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전시의 미디어믹스, 만화의 미디어믹스
한상정 2010.12.21

3장에서 전시의 시작을 다루었었다면, 그리고 그 시작으로 다뤄지는 전시가 만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일반적인 경향이 되어버린 전시의 미디어믹스로서의 2003년의 <이미지들의 극장>을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만화 자체의 미디어믹스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의 예로 올해도 발견할 수 있는 <평화의 사진가> 순회 전시를 살펴보자.


 

1) 출판만화의 전시과정에서의 미디어 믹스 


 

   필자의 제한된 경험 하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만화전시는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당시 진행되었던, 2002년도 ‘앙굴렘시 그랑프리’ 수상작가인 프랑소와 스퀴텐(Francois Schuiten : 1956 -  )의 전시였다. ‘앙굴렘시 그랑프리’는 다른 상들처럼 특정 작품에 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활동 전체를 평가하여 만화예술계에 영향을 끼친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 상을 수상하게 되면, 다음 해의 페스티벌에 이 작가가 직접 조직하는 자신의 전시회를 가지게 된다. 할당되는 예산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예산 이외의 예산을 작가가 스스로 모아온다면 더 큰 규모의 전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벨기에 의 유명한 만화학교인 생뤽학교출신인 스퀴텐은 1983년부터 브느와 피터즈(Benoit Peeters : 1956- )의 시나리오와 더불어 함께 제작한 <어둠의 도시들(Les Cites obscures)>시리즈로 유명을 떨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세미콜론 출판사에서 전 시리즈를 번역출간하고 있다. 사실상 스퀴텐과 피터즈는 만화작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퀴텐의 경우도 건축가 집안에서 커왔기 때문인지 실내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활동하고 있으며, 그 때 종종 피터즈도 함께 참석해으며, 영화제작의 경험 역시 지니고 있다. 따라서 2003년 스퀴텐 특별전, <이미지들의 극장>은 이들의 그간의 역량을 총 동원에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유명세를 보여주듯이, 스퀴텐 특별전은 기존 예산 이외에 출판사와 그 외 각처로부터 꽤 많은 예산지원을 받았다. 그래서 앙굴렘에 있는 극장을 아예 통째로 전시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극장의 창문을 모두 벽지로 발라서 극장 내부의 조명으로 조절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입체로 된 인간의 형상들을 세외두고, 그것을 천과 조명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향에 따라 변형시켜서 <어둠의 도시들>의,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 전체를 재현했다. 물론 군데군데 작품의 오리지널 원고를 전시하기도, 또는 서적도 전시하기도 했지만, 핵심은 특정한 작품의 원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방법을 고민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선진적인 테크놀로지를 모두 이용해서- 특히 조명과 어울어진 변화들은- 관객들을 동일한 세계로 빠트리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두 발로 삼차원적이고 입체적인 <어둠의 도시들>에 들어가는 공간이며, 지속적으로 변하는 이미지들을 둘러보며 한편으로 분명 현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몽상같은 그런 경험을 제공했다. 이 외에도 원작에 기반해서 제작한 필름이 상영되고 있다든가, 그 소리가 공간에 메아리친다든가 등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 필름들은 한편으로는 만화가와 시나리오 작가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원고를 하나씩 하나씩 완성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화에서 보여주던 세계와 유사한 세계를 실사로 보여주는 방식도 있으며, 또는 만화의 정지된 움직임을 하나씩 뽑아내어 움직임을 부여하는 방식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방식이 결국은 <어둠의 도시들>이라는 디에제시스에 기반해 있으되, 전혀 새로운 시청각적, 4차원적 경험의 제시라는 것이다.  


 

동일한 공간에 조명만으로 다른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래도 마찬가지.



 

2) 출판만화 자체에서의 미디어 믹스


 

  사실상,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작품들이 만화가들이 그리지 않고 제작되어왔다. 대표적인 형태가 ‘사진-만화’이다. 방법은 만화를 위해서 사진을 찍거나, 또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영화의 필름 중 하나씩 축출하여, 거기에 글자들을 넣어 만화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는 이미 ‘로망-포토(roman photo)’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널리 흥행했었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미야오 하야자키의 애니메이션들의 경우, 몇 프레임씩을 뽑아내어 만화책으로 제작된 사례들이 있고,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궁’같은 드라마들을 사진만화로 제작, 출판한 경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만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찍은 사진을 만화가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있다. 단 조건은, 만화가의 필력 자체가 사진이 가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힘 같은 것에 눌리지 않을 정도로 힘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만화는 얼마 전 세미콜론에서 <평화의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2003년 디디에 르페브르(Didier Lefevre)라는 르포 사진작가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1986년, 그 나라로 출발했던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하며 그가 찍어왔던 수백통의 필름 중에서 활용된 것은 겨우 몇 장뿐. 먼지가 쌓인채 잊혀져가고 있던 사진을 만화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아마 그와 그의 친구 엠마뉴엘 기베르였을 것이다. 둘은 이미 찍혀진 사진 이외의 다른 것들은 기베르의 그림으로 대신하며 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2003년 『사진가(Le Photographe)』라는 이름으로 세 권을 발간했다. 이 사진작가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은 2007년, 2003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사진가’의 마지막 권인 3권이 발간되어 2007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받은 며칠 뒤이다. 졸지에 이 사진들은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이 작품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럽과 미국을 통해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이트에 접근해보는 것이 좋겠다. 저작권이 걸려있으므로 그냥 이미지를 가져오기는 좀 힘든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전시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바도 있다.
(
http://www.flickr.com/photos/firstsecondbooks/sets/72157617262315826/ )
 

전시의 구성은 르페브르의 필름에서 인화한 다양한 작품들, 그리고 국경없는 의사회가 찍었던, 르페브르가 찍은 사진과 일치하는 당시의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을 보여주는 실사영화, 그리고 만화책에서 뽑은 기베르의 페이지들과 몇몇 오리지널 스케치들이 순회전시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믹스되어있는 작품에서 그 부분을 떼어내어, 새로운 맥락에서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있다. 


 

3. 미디어 믹스를 위해


 

  단지 사진만을 예로 들 것은 아니다. 예컨대 ‘무빙코믹스’처럼, 기존에 제작된 만화를 짧은 애니메이션처럼 재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원래 의미의 애니메이션처럼 이미지 전체를 일일이 만들어서 움직임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고, 칸의 인물들에게 약간씩의 움직임을 주거나 칸을 움직이거나 등의 형식이다. 마음대로 독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화책 독자들에게는 어색할지 모르나, 중요한 것은 어차피 보는 사람의 마음 아닌가? 다양한 형태들이 시도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당연히 음향이나 음악 같은 청각적 요소들도 함께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일지 몰라도 만화 자체를 다른 매체와 혼합하거나, 또는 전시를 위해서 특정 부분만 드러내어 강조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의 수준의 높이다. 그 중에서도 ‘시각적 힘‘이 특히 강조된다. 아무래도 전시의 입장에서는 ’보여주는 것‘이다 보니 당연한 것이고, 만화 안에서 다른 매체들과 결합한다고 본다면, 그 시각적 힘에 일단 눌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때만은 만화의 이야기적 요소의 중요성이 현저히 사라지고 오히려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이 더 중요한 것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본다면, 단지 시각적인 힘만이 아니라 서사적인 힘이 역시 관건이긴 하다. 이는 1896년에 처음 발표되었던 <왓치맨>이 2010년에 영화화되면서 이 작품의 무빙코믹스가 만들어지는 상황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만약 서사적인 힘이 약했다면 영화화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화되었기 때문에, 잊혀진 이 만화가 다시 한번 조명을 받고, 그리고 무빙코믹스까지 만들어 진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천소스의 시각적, 서사적 질이다. 아무리 전시기획자들이 부실한 것을 마치 뭐라도 있는 양 포장할 수 있다 손 치더라도, 원천 소스들이 탁월한 것을 포장하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기 마련이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좋은 작품은 종종, 포장이 필요없기도 하다. 좋은 작품은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또 누군가에 대해 발견되고 재해석되기 마련 아닐까. 그런 면에서도 좋은 만화전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좋은 만화작품들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말자, 와~ 이런 작품은 정말 멋들어지게 전시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할 수 있는 만화작품들을 많이 많이 발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위해서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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