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2-3 :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3)
한상정 2011.09.30
섹션2의 레이어공간은 4종류의 조명을 모두 설치하고 비교해보았는데, 결국은 파란 색 조명 하나만 남기고 나머진 다 제거했다. 자연스럽게 아크릴판에 인쇄된 인물들의 그림자가 뒷면에 비쳐서 공간감을 줄 수 있도록 조명위치를 재조절. 일단 완성. 설치까지는 가장 문제가 적었지만, 조명 때문에 나중에 행사기간 중에 문제가 생겼다. 조명의 온도가 아주 높으므로, ‘화상을 입으니 손대지 마시오’라고 군데군데 붙여놓고, 앞에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지만, 어느 아이가 턱하니 손을 갖다 댄 것이다. 2도 화상을 입었고, 다행히 이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잘못이라며 합리적으로 대처해준 것이 지금도 고맙기도 하다. 이러한 주의문구라도 붙여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연장전시가 결정되면서 아예 유리로 1미터 정도 올려버렸다.
 
섹션 3. 박희정 작가의 원고들 중 가장 연출력이 탁월한 것, 그리고 TV 광고로 썼던 원화, 마지막으로 ‘화실일기’, 세 종류를 배열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시트지로 출력하여 붙이는 부분이다. 양면 아크릴 액자 사이에 원고들은 균형이 맞도록 배치해 두었기에, 설치팀이 벽에 부착만 해주면 되었고, 시트출력 글자들도 부착만 하면 되었다. 액자는 그럭저럭 결었으나, 시트출력 글자들은 붙이다가 중간에 글자가 잘렸는지, 붙이시던 분이 별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부분을 다시 출력해서 붙여달라고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보니, 축제가 끝날 때까지 그냥 그대로 두었다. 연장전시가 결정되면서, 이 부분을 다시 보충했다[사진1]
 
섹션 3의 외면은 3가지 역할이 있었는데, 하나는 박희정 특별전을 알리는 것(1), 또 하나는 박희정 작가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부착하던 것(2), 나머지는 말풍선 채우기 놀이의 결과물들을 부착하는 공간이었다(3).
 
(1)은 출력물의 크기가 약간 달라서, 바닥의 합판이 그대로 드러났다. 할 수 없이 테이프로 빈 공간을 매웠다[사진2]. 의외는 아니지만 방문객들에게 가장 관심이 있었던 곳은 (3)이었다. 하루에 몇 백장 정도는 쉽게 소화했고[사진3],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다양하게 글들을 써서 넣었으며(대부분은 ‘엄마, 사랑해’같은 적당하지 않은 글이기도 했지만), 집에 가서 해보겠다고 가져가기도 했다. ‘데일리 뉴스’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오늘의 가장 재미있는 말풍선채우기’ 같은 걸 하고 싶었는데, 좀 아깝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서 결국 두 종류밖에 제시하지 못했지만, 다음엔 좀 더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할 수 있을 것 같다.
 
 
 
 
 
 
 
 
 
섹션 4-5는 원래 인물들이 벽면에 고착시키기로 했으나, 시공팀 활용 불가능으로 그냥 벽면 앞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벽면에는 미리 대사가 적힌 모두 같은 크기의 말풍선을 출력시켜두고, 그것과 동일한 크기의 탈부착 가능한 말풍선을 여러 개 준비하여 관람객들이 원하는 말풍선을 바꿔서 부착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컨셉이었다. 막상 출력된 벽면을 보니, 말풍선의 크기가 모두 다른 것이 아닌가...뭐, 이유를 따지기엔 이미 시간은 없고, 할 수 없이 여유분으로 제작한 말풍선을 출력한 말풍선위에 덮어서 고정하고, 이 위에 찍찍이를 붙여 나머지들로 바꿔 부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의외로 이 부분에서 관람객의 재미있는 활용도가 다양하게 드러났다. 남녀사이에 위치된 ‘사랑해’는 어느덧 ‘재수없어’로 바뀌었고, 때로는 붙이지도 않고 말풍선의 ‘사랑해, 알지?’를 그대로 들고 아들과 아빠가 사진을 찍는 케이스도 있었다. 무궁무진한 다양한 실험들이 행해지는 건, 전시기획자로써는 꽤나 즐거운 경험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사실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문제는 섹션 6, 기획전시실이었다. 원래 프로젝터 위치를 옮기는 공사를 미리 해두기로 했으나 15일이 쉬는 날이다 보니 업체가 연결이 안 되고, 결국 전시 오픈 전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별 수 없이 급하게 이동용 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진흥원에서 대여, 동영상을 설치했다. 최초의 동영상이 가장 좋았지만, 몇몇 신들이 약간 무리가 있다고 판단, 두 번의 교정을 거쳐 최종버전을 가져온 것이다.
 
일단 시범적으로 상영해보았더니, 프로젝터의 출력에 무리가 있는 탓인지 동영상에 약간의 끊김 현상이 나타났다. 이미 새벽 5시. 중간에 더 큰 프로젝터를 빌려올까 잠시 고민했지만, 시간과 예산문제로 그냥 패스. 내부를 장식할 출력물 디자인은 전시오픈 전날 컨펌이 되어, 결국 전시 오픈한 후, 오전 11시경에나 부착팀을 데려올 수 있었다. 설명을 해놓고 잠시 다른 섹션에 다녀온 사이에 원래 디자인과 다르게 부착되고 있었지만, 연 3일을 꼬박 밤을 새운 시공팀에게 다시 재부착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연꽃을 불연속으로 배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므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입구 부분을 봤더니, 사막이미지를 붙인 것 아래에 이전에 전시했던 로봇태권브이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어봤더니, 전시 이후에 복구해야하는 줄 알고 그냥 그 위에 붙였다는 것. 이건 안 됨. 상대적으로 시간이 적게 드니 다시 떼어내서 제거하고 재부착. 겨우 완료.
  
 
조용한 휴식의 공간이라고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프로젝터를 앉을 수 있는 계단위에 바로 설치하다보니,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일단은 명랑한 어린이들에게 이 공간은 훌륭한 그림자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프로젝터 앞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쏘아지는 그림자를 잡느라고 뛰어다니고,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평상시라면 저렇게 즐겁게 뛰어노는데...그냥 두고 싶지만, ‘조용한 휴식의 공간’이라고 배치해 둔 공간이 놀이터가 되는 걸 그냥 두고 보긴 힘든 법. 게다가 상당히 부지런한 관객들은 노트북 뚜껑을 닫아서 아예 영상이 끊기도록 하기도 한다. 자원봉사 인력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하드웨어적 측면이다. 그러나 전시는 눈에 보이는 전시설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관람객들이 이 전시공간에서 ‘눈으로만’ 스쳐지나가면서 보는 게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손과, 머리와, 몸을 움직이게 해 줄 것인가이다. 이른바 ‘전시 체험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 물론 말풍선 채우기와, 말풍선 바꿔달기 등의 프로그램을 이미 배치해두긴 했다. 그러나, 일반 관람객들은 그렇다 치고, 작가의 오래된 팬들은, 그들은 이 공간에 와서 전시기획자의 해석이 반영된 박희정 작가를 만나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파티를 생각했다. 박희정 특별전 기념 아트포스터를 만들고, 축제 홈페이지에 재미있고 감동적인 팬레터를 보내는 오래된 팬들 약 50명을 선정하여 저녁때 한 두시간 동안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파티를 열기로 했다. 문제는...작가의 거부. 원고들은 충분히 넘칠 만큼 제공하겠지만, 원래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싫어하는 것이었다.
 
만화가가 직접 팬들과 만나고 사인회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면, 환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효과는 전시에 후광이 비치게끔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거부의사가 명확하다면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빈 시공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결국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박희정 특별전 오프닝 행사를 가볍게 하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강제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 작가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기엔 무리수가 있었다.
 
팬레터를 메일로 받았지만 겨우 10통이 안되었다. 아트포스터의 인쇄도 더불어 늦어버렸고, 홍보를 하기에 10일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았다. 완전 실패. 그 어떤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부분은 전체 박희정 특별전에서 보았을 때 가장 부족한 부분이었다. 향후 한 작가의 특별전을 기획할 때, 그 작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다면 미리 여러 가지 기획을 짜두어야 한다고 본다.
 

 
 
 
 
 
 
 
 
 
 
 
 
 
 
 
 
 
 
 
 
 
 
 
 
 
자. 지금까지 우리는, 전시기획의 단계에서부터 실행단계까지 대략 살펴보았다. 관객호응도는 좋았고, 전시설치과정에도 수많은 ‘포기’들이 있었지만 그 부분들은 아마 일반 관람객들이 눈치 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그
랬기 때문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다음 기획전시가 열리기전까지 연장전시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외부에서 본 시선에 불과하다. 전문적인 전시기획자로서 볼 때, 이 전시는 어떻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100점 만점이라고 본다면(물론 만점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이 전시는 몇 점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까? 80점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감점요인일까?
 
첫째, 어떤 핑계를 댄다손 치더라도, 전시 설치의 ‘미완성적’인 부분이다. 이전에 설명했듯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분명 있다. 조직, 소통, 홍보, 예산의 문제라든가, 또는 마지막 순간에 예산으로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시간부족의 문제라든가 등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현장은 없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의 해결에 순발력이 필요하다.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고, 크게 드러나지 않을 부분들은 그냥 넘어가고, 눈에 띄는 부분들부터 차례대로 해결해나가는 것. 능력있는 기획자란, 이러한 문제점들이 가장 적게 나타나도록 처음부터 잘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필자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이정도로 ‘능력있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가능하면 작업하기 편리한 조직의 구성, 예산의 확보, 소통의 원활함의 보장...등등을 미리 셋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둘째, 이 전시는 박희정 작가의 작품에 어떤 ‘새로움’을 부여했으며, ‘만화전시’라는 영역에 어떤 새로운 효과를 산출했는가? 만화를 왠 만큼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박희정이 ‘정말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즉,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말이다. 이 전시는 사실상 그녀가 그림만 잘 그릴 뿐 아니라, 만화적 연출에도 탁월하다는 부분을 강조하려고 애썼다. 특히 원화들을 선택할 때는 그것이 가장 커다란 기준점이었다. 축제도록에 <콜라 한잔>을 따로 넣은 것 역시 그녀의 연출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작은 칸안에 또는 페이지에 들어있던 인물들을 최대한 확대하고, 색을 부여하고, 입체로 잘라내고, 빛을 부여하여 그림자를 만들게 하면, 과연 작은 종이공간에서 볼 때와 넓은 시공간에서 만날 때 확연하게 다른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도 큰 목적이었다. 또 하나는 작품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그녀가 다양한 종류의 ‘외로움’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한 목적들이 과연 달성되었을까? 이러한 목적들을 위해 기획된 이 전시의 최종결과물들은, 향후 만들어질 많은 만화전시들에게 과연 영향을 주게 될까? 이 부분들은 평가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지금으로선 알 수 없을지 모른다. 만약 이후의 만화전시들에서 좀 더 조명이나, 음악, 또는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렇다면 무언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이도 알 수 없다. 영향을 어찌 한군데에서만 받겠는가? 이 부분은 평가 보류.
 
셋째,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의 존재여부. 이 부분 역시 점수가 깍인 영역중의 하나다. 특히나 작가가 현장에 부재할 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예비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 것, 그녀의 팬들이 활약할 공간을 빼앗아버린 것. 그리고 말풍선 채우기나 말풍선 바꾸기 체험의 경험들이 단지 개별적인 사진 찍기에서 끝낸게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사이버공간을 만들지 못했던 것도 상당히 아깝다. 이 부분이 있었다면 꽤나 재미있는 상호작용과 시너지가 일어나서, 전시에 대한 관심을 훨씬 더 많이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이것보다는 더 나은 전시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세세한 경험을 글로 제공해보았으니 말이다. 좀 더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만화 전시들이 더 많이 쏟아지면 만화축제도 훨씬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하며...긴 케이스 스터디를 마치려고 한다.
 
* 사진이 적어 몇 분의 얼굴이 드러난 점은 가볍게 용서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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