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만화전시의 주요 대상 또는 만화전시의 특성들
한상정 2010.08.14

만화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자. 만화작품, 만화 창작자... 설마, 이것이 모두? 뭐 놀랄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 그러하니까. 크게 나누면 이 두 가지가 맞을 것이다. 만화작품에 관련된 것, 그리고 만화 창작자에 관련된 것. 그러니까 전자에는 만화원고, 만화책, 만화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사전 스케치들, 그를 위한 자료들, 만화의 내용, 사건이 굴러가는 시공간적 배경 등이, 그리고 후자에는 만화가와 만화시나리오 작가, 이들이 애용하는 다양한 물품들(책상, 의자, 건물, 펜, 컴퓨터 등)과 그 주변의 인맥들, 이 작가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환경 등이 포함될 것이다.


대상적 측면으로만 보자면 미술전시와 그닥 다르지 않다. 미술전시란 미술품에 관련된 것과, 미술품 창작자에 관련된 것들을 적절히 해석하고 배치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미술이 아닌 만화를 전시함에 있어서 특별히 관심을 써야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사성과 복제성이다.


만화와 미술 사이에 첫 번째 다른 성격은, (카툰을 제외한 스토리) 만화는 서사 장르라는 점이다. 서사란 ‘이야기’처럼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명확히 시작과 중간과 끝을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는 각 페이지의 그림과 텍스트들을 통해 이야기를 추출해내는 것이며, 만화에서의 서사는 각 페이지의 구체적인 연출이 포함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하게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서사장르는 미술품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 생각해보자. 예컨대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히 유행하고 ‘블록버스터 전시’들을 떠올려보자. 주로 해외 유명한 미술관, 이름 정도는 많은 이들이 들어본 듯한 거장들의 작품전을 뜻하며, 한편으로 그 상업성에 대한 비난, 다른 한편으론 그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러움으로 블록버스터라고 부른다. 수련의 화가로 유명한 <모네>전이 열린다면 관객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원화를 몇 점이나 대여했을까를 기대해 볼 테고, 그 외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설명들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작품제목이 붙여진 회화작품 앞에 서서, ‘야~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모네의 수련이구만~’하는 일종의 감동과 감탄으로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한 작품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끝내고 나면 다음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서 또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 같은 서사장르라면, 미술 같은 장르와 동일한 방식으로 전시할 수 있을까? 황석영의 <바리데기>같은 소설을 전시한다면 미술 전시처럼 동일한 방식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유는? 서사성 때문이다. 미술전시에 제시된 각 작품은 독자적이다. 그러나 소설전시에 제시된 각 작품의 부분은 결코 독자적이지 않으며 다른 부분들과 연결적으로만 해독가능하다. 물론 소설에 이미지가 차지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도 어려움을 만들어내지만, 만화와 관련된 동일한 어려움인 서사성, 즉 몇 백 페이지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 더 핵심적인 난점이다. 그렇다고 옛 시대처럼 소설가들이 원고를 원고지에 직접 펜으로 쓰거나 타자기로 타이핑을 한다면, 그런 오브제들이 줄 수 있는 힘을 활용해 볼 수도 있다고 치지만, 글쎄. 이 편리한 한글워드를 두고 여전히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만화원고의 스토리성을 강조한 전시의 예


스토리 만화도 소설과 동일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는 사실 소설이나 만화만의 문제는 아니고,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모든 표현양식들, 즉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도 함께 지니는 공통점이다. 이야기상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뽑아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의 몇 십 페이지에 이르는, 또는 그 이전의 몇 십 분에 이르는, 왜 이런 장면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원인을 제시해야만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어려움에 부딪힌다. 이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는 관객이건, 또는 모르는 관객이건 ‘어떻게 대상이 되는 작품을 몇몇 이미지로 설명해낼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전시기획자들은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많이 활용하는 방법은 디지털화이다. 텔레비전이나 슬라이드 자막을 펼쳐놓고 많은 이미지들이 동시에 흘러가게 하는 방법인데, 이는 또한 예산상의 막대한 손실을 야기하므로 전시 공간의 많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따라서 만화전시 기획자의 ‘창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시간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공간속에 포착할 것인가?


두 번째, 미술품과 대별되는 스토리 만화의 특징은 ‘복제성’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사진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표현매체의 특징이 ‘원본 없는 복제품’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보는 영화에 원본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고전적인 예술작품과 이의 복제품을 구별하는 방식이 ‘아우라’의 존재와 부재라고 본다면, 원본 없는 복제양식들은 이런 구분이 불가능하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이 전시 도록이나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는 사실을 관객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미 도서나 화면을 통해 알고 있는 작품이라도 갤러리나 미술관, 조각공원 등지에서 원본의 아우라를 경험하려고 한다. 고전적 미술형식은 기본적으로 복제를 허용하지 않으며, 아마 동일한 이유로 판화가 회화보다는 가격이 저렴하게 거래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는 어떤가? 우리는 만화원고랑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접하는 것은 원래가 ‘복제물’이다(디지털만화에서는 어떤 게 원본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조차 없겠지만 말이다). 만화원고는 만화책의 원본이 아니다. 만화원고들은 스토리만화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만화 원고를 봐야만 그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즉 만화의 독해는 원래부터 복제물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이 사실은 만화의 원래 저작자인 만화가와 시나리오 작가 이외에도 책이라는 플랫폼의 소유자, 측 출판권을 지닌 출판사가 끼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술품을 전시하려면 미술창작자의 허락을 맡으면 되지만, 만화책이나 만화책의 일부 페이지들을 전시하려면 저작권자인 만화가와 시나리오 작가 이외에도 출판권을 지니고 있는 출판사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전시기획자가 만화의 원고를 전시하고자 하면 원저작자들에게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건 지불하지 않건 허락을 받으면 되지만, 만화책을 활용한다면 출판권 설정기간이 끝나지 않은 이상엔 당연히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활용하는 이미지에는 당연히 카피라이트(일반적으로 ⓒ 표시가 있는 것)와 출판사 명이 표시된다. 물론 전시에 활용되는 만화의 페이지들을 2차 저작물로 본다면 이는 원칙적으로는 저작권자의 허락만 받으면 되겠지만, 법 적용상의 문제가 그리 명쾌하지 않기에 문제의 소지는 가능하면 없애는 것이 좋다. 그리고 웬만한 출판사들 역시 자신들이 출판한 만화들에 대해 몇몇 페이지 정도의 활용에 대해선 비용청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의논하여 전시물에 대해 카피라이트를 붙이는 것이 훨씬 더 원활한 진행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만화원고의 시간의 흔적


이처럼 이야기성과 복제성이라는 스토리만화가 가지는 특성을 잘 살려내면서, 우리가 전시의 원칙이라고 내세웠던, 즉 ‘전시는 항상 관객들에게 전시 대상에 대한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떻게 잘 지킬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만화책과의 경험과는 다른 경험을 주어야 한다는 점. 이는 자연스럽게 오리지널 원고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만화전시에서의 오리지널 원고와의 만남은 나름 흥미로울 수 있다. 오리지널 원고에는 일종의 시간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화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한 페이지 위에서 고심해왔는가가 그 곳엔 드러난다. 지우개질과 펜 텃치, 화이트 등이 그대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오리지널 원고가 흥미롭다손 치더라도 전시 공간에서 과다하게 활용되어선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전시란 만화책보다는 훨씬 먼 거리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거리인데, 만화원고가 만화 페이지보다 더 크긴 하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정말 ‘가까이 가야만’ 한다. 적어도 50센티미터 정도의 거리로 다가가지 않으면 원고의 시간 흔적을 경험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그 정도의 거리로 항상 다가가서 봐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제는 몇 번 이상 되풀이되면 싫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피하면서 만화책과의 경험과는 달리 하기 위해서 활용되는 방식이 만화 페이지들, 또는 부분들을 많이 확대시켜 관객들에게 제시하거나 또는 주인공만을 확대하여 평면이나 입체물로 제작하는 것이다.



주요 캐릭터를 확대하여 전시하는 예


이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도 가능할까? 물론이다. 그리고 아마도 능력있는 기획자들은 더 많은 방법을 착안해내겠지만 일단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만 제시해보자. 만화가 보여주는 세상-전문용어로는 ‘디에제시스(diegesis)라고 한다-을 관객의 오감 속으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예컨대 최근 영화화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윤태호의 <이끼>를 전시한다고 해보자. <이끼>의 원고 사이즈들을 이리저리 조율해서 제시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이끼의 주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들을 전시장 안에 실현시켜보면 어떨까? 시각적으로 우리가 했던 경험을 이제는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뭔가 음습한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어디선가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시골의 풀내음 가득한 밤 같은 향기도 풍겨지고...그 사이사이에 주인공들이 조각처럼 서있다면. 또는 주인공이 아니라, 검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인공을 한번 묘사해본다면? 만화전시는 어떻게 본다면 미술전시보다 활용할 요소들이 훨씬 더 풍부하다. 미술전시에서는 이미 제작된 미술품들 중에서 몇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논리를 구성하고, 그 논리에 따라 작품들을 선택, 제시하는 것이라면, 만화전시는 전혀 다르다. 만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디에제시스는 결코 현실이 아니다. 스토리를 제시하기 위해 보여줄 부분만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절대 주인공들이 쓸데 없이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또 한 주인공이 이런저런 행동을 할 동안 다른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술자가 보여주지 않는 한 결코 알 수 없다. 독자들은 결국 서술자의 시선 안에서만 디에제시스를 경험할 뿐이다. 달리 말하면, 바로 그러한 이유로 제2차 창작자, 즉 독자나 기획자가 채워나갈 무궁무진한 구멍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디에제시스의 현실화로서의 만화전시는 상당히 흥미롭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아주 어렵다. 문제점은...예산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나 서울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기획전시에 투여하는 예산규모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소규모의 예산으로 만화 페이지의 복제나 확대로 채워지는, 관객들에게 어떤 충격이나 감동도 주지 않는 전시가 열 개 벌어지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전시 하나를 전국적으로 순회할 수 있는 기획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목적을 잃은 길을 걸어가곤 한다. 만화전시를 왜 하느냐는 목적은 잃어버린 채, ‘당연히 해야 하므로’라는 생각으로 관습적 전시를 되풀이한다. 관습적으로 하는 전시에 관습적으로 배치된 예산 규모는 참신한 기획을 거부한다. 기획력 없는 전시공간은 결코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들을 제시하지 못하며, 관객을 끌지 못한 전시에는 다시금 적은 예산이 부여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만화계 전반의 전시기획에 대한 무시는 참신한 기획자들을 길러낼 수 있는 기회들을 거세한다. 좋은 인력들을 끌어들이려면 그 만큼의 보상을 해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또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의 갈 길은 여전히 멀어만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말자. 어차피 갈 길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그 한걸음은 여전히 의미 있을 것이다. 우선은, 만화전시가 어떤 것인가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만화와 전시
전시의 종류
한상정
2015.01.07
지금까지 우리가 공통적인 관점으로 만화전시를 분석해왔다면, 이젠 만화전시의 차별점들을 드러내보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만화관련 전시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디테일이 강한 전시, ‘만화, 신과 만나다’전
한상정
2014.12.01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의 흥미로움은 전시기획 자체라기보다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공동기획을 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좀 맛없는 뷔페 - 제 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시들에 대한 단상
한상정
2014.10.28
비코프의 프로그램은 이벤트, 학술행사, 전시, 페어로 분류할 수 있다. 이벤트 내부에 개폐막식 및 각종 다양한 시민참여행사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원칙의 향기 : 프랑스 국립만화박물관(Le musee de la bande dessinee)
한상정
2012.01.02
프랑스의 앙굴렘에는 국립만화진흥기관인 ‘국제만화이미지센터(Cite internationale de la bande dessinee et de limage : CIBDI))’ 산하의 ‘(국립)만화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의 분위기는 한국만화박물관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설립배경과 조직체계적인 차이를 한번 살펴보자.
한국만화박물관 상설전시
한상정
2011.12.05
서울근교 부천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만화박물관이 있다. 그 이름은, ‘한국만화박물관(이하 ’박물관‘)’. 원래 박물관의 내용설계를 맡았던 시공사의 기획안에 만화가들이 만족하지 못했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TF팀이 꾸려졌다. 이 박물관의 상설전시가 어떠한 의도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는 어떤 방향의 수정이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본다.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3 : 아르코 미술관의 <고우영, 네버 엔딩 스토리>
한상정
2011.11.01
작은 규모의 인사동 갤러리도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르코 미술관. 이곳에서 만화라는 표현형식의 대표적인 작가인 고(故) 고우영(1938-2005)의 전시.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었는지 모른다. 이 전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2-3 :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3)
한상정
2011.09.30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그 세번째 이야기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2-2 :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2)
한상정
2011.08.29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전시 기획!! 그 두번째 이야기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2-1 :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한상정
2011.07.27
이번엔 한국만화 백주년처럼 커다란 규모의 전시가 아니라, 단 한 명의 만화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케이스를 들어보자.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1 :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전시
한상정
2011.06.27
2009년 6월 2일, 바로 같은 날 100년 전, 이도영이 <대한민보>에 시사만평을 실었다. 오랜 세월동안 격려보다는 질타를 받아왔던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사라지지 않고, ‘한국만화’라는 이름으로 백수를 누린 것에 대해 2008년 6월,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문화관광체육부의 5억원이라는 적극적인 예산지원 하에 구성되었다.
전시의 미디어믹스, 만화의 미디어믹스
한상정
2010.12.21
3장에서 전시의 시작을 다루었었다면, 그리고 그 시작으로 다뤄지는 전시가 만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일반적인 경향이 되어버린 전시의 미디어믹스로서의 2003년의 <이미지들의 극장>을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만화 자체의 미디어믹스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의 예로 올해도 발견할 수 있는 <평화의 사진가> 순회 전시를 살펴보자.
전시의 미래 : 전시 ‘서사’에서 전시 ‘스토리텔링’으로
한상정
2010.11.12
이야기, 엄밀하게는 ‘서사’를 다루는 학문을 서사학이라고 한다. 최초로 서사를 다룬 사람을 우리는 종종 아리스트텔레스라고 언급하는데, 그는 ‘시학’이라는 저서에서 다양한 문예학의 기본 개념들을 제시했다. 알다시피, 모든 학문의 유파는 단 하나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동일한 서사학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또는 지역적으로 각기 다르게 발전해오기도 하고 오늘날도 역시 각 연구자별로 입장이 다르다. 최대한 쉽게, 쉽게 설명해보자.
전시의 완성 : 관람객
한상정
2010.10.16
미술의 한 유파 중에서 ‘입체파’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카소니 브라크니 하는 작가들이 이 유파에 속한다. 이들이 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의 대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종합하는 것이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생각 아닌가?...
만화전시의 출발과 그 의미
한상정
2010.09.14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은 1974년에 시작했다. 물론 1969년부터 이미 앙굴렘에서 좀 더 작은 규모의 만화행사들이 벌어진 것은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사실 앙굴렘의 이 행사들의 기원은 1967년부터 시작한 이탈리아의 <루카(Lucca) 만화페스티벌>이다. 비록 1966년엔 다른 도시에서 열렸었지만, 여튼 지금도 남아있는 행사이니 그냥 루카라고 치자.
만화전시의 주요 대상 또는 만화전시의 특성들
한상정
2010.08.14
만화전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자. 만화작품, 만화 창작자... 설마, 이것이 모두? 뭐 놀랄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 그러하니까. 크게 나누면 이 두 가지가 맞을 것이다.
전시의 개념과 전시준비과정
한상정
2010.07.14
명사 ‘전시(Ex-position)’의 동사인 전시하다(ex-poser). 즉, ‘밖으로(ex-) 놓다(poser)’. 숨겨져 있던 것, 안에 있던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꺼내놓는 기술.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전시란 무조건, 안에 있던 것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것. 어떻게 보자면 일종의 ‘선물포장술’이다.
만화와 전시, 새로운 세계의 비밀스러운 공유
한상정
2010.06.12
만화읽기는 행복하다. 그 즐거운 기억은 어디까지 거슬러갈까. 그래, 잠시 살았던 마당이 있던 집. 주말만 되면 평소 보기 힘들던 아버지의 지휘아래 남동생들과 마당청소를 해야 했던 낡았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