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만화전시 케이스 분석 2-1 :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박희정 특별전
한상정 2011.07.27
이번엔 한국만화 백주년처럼 커다란 규모의 전시가 아니라, 단 한 명의 만화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케이스를 들어보자.
 
마침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특별전 큐레이터를 맡고 있으므로 전시준비과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물론, 전시에 대한 평가는 축제가 끝나야 하므로, 아마 다음회에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박희정은 장장 12권에 이르는 <마틴 & 존>을 완결하면서 부천만화대상을 받았다. 2005년부터 만들어진 관습대로 그 해 부천만화대상을 받은 작가는 그 다음해 축제의 특별전으로 초대된다.
 
필자의 경우 전시 큐레이터를 제안 받으면, 세 가지를 고려한다. 첫 번째는 전시기획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얼마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조직 환경인가라는 부분이다. 축제의 전시는 하나가 아니므로, 당연히 전시팀이 꾸려진다. 전시의 총감독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즐겁게 일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물론 그 주변 및 상층조직까지 모두 흡족하면 환상적이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전시 예산이다. 일반적으로 만화전시의 예산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과도하게 작은 예산으로는 기획자의 의도를 전혀 발휘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인건비인데, 이 부분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약간의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는 업무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인건비를 절대 고수하는 방식도 있을 테고, 일이 재미있다면 인건비를 희생하는 방식도 있다. 이는 어느 것이 더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전시 감독은 예부터 그 스타일을 좋아하는 터였고, 전시예산은 특별전이라는 특혜를 받아 1,700만원. 이 정도면 기꺼운 마음으로 할만하다. 인건비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박희정 특별전을 해보랴...라는 마음에서 받아들였다. 중요한 것은, 일단 계약을 하게 되면 그 전시는 자신의 것이므로, 액수가 적네 마네 툴툴거리는 것은 전문가적인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
 
그 다음은 작가와의 관계이다. 자신의 작품을 마음대로 가져다쓰는 대신, 자신을 최대한 귀찮게 하지 말라는 요구는 자주 일어난다. 전시를 같이 기획하고 그에 따른 행사까지 함께 기획할 수 있다면 기획자에겐 정말 행운이다. 약간 불행히도, 박희정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하는 편이라 결국은 팬 미팅을 준비했던 ‘박희정의 밤’도, ‘친필사인회’도 모두 거절했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전시회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직접 기획할 시간은 없고, 여러 번 전시를 해봤다면 모를까, 그런 기회를 가졌던 만화가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작품을 과연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정리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내심 저어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원고작업을 내팽개치고 전시기획에 동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작품은 내주지만 혹이나 실망할까봐 커다란 기대를 안 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평상시에 작가들과 신뢰를 두둑이 쌓아왔던 기획자들은 유리할 것이다. 일단 필자는 박희정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없었기에 뭘 부탁하려해도 쉬운 입장은 아니었다.
 
작가가 소극적이건 아니건, 기획자는 작품해석에 들어가야 한다. 모을 수 있는 한, 흔적이 담긴 모든 것을 긁어모으는 것이 우선이다.
 
박희정 작가의 경우 1993년에 데뷔, 작업력이 거의 20년에 달한다. 따라서 단행본이 20권이 넘어가고, 권당 200페이지라고 산정하더라도, 약 2,000장의 원고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마틴 & 존> 3권 이후에야 원화 없이 디지털로 작업했기에 이것보다야 오리지널 원고가 작은 규모일 수 있다. 이 전체를 죽 읽으면서 눈에 띄는 곳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이때 여러 가지 종류의 포스트잇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페이지는 배경연출이 좋고, 어떤 곳은 주인공의 자세가 너무나 아름다우며, 어떤 곳은 아주 야하다 등등, 다양한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이 포스트잇들의 분류가 그럴듯한지, 별도로 분류할 정도로 분량이 되고 의미가 있을지 끊임없이 비교해본다. 몇 번의 독서 이후 재미있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첫 번째로, 그녀가 유난히 신발이나, 다리, 또는 걷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때론 운동화, 맨발, 슬리퍼, 구두 등. 두 번째는 아주 진지한 장면들을 그리다가, 갑자기 이등신의 개그 컷을 사용한다는 것. 셋째, 내용적으로 그녀가 인간의 다양한 층위의 외로움에 대해서 자주 다룬다는 점이다. 네 번째는 지금 봐도 내용상 획기적이라고 보이는 <호텔 아프리카>였다. 이곳은 사회적 관습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인디언의 후예인 지오, 지오의 어머니인 집시와 친구들인 히피, 유랑극단, 동성애자 등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에서 흑인인 아버지와 백인인 어머니 사이의 사랑으로 태어난 엘비스가 이 모든 이야기의 교차점에 있다. 그 이외에도, 누구나 알고 있는 박희정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과 탁월한 연출장면 등이 뽑혀 나올 수 있다. 자, 이러한 포착이 정확하건 아니건, 여러분이라면 이러한 특성들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고 싶은가? 한번 머릿속으로 기획을 해보자. 그리고 필자가 한 생각과 어떤 점이 더 또는 덜 흥미로운지 비교해보자.
 
필자는 최초에 7가지 섹션을 기획했다.
 
섹션 1: [외로우십니까?]. 그녀가 표현한 모든 외로운 인간들에 대한 모습을 모아서, 박물관 1층 바그다드 카페와 극장사이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에 검은 차단막을 치고, 천장에서부터 얇은 천을 겹겹이 늘어트린 다음, 뒷면에서부터 앞으로 화면을 투사하는 것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이자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공간이기에 떠올랐던 아이디어이다.
 

 
 
 
 
 
 
 
 
 
 
 
 
 
 
 
 
 
 
섹션 2: [그렇다면, 호텔 아프리카로 오세요] 여기서 호텔 아프리카는 특정한 지리학적 위치를 가진 곳이 아니라, 삶에 지친 외롭고 괴롭고 쓸쓸한 마음을,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공간이다. 사실상 <호텔 아프리카> 작품 자체는 최근작인 <마틴 & 존>에 비하면 아무래도 시각적인 측면에선 약간 뒤처진다. 그래서 원고를 그대로 전시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보였고, 핵심 키워드는 ‘위안과 휴식’이다. 공간설정은 박물관 1층 중앙 홀. 이를 삶의 번잡함에서 해방된 위안과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은 거대한 천막과 영상이다.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 관객들은 그 속에서 조용히 앉아 <호텔 아프리카>를 이미지 편집과 약간의 애니메이팅, 그리고 음악이 깔린 약 7분여의 영상으로 감상한다. 이를 위해 활용할 이미지들을 선정하고, 전문가에게 맡기자. 약간은 어두운 공간, 마음을 평온히 해주는 향이 살풋 풍기며서 기대거나 눕거나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바닥에는 모래와 카펫을 깔자.
 
섹션 3 : [오리지널 원고와의 만남]. 천막주변에 가벽을 세우고 여기에 연출이 좋은 원고들과 컬러 일러스트들을 진열하자.
 
섹션 4 : [걷는 사람들]. 배경에는 주인공의 발들이 나오는 칸들을 크게, 또는 작게 해서 붙여두고, 박희정이 주인공과 더불어, 또는 독자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걸어왔다는 의미에서 초기작품에서부터 최근작까지 등신대로 컷팅하여 걷는 주인공들을 배열하고, 관객들이 옆에서 포토존으로 활용하게 하자. 이 인물들의 변화에서 관객은 자연스레 그림스타일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섹션 5 : [말풍선 채우기]. 이등신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페이지들을 편집하여, 말풍선들을 지우고 관객들이 상상을 통해 그 말풍선을 채우도록 하자. 그날 가장 훌륭한 페이지를 골라서 축제홈페이지에 공고하고 상품을 주자. 초등학생용과 중고생이후 두 가지 버전의 여러 가지 샘플을 만들어서 나눠주자. 전시에 대한 참여를 고무시킴과 동시에, 만화에 대한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는 일종의 체험이다.
 
섹션 6 : [박희정과의 밤]. 작가와 팬들과의 미팅을 위해, 온라인으로 ‘꼭 함께 하고 싶은 사연’으로 사전응모를 받아 50여명을 선정하여 기념품을 주자. 바로 이날부터, 섹션 7의 잡지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섹션 7 : [아홉 번째 신화 복원 프로젝트]. 축제 디지털 섹션의 [아홉 번째의 신화] 디지털 부분복원 계획과 연동시켜, 박희정 작가의 단편 신작을 함께 실어 성인용 잡지로 1,000부 정도만 출판하여 한번 팔아보자. 이는 1985년 대본소만화밖에 없었던 시기에 최초로 순정만화잡지의 원형을 창출했던 선배 만화가들에 대한 오마쥬임과 동시에, 현재의 척박함을 다시 한 번 떨쳐보자는 의미가 있다. 사전예약제로 1,000부 이상이 모인다면, 이는 향후 성인용 순정만화잡지 발간에 대한 공적 지원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원고를 발표할 곳이 없어 쉬고 있는 순정만화작가들을 위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참여 작가별 약 작품 하나씩, 재미있는 원고들을 선정해야하며, 약 400페이지에 이르는 이미지 보정 및 출판예산 700만원은 별도로 산정되어야 한다.
 



 
 
 
  
  
  
  
  
  
  
  
  
  
  
  
  
   
약 한 달의 시간을 거쳐 정리한 최초의 기획 중에서, 전시 오픈 약 20여일을 앞둔 현재, 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기획섹션은 몇 개나 될까? 섹션 5, 하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 하냐고? 발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초기 기획은 여러 단계에서 변형되며, 그럴만한 이유는 아주 많다. 우선 작가와의 미팅에서 한번 걸러진다. 좀 더 이런 부분이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 또는 자신이 생각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제시된다. 의견을 100 반영할 순 없지만, 흥미로운 의견이라면 다른 부분을 삭제하고 다시 기획한다.
 
또 이번처럼 축제전시라는 더 상위의 목적이 있을 경우, 다양한 요인들이 변화를 야기한다. 이미 예산이 설정된 경우라도 예산이 변경되기도 하고, 또 다른 행사나 전시들 때문에 전시공간이 재배치되기도 한다. 전시공간이 달라지면 전시연출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또 전시디자이너와의 미팅을 반복하다보면, 생각한 것만큼 효과가 산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아주 즐거운 경우 중의 하나는 기획이 모두 끝난 이후에 작가가 추가로 자신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해줄 경우이다. 그리고 그런 것보다 더 자주 발생하는 일중의 하나는, 사실은...큐레이터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처음엔 저렇게 기획을 잡았어도, 주변의 이런저런 의견을 경청하다보면, ‘아, 저런 의견은 청취할만한데, 저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잖아?’ 라는 판단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코 귀가 얇은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기획안을 여러 사람에게 펼쳐놓고 편하게 아이디어를 받는 과정은 필수불가결이다. 물론 모든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초기 기획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들의 의견이 더 그럴듯하다고 ‘판단’한다면, 가차 없이 원래 기획안을 폐기하면 된다.
 
그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필요한 부분을 발굴하기 위해 자료와 원고를 재차, 삼차 뒤지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획자로서의 자질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실상, 이러한 변화요인들이 한꺼번에 닥치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시간상에서 순차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시디자인이 확정되는 그 순간까지, 이제 출력에 넘어가는 순간까지 큐레이터들은 끊임없이 자료들을 뒤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회는 이 초기 기획안들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실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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