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3 : 아르코 미술관의 <고우영, 네버 엔딩 스토리>
한상정 2011.11.01
작은 규모의 인사동 갤러리도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르코 미술관. 이곳에서 만화라는 표현형식의 대표적인 작가인 고(故) 고우영(1938-2005)의 전시. 얼마나 기대에 부풀었었는지 모른다. 이 전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당시 기획의 말을 들어보자(괄호 안은 필자의 설명). “2008 아르코미술관이 기획한 <고우영 만화: 네버 엔딩 스토리>는 수많은 시각이미지가 범람하는 현재의 문화풍경을 살펴보고, 우리의 시각문화 현상의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고우영의 만화가 대중적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1970,80년대의 대중문화를 보여주는 섹션(입구통로), 고우영의 원본 작품 및 희귀본 서적을 비롯하여 그가 간직해온 귀한 오브제들로 구성된 공간(1충 전시실), 그리고 현재 이뤄지고 있는 고우영 작가에 대한 지금 현재 작가들의 새롭게 읽기(2층 전시실), 한국만화 현황과 그 지향점(고영일 작가 작품, 만화가와의 릴레이대화) 등에 대해 심도 깊게 살펴보는 섹션 등으로 구성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에 드는 ‘만화전시’가 아니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1. 해석의 부재 : 전시물의 힘에 기댄 전시
 
우리가 앞에 말했던 것처럼, 모든 전시에는 ‘해석’이 필요하다. 관객 혼자라면 무심하게 지나갔던 것을 세심하고 전문적인 눈길로 발굴하여 새로이 조망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언급했었다. 전시관 바깥에서, 독자 한 명이 개인적으로 충분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자료의 체계적인 정리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이 전시의 모든 역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우라가 넘치는 전시공간은 전시 대상 자체가 가지는 힘과, 그를 해석하고 포장하는 힘이 상호작용한다. 후자가 충분한 역량이 된다면 전자는 훨씬 더 강력한 매력을 지니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전자가 지니는 원래의 힘에 의존하는 전시로 전락한다. 이번 전시에 대한 평가는 전형적인 후자의 케이스이다. 만약 이 전시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발휘했다면, 그것은 한국의 내놓으라하는 전시공간이 부여하는 신비한 힘에 포함된 고우영일 뿐이다. 고우영이 얼마나 뛰어난 만화가이며, 그가 창조한 세계가 7-80년대의 사회적 암울함속에서 한줄기 해방감을 맛보게 했다는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래서 그는 한국만화계의 보물이자, 범위를 확대시켜보자면 한국 대중문화의 부정할 수 없는 영웅이다. 그의 작품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작가이다. 1층 전시관에서 우리는 고우영의 발언들, 고우영의 작품, 고우영에 대한 기억과 다시 만났다. 우리는 그가 한 말을 듣고, 그가 창조한 작품들을 보고, 그의 손때가 묻은 오브제들을 보았다. 2층에서는 그를 활용한 미술가들의 다양한 창작물들을 보았다. 창작은 작가들의 몫이고, 그것이 고우영과 얼마만큼 직접적으로 상관적인가라는 부분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뭔가 부족해보이지만, 그 자체로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외에, 고우영의 만화세계, 그의 사회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어떤 새로운 해석이 있었는지? 작가에 대한 해석의 부재,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의 재확인. 이것이 이 전시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첫 번째 이유이다.
 

 
 
 
 
 
 
 
 
   
 
2. 만화전시, 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걸까?
 
사실상, 위에서 언급했던 전시 기획의도는 만화전시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접근방식이다.
 
아르코미술관이라는 미술관급 전시공간답게, 이 전시의 의도는 사실은 ‘만화’, 또는 ‘만화가’와는 그다지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만화가로서의 고우영이나 만화작품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전체 대중문화에서의 중요성이고, 그와 관련된 “수많은 시각이미지가 범람하는 현재의 문화풍경을 살펴보고, 우리의 시각문화 현상의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이 전시가 어떻게 현 시각문화의 방향성을 가늠하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시각문화가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의도에 시각문화의 한 섹션으로서의 만화를 넣어주는 것에 감사히 생각하라는 것일까? 이런 애매한 의도 하에 전시기획자는 전시를 네 가지 섹션으로 구분한다. 과거의 대중문화, 고우영의 유물, 예술가들의 고우영 작품에 대한 재해석, 한국만화 현황과 지향점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이다.
 
이 네 가지 섹션 중, 그나마 충실하게 이뤄진 건 두 번째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해석이 없다. 첫 번째와 세 번째도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과거의 대중문화는 소규모적인 나열에 불과하고, 그 사이에 어떤 질서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 이미지들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 세 번째의 고우영 재해석은, P.A. Son 등 몇 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여기가 아니라 어디에 두어도 상관없는 작품들이 아닌가? 달리 말하면, 고우영과 그다지 상관없어 보인다. 이들의 작품 자체로서의 평가는 내버려둔다 할지라도, 고우영과의 관계성으로 보자면 상당히 거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섹션은, 고영일의 만화작업을 지시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한국만화의 현황만이 아니라 지향점까지 찾으라면 너무나 과다한 요구이다. 아마도 이런 부분은 부대행사에서 얼마만큼 해결되었을 수 있었겠지만, 글쎄, 과연 지향점이 제시될 수 있는 상황이었을까.
 
“시각문화의 분석과 전망”이라는, 심히 미술관스러운 접근 하에, 고우영의 만화작품과 만화세계는 단지 하나의 소재로써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본 적은 있을까? 만화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왔는지 숙고해보았을까? 고우영의 이름은 있되, 막상 그 이름을 있게 한 만화에 대한 고민은 없다. 멋진 전시 설명글은 난무하지만 실제로 전시된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다. 미술공간에서, 유명한 만화가와 만화작품들에 대한 단지 ‘소재’적인 활용은 이제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3. 전시디자인의 매력과 전시디스플레이의 무질서, 그리고 관객들에 대한 불친절
 
전시디자인 자체는 흥미로웠다. 1층의 고우영 유물전은 벽에 건 것이 아니라, 벽돌을 쌓아올린 테이블위에 전시물을 올려두었고, 관람객들은 위에 깔려진 유리 아래로 전시물들을 볼 수 있게끔 했다. 이 방식은 당시 디자인을 맡았던 최정화 설치미술가가 제안한 것인데, 이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했다. 물론 테이블의 위치가 필자에겐 약간 낮아서 자세히 보려면 허리를 많이 굽혀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는 해결하기 쉬운 문제는 원래 아닐 터이다. 벽에 매달아도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에는 시선의 높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배열과 불친절. 전시디자인은 디스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그리고 관객들에 대한 배려의 부재로 그 매력을 상당부분 상실했다. 작품 배열은 연도순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의미를 더 많이 부여하는 작품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도 아니다. 설명이라고는 들어올 때 배포한 설명지 달랑 하나와 유리 아래쪽에 붙여놓은, 제목과 연도를 붙여놓은 작은 캡션에 불과하다. 오리지널 원고, 신문을 잘라 만든 소장본, 인쇄물, 책...모든게 섞여 있다. 물론 고우영의 탁월한 전문가들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제목만 턱하니 봐도, 아, 이 작품은 무슨 이야기며, 어떤 캐릭터들의 어떤 재해석이 이뤄졌으며, 원작과는 어떤 차이가 나고, 어떤 연출이 많이 등장했으며, 어디까지 가위질을 당했고 언제 복간되었으며, 동일한 이야기를 그린 다른 만화들과는 어떻게 다른가...등등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객은 그렇지 않다. 그에 대한 어떤 설명도 준비되어있지 않다.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컴퓨터가 10대 가량 설치되어있지만, 각 영상물이 똑같은 건지 아닌 건지 보려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명문에는 단지 ‘영상물 상영’만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미 보고 있으면 그 뒤에 가서 어슬렁거리며 이게 같은 건지 아닌 건지 확인해야 한다.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불쾌감을 야기할 수 있는 행위라서,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모니터는 10대. 전시에 들어온 이상 당연히 보고 싶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것도 서서, 이어폰을 끼고 십 여분짜리를 계속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영상물을 볼 때는 의자 정도는 옆에 가져다 두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봤다 치자. 이미 웬만한 전시물은 본 상태라서 다리가 좀 아프다. 그러나 쉴 수 있는 의자는 전체 공간 통틀어서 몇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의자 네 개에 불과하다.
 
불쾌감은 그것만이 아니다. 가시범위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전시물을 읽으려면 자연스럽게 유리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유리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힐난이 날아온다. 나이라도 있어 보이니 높임말이나 듣지, 대학생들로 보이면 심지어 반말도 한다. “유리에 기대면 안 돼”. 촬영은 절대 금지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현상이란 말인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가까이 다가갈 수 밖에 없고, 그려러니 유리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허리가 엄청 길지 않은 바에야 저 멀리 있는 걸 보려면 손으로 기댈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선택의 여지없이 그렇게 보게끔 배치해 둔 상태에서 유리에 손대지 말라는 것은, 결국 보지 말란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세상에, 돈을 내고 들어 온 전시에서 ‘보지 말라’니. 이 무슨 횡포인가. 영화관에 들어가서 눈감고 있으란 말과 뭐가 다른가. 게다가, 촬영금지는 또 뭔가? 플래시를 쓰지 않을 경우 촬영은 어디나 다 허용하고 있다. 전혀 작품에 손상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건 이제 왠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전문가들도 아니고 아마추어들이 기념으로, 또는 기억으로 찍는 사진은 블로그를 통해, 또는 다른 매체들을 통해 전시를 알려나가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촬영금지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고우영의 세계는 어느덧 우물 안 금붕어처럼 답답하게 되어버린다. 이런 답답함과 짜증은, 고영일의 <화이팅 고우영!>이라는 만화를 전시한 벽 모퉁이에 이르면 거의 절망에 이른다. 두 페이지 순서가 역전되어있다. 세상에나. 읽어보지도 않고 가져다 붙였단 말인가. 전시 첫날도 아니었건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 입을 대기 싫었던 것일까.
 

 
 
 
 
 
 
 
 
 
 
 
 
 
 
 
 
  
 
전시. 전시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 그에 기반한 재해석, 관객에게 친절한 전시. 새로운 무언가의 습득을 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전시를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소설이나 만화처럼, 길이가 있는 매체를 전시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큐레이터라면 한번 시도해볼만한 도전일 터인데. 너무 가볍게 판단했던 건 아닌지. 여전한 만화에 대한 무지와 무성의한 접근방식에 실망한다. 멋있어 보이는 말들의 조악한 나열이 아닌, 미술관급 미술관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만화 전시를 만나게 될 날을, 그래도 한 번 기다려보자.
 
전시. 전시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 그에 기반한 재해석, 관객에게 친절한 전시. 새로운 무언가의 습득을 줄 수 있는, 그런 좋은 전시를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소설이나 만화처럼, 길이가 있는 매체를 전시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큐레이터라면 한번 시도해볼만한 도전일 터인데. 너무 가볍게 판단했던 건 아닌지. 여전한 만화에 대한 무지와 무성의한 접근방식에 실망한다. 멋있어 보이는 말들의 조악한 나열이 아닌, 미술관급 미술관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만화 전시를 만나게 될 날을, 그래도 한 번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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