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1 :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전시
한상정 2011.06.27

2009년 6월 2일, 바로 같은 날 100년 전, 이도영이 <대한민보>에 시사만평을 실었다. 오랜 세월동안 격려보다는 질타를 받아왔던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사라지지 않고, ‘한국만화’라는 이름으로 백수를 누린 것에 대해 2008년 6월,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문화관광체육부의 5억원이라는 적극적인 예산지원 하에 구성되었다.

 

만화계내의 다양한 협회 및 단체들이 다함께 참여한 이 위원회의 활동은 크게 연구, 전시, 행사, 국제시사만화포럼 등 네 영역으로 펼쳐졌다. 이 중 전시예산만 1억 3천만원, 거기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예산 1억 2천만원을 포함하면 총 2억 5천만원으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만화전시라고 할 수 있다. 전시대상, ‘국립미술관’이라는 상징적 의미의 전시장, 예산의 규모에 있어서 지금까지 어떤 만화전시도 도달하지 못했던 지점을 찍었다. 전시기간은 2009년 6월 2일에서 8월 23일까지, 83일간 개최되었고, 관람객은 약 8만 명에 이르렀다.

 

한 장르, 한 작가를 다루거나 또는 한 작품을 다루는 전시를 완전히 초과하여 ‘만화 백년’을 다루는 대규모 전시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잘 기획해낼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향후 몇 년간 다시는 기획하기 힘든 성격의 이 전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계속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언급했던 전시의 핵심적인 컨셉 부분과, 상당부분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게끔 만들었던 조직화의 부분, 이 두 가지 부분을 언급해보자.




100주년! 100년을 관통하는 전시. 게다가 예산 전체가 국고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공공성’의 측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전시. 한국만화 100년에 대한 해석에 대해 일종의 ‘권위’를 산출할 수 있는 공간. 부담스럽지 않은지? 당연하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탐나지만 덥썩 물기에는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 눈여겨볼 부분은 위원회의 사업 중, ‘연구’ 영역이 있다는 점이다. 즉, 국비지원을 받아서 한국만화의 역사에 대해 많은 자료들을 습득하여 새로운 연구들을 창출할 수 있고, 이 결과들을 전시에 활용할 수 있으면 이상적이다. 적어도 이러한 기획을 짤 정도의 안목이 만화계에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행복한 일이다. 사실상, 한국만화의 역사에 대한 연구서는 손꼽을 정도이며, 연구의 출발점으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심화된 연구서들이 나올 시기도 되었다. 연구테마는 충분하다. 만화의 기원을 이도영의 시사만화에 둔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 제작된 카툰 형태가 있다는 의견, 다른 한편으로는 카툰이라는 형식을 만화 일반의 출발로 볼 수 있느냐라는 의견도 있다. 만약 일본의 강점을 통해 서구만화를 일본식으로 재편한 작품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의 자연스러운 만화형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보명십우도, 또는 삼강행실도에서 나타난 텍스트와 그림의 결합형식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수 있었을까? 이런 형식들과 딱지본 소설 삽화들과의 상관관계나, 이 삽화들과 이후에 등장하는 만화형식들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보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울까. 한국만화가 일본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일본의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의 영향을 받았는지 연구된 적은 없다. 또한 그러한 영향이 단지 캐릭터 표현의 수준인 것인지, 아니면 만화 연출 일반의 것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연구과제들이 연구되고, 그 결과물들을 백주년 기념전시에 활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백주년 전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만화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물들을 공표하는 즐거운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너무 늦게 꾸려졌고, 연구결과를 전시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그 결과물들이 늦게 나왔다. 이는 만화계 연구역량의 현황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전시에 한국만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덧붙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자면, 전시물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고 그 결과가 반영되는 이상적인 형태는 지금처럼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경우에는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연구결과가 선행하고, 그것을 전시의 테마로 삼는 편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새로운 지식을 전파할 수 없다고 전시의 컨셉 모두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100년을 아우르는 만화전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기획하겠는가? 아마도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1년부터 10년…100년까지 이런저런 만화가 있었다‘라는 연대기이다. 분명 필수적인 지식에 해당하는 영역이겠지만...좀 재미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예컨대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유명한 사건들의 배열을 익히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경우는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에 세워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후자가 훨씬 더 강력한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물론 이건 취향의 문제이고, 어떤 이들에겐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열거하는 것이 객관적이며 공적인, 좋은 전시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나열은 만화사 책을 보면 되잖아’. 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다. 당연하다. 부딪히는 것이야말로, 큐레이터들을 단련시키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전시도 큐레이터의 시선을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거니까.

 

여튼,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사실들을 배열하더라도 무언가 새로운 시선이 포함된...뭐 그런 게 없을까? 라고 고민하는 것이 좋다. 분명 과거를 다루고는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과 어떻게 밀접하게 관련된 것인지를 눈앞에 제시해 주는 그런 것 말이다. 예를 들어, 만화 100년을 이어오는 동안, 우리들에게 제기되었던 가장 중요한 몇 가지 키워드를 몇 가지 뽑아낼 봤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만화의 문화적 권위를 떨어트리는 데 가장 커다란 기여를 했던 어린이날 기념 만화책 분서갱유 사건들. 또는 검열을 생각해보자. 지금 만약 만화책 불태우기 행사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덥석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까? 만화는 어떻게 검열의 자연스러운 대상이 되어왔던가? 잘려나갔던 원고들을 비교해서 보여주면 어떨까?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비록 사후검열이긴 하지만, 그러한 제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만화의 문화적 권위에 대한 문제를 다시 점검해보는데 기여할 수 없을까? 혹 그런 장면들이 만화에 등장한 적은 없었나? 없다면 왜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만큼 엄중했을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시사만화만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오락만화도 사회를 반영한다. 철저히 침묵을 지켜왔던 것 역시 일종의 반영이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과거를 통해 현재의 만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이 전시는 그다지 커다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100주년전은 가장 무난한 방식으로, 100년에 대한 통사적인 접근과 공시적으로 몇 가지 주요한 테마, 만화잡지, 어린이만화, 순정, 시사, 대안만화, 회화나 타 장르와의 결합, 그리고 미술작품에서 나타난 만화적 표현형식 등과 결합시켰다. 문화예술계 내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진 않았으나, 무난한 내용으로 무난하게 진행된 평균적 전시. 이 이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이 정도의 무난한 전시가 실무진의 힘겨운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탄력적이고 모범적인 전시조직을 꾸리기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조직형태는 어떤 것일까? 다수의 조직, 다수의 큐레이터가 함께 결합하는 큰 규모의 전시에 있어 총감독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큐레이터 각각이 자신이 맡은 전시 부분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상호해결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컨대, 좀 더 동선이 좋은 공간을 차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러한 충돌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 높은 직급의 총감독이 필요하다. 총감독은 전시 전체의 컨셉 구성 및 전시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실무를 잘 알고 있어야하며, 외부의 다양한 문제제기나 요구들을 차단할 수 있는 단호함도 지녀야하고, 전시 실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100주년 전시위원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총감독의 지휘 하에 조직명령 계통의 일원화를 이루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조직도상으로는 전시위원회의 큐레이터에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포함됨으로써 일원적으로 굴러가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실지로는, 과천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총감독급의 요구를 했고, 총감독이 그를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실지로는 두 개의 조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이는 업무분장에서도 두드러졌는데, 미술관의 예산으로 활용하는 두 부분, 즉 전시디자인 및 전시도록을 미술관이 상시적으로 고용하는 곳을 활용하게 함으로써, 만화계 큐레이터들의 요구보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요구를 더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부분은 전시 기획단계에서 전시 해체시까지 모든 실무진들의 힘을 빼놓는데 기여했다. 조직구성의 일원화와 체계화, 이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에피소드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만화는 저작권 개념이 있는 작업들이다. 만화책 원고를 활용하는 전시의 경우 , 일반적으로 원고의 원저작자인 작가와, 이 원고를 인쇄하여 만화책으로 만든 출판사, 양자 모두에게 전시할 수 있도록 허락을 부탁한다. 원칙대로라면 전시권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수익이 목적이 아니므로 대부분의 경우는 무료로 허용한다. 최소한 작가와 출판사의 양도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저작권에 대해 명기해주는 것은 만화관련 큐레이터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점이다. 만화책 원고를 출력하기위해 카피라이트 표시를 넣어달라고 디자인회사에 요구한 것에 대해,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절대 안된다고, “‘국립박물관’은 사적인 기업에 대해 명기해주거나, 감사를 표시할 수 없다“며 말렸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라는 강건한 발언에 한 발 물러나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몰이해는 언제나 발생가능하다.

 

향후, 만화계에서 어떤 다른 조직이라도 함께 공동전시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전시조직의 일원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상호 이해력 높은 담당자들이 조직형태와 무관하게 잘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원칙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요소들은 사전에 제거하고 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조직을 통합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통합하고,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전히 만화에 대한 문화적 권위가 다른 문화예술장르보다 낮은 수위에서는 훨씬 더 절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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