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만화전시의 출발과 그 의미
한상정 2010.09.14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은 1974년에 시작했다. 물론 1969년부터 이미 앙굴렘에서 좀 더 작은 규모의 만화행사들이 벌어진 것은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사실 앙굴렘의 이 행사들의 기원은 1967년부터 시작한 이탈리아의 <루카(Lucca) 만화페스티벌>이다. 비록 1966년엔 다른 도시에서 열렸었지만, 여튼 지금도 남아있는 행사이니 그냥 루카라고 치자. 미국의 코믹 콘(San Diego Comic-Con International) 페스티벌은 1970년부터 시작했다. 왜 전시의 시작을 말하면서 페스티벌을 이야기 하냐고? 그야, 페스티벌의 ‘문화적’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전시니까. 전시의 규모와 질이 어떠했건 간에 분명 전시가 열렸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966년 무렵엔 이미 ‘만화 전시’라는 개념이 존재했을 거라고 확정적인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들에서 소규모로 또는 약간은 비전문적으로 했던 전시보다, 만화전시의 진정한 시작은 1967년,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만화와 서사적 형상(Bande dessinee et Figuration narrative)>이라는 전시라고 보는게 합당하다. 사실 많은 이들이 이 전시를 ‘최초의 만화전시회’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4월 7일부터 6월 12일까지 열린 이 전시회는 개최 1주일 만에 약 5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놀랍지 않은가? 1주일에 이만한 숫자라니. 50만명이라면 동시에 개최되고 있었던 <피카소 전>과 맞먹는 기록이었다고 한다. 물론 피카소 전시가 너무 자주 열렸거나 익숙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왼쪽) 전시포스터, 오른쪽)전시 도록


그렇다면, 이 전시회는 도대체 어떠했길래 이런 호황을 누렸을까? 위쪽의 그림 왼쪽은 전시도록이고, 오른쪽은 전시 포스터이다. 전시도록의 표지에 쓰인 만화는, 만화연출의 천재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붙일 수 없는 윈저 맥케이(Winsor McCay)의 <잠자는 나라의 리틀 네모" (Little Nemo in Slumberland)>로, 1908년 7월 26일 뉴욕헤럴드 신문에 실렸던 작품이다. 그림 3.4가 원작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만화는 항상 주인공이 꿈꾸는 것에서 시작해서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벌떡 일어나거나...여하튼 꿈을 깨는 것에서 끝난다. 이 만화의 놀라운 점은 연출이다. 20세기 초, 만화라는 표현양식이 탄생했다고 말해지는 1896년부터 거의 십여년안에 만들어진 연출이라고는 거의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칸의 길이를 늘리고 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네모가 침대에 누웠는데, 이미 꿈세계의 동료가 한 명 옆에서 침대가 좁으니까 옆으로 좀 비키라고 말한다. 이미 꿈이 시작된 것이다. 이게 웬걸? 좀 지나니까 침대가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리가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단에서 집의 현관을 뛰어넘은 침대는 집을 나서자마자 거리를, 두 번째 페이지에선 서서히 건물 하나를 통째로 넘어다닐만큼의 롱다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가로등에 걸려 넘어져서 침대에서 거꾸로 떨어지고, 네모 역시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잠이 깨는 것이다.


▲ 윈저 멕케이


전시도록이 차용하고 있는 이미지는 윈저 멕케이 그림의 두 번째 장의 세 번째, 네 번째 칸이다. 물론 이 두 칸은 다른 칸들보다도 특히 강조될만한 요소가 있다. 뭘까? 바로 칸들 사이의 연결이다. 자세히 보면, 두 칸 사이의 달도, 건물도 끊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물론 만화에 익숙한 우리는 이것은 칸3에서 칸4로 진행되는데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리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연출법을 만들어준 것이 사실 윈저 멕케이인 것이다. 여하튼, 윈저 맥케이는 만화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가장 세련된 만화연출을 제시하는 작가이다. 게다가 그가 다루는 대상이 ‘꿈’이라는 것만으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예나 지금이나 끌고 있다. 전시도록 표지에, 하고많은 작가 중 멕케이를, 또 그의 하고 많은 작품 중 이 작품을 내세우고 있다는 면에서 보자면 이 전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무슨 성격일까?

일단 포스터부터 마저 보자. 포스터 역시, 아랫단엔 불어권 만화의 대표주자이자, 가장 매력적인 연출을 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에르제(Herge)의 <땅땅(Tintin)>시리즈 중 주인공인 소년탐정 땅땅이 아니라, 성인 하독선장을 내세우고 있다. 즉, 만화하면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아동용 스펙터클이 아니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독 선장은 신문에서 <만화와 서사적 형상>이라는 전시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으며, 말풍선 안에는 잘 알아볼 수는 없으나 스타일로 봐서는 3-40년대 미국만화와 사진이 실려 있다.

사실상 이 전시는 한 편으로는 만화, 다른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회화작품들을 기획해서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자면, 유럽과 미국만화를 통틀어, 가장 많은 해석의 여지를 담고 있는 만화들을 도록과 포스터에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만화는 조형예술에 못 미친다’는 의식적인 행보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이 전시의 의미는 그 반대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미술과 마찬가지로, ‘만화도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립적인 표현양식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이 전시가 열리기까지의 사상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그 때문에 이 전시를 최초의 만화전시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한다면, 이 전시야말로 한 편으로 만화에 대한 대립적인 두 가지 사유방식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이자, 다른 한편으로 ‘전시’라는 표출형태에 숨겨진, 저변의 지성적, 문화적 맥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약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에서 만화에 대한 담론이 시작한 시기는 1950년대이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물론, 특정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해서 다루는 에피소드나 수필, 인상비평 정도에 불과했다.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수위의 논의들이 시작된 것은 <만화 클럽(Club des Bandes Dessinees : CBD)덕분인데, 이들은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들에 대한 추억을 깊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시스 라카생(Francis Lacassin(※주 <제 9의 예술>이라는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있다.)), 영화감독인 알랭 르네(Alain Resnais), 그리고 역사학자인 피에르 쿠페리(Pierre Couperie)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구성원은 아니나 이에 깊게 동조를 표시한 이들로,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영화감독인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가 대표적이다. ‘시네필’처럼 ‘베데필(bedephilie :BD가 프랑스어로 만화이므로, 만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사유를 전개하는 사람)’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1961년에서 1962년 사이, 이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몇몇 수작들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알려진 만화들을 선택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모색하는 것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각들을 발표할 수 있는 잡지 역시 발간했다.

이들이 행했던 숱한 중요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비판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동시대 만화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주로 자신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만을 다룬다는 지적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비판이 알랭 르네로 하여금 CBD를 ‘시각적 표현을 지닌 문학연구센터(Centre d’Etude des Litteratures d’Expression Graphique : CELEG)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야말로 곧바로 다른 이들의 반발을 자아냈다. 무엇 때문일까? ‘만화’라는 용어 대신에 선택한 ‘시각적 표현을 지닌 문학’이란 결국 만화의 고유성을 부정하고, 문학의 권위 뒤로 숨는 것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1964년, CELEG에서 분리되어 나온 ‘그려진 문학 연구회(Societe Civile d’Etude et de Recherche des Litteratures Dessinees : SOCERLID)‘의 초기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966년 10월, CELEG가 없어지기 조금 전에 출간하기 시작한 <불새(Phenix)>라는 잡지에서 나타나는 글들을 보면, 더 이상 만화를 문학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사실 <만화와 시각적 형상>이라는 전시는 이 SOCERLID가 준비한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적 장르로서의 만화가 아니라 ‘만화 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미술’의 대비 또는 차이에 대해 한번쯤 질문을 던져보기에 적당하지 않았을까?

▲ 1967년 개최한 <만화와 서사적 형상>전시 내부 1


▲ 1967년 개최한 <만화와 서사적 형상>전시 내부 2


▲ 1967년 개최한 <만화와 서사적 형상>전시 내부 3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사실상 이 전시의 연출방식이다. 위의 이미지 3개를 한번 보자. 사실상 이 전시회의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강의 윤곽만 알 수 있을 뿐인데, 사진을 구하기가 원체 어려워서 겨우 긁어왔다. 저작권법 위반이라니까...아마 웹상에서밖에 보지 못할 것 같다. 출처만 밝혀둘 수 밖에. 여하튼, 지금으로부터 약 43년 전에 열린 전시이다. 사진만 놓고 봐도, 최근에 열리고 있는 만화전시와 얼마만큼 차이가 날까? 물론 부분적으로 오리지널 원고를 전시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최소한 일부는 오리지널 원고를 전시하는 것에서 해방되어, 관람객들에게 만화의 ‘새로운 경험’을 제시했다. 조명과 천과, 구조물들을 활용해서 작은 책에서 보던 경험과는 다른 경험을 제시했다는 점. 이러한 점에서도 만화전시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전시는 이 시기로부터 얼마만큼 진전했을까? 또는, 만화에 대한 담론은 오늘날 얼마나 더 풍부해졌을까? ‘만화자체로 유의미한 표현양식이다 VS 기존에 존재하던 문학이나 미술의 권위를 활용해야만 한다’라는 이 오래된 생각들의 대결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또는 전시방식에 있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사한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 전시 앞뒤로 다른 전시들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가장 유미미한 전시의 시작으로 이 전시를 꼽는 것이다. 그때부터 40여년이 지나도 이 당시에 던졌던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대해 즐겁고도 슬프다. 즐겁다면, 당시의 적절한 문제의식...향후 40년을 여전히 지배하는 문제의식을 던질 정도로 깊이 있는 전시였다는 점에서. 슬프다면, 40여년전에 던진 문제에 대해 그다지 나은 해답을 가져오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러나, 자학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늘날까지 오는 상황에서도 중간 중간 두드러진 전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건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


PS. 전시이미지들의 출처는 http://www.isastyle.com/bd.htm 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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