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제8장 (01) 에필로그 : 1
박기준 2010.03.13

일본의 교토 세이카 대학교(京都精華大學校)를 다녀와서

다소 때늦은 감은 있어도 국립공주 전문대학에 만화예술학과가 신설되었다는 뉴스는 한참동안 내 가슴을 새로운 감회에 젖게 만들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억울할 만큼 암담한 현실 속에서 냉대 받던 우리 만화가 이제 버젓이 학문의 한 분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후배를 길러야 하는 만화인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뒤 켕기는 아쉬움을 이로써 훌훌 벗어 던져도 좋을 때가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만화가로서 성공한 사람들의 작품을 앞에 놓고, 모범답안지를 베끼는 듯한 수업으로 신데렐라의 꿈을 낚던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게다가 튼튼치 못한 기초공사로 도중에 바벨탑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숫자까지도 모두 합해 본다면....!
이제 우리 후배들은 그런 갈등을 겪지 않고 진짜 의미에서의 ‘예술’ 만화를 배우겠구나 하는 뿌듯함에 때마침 계획된 나의 일본 여행을 더욱 의미 깊게 했다.

1년 내내 동물데생만 하는 실기교육
발 닿는 곳마다 이름난 사찰들이 있어 역사 깊은 관광도시임을 느끼게 하는 교토. 내가 교토세이카미술대 만화학과를 찾은 것은 1990년 4월5일 정오 무렵이었다.
만개한 벚꽃 속에서 정문까지 나와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겨준 이는 요시토미 야스오(吉富康夫)씨. 제1회 일본 만화가협회의 대상을 수상한 만화가이자 만화평론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교토정화대학교에 만화학과가 설립되었을 때부터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 학교가 탄생한지는 17년이니 벌써 15기 졸업생을 배출시켰다. 학과 창설 당시에는 정원 미달이었으나 언제부턴가 40명 정원의 12배나 되는 수험생들이 몰려올 정도로 확실한 안정기에 있다고 했다.

대학 첫방문때
정문 간판 단과대학으로, 초급대로 시작되었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1990. 4. 6)

“학교에서는 지금 만화도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에 대한 예의부터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배우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통용되는 매너부터 익히게 합니다. 그리고 입학 전에 갖고 있던 지식은 모두 버리게 합니다. 철저하게 그림에만 매달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하는 야스오 교수의 설명은 강의실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이해가 갔다.
벽에 붙은 1학년 시간표를 보니 ‘동물’이라는 단어 투성이다. 그들은 입학과 동시에 만화가만 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동경과 환상을 깨는 대신, 지겨울 만큼 연일 동물 데생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실기 교육에 임해야 한다.
여름방학 과제물로 받는 것이 ‘동물데생 100장’이라니 하다 못해 쓰레기장 앞에서 굼실대는 쥐새끼라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다. 복도 벽에는 그네들이 그렸을 그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동물, 새 등의 연필소묘, 그리고 채색 작품 등으로, 진급을 가리기 위한 제작물로 출품된 것들인데 여기서 합격되어야 월반이 가능하다고 한다.
2학년 때는 거리에 나가 인물 사생과 기타 과장된 선묘가 위주인 기초과정을 배우며, 누드데생, 연필크로키, 펜크로키 등으로 다시 진급 제작물을 출품하여 심사에 통과해야 한다.
3학년 때는 건물, 자연풍경에 대한 공부로 거리 구도와 입체투시도 제작 등에서 심사에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4학년에 들어가서야 독창적인 창작 작품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쿄토세이카학생들의 카툰 작품

카툰, 일러스트, 애니메이션의 3개 분야 중 전공을 선택, 각 과정별로 교수와 팀을 형성하여 졸업작품을 제작, 교토시립미술관에 전시하게 된다.
이론수업은 일반미술 외에 과이론 수업과 전공이론 수업이 있고, 각종 연구회, 초청강의 등이 있다.2년제 대학원 과정도 벌써 한참 전부터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4년 공부를 마치고 졸업하면 곧 만화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만화정신과 재능을 단련해서 진짜 의미에서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인재를 길러 내려는 것입니다. 만화뿐만 아니라 삽화도, 유화도 그릴 수 있는 다양한 인재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야스오 교수 및 강사진의 열의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각과 24, 5명, 4개 학년을 합쳐서 약 100명 가량의 학생들이 끊임없이 분투 노력하고 있다. 수업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후 1시에서 6시까지 받는데 밤늦도록 자유제작에 임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2주 간격으로 제출하게 되는 작품들을 놓고 비평회까지 행한다고 한다.

한일 만화학과의 교류를 희망해

야스오 교수는 우리나라에 만화학과가 설립되는 데 있어서 커리큘럼의 실예를 제공하는 등, 음으로 양으로 크게 힘이 되어 준 사람이다. 이에 대한 치하에도 그는 어디까지나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의 입장임을 강조한다.
“미미하게나마 그간 한일 교류를 위해 힘써온 것은 사실입니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학생들의 교류나 자매학과의 제휴도 생각해 볼 과제로 놔두고 싶습니다.”
얼마 뒤면 교토 국제만화전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이 전람회에서 세계 40여 개국의 주요 만화가의 원화도 함께 전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것만도 300여점인데,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고바우영감’의 김성환 씨 작품이 5점이나 보관되어 있단다.
자료실에 비치된 졸업생들의 작품집을 보니 그림 그 자체가 빈틈없을 뿐 아니라 아이디어 역시 깊이 생각한 끝에 얻어진 것으로, 제작자의 웃음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역력히 엿보였다.
만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각자 모색해 보게 하면서 수업을 쌓아가게 하는 자세, 내게 이 대학은 분명코 만화의 내일을 밝히는 요람으로 비춰졌다.
다만 한가지, 우리와 다름없이 그네들도 골치를 앓고 있는 문제가 있다는데, 그것은 요즘 학생들이 활자를 읽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또 토론하거나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문학서적, 신문 등을 강요하다시피 하여 세상사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교수의 설명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 대한 한가지 대책으로 그들은 시청각교육을 도입하고 있다. VTR과 슬라이드 등을 사용한 수업으로, 세계만화사에 많은 흥미를 갖게 해 주고 있다.
이 문제는 다른 많은 문제들과 함께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넘지 않으면 안될 관문이라 여겨진다.
한국만화가로서 최초로 방문했던 나는 그후 요시도미 교수와 교분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곳 교토에 새로 건립된 국제문화회관 센터와 명승지 등을 안내 받으며 술자리도 함께 하는 등 다른 교수들과도 우의를 다졌다.
특히 우리 두 사람은 국내외 만화와 국제관계 등 여러 면에서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완전히 의기투합해서 장시간에 걸쳐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곳 대학 만화예술학과에 한국 유학생은 한 명도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일본화(日本畵)학과에는 여학생이 한 명 있단다.
나는 양국 전문가의 교류 및 국제만화 정보 교환, 그리고 학생들의 인적 자원 교류와 함께 유학생들도 보내 우의를 돈독히 하기로 약속했다.

교토 세이카대학 방문시 미술학부 만화학과의 교수들과
좌측 미야자키, 다마다 교수
우측 요시도미야스오 주임교수 (1990년 4월 5일)

만화가 양성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하면, 인기 작가의 문하에서 배출되거나 만화 전문학원에서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지도하에 탄생되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었는데, 과연 일본의 대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지도하고 있을까, 의문이 많았었다. 그 궁금했던 일본 정화대학 교육에 대한 의문점이 많이 풀려서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한 나는, 귀국 즉시 당시 최고의 인기잡지 ‘주간만화’지에 이상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기행문을 사진과 함께 실었고, 상당 기간 동안 대학에 대한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그 정화대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풍자만화과에서 스토리만화과, 애니메이션과, 만화프로듀서과가 증설되어 만화학부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한국 유학생들도 많이 생겼으며 최초의 만화학 박사도 탄생했다. 우리 한국의 정인경 씨로 현재 세이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정화대학 졸업자들 중 국내 대학 만화 관련학과에 교수로 활동하는 자가 십여명에 달하고 있다. 또 규슈에 소재한 규슈공업예술대학교 화상설계과 출신자들도 우리 대학 애니메이션과와 게임학과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나는 방학이 되면 뜻이 맞는 만화가, 애니미에터들과 관련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을 선발, 4박5일 코스로 잡아 저렴한 가격에 일본 구석구석을 견학하고 있다. 아톰박물관을 비롯, 만다라께(만화 애니메이션 대형 전문 백화점), 세이카대학교 전 수업과정, 도에이 영화촬영소,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부리 미술관, 도에이 만화학원의 수업과정과 유명만화가의 작업실 방문 등 연례행사처럼 진행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 만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배우고 연구하는 길 밖에 없다. 늦었으니 속도를 내야하고 자기 안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변화와 모색, 그렇게 우리 만화의 구태로부터의 일탈이 시작되길 바란다.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제8장 (02) 에필로그 : 2
박기준
2010.04.11
지금도 만화를 위한 요란한 행사, 만화를 위한 거대한 사업계획이 수없이 발표되고 시행되고 있지만, 결국 알맹이 없는 만화를 가지고서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만화에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무한한 자유발상과 함께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 즉 만화의 구심점은 만화를 창작하는 이들의 머리와 가슴과 손끝에서 서로 공조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의 생각이다.
제8장 (01) 에필로그 : 1
박기준
2010.03.13
다소 때늦은 감은 있어도 국립공주 전문대학에 만화예술학과가 신설되었다는 뉴스는 한참동안 내 가슴을 새로운 감회에 젖게 만들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억울할 만큼 암담한 현실 속에서 냉대 받던 우리 만화가 이제 버젓이 학문의 한 분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후배를 길러야 하는 만화인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뒤 켕기는 아쉬움을 이로써 훌훌 벗어 던져도 좋을 때가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제7장 (29) 다양한 만화 박물관 국제만화교류
박기준
2010.02.12
1957년 5월13일, 우리 나라를 방문해 온 외국 만화가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정식으로 방한하여 국내 만화가들과 교류를 꾀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만화가들이었다. 한국 전선을 지키는 장병을 위문하고자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조선호텔에서 국내 만화가협회 소속 만화가들과 친선 간담회를 가졌다.
제7장 (28) 다양한 만화 박물관
박기준
2010.01.13
호반의 도시 춘천에 2003년 10월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출입구 1층에는 홍길동, 둘리, 마징거Z 등 4점의 거대 입상 캐릭터가 입장객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기원이 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재현했고, 탄생과 발전, 종류와 제작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제7장 (28) 만화 박물관의 탄생 -한국만화박물관과 만화박물관
박기준
2009.07.17
뒤이어 2001년에 개관한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출범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한국만화 박물관이 부천시 종합운동장 건물 내에 세워지게 되었다. 당시 만화가협회의 이사였던 조관제 소장의 치밀한 기획에 의해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최근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희귀한 책들과 원고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자랑이다. 이곳 만화 박물관은 분기별로 귀한 옛 만화와 원고들을 계속 구입, 내실을 기하고 있다.
제7장 (27) 만화 박물관의 탄생 - 청강만화 역사 박물관
박기준
2009.07.09
시각적인 전달효과가 뛰어난 만화는 각종 정보량이 폭주하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장 빠른 전달매체 중의 총아로 꼽힌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로서는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읽을거리보다 빠르게 알맹이만 습득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7장 (26) 카툰 전성시대
박기준
2009.07.02
작금은 급격한 변환의 시대다. 어지러운 눈길로 이 시대를 직시하려 애쓰며, 낙오하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단번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전환이 될 수 있는 청량제의 역할을 할 무엇인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 요구에 부응하듯 카툰(CARTOON)이라는 매체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게 되었다.
제7장 (25) (사)한국만화문화연구원 과 (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박기준
2009.06.26
1995년 7월 결성된 한국만화통사편찬위원회가 그 모체로, 1966년 조직과 활동영역을 확대해 한국만화연구원으로 개편되었다. 만화 및 대중화 전반에 관한 이론을 연구하는 단체로 연구원 중심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중문화 이론, 만화평론 교육과정(1년 과정, 주2회 수업)이 설강 중이다.
제7장 (24) 만화를 학문으로 승격시킨 임청산
박기준
2009.06.19
우리나라 최초로 만화예술학과가 개설된 것은 1990년 공주전문대학에서였다. 문교부에 의해 만화의 기본 분야인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캐리커처 부문에 걸쳐 정식 학과가 개설된 것이다. 이는 공주전문대학 임청산 교수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쾌거였다.
제7장 (23) 학원시대
박기준
2009.06.11
만화가가 되고 싶어 지름길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만화예술 학원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보통 6개월에서 12개월 과정을 거치면서 만화에 대한 기초, 그림, 극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다양하게 지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아무튼 만화가가 직접 지도하는 곳을 찾아보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도구 사용부터 연필 스케치, 펜과 자, 붓 사용법에서부터 그리기 등 기초부터 지도 받게 된다. 크로키를 통해 인체도 연구하며 기초가 끝나면 독특한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제7장 (22) 만화교재 출간시대
박기준
2009.05.29
만화는 재미있다.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 이것 역시 만화의 매력에 사로잡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생각해 본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만화의 재미로움에 이끌려 만화가를 동경하는 것과 실제로 만화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있다...
제7장 (21) 북한만화의 존재
박기준
2009.05.21
몇해 전 일이다. 북한만화가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8.15해방을 전후해 김용환과 쌍벽을 이루던 원로만화가 정현웅을 비롯하여 적지않은 문필가, 미술가, 예술가들이 북한을 선택 월북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남한 못지 않게 선후배 만화가들이 꾸준히 뒤를 이어오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제7장 (20) 여성만화가 3인방(3) - 뚝심과 오기의 신일숙
박기준
2009.05.15
신일숙, 그녀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장차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만큼 만화에 끼를 보였던 그녀는 여상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의 도산은, 평소 직장생활에 흥미를 품지 못했던 그녀를 작가의 길로 뛰어들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제7장 (19) 여성만화가 3인방(2) -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김진
박기준
2009.05.07
김진은 서울 출신으로 만화를 좋아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만화를 가까이 접해 올 수 있었다 한다. 남들처럼 공부는 등한시하고 만화만 본다는 꾸중 같은 건 듣지도 않았단다.
제7장 (18) 여성만화가 3인방(1) - 독학으로 영광을 황미나
박기준
2009.04.30
순정만화가 우리나라에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였다. 황미나, 그녀가 순정만화 붐에 편승해서 만화계에 처음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1980년 소녀시대라는 잡지에 ‘이오니아의 푸른별’을 연재하면서이다. 만화 수업이라곤 전혀 받아보지도 않았던 신인이 잡지 연재물을 맡는다는 것은 웬만한 운 가지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제7장 (17) 또 하나의 기둥 스토리작가
박기준
2009.04.23
근래에 만화가들의 스토리작가 의존도가 점점 커지면서, 원작자들도 자기들의 권익을 지켜 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작품의 표지에는 원작자 이름을 명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음지에서 양지로 한 발짝 나오게 된 그들은 단체를 결성해 그 존재를 만화계 안팎으로 알리자고 작정한다...
제7장 (16) 스토리작가 4인방(4) - 야설록
박기준
2009.04.16
1981년부터 무협소설로 기반을 다져온 야설록 씨는 만화계에 입문, 1987년 만화가 황제 씨의 ‘구대문파 시리즈’로 각광을 받았으며, 무협 스토리 창작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소재의 만화극본에 도전, 이현세 만화의 극본으로도 많이 쓰였다.
제7장 (15) 스토리작가 4인방(3) - 임웅순
박기준
2009.04.10
1980년대 이후 한희작 씨와 함께 당대 최고 인기였던 성인만화 붐을 일으킨 스토리 작가 임웅순 씨를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제7장 (14) 스토리작가 4인방(2) - 김세영
박기준
2009.04.07
1980년의 ‘오! 한강’은 당시만 해도 금기였던 이념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화제작이었다. 김세영 씨의 스토리를 만화가 허영만 씨가 그려내 크게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후 김세영 씨는 허영만 씨와 손을 잡고 많은 걸작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벽’ ‘미스터 큐’ ‘아스팔트 사나이’ ‘사랑해’ 등에 이어서 스포츠조선에 연재했던 ‘타짜’는 영화화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7장 (13) 스토리작가 4인방(1) - 김민기
박기준
2009.03.19
한국만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는 걸작 ‘공포의 외인구단’이 이현세를 대중문화의 스타로 만들었지만, 이 인기만화의 원작이 김민기 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만화의 성공으로 만화 스토리가 그림 못지 않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들 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