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전시
전시의 개념과 전시준비과정
한상정 2010.07.14

‘전시(展示)’. 펼 전(展)에, 보일 시(示). 펼쳐 보이다? 딱 맞는 표현인 듯. 그러나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좀만 더 생각해보자. ‘펼치다’가 뭐지? 사전을 보자 : “1 펴서 드러내다. 2 접히거나 개킨 것을 널찍하게 펴다. 3 보고 듣거나 감상할 수 있도록 사람들 앞에 주의를 끌 만한 상태로 나타내다.” 오호라. 첫 번째와 세 번째 의미가 뭔가 흥미를 자아내지 않는가? ‘드러내다’와 ‘주의를 끌만한 상태로’라는 부분인데, 사실 여기에 전시의 모든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합쳐볼까?


주의를 끌만한 상태로 ‘○○’을 드러내다. 자. 이 빈 칸에 뭐가 어울릴까? 감춰진 것을? 숨겨둔 것을?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모두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볼 ‘시’자는 본다는 행위에 대한 재삼 강조일까? 글쎄. 우리가 종종 보는 ‘○○ 전’ 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지만, 거기에 ‘시’를 첨가해 ‘본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로 사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한자들을 맘대로 그렇게 해석해도 되냐고 비난하면, 이렇게 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 어떡하겠냐고 투덜거릴 수밖에 없긴 하지만. 여튼. 해석이야 하는 사람 마음! 이렇게 맘대로 조합을 해버리면, ‘관객들에게 일상적으로 숨겨져 있던 것을 주의를 끌만한 상태로 드러내다’가 된다. 사실 이야말로 전시의 가장 핵심이자 튼튼한 밑바탕이다. 그 외의 것들은 덧붙이면 된다. 전시오브제가 무엇이건(조각이건 뉴미디어건 만화건간에), 전시공간이 어디이건(국립과천현대미술관이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시관이건, 또는 운동장이건), 전시기간이 얼마이건(상설전이건 기획전이건) 얼마든지 다양한 조합물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따라 구체적인 전시기획은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모든 전시는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절대적 원칙이다.


한국만화100년 기념 전시회 중


외래어도 마찬가지. 명사 ‘전시(Ex-position)’의 동사인 전시하다(ex-poser). 즉, ‘밖으로(ex-) 놓다(poser)’. 숨겨져 있던 것, 안에 있던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꺼내놓는 기술.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전시란 무조건, 안에 있던 것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것. 어떻게 보자면 일종의 ‘선물포장술’이다. 그냥 지갑 하나 받는 것과, 어울리는 포장지와 리본으로 장식된 예쁜 케이스 안에 넣어진 지갑을 받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똑같은 지갑 아니냐? 라는 뚝심같은 안목으로는 기획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밀어붙이는 데 있어선 머슴같은 뚝심을, 일을 기획하는 방식에 있어선 어떤 시인도 부럽지 않은 섬세함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 모순적인 두 성격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는 점이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괴팍한 성격의 이유를 설명한다(모든 괴팍하지 않은 기획자들에게 용서를!) 집안에서 혼자, 책이나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전시공간을 찾아야하는 이유가 없다. 수많은 재미볼 수 있는 것들과 비교해서 선택하고 없는 시간 짜내어 찾아갔다...그런데 별로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하는 전시였다면...문을 밀고 나오는 기분은 꽤나 너저분하다. 물론 기획자가 뭔가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기획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통한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 기획의 모든 실패는 기획자에게 돌아간다. 그것이 예산이 문제였건 조직의 문제였건 말이다. 기획자로써 보석처럼 반짝이는 어떤 핵심을 발견하는 순간 그 날은 하루 종일 행복하며, 그런 걸 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한국만화100년 기념 전시회 중


이제는 좀 더 재미없는 부분을 건드려보자. 우리는 전시기획의 개발단계에 필요한 요소들을 떠올려보지 않음 안된다. 물론 이 순서는 약간씩 뒤바뀔 수도 있고 동시적으로 진행되기도 하며, 때로 첨삭되기도 한다. 이미 정해진 시공간, 예산으로 전시를 기획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아예 그 자체를 제안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에 따라 감안해야할 요소들 역시 항상 유동적이다.


1. 목적과 목표, 관람객 설정 그리고 전시 준비맵 작성

무엇을, 누구에게 보여줄 것이며, 그를 통해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련해야 한다. 초등학생인가, 지역주민인가, 작가전인가, 테마전인가, 동시대만화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싶은가, 아니면 동시대 만화의 흐름을 제시하고 싶은가? 또한 이를 통해 관객들이 만화를 더 사랑하게끔 할 것인가? 아니면 절판된 만화를 재판할 수 있는 대중적 지지를 모아낼 것인가? 목적과 목표가 명확해야만, 전시의 실행이후 평가 작업을 충실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시 오픈 전까지 해야 할 작업내용과 일정 리스트를 꼼꼼히 만들어둔다.


2. 연구 작업 및 해석방법 설정

‘새로운’것을 제시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전시는 결코 시각적 만족이나 체험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다. 지적 영역에서 보자면 지식의 확장방법 중의 하나이다.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연구 결과물들이 아니라, 새로운 전시를 위해 새로운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 연구 작업은 필수적이다. 연구 작업의 성과를 잘 알리기 위해 전시가 도출될 수 있다면 그 역시 바람직하다. 예컨대 ‘고우영전’이라면, 지금까지 고우영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면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해석방법은 매력적일까? 에 대한 기획자 스스로의 대답이 있어야 할 것.

3. 메시지 다듬기 및 작품리스트 선정

관람객을 감안하여 어떤 지식을 전달할 것인가를 정리하고, 거기에 합당한 작품리스트를 선정한다. 만화라면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또 어떤 페이지를, 또는 어떤 등장인물을 선정할 것인가를 정리한다. 물론 이 리스트 역시 끊임없이 변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기획 초기단계부터 전시제작단계까지 변치 않으면 오히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4. 예산과의 전쟁과 예산목록서

이는 정말 전쟁이라는 말밖엔 다른 표현이 없다. 예산은 기획의 모든 측면을 뒤흔들 수 있다. 아무리 괜찮은 목적과 목표, 해석방법이 등장해도 예산문제와 부딪혔을 때 한 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 예산에 따라 전시의 모든 것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좋은 기획자란 어디서 양질이면서도 가격 흥정이 가능한 본인만의 네트워크를 얼마만큼 확보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크게 보아 예산목록서에 들어가야 할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 제작비(전시에 직접 활용해야 하는 비용 : 도색, 벽 글자, 작품 진열대, 전시 배너나 플래카드 등 관련물품 제작비), 간행물(전시의 소개 및 보도 홍보를 위한 인쇄물, 도록, 엽서 등), 수송비(전시물 운송에 드는 비용), 지불 비용(임대비용, 기획비, 자문비, 작가사례비, 강연 사례비, 전시디자인료, 저작권료, 체험학습 활용비, 자료나 도록용 전문 사진작업비, 도록 발송료), 보험료(오리지널 원고나 작품을 활용할 경우), 기타(리셉션, 워크숍, 교육자료, 보관 등을 위한 비용). 또한 향후 정산을 해야 하므로 항상 해당 전문가, 업체와의 계약서 및 영수증 보관을 습관화한다.


5. 전시 스토리텔링, 공간분배 및 동선정리, 그리고 전시디자인

관람객에게 전달해야할 메시지와 작품분량이 1차적으로 선정된 후, 구체적으로 공간배분에 들어간다. 공간을 분배한다는 말은 전시 스토리텔링을 기획한다는 의미이다. 즉 공간을 섹션별로 구분하면서 그 섹션을 일종의 연대기적 흐름에 따라 짚어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스토리라인에 따라 분리할 것인가, 어디는 꼭 보여줘야 하며, 어디는 그냥 물흐르듯이 시선을 지나가게 둘 것인가를 정리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관람객의 동선을 미리 기획한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분배해보면 작품 리스트를 또다시 작성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 정도 준비가 되면 전시디자인에 들어간다. 전시기획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충분히 설명하고, 제작비를 감안한 디자인을 뽑아내야 한다.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제작비용을 초과한다면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 부분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체험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전시디자인부터 개입되어야 한다(물론 예산이 부족하다면 체험공간을 만들기 힘들지만). 관람객이 전시장내에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30분 정도나 될까? 전시공간이 거대할 경우 중간 중간 휴식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관람객 메인 타깃에 따라서 필요한 요소들이 충분히 감안되어야 한다. 만약 초등학생들이 메인 타깃이라면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를 질러도 커다란 문제가 없고, 에너지를 발산할 공간이 좀 더 많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칸막이나 분리벽을 밀어서 다칠 수도 있으므로 이 역시 감안의 대상이다. 여러 관람객층이 대상이라면 공간분배 단계에서부터 적절하게 특정 공간의 배분에 신경써야 한다.


6. 전시 제목, 부제의 결정, 홍보물 및 간행물 자료 검토 및 제작

전시물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전시목적과 목표, 또는 연구내용이 잘 드러나는 전시 제목과 부제 등을 뽑아내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언어 감각까지 있어야 한다는 말. 전시 오픈을 최소한 두 주 정도 앞두고 전시도록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은 상당히 이상적이다. 이 도록으로 홍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고, 배송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번 제작이 발주되고 난 이후 다시 바꾸는 것은 제작비용을 배로 만드는 행위이므로, 사전에 꼼꼼히 검토하고, 결정된 것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편이 전시준비일정을 무사히 지킬 수 있다.

대략 6가지로 준비과정을 나눠보았지만, 사실 이 과정은 전시준비과정에서 서로 혼합되고, 바뀌고 융합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감당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생겨난다. 혼자서 연구도 하고, 기획도 하고, 전시도록 글도 쓰고, 전시제작품 발주를 내고, 작가들 관리하고...이 정도 되면 거의 철인3종 경기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 뭐, 어쩌겠는가. 좋아서 하는 일인 것을...그러나 관객들이 기획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에 기뻐해준다면 에너지가 솟구칠 것이다. 글이 딱딱해져버렸다. 잠시의 딱딱함을 거쳐 다음엔 좀 더 부드러운 구어체 활용을 약속!(과연?)

대략 6가지로 준비과정을 나눠보았지만, 사실 이 과정은 전시준비과정에서 서로 혼합되고, 바뀌고 융합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감당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생겨난다. 혼자서 연구도 하고, 기획도 하고, 전시도록 글도 쓰고, 전시제작품 발주를 내고, 작가들 관리하고...이 정도 되면 거의 철인3종 경기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 뭐, 어쩌겠는가. 좋아서 하는 일인 것을...그러나 관객들이 기획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에 기뻐해준다면 에너지가 솟구칠 것이다. 글이 딱딱해져버렸다. 잠시의 딱딱함을 거쳐 다음엔 좀 더 부드러운 구어체 활용을 약속!(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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