 즐기는 문화다, 제9의 예술이다 같은 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중문화이자 상업예술로서의 만화를 찾는 주 소비 계층은 단연 학생계층입니다. 덕분에 만화에는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보는 이들을 직접 화자로 만드는 편이 몰입도도 높을 테고요...
서찬휘의 만화 즐기기 :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1)
서찬휘
2007.03.07
만화 속 인물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특성, 그리고 만화 속 인물이기에 드러나는 속성들을 간단간단하게 짚어나가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들을 잘 살린 작품들도 추천하고요. 만화를 이렇게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