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전통과 원칙의 향기 : 프랑스 국립만화박물관(Le musee de la bande dessinee)
한상정 2012.01.02
프랑스의 앙굴렘에는 국립만화진흥기관인 ‘국제만화이미지센터(Cite internationale de la bande dessinee et de limage : CIBDI))’ 산하의 ‘(국립)만화박물관’이 있다. 사진들이 보여주겠지만, 이 박물관의 분위기는 한국만화박물관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설립배경과 조직체계적인 차이를 한번 살펴보자.
 

 
 
 
 
 
 
 
 
사진 1. CIBDI 본건물에서 보이는 다리건너편의 만화박물관 건물
사진 2. 박물관 내부 입구. 오른쪽은 만화전문서점
   
1974년부터 열린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이 계속됨에 따라 만화가들이 축제의 전시에 참가했던 원고들을 앙굴렘 시립미술관에 기증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1970-80년대 오리지널 원고가 일정정도 축적되자, 1983년에 미술관은 문화부에 더 이상 원고들을 보관할 공간이 없음을 호소하게 된다. 단지 이러한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1984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Jack Lang)이 앙굴렘에 만화와 이미지 센터- 내부에 박물관, 그리고 미디어관, 디지털 이미지센터를 가지게 될 종합센터- 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국립만화이미지센터(Centre national de la bande dessinee et de limage :CNBDI)’는 1990년에, 그리고 산하 박물관은 그 다음해인 1991년에 개관했다. 약 10여녀간의 활동과 더불어 역시 전시공간과 보관공간의 협소성이 지적되어 왔고, 2003년부터 재개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 내부 직원들이 완성한 기획컨셉은 5명의 후보 중에 선택된 장-프랑스와 보당(Jean-Francois Bodin)이라는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2009년에 현실화되었다. 이 건축가는 보르도의 현대 미술관을 설계했고, 파리의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의 도서관, 파리 현대미술관등 아주 굵직한 건물들의 초안을 제시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복도와 기술지원실 등을 제외한 박물관의 면적은 총 4,068 m²이다. 이 중에서 상설전시관이 1,330 m², 기획전시관이 390 m²로 상설전시관의 약 30 크기를 자랑한다. 함께 배치된 만화전문서점이 266 m²이며 사무실(81 m²), 음향 및 동영상 상영이 가능한 컨퍼런스 실(90 m², 70여석), 자료센터(125 m²), 그룹용 창작 아틀리에(150 m², 약 15개의 컴퓨터장치들이 배치된 좌석 보유)가 있다. 접근이 엄밀하게 제한되고 있는 수장고는 이 면적과는 무관하다.
 
십여년의 활동경험의 축적에 의거, 그에 따른 약 2년간의 내외부 토론을 통한 박물관의 컨셉 도출, 그리고 약 4년간에 걸친 박물관 실지 설계 및 완성이라는 지난한 과정은, ‘성질 급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직체계적인 차이란, ‘국립’ 만화박물관으로써 이 박물관은 프랑스의 국립박물관협회의 원칙을 따라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 원칙이란, 박물관은 “유물을 보유해야 하며, 이 유물을 대중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물을 관리할 수 있는 박물관학 전공자를 학예사로 고용해야 한다. 이 점은 좀 아쉬운 부분이지만, 사실상 별 대안이 지금으로선 없다. 즉, 만화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또는 전시가 전공인 큐레이터라기보다는, 미술사나 박물관학 전공자를 고용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박물관에 대한 프랑스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을 추측할 수 있게끔 해준다. 즉, 박물관인 이상, 이 공간은 기존의 모든 다른 국립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우아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앙굴렘의 이 박물관에 들어와서 느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손꼽으라면 이 ‘우아함’이며, 이러한 우아함이 주는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기존의 모든 다른 고급한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만화 역시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권위를 부여받고있다는 느낌이 있다. 만화를 잘 아는 전시전공자가 학예사로 고용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직까지 그정도 인력풀은 프랑스에서도 발견하기 쉽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종이로 만들어진 모든 유물들에 해당하는 유네스코의 권고사항에 따라, 3개월 이상 전시를 한 오리지널 원고들은 3년간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하게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1,300㎡에 해당하는 상설전시관의 작품들은 3개월마다 교환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3개월마다 박물관은 다른 내용을 보여줄 수 있으며, 3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박물관을 보여줄 수 있게끔 설계되고 운영된다. 결국은 3개월마다 내용물을 바꿀 정도의 유물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립만화박물관은 7,500장의 오리지널 원고와, 200개의 물품들, 120,000권의 인쇄본들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 3. 상설전시관 1
사진 4. 상설전시관 2
사진 5. 관련 오브제 설치방법
사진 6. 독서와 휴식의 공간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만화박물관의 단점이기도 한 요소가 있다. 앙굴렘 박물관의 훌륭한 점은, 전시를 위한 구조물을 제외하면 모든 내용물들을 손쉽게 교환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한국만화박물관의 경우, 독특한 구조물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시간이 점점 더 지날수록 눈에 튀는 구조물들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보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이 박물관의 경우, 기본 구조물이 상당히 단순한 형태이므로, 시간이 지나도 구조물 자체에서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담고있는 내용물을 더 빨리 순환시킴으로써 구조물 자체는 그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느낌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만화박물관은 구조가 내용에 침투하는 느낌이라면, 앙굴렘 만화박물관은 고조가 내용을 지지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공간구성은 중앙의 가장 큰 공간에 ‘살롱’을 배치하여(사진 3, 4)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유물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일종의 핵심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살롱의 네 모퉁이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실지로 읽을 수 있도록 만화책들을 배치하여 관객들이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사진 5, 6)하고 있다. 좌우의 분리된 공간에서는 만화창작 방법을 제시하는 공간, 그리고 최근의 중요한 작가, 학교, 또는 학생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일종의 기획전시실(사진 7)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 7. 기획전시실
사진 8. 휴식과 사색의 공간
 
‘우아함’을 이유로 이 만화박물관을 단지 ‘고전적인 박물관학’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관객들이 쉬면서 만화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아주 많이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롱 안의 메인전시실 바로 옆(사진 1, 2), 그리고 네 모퉁이(사진 6) 모두 조용하게 만화책, 또는 디지털 자료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사진 8)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것처럼 ‘전시이자 체험’이 아니고, ‘전시이자 독서이며 미적 경험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왜 오리지널 원고를 전시하는가에 대한 박물관측의 입장이다. 원고는 독자들과 만나왔던 최종적인 형태(잡지라든가 책)가 아니다. 독자들은 오리지널 원고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또한 한 작품의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찌 본다면 오리지널 원고를 전시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원고 자체가 일종의 독자적인 하나의 예술품, 문화적 산물이기에 원고 전시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적절한 판단이 아닌가. 만화와의 ‘새로운 만남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필자의 지속적인 강조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어서 상당히 기뻤던 기억이 난다.
 
국립만화박물관이 밝히고 있는 전시의 세 가지 축은 1. 만화의 역사에 대한 제시 2. 만화창작의 기술에 대한 제시 3. 미학적 접근이다. 앞의 두 가지는 대부분의 만화박물관이 강조하고 있는 점이라면 마지막 접근 방식은 어찌 본다면 전형적인 프랑스의 접근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만화의 현재, 과거, 또는 그 영향력의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중에서 만화사적인 부분만 본다면 발단(1833-1920), 황금기(1920-1955), 성인만화를 향하여(1955-1980), 작가주의 만화에서 망가의 물결까지(1980 이후)로 분류하며, 각 섹션은 대표적인 히어로들, 대표적인 작가들, 그리고 대표적인 미디어들(신문, 잡지, 만화책 등)을 보여준다. 약 100여장의 오리지널 원고, 200개에 해당하는 인쇄물들이 섹션별로 배치되어 있고, 그 외에도 작가와의 인터뷰나 관련된 애니메이션, 필름 등의 동영상으로 전시물에 대한 추가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9. 미국 코믹스
사진 10. 프랑스 만화
사진 11. 작가주의 만화와 망가들
사진 12. 우리나라 만화잡지와 일본망가
 
이 역사적인 접근법에서 한국만화박물관과 가장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국제적인 포괄성’의 부분이다. 사실상, 이러한 포괄성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만화박물관의 규모에 비해 이 만화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의 규모가 결코 크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이렇듯 충분히 넉넉함을 제공하면서 만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미국(사진 9), 일본과 한국(사진 12), 그리고 그 이외의 다양한 만화들(사진 11)까지 망라해서 만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더 더욱이나 어렵다. 우리의 경우를 들자면, 한국만화에 대한 자료들만 제시되어있을 뿐, 세계의 만화로 시선을 돌리는 공간은 전무하다.
 
본론에서 약간 어긋난 이야기를 하자면. 이 곳에서 사진 12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만화 잡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추측이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 잘 보면 ‘소년중앙 별책부록’에서 ‘보물섬’, ‘펀치’까지 80년대 중반부에서 90년대 초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사실, 파리에 있는 ‘파리고등연구원(CNRS)’에서 한국관련 자료를 수집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때 한국에 자료를 요청했었고, 몇몇 잡지들을 받아서 자료실에 보관했다고 한다. 자료들을 보면 아마도 80년대 중반 이후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였던 것 같은데, 이 이후 약 15년이 흘러 이 자료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면서 국립만화이미지센터의 도서관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만화들까지 수집하고 있는 센터 도서관에서는 기꺼이 이 자료들을 기증받았고, 그리하여 오늘날 만화박물관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정말 부럽기 그지없다. “물론 대다수가 이 자료들을 지금 당장 필요로 하진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이 자료들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에, 원어로 된 만화자료들도 수집을 해야 한다”는 프랑스 국립만화진흥기관의 입장은, 우리나라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물론 체계적으로 수집된 것은 아니지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자료들을 우리나라의 어디에 가면 찾아볼 수 있을까? 또는 우리는 해외의 대표적인 만화의 원본을 이런 ‘비경제적인’ 입장으로 수집할 수 있을까? 이 점을 생각하면 만화자료 수집의 원칙과 체계성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물의 포괄성에 비하자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모든 설명들이 불어로만 되어있다는 점이다. 중간중간에 오디오 가이드 북이 표시된 곳은 별도의 더 많은 설명들을 들을 수 있지만, 불행히도 언어적인 장벽이 너무나 큰 셈이다. 내용상은 충분히 열려있고 국가적 구분이 없는데, 그러한 내용을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렇듯 협소한 걸까? 프랑스의 프랑스어 사랑에 대해선 존경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결국은 관객을 위해 서비스해야할 기관에서 불어로만 설명하는 건 약간은 협소한 방식이 아닐까. 이러한 옥의 티가 있긴 하지만, 이 우아한 만화박물관의 전시는 꼭 한번 둘러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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