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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인간군상 이야기 (6) 새침부끄(츤데레)
서찬휘 2007.09.07



얼마 전 개신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활동을 갔다가 반미 무장세력인 탈레반에 납치, 두 명이 살해당하고 나머지도 42일간을 인질로 지내다 겨우 풀려나는 사태가 일어났었죠.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요 한국 개신교의 누구도 못 말릴 안하무인 선교 행태에 관한 비판, 그냥 너희 뜻대로 순교해라 무슨 소리냐 일단 살려서 돌아온 후 혼내야 한다 등등 매우 다양한 여론이 일어났습니다. 막상 사람들이 풀려나자 논의가 너희 때문에 들어간 돈 너희가 부담해야 한다 아니다로 논쟁이 붙고 있네요.

조금 무거운 화제로 시작했습니다만, 사실 인질이 된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살해당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 이번 사태는 상당히 희화화한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무려 납치에 살해 협박을 하는 무장 단체 치고는 협상 기한 연장을 거듭하면서 긴박감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죽었으니만큼 쉽게 이야기할 건 아니겠습니다만, 사람들은 인질 살해 직전까지 그들이 보여준 행태를 빗대 일일연속극 탈레반이라며 농담 소재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시청률 안 나오니까 쇼한다면서 비웃었죠. 곧 비웃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근데 일일연속극과 함께 좀 묘한 용어가 돌아다니기도 했죠. 츤데반이란 표현이었는데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쪽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츤데레를 탈레반과 합쳐 부른 말입니다. 덕분에 새삼 이제 대세는 츤데레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더랬지요. 게다가 일부 계층 내에서의 화두만도 아니고, 시사성 높은 화두를 지칭하는 개그스러운 표현에까지 떡하니 등장할 정도라는 점이 조금 놀랍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이런 일에까지 오덕(‘오타쿠’를 더 비아냥거림 대상으로 삼는 한국식 표현)들이 난리냐”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긴 했습니다만 말이죠.

츤데반이란 개그로 졸지에 포털 뉴스 덧글, 각종 게시판 등에 오르기도 한 ‘츤데레’란 과연 무엇일까요. 또 그런 류 인물들엔 누가 있을까요. 간단히 짚어 봅니다.



츤데레(ツンデレ)란, 만화·애니메이션·게임 속 캐릭터들을 대상으로 여러 갈래로 파편화한 취향과 코드들에 천착하는 일종의 애정 표현인 모에(萌え)에 이어 최근 대 유행을 타고 있는 표현입니다. 이미 모에가 ‘미소녀의 외향적인 코드’의 범주를 벗어나 내면적, 실사 영역에까지 범주를 넓히고 있고 보면 츤데레 또한 모에 코드의 한 부류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등장인물의 특정 성격 면이 이렇게 유난히 부각되는 경우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 이후로 꽤 오랜만이어서 신선하기도 합니다. 레이가 수많은 변종과 짝퉁을 양산해내며 극중 역할과는 달리 일종의 ‘오리지널’로 위치를 굳건히 했다면 츤데레는 원조라고 할 만한 인물이 있다기보다는 자연히 게시판 등지에서 이런 류 인물들을 모아서 부르기 시작한 용어가 코드화하면서 이에 맞춘 등장인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약간 다르긴 하지요.

츤데레는 툼명스럽다는 뜻인 츤츤(つんつん)에 느물거린다는 뜻인 데레데레(でれでれ)를 합친 말로 평소에는 퉁명스럽고 쌀쌀맞게 굴지만 실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거나, 만나면 화내고 싫어하는 듯 보이지만 속마음은 부드럽다거나, 어떤 계기로 인해 틱틱거리던 아이가 어느 사이엔가 따스한 표정으로 곁에 있다거나 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보통은 심술쟁이 같은 얼굴에 너 같은 거 알 바 아냐 식으로 굴지만 실제로는 다정하게 대해주고,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말엔 솔직하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면서 너한테만 해 주는 거 아냐! 식으로 속내를 감추고 대꾸한다거나.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발끈하면서 내가 왜! 식으로 당황하며 외친다거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거나 당황하거나 말을 조금 더듬는다거나가 포인트라면 포인트죠. 요는 쌀쌀맞을 때와 배려해줄 대의 간극이 클수록 효과도 더 크다는 사실. 츤데반 개그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면, ‘일일연속극 탈레반’이란 소리가 나올 때 한참 돌았던 패러디 만화가 “바, 밥이 남아서 주는 거야!”라면서 살해 위협 중인 인질들에게 밥통을 건네고 있는 탈레반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웬일인지 볼도 붉히고 있다는 점이 또 심히 곤란합니다만.

일찍이 메이드 카페들이 나타났던 일본에서는 조류를 놓치지 않고 츤데레 설정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츤데레 카페라는 것도 생겨났다고 하죠. 점원이 손님에게 무려 왜 왔냐 식으로 틱틱대고 굴지만 갈 때엔 그래도 또 오라는 식으로 애교를 부리는 식이라나요. 게다가 츤데레가 유행하면서 특정 이물에게 병적으로 집착해 결국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경우 피를 봐야 한다거나 겉으로 착하고 순수해보이고 잘 해주는 듯해도 안이 매우 위험천만한 경우를 뜻하는 얀데레(病ンデレ), 보통 무표정하고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은근히 마음을 써 주고 있는 경우를 뜻하는 쿨데레(クルデレ) 까지 - 신조어들이 으레 그러하듯 츤데레도 다양한 경우와 속성으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만화판 「NHK에 어서오세요」 한국어 번역본에서 이 용어를 ‘새침부끄’라는 절묘한 표현으로 번역해 화제를 모은 바 있고, 「현시연」 한국어 번역본에선 ‘팅김내숭’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표현의 완성도(?) 면에선 새침부끄가 한 수 위로 보입니다. 팅김내숭의 경우 튕기다를 팅김으로 적었다는 점에서 이미 문제가 좀 있고요.



츤데레, 새침부끄라는 인물형은 어찌 보면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모에 계열을 좌지우지했던 메이드붐에 ‘반발’까진 아니라도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성격이 부각되면서 색다른 개성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서브컬쳐의 메이드는 고용된 가사 전문가로서의 메이드나 하녀의 의미라기보다는 다분히 성적인 개념으로 내 모든 걸 바쳐 당신께 봉사합니다- 류의 인물형이거든요. 온 몸을 다 바친 봉사에 이어 정반대로 겉으로는 쌀쌀맞은 인물형이 유행을 타고 있다는 건, 역시 조류가 늘 흐르고 변하고 돌게 마련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합니다.

당분간은 츤데레가 대세일 듯합니다만, 다음 인물형은 또 어떤 걸출한 성격으로 우리를 찾아올까요. 기대됩니다.

(보태기) 근데 생각해보면 츤데레 카페의 원조는 바로 한국에 있습니다. 종종 찾을 수 있는 욕쟁이 할머니(아줌마) 음식점들이 바로 그거죠. 신랄하게 쏟아 부어도 실은 애정이 있어서 죽어라 욕해주시는 그 따스한 인심을 츤데레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츤데레 인물 5 - 이런 애들 챙겨 보자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 하루히

쿄토 애니메이션의 TV시리즈로 말미암아 원작인 라이트노벨보다 한층 더 파괴력을 얻은 하루히 시리즈. 이 가운데 ‘단장님’ 하루히가 최근 츤데레 계열 인물 가운데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죠. 쿈을 갖은 폭언으로 구박하고 짓이겨도 실은 일편단심 오매불망 쿈만을 쳐다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유키는 말없이 뒤에서 할 거 다 해 주다가 아주 가끔 1mm 수준의 반응으로 쿈을 기쁘게 해 주는 쿨데레 캐릭터를 정립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스쿨럼블

스쿨럼블 - 에리

소위 재벌집 따님, 아가씨(오죠우사마 : 御??) 캐릭터로서 도도하고 고결한 표정을 짓곤 하던 에리였지만 어쩌다 소도둑 같은데다 가장 친한 친구인 텐마를 좋아하는 하리마에게 두근대기 시작하는 바람에 귀여운 사고뭉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닌 척 마음 써주고, 툭하면 시비 걸고 하면서도 필요할 때엔 함께 해 주고 있는 모습이 심금을 울리곤 하지요.

러키스타

작안의 샤나 - 샤나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라는 고함이 입에 붙은 메론빵 괴인 소녀. ‘홍세의 무리’에게 먹혀 인간이 본래 지닌 존재의 힘을 잃고 만 찌꺼기일 뿐인 ‘토치’지만 영시미아라는 보구를 지닌 덕에 소멸하지 않는 사카이 유지를 만나 ‘샤나’라는 이름을 얻고 점차 그에게 끌리게 됩니다. 강인하지만 그저 선을 넘어 준동하는 홍세의 무리를 토벌하는 플레임헤이즈로서 살아왔던 샤나에게는 누군가가 마음속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처음. 그런 배경에서 일어나는 각종 상황이 훌륭한 츤데레로서 독자를 즐겁게 해 줍니다.

러키스타

러키스타 - 카가미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에 이어 쿄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시리즈. 원작이 만화로 국내에도 얼마 전 정식 번역판이 들어왔습니다. 번역품질과 인쇄질로 말미암아 욕을 좀 먹고 있지만요. 여기 등장하는 카가미가 또 대놓고 츤데레 타입입니다. 남녀간의 애정이라기보다는 여자애들 사이의 우정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누구도 못 말릴 오타쿠 소녀 코나타에게 일반 상식에 준하는 태클을 날리거나 발끈하면서도, 또 약간 천연맹순이 기질을 보이는 쌍둥이 여동생의 맹함에도 ‘못말리겠어’ 하는 새침한 얼굴로 챙길 걸 다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지요. 동생과는 달리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으면서도 따스한 마음을 지닌 덕인지 인기가 높습니다. 이 때문인지 졸지에 츤데반 만화에서도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군요.

아기공룡 둘리

아기공룡 둘리 - 고길동

한국 만화는 캐릭터 중심성보다는 이야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해서 이런 조류에 쉽게 휘말리거나 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으로 봤을 때 그 어떤 츤데레도 따라갈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 아저씨. 엄연히 말해 떠맡은 군식구라기보다도 주거침입죄를 저지른 악동 괴수(?)들을 먹여 살려, 돌봐줘, 게다가 애완동물 취급까지 당하면서도 차마 쫓아내지도 못해, 챙겨줄 거 다 챙겨줘… 성인이 되어 다시금 이 작품을 떠올려 보면 길동이 아저씨야말로 성인군자에 버금가는 심성을 지녔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겉으로는 표독스러우면서도 결국 애정으로 감싸주는(?) 길동이 아저씨야말로 츤데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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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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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인물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특성, 그리고 만화 속 인물이기에 드러나는 속성들을 간단간단하게 짚어나가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들을 잘 살린 작품들도 추천하고요. 만화를 이렇게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