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휘의 만화즐기기
서찬휘의 만화 즐기기 :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2) 학생
서찬휘 2007.04.10



성인도 즐기는 문화다, 제9의 예술이다 같은 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중문화이자 상업예술로서의 만화를 찾는 주 소비 계층은 단연 학생계층입니다. 덕분에 만화에는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보는 이들을 직접 화자로 만드는 편이 몰입도도 높을 테고요.



하지만 현실에서 학생이라는 부류는 어떠한가요. 참 어중간한 나이죠. 어른일 리는 없고, 그렇다고 아주 애도 아닙니다. 몸은 영글어가고 있지만 발산할 창구는 마땅치 않고, 학교라는 공간이 꿈과 인성을 키우는 곳이라는 건 애초에 헛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눈앞에는 대학 또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모든 유희를 접고 공부나 하라는 선생과 부모들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밖에 살아오지 못한’ 기성세대들이 ‘그렇게밖에 가르쳐주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늘 자문자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언가 특이점이 있는 이들을 그 방향으로 키워주기보다는 내리 눌러서 똑같은 길을 똑같은 방식으로 걷게 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죠. 그 결과 아이들은 자기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할 방법을 모른 채 논술 배운 실력으로 악플러나 되는 게 고작이요,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그게 절대 끝이 아니라는 사실과 참아왔던 걸 할 수 있다는 자유 이전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난감한 사태에 봉착하고 맙니다. 부모님과 대화는 없고 친구는 내신 도둑이요 상담할 선배는 있지도 않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게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지만요.



그렇다면 만화가 그런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두드러지는 경향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할까요.

돌격! 크로마티 고교
돌격! 크로마티 고교
(서울문화사, 전17권(완))

먼저 주객전도. 학생들이 주인공인 작품에서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당연해 보이는 이 전제가 실은 작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란 게 좀 서글프죠. 어쨌거나 학생들이 장악한 학교에서 선생님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나(「돌격! 크로마티 고교」) 애들이랑 같이 놀고 앉아 있거나(「에어기어」 「패닉스쿨」), 그도 저도 아니면 애들한테 와장창 말리고(?) 삽니다. (「스쿨럼블」) 애초에 거대한 놀이터니까요.

근데 이건 선생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꼭 어디 멀리 나가 있거나 계셔도 별로 비중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나와서 삽니다. 어른의 존재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대신 선배가 그 자리를 대신해 인생을 고민하곤 하죠.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서클활동이라도 하고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낭만클럽」 )

위태위태 학생회

위태위태 학생회
(학산문화사, 전2권(완))


학생회의 권력이 큰 경우도 많지요. 웃긴 일이지만 보통은 학교에서 건의사항 처리나 예산 집행 같은 건 학생 손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학생회장 선거 자체가 공부 잘 하는 전교1등을 얼굴 마담으로 앉혀놓고 적당히 내신 점수 붙여줄 뿐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 학생회는 거의 초인집단에 초법규집단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슨 학생들의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가 하면(「위태위태 학생회」) 별도 예산을 집행하고 이를 불려 수익을 내기도 하며(「풀 메탈 패닉!」) 축제를 주도하고 관장하기도 합니다.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 「후르츠 바스켓」) 아예 무슨 계급제를 갖춘 학교도 있군요. (「신사동맹 크로스」)

실버 다이아몬드
실버 다이아몬드
(서울문화사, 9권)

그런 반면에 학생이 학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교복’에 관해선 벗고 싶을 만도 한데 또 미묘하게 집착에 가까운 감정도 보입니다. 이 경우 또 학교를 벗어났을 때 두드러집니다만,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옆 동네도 아니고 이계로 굴러 떨어졌는데도(또는 직접 갔는데도) 교복 한 벌에 의지하기도 합니다.「실버 다이아몬드」의 라칸이 마음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전투복으로서 교복을 입는다면 「환상게임」의 미아카와 유이는 현실과 책 속 세계의 연결고리로서 교복에 의존합니다. 작가로선 별다른 코스튬을 디자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없지 않겠지만, 한편으론 학생이라는 정체성과 자기 위치를 드러내는 일종의 갑옷이자 무기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선 예쁘지도 멋지지도 않고 담합으로 비싸기나 한 옷인데도, “이게 마음에 편해서” 같은 대사를 던지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싸해집니다.

니나 잘해

니나 잘해
(학산문화사, 전50권(완))


학생들이 주인공인 경우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싸움질과 연애질이겠지요. 먼저 싸움질을 앞세우는 경우, 학교는 일종의 거대한 링이 됩니다. 짱이 되어 학교를 평정하는 일종의 무한 토너먼트 체제입니다. 근데 이건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 이야기한 부분 가운데 어쩌면 가장 현실과 가까운 부분입니다. 약육강식이라는 구도를 어려서 터득한 아이들은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그 위에 올라서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을 듭니다. 서열은 곧 조직이 되고 최고 실력자는 권력을 거머쥡니다. 제법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알량하죠. (「짱」 「니나 잘해」 「로쿠데나시 블루스」) 가끔은 그런 것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착하게 살려고 돌아오는 역발상도 보입니다. (「차카게살자」 「파이팅!! 선도부」)

언밸런스×2
언밸런스×2
(대원씨아이, 6권)

염장질, 아니 연애질은 또 어떨까요. 청춘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많은 아이들이 사랑을 싹틔웁니다. 큰 나무 전설 같은 게 아니라도 잘도 만나고 잘도 얼굴 붉히죠. 짝사랑이며 두근거림 등 온갖 핑크와 잿빛 감정들이 겹치고 꼬이고 교차하는 건 예사요(「아키요시가 시리즈 - 세상에서 제일 미워 번외편」 「다정다감」 등등등) 심지어는 선생님과도 연애 내지는 애정행각을 벌입니다. 솔로 가슴이 서글퍼지는 대목입니다. (「선생님과 열애 중」 「언밸런스×2」) 왜 요즘 만화는 알콩달콩 연애밖에 없냐고 하는 이들도 많지만 뒤집어 보자면 그만큼 연애감정이 자연스럽고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시기가 또 어디 있으랴 싶기도 합니다. 어설프고 앞뒤 재지도 않지만 그 이상으로 일직선이죠. 현실적이냐 아니냐 이전에 그 나이대 아이들이 가장 빠져들고 몰입해 보고픈 감정이란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핑크빛 청춘이란 청소년의 로망이니까요. 할리퀸 스타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시 언급하는 거지만, 학생이란 불안정한 존재들입니다. 입시지옥 위에서 미성숙한 생각과 신체를 끌어안고 있어야 하죠. 삶의, 그리고 사회의 주인공일 수 없는 무력함을 느껴야 합니다. 만화가 그려내고 있는 학생들은 그러한 현실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는 듯 보입니다. 천하무적이기도 하고, 권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장악한 채로 흔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러한 모습들은 단지 그들이 주인공일 때 나올 수 있는 모습의 극히 일부가 노출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항하지마!

반항하지마!(GTO)
(학산문화사, 전25권(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심리는 주체성의 고양일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도피에 가까운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만화판 「마비노기 - 붉은 달의 선물」)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그 나이 대 아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은 안타깝죠. 그래서 그 안에서 고민하며 넘어져도 보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가려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굿모닝 티쳐」나 아예 그런 오만불손한 현실에 망치와 백드롭을 들이대는 「GTO」 같이 현실에 한 발 닿아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달래보기도 하고,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나 「돌격! 크로마티 고교」 같이 아예 블랙 유머가 넘실대는 이야기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기도 합니다.
만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만화가 비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지나치게 팬터지스러워서입니다. 그러니 다소 오버라도 좋으니 그 반대를 그려 보는 것이죠.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그 나이 대에 어울리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작 대학입학을 위해 새벽 1시에 별 보고 집에 들어와 새벽 6시에 별 보며 뛰어나가야 하는 게 빈말로라도 ‘정상’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고 또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현실을 돌려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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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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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의 만화 즐기기 : 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1)
서찬휘
2007.03.07
만화 속 인물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특성, 그리고 만화 속 인물이기에 드러나는 속성들을 간단간단하게 짚어나가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들을 잘 살린 작품들도 추천하고요. 만화를 이렇게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