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만화 출판사를 찾아서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1. 예술 만화 외고집의 길을 가는 미메시스
홍지민 2014.11.02
2000년을 전후로 국내 문학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만화 브랜드를 선보이며 국내 출판 만화 시장에 새 기운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빅3’인 서울·대원·학산이 대표하는 코믹스와는 달리 품격 높은 만화에 초점을 맞추며 국내 만화 시장의 작품 폭과 독자층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5년 등장한 열린책들의 ‘미메시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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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 출판도시에 자리 잡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모습입니다. 전시 공간에서부터 독자들에게 개방된 휴식 공간, 그리고 사무 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다양한 각도에서 카메라에 담아 봤는데요, 넓은 정원에 놓인 재미있는 조각품 두 점이 눈에 띕니다. 
대지 1,400평에 연면적 1,100평, 지상 3층(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과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두 차례나 받았던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 받는다고 합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해외에서도 유명한 건축물이라고 하네요. 다양한 곡선이 어우러진 백색의 건물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미메시스를 비롯해 조금 앞서 2000년 문학동네가 ‘애니북스’를, 2005년에는 열린책들보다 조금 늦게 민음사가 ‘세미콜론’을 통해 국내 독자들이 익숙한 기존 만화와는 결이 다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죠. 문학 출판사 대표들 대부분은 원래부터 만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전 인터뷰를 살펴보면 홍 대표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가운데 하나로 <죄와 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함께 고우영 화백의 <일지매>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열린책들을 잠깐 먼저 소개하자면, 열린책들은 1986년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로 출발했습니다. 국내 문학보다는 해외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죠. 움베르트 에코,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 자끄 상페, 폴 오스터 등 쟁쟁한 해외 작가들이 열린책들을 통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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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마련된 ‘카페, 북 앤 아트샵’의 풍경입니다. 다양한 음료를 즐기며 열린책들과 별천지, 미메시스에서 출간된 책들을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미메시스 디자인에서 만드는 문구도 있습니다. 입구 쪽과 안쪽 양방향에서 내부 풍경을 담아봤습니다. 
미메시스에서 출간한 각종 그래픽노블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먼저 눈길을 끄네요.  <담요>, <염소의 맛>, <아스테리오스 폴립> 등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중에 독자들 반응이 가장 좋았다는 작품들을 책꽂이에서 살짝 뽑아내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보기 드문 국내 만화인 <예쁜 여자>도 눈에 띄네요.


미메시스는 ‘예술 전문 브랜드’이지만 출판하는 책들의 60퍼센트 안팎이 그래픽노블이라 국내 만화 독자 사이에서는 ‘예술 만화 전문 브랜드’로 여겨집니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 출간에 주력하기 때문에 ‘만화가를 위한 만화’를 선보이는 출판사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죠. 그래서인지 미메시스가 출간하는 그래픽노블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상을 휩쓴 작품들이 많습니다. 수상 경력을 일일이 헤아리기 힘든 작품도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런데 미메시스가 본격적인 만화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힌 것은 2010년 이후의 일입니다. 미메시스는 2005년 6월 국내 웹툰 초창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권윤주 작가의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를 출간합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장 자끄 상페 작가의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를 내놓습니다.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의 경우 전작주의를 표방하는 미메시스가 초기에 집중했던 장 자끄 상페 시리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메시스는 또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 사이에 에드워드 고리 작가의 작품 7개를 시리즈로 한꺼번에 내기도 합니다. 장 자끄 상페나 에드워드 고리 작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들의 작품은 만화 중에서도 카툰으로 분류할 수 있죠. 현재 미메시스가 내놓고 있는 정통 그래픽노블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이후 미메시스는 2007년 말 프랑스가 배출한 천재 만화가 장 마르크 레제르 작가의 단편을 묶은 <레제르 만화 컬렉션>을 두 권짜리로 내놓은 뒤 한동안 만화 출간을 쉬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말 마리노 네리 작가의 <강의 왕>, 데이비드 마추켈리 작가의 <아스테리오스 폴립>을 잇달아 내놓으며 만화 출판을 본격적으로 재개하죠. 이제부터는 홍유진 미메시스 기획·편집팀장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미메시스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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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북 앤 아트샵’ 뒷편으로 이어지는 전시 공간을 살짝 담아봤습니다. 
건물 외벽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백색으로만 꾸며진 안쪽 공간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맨 오른쪽 계단은 사무 공간으로 올라가는 통로입니다.



Q. 출판사 이름에 담겨진 의미는 무엇인지.

A. 미메시스는 철학 용어로 사전적인 뜻은 ‘모방’ 또는 ‘재현’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모든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브랜드 이름은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님이 철학을 전공한 데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원래 열린책들에서 번역에 대한 비평집을 내며 제목을 <미메시스>라고 붙였는데, 새로 예술 전문 브랜드를 만들며 그걸 따서 이름을 짓게 됐다. 처음에는 열린책들 내 특화 브랜드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임프린트가 아니다. 2012년에 완전히 독립했다.  


Q. 2000년대 후반에 3년가량 만화 출판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A. 열린책들은 문학 분야와 어린이 문학 분야(별천지), 예술 분야(미메시스) 등 세 분야에 대한 책을 내왔다. 그런데 각 브랜드마다 따로 전담 직원이 배정된 것은 아니었다. 출판사 전체적으로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눠져 진행되던 발행 계획에 맞춰 담당자가 배정되는 식이었다. 만화 분야도 대표님이 작품을 찾아서 하는 경우, 또 직원들이 이런 책이 좋다는 식으로 기획이 이뤄지곤 했다. 미메시스만의 체계적인 기획 시스템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미메시스를 전담하는 명확한 담당자가 없다보니 일의 순서에 있어서 다른 분야에 밀리는 경우가 잦았다. 


Q. 2010년 말 다시 만화 출판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는데, 그 계기는.

A. 2009년 그레고리 림펜스 기획팀장이 입사하게 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그래픽노블을 선보이게 됐다. 그는 만화 강국인 벨기에 출신이다. 원래 만화를 즐겼던 분이라 자신이 살던 언어권에서 출간된 좋은 작품들을 대표님에게 소개했고, 또 미술과 예술에 조예가 깊어 미술관을 지을 정도였던 대표님도 기존 우리 만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너무나 예술적이고 또 예술과 닮아 있는 그래픽노블을 소개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게 됐다.  


Q. 외국인이 국내 출판사에 근무한다는 자체가 이채로운데.

A. 원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저작권 자문을 담당했다. 본인이 책을 매우 좋아했고 또 저작권 자문 업무를 하며 책을 다뤄 왔기 때문에 출판 쪽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원을 모집하는 기간도 아니었는데 열린책들에 입사하고 싶다고 대표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외국 사람이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신기해서 일단 만나보자고 했는데 림펜스 팀장이 책은 물론 작가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어서 마음이 맞았다고 한다. 저작권 개념이 확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출판사에 필요한 인재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렇게 열린책들에 입사해서 해외 원서 검토와 출간 계약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Q. 림펜스 팀장이 만화 출판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A. 영어, 불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등 7개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에이전시에서 이런 책이 좋다며 뉴스레터를 보내주기도 하지만 출판사가 스스로 직접 작품을 찾는 게 좋은데 림펜스 팀장의 경우 워낙 다양한 언어를 알고 있으니 좋은 작품을 ‘서칭’하는 데 누구보다 탁월하다. 여러 나라 언론을 통한 책 소식도 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책을 내는 것 같다. 그래픽노블 쪽은 정말 도움이 컸다. 지금은 미메시스에 기획팀이 따로 있지만 초반에는 림펜스 팀장이 거의 도맡다시피 하며 그래픽노블을 찾는데 도움을 줬다. 미메시스가 열린책들로부터 독립한 지금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고 있다. 


Q. 만화 편집자라면 국내 정서나 만화 출판계의 흐름을 아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림펜스 팀장의 경우 외국인이라 이 부분이 약할 것 같기도 한데.
                                        
A. 아무래도 한국 시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본인도 그런 부분을 알고 있다. 국내 서점에서 책을 사지 않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책을 기획할 때 림펜스 팀장이 소개하는 것과 국내 직원들이 기획하는 것을 섞는 편이다. 예전에는 림펜스 팀장이 갖고 오는 책 가운데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생소하거나 앞서나가는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주제가 너무 파격적이라거나 그림체가 거칠고 난해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해외 시선에서 볼 때 멋있을 수 있지만 우리 시장에서 마케팅이 될 것 같지 않으면 거르고 국내 편집자들이 선택한 작품을 섞어서 출간하고 있다. 


Q. 어떤 책들이 국내 독자들을 공략하지 못했나.

A. 서양 역사를 알면 재미있고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다비드 베 작가의 <이탈리아 일기>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실상을 다룬 파올로 코시 작가의 <메즈 예게른>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전문 역사가인 장피에르 필리유와 다비드 베 작가의 합작품인 <최악의 동반자>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미국과 중동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2권까지 낼 계획인데 독자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두 만화가가 범죄가 들끓는 멕시코의 도시에서 보낸 두 달의 여정을 담은 보두앵·트룹스 작가의 <브라보, 나의 삶> 같은 경우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그림체와 주제가 너무 어둡고 무거웠던 것 같다. 마리노 네리 작가의 <늑대의 꼬리>도 유럽 문화의 상징성과 감성에 대해 알지 못하면 쉽게 다가가지 못할 작품이었던 것 같다.


Q. 예상 외로 호응이 좋았던 작품도 있을 것 같은데.

A.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브레흐트 에번스 작가의 <예술 애호가들>이라는 작품은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았다. 예술가인 척하는 예술애호가들을 희화화한 작품이다. 네덜란드의 정원 요정 등 작품 내 여러 코드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면 이해하기 쉽지 않기 않다. 그래서 작품 말미에 해설을 넣어주려고 했는데 그림이 화사한 수채화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그대로 출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지금도 꾸준하게 나가는 의외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Q. 국내 편집자들은 해외 작품을 어떻게 ‘서치’하는지.

A. 해외 유수의 만화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무조건 다 살펴본다고 보면 된다. 또 해외 언론에서, 예를 들어 뉴욕타임즈 같은 곳에서 연말에 선정하곤 하는 추천 리스트는 꼭 찾아서 확인한다. 또 그래픽노블을 전문적으로 내는 해외 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살펴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작가들이 작가들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국내에 소개한 작가들이 이따금 자신들이 ‘아는 작가’를 추천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소개한 작가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또 다른 작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에이전시가 보내주는 자료도 참고하지만 실제 출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드물다.


Q. 문학출판사의 만화 브랜드로 대표적인 게 애니북스와 세미콜론이 있는데, 미메시스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A. 크게 놓고 보면 우리는 굉장히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것을 강조하는 출판사다. 다른 곳들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모습도 보이지만 우리는 최대한 예술과 문학성을 살리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매출이 좋을 수가 없다. 그래픽노블은 만화 시장 자체가 작다. 정통 그래픽노블이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 만화 시장의 7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미생> 같은 경우는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지만 그래픽노블은 5만부를 넘기면 베스트셀러다. 예술성을 지키면서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찾기 위해 고민도 많이 하고 있다. 그래픽노블은 아니지만 국내 일러스트레이터 오연경 작가의 <일러스트레이터의 물건>은 예술성과 대중성 양쪽으로 성공을 거둔 책으로 볼 수 있다. 책 자체가 미적으로도 훌륭하고 대중적으로도 많이 팔렸다. 장 자끄 상페 작가의 작품들도 예술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췄다고 본다. 그래픽노블 중에서는 미메시스가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과 바스티앙 비베스 작가 등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가인 것 같다.


Q. 미메시스표 그래픽노블 가운데 독자 반응이 가장 좋았던 작품은.

A. 크레이그 톰슨 작가의 <담요>를 첫 손 꼽을 수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학교 아이들의 심한 따돌림과 부모의 무관심에 불행한 한 소년의 성장통을 그린 작품이다. 2003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만화계 최고상인 아이스너상, 만화계의 오스카상인 하비상 등 세계 만화계 주요 상을 휩쓴 작품이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랑스 신예 만화가인 바스티앙 비베스 작가의 <염소의 맛>도 반응이 좋았다. 림펜스 팀장이 직접 번역한 작품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는 쥘리 마로 작가의 <파란색은 따뜻하다>를 꼽을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동성애 코드도 있고, 그림체도 매우 빼어난 것은 아니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올해 초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개봉해 그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이밖에 성공한 건축가에게 갑작스럽게 닥쳐온 인생의 위기와 이 위기를 계기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아스테리오스 플립>도 반응이 좋았다. <담요>의 경우 3만부 정도 나갔다. 그래픽노블의 장점은 소설이나 에세이 등과는 달리 초반만 반짝하지 않고 꾸준히 나간다는 점이다. <담요>도 마찬가지다. 바스티앙 비베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폴리나>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엄청나게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않지만 시장 경기를 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팔리며 마니아층이 있다는 게 그래픽노블의 장점이다. 


Q. 그러고 보니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출간하는 경향이 있는데.

A. 열린책들에서부터 시작한 기획 방침 가운데 하나가 작가주의다. 열린책들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작품을 다 내고 있다. 프로이트도 전집, 도스토옙스키도 전집을 냈다. 작가주의, 전작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 선정도 잘해야 하지만 한 작가를 고르면 그 작가가 내는 작품은 웬만하면 다 내려고 한다. 물론 우리의 출판 방향과 맞지 않는 경우는 제외한다. 앞으로 나올 그래픽노블 중 <에식스 카운티>의 제프리 르미어 작가나 <똑똑, 리틀맨>의 체스터 브라운 작가 등 기존에 책을 냈던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나올 예정이다. 기본적으로 한 작가 당 두세 작품은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는 호세 무뇨스다. 미메시스에서 가장 최근 내놓은 <일러스트 최초의 인간>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한 작가다. 기존 알베르트 까뮈 작품에 일러스트를 새로 넣은 작품으로 보면 된다. 호세 무뇨스 작가의 경우 만화가들에게 칭송받는 그래픽노블의 거장인데, 이상하게도 국내에는 그동안 소개가 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미국 그래픽노블의 대가인 프랭크 밀러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 받는다. 카를로스 삼파요 작가와 함께 작업한 <알렉 시너 탐정 시리즈>가 호세 무뇨스 작가의 최고작으로 꼽히는데 묵직한 명암과 그로테스크한 그림체가 돋보인다. 그의 작품을 몇 권 검토하고 있다.


Q. 미메시스가 놓쳐서 아쉬운 작품도 있을 것 같은데.

A. 문학동네에서 나온 <노아>, 재미주의에서 나온 <백호>, 시공사에서 나오는 <사가> 등을 꼽을 수 있다. <노아>와 <백호> 모두 하고 싶었는데 시기가 맞지 않아 놓친 경우다. SF물인 <사가>의 경우 미국 그래픽노블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히어로물과는 그림체가 다르다. 미국에서도 마블 같은 대형 출판사가 아닌 마이너 출판사에서 나왔다. 경쟁이 붙었는데 아쉽게도 붙잡지 못했다. 


Q. 출간 목록에 국내 작품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데.

A. 국내 작품이 많지 않아서 ‘미메시스는 한국 만화를 무시한다’, ‘미메시스는 한국 만화를 내지 않는다’ 등의 오해가 많다. 일반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도 미메시스라는 브랜드와 어울리는 국내 작품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출간해온 정통 그래픽노블 범주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찾다보니 쉽지는 않다. 우리는 우선 그림체가 좋아야 한다. 스토리는 두 번째다. 그리고 나서 대중성을 본다. 해외 그래픽노블을 보면 한 작품에 7년씩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호흡이 길고 공을 많이 들이는 작품이 많다. 우리 만화 쪽은 웹툰이 주류인데 아무래도 그래서인지 호흡이 짧은 작품이 많다. 또 짧은 시간에 연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픽노블에 어울릴 만한 그림체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림체가 좋아도 일본 망가에 영향을 많이 받은 스타일이면 배제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림체가 좋고 독특한 작가를 찾고 있다. 그게 요즘 최대 고민이다. 의외로 우리 출판사에 투고되는 국내 원고가 굉장히 많다. 올해 심흥아·서윤아·박문영·이지나·노영미 작가의 <봄꽃도 한때>, 권용득 작가의 <예쁜 여자> 등 국내 작품을 두 권 출간하기도 했다. 모두 작가들이 직접 투고한 작품들이다. 그림체를 떠나 전자는 기획 의도가 좋았고, 후자는 우리 정서에 굉장히 맞는다는 판단으로 출간하게 됐다. 내부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그래픽노블 시리즈가 있는데 아직 이 시리즈를 맡아줄 작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


Q. 미메시스와 궁합이 맞을 것으로 판단하는 국내 작가들도 있을 것 같은데.

A. 정석호 작가의 <백호>는 정말 그림이 좋았다. 우리 출판사에도 투고가 됐던 작품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내고 싶었는데 작가 쪽에서는 책을 빨리 내줄 수 있는 출판사를 찾고 있었다. 우리는 향후 2년 간 발간 계획이 미리 짜져 있는 상황이라 새로운 원고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해외 작품들은 라이선스 기간을 5년, 7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그 기간 내에 반드시 책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원고가 들어와도 끼워 넣는 데 한계가 있다. 아직 작품이 정식 단행본으로 나온 적은 없지만 젊은 작가 중 최진용 작가를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해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펼친 김정기 작가도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은 분이다.


Q. 미메시스 전체 출간 서적 가운데 그래픽노블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A. 지난해까지는 전체적으로 25권 안팎의 책을 냈고, 올해는 30권이 될 것 같다. 이중 그래픽노블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에 달한다. 앞으로 내는 책도 절반 이상이 그래픽노블이다. 이미 예술서, 건축서를 발간하는 등 정통 그래픽노블 외에도 예술 범주 내에서 다양한 서적을 내려고 한다. 패션이나 인문서라도 예술과 맞닿을 수 있다면 출간할 생각이다. 한국 만화도 더 많이 내는 등 분야를 다각화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Q. 미메시스 출판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A. 열린책들 같은 경우는 기획팀이 따로 있고, 또 문학팀, 인문팀 등 분야별로 나눠져 있지만  미메시스는 그렇지 않다. 미메시스는 출판과 문구(미메시스 디자인), 아트 뮤지엄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데 업무가 따로 따로 나눠져 있지는 않다. 편집만 담당하는 편집자는 한 명뿐이다. 예술사, 건축사 등 원고 매수가 1,000매가 넘는 대형 프로젝트는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 편집자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책도 내고, 문구도 만들고, 도록도 낸다. 아트 뮤지엄 내 카페 메뉴판까지 직접 만든다. 굳이 팀으로 나누자면 기획·편집팀, 디자인팀, 뮤지엄팀이 있다. 
 

Q. 미메시스 그래픽노블은 대개 가격이 높다. 독자들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요소일 수 있는데.

A. 우리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가격을 정할 때 애로사항이 많다. 그런데 그래픽노블 제작비는 일반 소설에 비해 네 배 정도 더 들어간다. 그림 위주다 보니 인세 말고 그림 데이터비라는 일종의 추가 비용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번역비는 번역비대로 따로 나간다. 순수 책 제작비도 만만치 않다. 올 컬러에 종이도 고급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양장을 고집한다. 만화는 가볍다는 편견을 깨고 싶고, 또 만화는 소장하기보다는 빌려보거나 돌려보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크레이그 톰슨 작가의 <하비비> 같은 경우는 표지에 금박도 입히고 에폭시 작업도 하는 등 후가공비를 제법 들여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가격을 낮게 책정하려고 하지만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 판매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최근 들어서는 후가공비를 최대한 낮춰 책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그래픽노블은 소설보다 마진이 훨씬 낮다고 보면 된다.


Q. 독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나.

A. 만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인터넷 서점 및 오프라인 서점의 MD를 통해 많은 팁을 얻는다. 대중적으로는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고 있다. 각종 도서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직접 의견을 듣기도 한다. 또 자체 뮤지엄이나 규모가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책과 관련한 전시회도 자주 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해외 작가와의 만남을 직접 주선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우리 주요 작가 중 한 명인 바스티앙 비베스 작가가 부천국제만화축제를 통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작가 본인과 독자들이 무척 좋아했다. 조만간 또 다른 작가 한 명을 초청하려고 검토하고 있다. 워낙 다양한 나라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나라 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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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가장 안쪽에 홍유진 미메시스 기획·편집팀장의 사무실이 있습니다. 복도 한쪽 편으로 사무 공간이 쭉 이어집니다. 
편집팀 사무실 풍경도 살짝 엿봤습니다. 사무실로 향하는 입구 쪽은 미니 응접실로 꾸며져 있네요.
한국의 만화 출판사를 찾아서
켜켜이 쌓아온 출판사의 전통과 가치를 만화책에도 담아내고 있는 창비
홍지민
2014.12.31
이번에 찾아간 곳은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창비입니다. 문학, 인문, 청소년, 어린이 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책을 선보이는 출판사입니다.
차근차근 의미 있는 울림을 쌓아가고 있는 사계절
홍지민
2014.12.02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대학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씁쓸한 일상을 담았습니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청소년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한 작품이 드물었던 터라 단번에 만화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1. 예술 만화 외고집의 길을 가는 미메시스
홍지민
2014.11.02
2000년을 전후로 국내 문학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만화 브랜드를 선보이며 국내 출판 만화 시장에 새 기운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빅3’인 서울·대원·학산이 대표하는 코믹스와는 달리 품격 높은 만화에 초점을 맞추며 국내 만화 시장의 작품 폭과 독자층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5년 등장한 열린책들의 ‘미메시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0. 우리 만화의 빈 고리를 메우고 있는 보리출판사
홍지민
2014.09.29
“보리에서 만화책을 발간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낯설어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작품수가 많지 않아 만화 출판사로 소개될 수 있을지 조심스럽네요.”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9. 한국웹툰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출판사, 재미주의
홍지민
2014.09.03
요즘 우리 만화는 웹툰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 입니다.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떤 작품들은 독자들의 사랑을 한껏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들은 쉽게 잊혀 지기도 합니다. 웹툰은 책으로도 만들어져 독자들과 만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다고 해서 모두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판사들은 소장 가치가 있고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8. 의식과 색깔에 취향을 보태가는 만화 전문 출판사 길찾기(이미지프레임)
홍지민
2014.08.12
뜨거운 여름을 맞아 찾아간 국내 만화 전문 출판사는 색깔 있는, 의식 있는 출판사로 정평이 난 ‘길찾기’입니다. 길찾기의 보금자리는 서울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 사이에 놓인 남태령 고개 너머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군부대 옆 삼거리로 들어서게 되면 유려한 자연을 벗 삼은 주택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길찾기 사무실도 바깥에서 보면 전원주택에 다름 아닙니다. 무심코 지나가다 보면 출판사가 있는 줄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7.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거북이 북스
홍지민
2014.06.27
일곱 번째로 탐방하는 만화출판사는 바로 ‘거북이북스’입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며 만화의 영역을 넓혀가는 출판사로 정평이 난 곳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6.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다 휴머니스트
홍지민
2014.06.10
휴머니스트는 만화 ‘전문’ 출판사는 아닙니다. 10여 년간 세상에 내놓은 만화는 모두 합쳐 100권에 미치지 못합니다. 휴머니스트의 전체 책 가운데 만화는 7분의 1정도에 불과합니다. 절반가량은 어린이 학습만화입니다. 그럼에도 ‘만화 출판사’로서 휴머니스트를 탐방하게 된 까닭은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5. 다음이 더 기대되는 개념 출판사 세미콜론
홍지민
2014.02.15
2000년 즈음부터 문예출판사들이 새 브랜드를 내세워 만화 출판에 뛰어듭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05년 문을 연 두 곳이 있습니다. 민음사의 ‘세미콜론(;)’과 열린책들의 ‘미메시스’입니다. 두 곳 모두 한 때 우리사회에서 사회 악(惡)으로 규정됐던 만화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4. 만화출판계의 용자 애니북스
홍지민
2014.01.29
‘애니북스’는 바로 그러한 용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장사가 되니까 지금까지도 용자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화 팬들이야 덕택에 그동안 ‘정발’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들을 즐길 수 있게 돼 그만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3. 후발주자지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학산문화사
홍지민
2013.12.24
국내 만화출판사 빅3의 한 축인 학산문화사는 일본으로 치면 슈에이샤(集英社)와 닮은꼴입니다. 탄생 과정이 그러합니다. 슈에이샤는 쇼가쿠간(小學館)에서 독립해 일본 3대 만화 출판사로 성장한 출판사입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펴냈던 1980~1990년대가 정점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요즘도 일본 3대 소년 만화로 꼽히는 ‘나루토’와 ‘원피스’, ‘블리치’를 선보이며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2. 1990년대 이후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움직인 대원씨아이
홍지민
2013.11.27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2. 1990년대 이후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움직인 대원씨아이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 빅3의 맏형 서울문화사
홍지민
2013.10.29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 빅3의 맏형 서울문화사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서론
홍지민
2013.09.24
이번 출판사 탐방이 한국 만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또 앞으로 만나는 우리 출판사 가운데 세계 만화 시장에 우리 만화를 널리 알리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름을 떨칠 출판사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