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전시의 미래 : 전시 ‘서사’에서 전시 ‘스토리텔링’으로
한상정 2010.11.12

2007년, 거의 9년에 가까운 세월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돌아온 필자가 처음 ‘스토리텔링’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당황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사방팔방에서 계속 들리는 말이긴 한데, 연구자들마다 의미하는 바도 다른 것 같고...그러나 서사 장르를 다루는 필자로서는 꼭 이해를 하고 넘어갈 개념이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헤맨 결과,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그리고 그 정리의 결과를 여기서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전달되기 힘들 정도로 너무 다양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너무 귀찮아하지 마시길. 이게 다 우리 모두 명확한 개념들을 써서 서로가 잘 소통해보자고 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오니...)


이야기, 엄밀하게는 ‘서사’를 다루는 학문을 서사학이라고 한다. 최초로 서사를 다룬 사람을 우리는 종종 아리스트텔레스라고 언급하는데, 그는 ‘시학’이라는 저서에서 다양한 문예학의 기본 개념들을 제시했다. 알다시피, 모든 학문의 유파는 단 하나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동일한 서사학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또는 지역적으로 각기 다르게 발전해오기도 하고 오늘날도 역시 각 연구자별로 입장이 다르다. 최대한 쉽게, 쉽게 설명해보자.

우선, ‘서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서사란 영어로 내러티브(narrative), 불어로는 ‘레시(recit)라고 표현한다. ’서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이야기, 서술자, 그리고 매체이다.


꼬마들은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걸까?


그럼, 이야기(story)란 뭘까? ‘자연적인 시간순서로 이루어진 사건들의 연속’이다. ‘옛날 옛날에 누가 살았는데, 무슨 일이 생겨서 어떻게 되었다’고 하건, 또는 ‘그저께 옆집 아저씨가 복권을 사서 당첨이 됐는데, 그것 때문에 집안싸움이 나서 결국 이민을 간다더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하고 또 듣는다. 또, ‘어제 <성균관 스캔들> 봤어? 이야기가 어떻게 됐어?’ 라고 하면 우리는 어제 본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성균관스캔들은 사건을 순서대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때론 오해하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나중에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무엇 때문에 무엇이 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야기란, 서사의 ‘내용’이다. 즉, 일종의 ‘요약’이며, 독자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서술자(narrateur). 말 그대로 ‘서술하는 자’이다. 그럼 작가 아니냐고? 뭐, 소설이건 만화건 그걸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는 그러하나,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 어떤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한 여성이 자신이 겪었던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 소설의 서술자는 분명 이 여성이다. 그러나 막상 이 소설을 쓴 사람은 남성 작가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와 서술자를 구별해서 사용한다. 학교에서 배운 1인칭 시점이니, 전지적 작가시점이니 하는 표현들이 결국, 서술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매체(media)란, 이야기가 어떤 물질적인 형태를 통해 나타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즉, 소설처럼 문자로? 아니면 만화처럼 이미지와 문자로? 또는 영화처럼 동영상과 음향과 문자로? 사실 이 부분은, 서사를 협의냐, 아니면 광의의 의미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고전적인 서사학자들에게 서사란 오로지 문학서사이기 때문에 매체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문학만이 아니라 만화도, 오페라도, 연극도, 영화도, 모두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입장이 제시되었고, 오늘날은 대부분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서사란 무슨 의미인지 좀 감이 잡히는가? 서사란 ‘서술자가 매체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체적인 재현물’을 뜻한다. 예를 들어보자. 김혜린 작가의 만화 <비천무>는 만화서사이고, 김영준 감독에 신현준과 김희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비천무>는 영화서사이다. 둘 모두 ‘이야기’는 같지만, 다른 ‘서사’이다. 서술자가 누구인지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만화와 영화라는 각기 다른 매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또는 관객들이 특정한 서사를 읽으면서, 또는 보면서 이야기를 추출하는 것이다. 때로 100페이지 만화서사는 단 몇 줄의 이야기로 축약된다. 동일한 이야기는 다른 매체로 전환 가능하지만, 서사는 전환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서사란 이미 매체와 떨어질 수 없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한번 머리를 써보자. 만약 서사가 이런 것이라면, 전시 서사는 무엇일까? 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공간, 이미지, 음향, 조명, 컴퓨터, 화면 등 이 모든 것들이 ‘매체’의 부분이 되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전시서사가 가능할 것이다. 약간 유치하지만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보자. 만화100년사라는 전시를 기획한다. 이를 위해 기획자가 ‘만화’라는 주인공을 개발한다. 이 캐릭터는 전시공간의 초입에서 엄청난 울음소리와 밝은 조명하에 탄생하여 공간이 전개될수록 성장해간다. 이 인물은 벽에 붙여둔 다양한 전시물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시진행방향을 지시하기도 한다. 성장기, 물리적 탄압기를 거쳐 전시가 끝날 무렵엔 온전한 성인이 되어 있다. 방문자들은 단지 만화 100년사를 습득하는 것을 너머, 마치 아이를 하나 키워나가는 듯한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달하려는 내용과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전시서사는 관객들이 짧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도록 도와줄 것이고, 이는 전시를 오래 기억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전시를 단지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더 많은 호기심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유래한 것이다.


벽들이 움직인다면


그렇다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언급했던 개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의미들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 단어 역시 아주 다양한 의미로 활용되고 있기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는 ‘문화콘텐츠’, 즉 문화적 상품 개념과 분리될 수 없다. 박기수는 스토리텔링을 ‘매체환경의 특성을 적극 반영하고 있고 스토리 중심에서 탈피하여 말하기(tell)와 상호작용성(ing)을 중심으로 한 향유에 중심을 두는 것’(※주, 박기수,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의 생산적 논의를 위한 네가지 접근법>, pp. 8-9, 한국언어문화 제 32집, 2007)이라고 규정한다. 달리 말하자면, 향유자의 향유를 최대한 유발시킬 목적으로 사용하는 창작기술이다. 그러나 이 스토리텔링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디지털 환경과 결합하는 경우이다. 이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데, 이때 이야기성, 현장성, 상호작용성이 그 특징으로 나타난다. 가장 적합한 예는 MORPG(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이었다. 즉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대부분의 표현양식들의 서사는 불변의 것이었다. 만약 향유자들이 이들의 이야기나 서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면하거나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자나 향유자의 참여에 의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또는 그러한 의견들이나 참여들에 의해 다른 서사가 만들어진다면? 그렇다면 그렇게 형성된, 또는 형성되고 있는 서사를 기존의 서사론으로 별 문제없이 포괄할 수 있을까? 이전에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구전소설’이나 ‘소꿉장난’ 같은 것을 생각해보자. 구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내려 오면서, 지방이면 지방마다 그 특색에 맞게끔, 달리 말하면 청취자들의 취향에 따라 변형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전된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어떤 대중들 앞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연했을(스토리텔링)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또 소꿉장난 역시, 가지고 노는 도구는 다 유사하다 하더라도, 어떤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와 아이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짙다.


전시속 작은 연극


그래서 스토리텔링의 특징을, 기존의 서사들이 지닌 선형성, 결정성, 폐쇄성 같은 성격과 대비되는 비선형성, 비결정성, 개방성 등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기준, 예컨대 ‘작가주의’나 ‘작가성’과는 거리가 있다. 한 작가의 고유한 문체, 고유한 스타일과는 무관하며, 향유자의 참가, 향유, 즐거움을 중심으로 재배치된 개념이다. 이 점이 바로 기존의 서사학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점이다.


조명과 커튼 역시 스토리텔링의 소품


그렇다면 만화전시는 어떨까? 전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개념일까?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만화를 기획, 제작할 때부터 전시를 감안하고 만든다면 어떨까? 그리고 전시용에 적합한 건물이나 모형들까지 미리 만화 속에 넣어둔다면? 이럴 경우 우리는 스토리텔링이란 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이는 지금도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며,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 웹상의 만화전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개별적인 접속이 가능하므로, 접속하는 향유자마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웹이라는 특성상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쉽지 않으며, 그를 끌어들일만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는 소스들을 제공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클 것이다. 이 역시 그다지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박물관들이 웹상의 가상전시관을 제공하고 있다. 세 번째로, 보통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특징으로 전통적인 서사의 특징인 시간성과는 반대로 ‘공간성’을 그 특징으로 든다. 이 공간은 많은 우연성, 즉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과 부딪힐 수 있어야(※주, 이인화,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론>) 한다. 만약 우리가 전시공간에서 각각의 관람객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예컨대, 아까 우리가 예를 들었던 것처럼 ‘만화100년사’와 만화라는 아이의 성장사를 함께 엮어 서사를 모든 관람객에게 하나의 서사를 제공했다면, 이제 각각의 관람객이 스스로 향유하며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는 경험들을 제공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작은 규모의 디지털활용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아마도 필히 새로운 디지털 기술들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전시 공간의 구획 자체가 부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관람자들은 자신의 집에서 전시에 관련된 소스들을 선택해서 가상현실로 경험할지도 모른다. 이 소스들은 동반자, 방문시간, 방문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이 선택요소들이 함께 엮여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또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에서 핸드폰으로 가상의 이미지들을 쏘아가며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갈지도 모르며, 서로 겹친 가상의 이미지들이 반응하여 새로운 결과를 산출할지도 모른다.


전시에서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두어야하는 이유는 최소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향유자에 대한 상시적인 고민, 두 번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전시비용 자립의 요구, 마지막으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지각방식까지 바꿔내기 때문에, 이는 모든 문화예술인들에게 굉장히 밀접한 문제이다. 미래의 전시들은 어쩌면, 관람객이 새로운 방식으로 지각하는 것을 통해 이뤄질지도 모른다.

 

※ 이미지는 모두 프랑스 국립만화박물관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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