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만화 출판사를 찾아서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3. 후발주자지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학산문화사
홍지민 2013.12.24
국내 만화출판사 빅3의 한 축인 학산문화사는 일본으로 치면 슈에이샤(集英社)와 닮은꼴입니다. 탄생 과정이 그러합니다. 슈에이샤는 쇼가쿠간(小學館)에서 독립해 일본 3대 만화 출판사로 성장한 출판사입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펴냈던 1980~1990년대가 정점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요즘도 일본 3대 소년 만화로 꼽히는 ‘나루토’와 ‘원피스’, ‘블리치’를 선보이며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학산문화사는 1995년 5월 대원출판사(현 대원씨아이)의 출자에 힘입어 세워진 만화전문출판사입니다. 출판사 이름은 정욱 대원 회장의 고향 마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서울문화사에서 ‘아이큐점프’를, 대원에서 ‘챔프’를 히트시키며 국내 만화 잡지 시장을 쥐락펴락 했던 황경태 편집장이 학산호(號)의 선장을 맡았습니다. 황경태 대표에 따르면 서울, 대원을 거치며 만화 출판 쪽으로는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던 시기에 정욱 회장과 새로운 출판사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눴다가 바로 그 다음날 얼떨결에 학산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만화 시장이 부쩍 커지며 수요가 폭발하고 있었고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가 나눌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산은 순수한 만화 출판사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다른 빅3 출판사와 다릅니다. 서울은 만화 이전에 이미 여성 잡지로 출판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대원은 모기업이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였습니다. 만화 출판 외에 이미 튼실하게 자리를 잡은 사업 분야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학산은 오로지 만화 하나였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 서울과 대원의 틈에서 3위 자리를 노렸던 출판사들은 수두룩했습니다. 삼양출판사, 세주문화사, 시공사, 대명종, 아선미디어 등입니다. 학산은 그러나, 이러한 출판사들을 제치고 단숨에 3위 자리를 꿰차며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양강 구도에서 빅3 체제로 재편하게 됩니다.
 
만화 잡지 창간은 대개 비슷한 수순을 밟습니다. 1995년 9월 소년지 ‘찬스’를 내놓으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서울의 ‘아이큐점프’, 대원의 ‘챔프’와 삼각 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간판 작품은 전극진/박인수 작가의 ‘잽핑’, 박하/이재학 작가의 ‘첩혈객’, 소주완/지상월 작가의 ‘히어로’입니다. 국내 작품 12개, 일본 작품 5개를 연재했는데 창간호 라인업 가운데에선 조운학 작가의 학원물 ‘니나 잘해’가 10여 년 동안 장기 연재되는 등 임재원 작가의 학원물 ‘짱’(대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학산은 1997년 8월 순정지 ‘파티’를 두 번째로 선보입니다. 창간호에는 한승원 작가의 ‘아기자기 색동’, 권현수 작가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김미림 작가의 ‘세라핌’ 등 모두 17개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창간호에서 ‘만화가 누나에게’라는 단편을 선보였던 이빈 작가가 9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안녕 자두야’가 파티의 최고 인기작입니다. 기존 순정 만화의 범주를 넘어 소녀 만화를 개척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안녕 자두야는 팬시, 학습 만화, TV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하며 학산에게는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요즘에는 ‘원피스’보다 더 잘 팔리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1998년 12월에는 찬스보다 더 높은 연령대의 독자를 겨냥한 청소년지 ‘부킹’을 내놓습니다. 서울의 ‘영점프’나 대원의 ‘영챔프’에 해당합니다. 창간호에는 모두 11개 작품이 담깁니다. 일본의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가 ‘슬램덩크’ 이후 내놓은 야심작 ‘배가본드’가 사실상 간판 작품이었습니다. 허영만/박하 작가의 ‘짜장면’, 챔프에서 이어진 문정후 작가의 ‘용비불패’, 윤태호 작가의 ‘야후’ 등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학산도 서울, 대원과 마찬가지로 독자층을 세분화해 성별과 나이별로 다양한 잡지를 내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아동순정지 ‘쥬티’와 준성인지를 표방한 ‘웁스’를 선보이게 되죠. 아쉽게도 이 잡지들은 생명력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만화 출판 시장이 위축되며 구조조정하는 과정도 서울이나 대원과 비슷합니다. 찬스는 2009년 5월부터는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바뀝니다. 2012년 7월에는 찬스와 부킹을 합쳐지며 찬스플러스로 단일화 합니다. 찬스플러스는 현재 배가본드를 제외하곤 모두 국내 작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드래곤볼’이나 대원의 ‘슬램덩크’급은 아니지만 학산도 국내에 번역 출간한 해외 작품 가운데 사회적 이슈와 맞물리며 신드롬을 일으킨 사례가 있습니다. 먼저 아기 다다시/오키모토 슈 작가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2004년 첫 선을 보인 이 작품은 2년 뒤 학산을 통해 국내에 상륙합니다. 황 대표는 자신이 워낙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연이 닿은 작품 같다고 설명합니다. 신의 물방울은 국내에서 일었던 와인 붐과 시너지를 내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와인 판매량이 늘어나는 등 국내 와인 시장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죠. 재미있는 점은 원래 신의 물방울이 일본에서는 인기작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키자 일본에서도 덩달아 인기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신의 물방울은 국내 만화 저변을 넓히는 효과도 발휘했습니다. 와인의 주 소비층인 중장년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계, 재계, 학계 등 사회 리더들도 만화를 읽게 만들었지요. 학산은 나이 든 독자층을 위해 2007년에 서비스 차원에서 와이드판을 발행해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젊은 층에 견줘 상대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은 중장년층을 위해 판형과 활자를 키운 게 와일드판입니다.
  
두 번째로 이사야마 하지메 작가의 ‘진격의 거인’이 있습니다. 2009년 10월 일본 고단샤의 월간지 ‘별책 소년 매거진’을 통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올해 6월 기준으로 단행본 누적 판매량이 2000만부를 넘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선 2011년 학산에서 단행본을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마니아층을 형성하던 수준이었다가 올해 4월 퀄리티가 높은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하며 인기가 급상승 합니다. 작품 제목을 활용한 각종 패러디가 양산되는 등 사회 현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진격의 거인도 처음엔 일본에서 큰 기대를 받지 못했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히트작 메이커인 슈에이샤가 진격의 거인에 대해 퇴짜를 놨다고 합니다. 이후 고단샤의 낙점을 받았지만 간판 잡지인 ‘주간 소년 매거진’이나 ‘월간 소년 매거진’이 아닌 서브 잡지인 별책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가 이뤄졌습니다. 진격의 거인 사례는 작품 성공을 위해 만화 편집/기획자의 안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실패한 이야기보다 성공한 이야기가 남게 되잖아요? 남들이 보면 저는 성공만 거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번도 처음부터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을 출판사에서 CEO로 옮겨보겠습니다. 학산은 황 대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이후 우리 만화 출판의 역사를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30년이 넘도록 편집/기획자의 길을 걸으며 우리 만화 출판 시장의 현재를 만들어낸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순 직접 만나본 황 대표는 국내 만화 시장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평가에 대해 손사래를 쳤습니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만화가를 꿈꿨다고 합니다. 1957년에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어린이 잡지에 투고한 작품이 실리며 작가의 꿈을 키웁니다. 또 스무 살 때 소년지 신인작가 응모에 당선돼 데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만화가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미술기자라는 영역에 발을 들여 놓게 됩니다. 1981년에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를 발행하던 육영재단에 편집기자로 들어갔고, 이듬해 한국 만화 르네상스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보물섬’ 창간에 합류하게 됩니다. 보물섬에는 필명으로 작품도 직접 연재했다고 하네요. 황 대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연재했는지 밝히는 것은 극구 사양했습니다.
 
“조금 인기도 있었는데 까불다가 바닥까지 갔어요. 만화 연재도 하고 미술기자도 했죠. 간혹 방송에서 캐리커처도 그렸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되겠어요? 작품이 잘 안되기 시작했죠. 만화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에 한 곳에서만 연재하며 집에서는 실력을 갈고 닦으며 공부를 하게 됐죠.” 
 
그랬던 그가 다시 편집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이큐점프’ 때문이었습니다. 아이큐점프 창간 당시 임창수 편집장의 권유를 받고 미술기자로 합류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격주간지로 계획돼 보름 동안 일하고, 나머지 보름 동안 작품 활동을 하겠다고 내락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주간지로 계획이 변경되며 창작 활동에서 점점 멀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창간호 10만부가 모두 팔리며 인기를 끌었던 아이큐점프는 그러나, 하락을 거듭해 창간 1년도 지나지 않아 판매부수가 2만부까지 곤두박질쳤다고 합니다.
 
 
 
 
 
 
 
 
 
 
 
 
 
 
 
 
 
 
 
   
“인기 작가들에게 의존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것 같아요. 잡지들마다 그 작가, 그 그림에, 같은 패턴의 작품들이 넘쳐나고 있었죠. 그 바람에 아이큐점프 열기는 금방 시들해졌어요.” 아이큐점프는 인원 감축에 들어가고 폐간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황 대표도 사실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된 상태였는데 예기치 못하게 편집장 자리를 떠맡으며 눌러 앉게 됐습니다. 아이큐점프를 진두지휘하게 된 뒤 한 유명 작가에게 인사차 찾아갔더니 그 작가는 “잡지가 문을 닫는다는 데 너희들 힘으로 되겠냐?”며 크다지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편집기자 월급보다 그림을 그려 버는 돈이 더 많았던 황 대표는 사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고민한 끝에 모든 만화 관련 도구와 재료들을 후배에게 물려주며 작품 활동을 접고 만화 편집/기획에 ‘올인’하게 됩니다.
 
황 대표는 아이큐점프가 다시 살아난 것을 기획만화 덕택으로 돌이킵니다. 1980년대 이전에도 만화 편집자가 존재했지만 작가로부터 원고를 받아와 게재하는 정도의 수동적인 업무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황 대표는 작가의 고유 영역이었던 창작에 조금씩 개입하며 만화 편집자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 냅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프로레슬러 인형을 갖고 노는 모습을 접하고는 일본 출장길에 프로레슬링자료를 잔뜩 챙겨옵니다. 이를 스토리작가인 김은기 작가에게 맡겨 프로레슬링 이야기를 쓰게 했는데 김 작가는 우여곡절 끝에 축구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고, 결국 노진수 작가가 레슬링 이야기를 담당하게 됩니다. 이 레슬링 이야기는 장태산 작가가 맡아 그리게 되는 데 이 작품이 당시 미국프로레슬링(WWF)의 인기와 맞물리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스카이레슬러’입니다. 아이큐점프의 간판 작품이었던 이현세 작가의 ‘아마게돈’ 인기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였습니다. 황 대표는 스카이레슬러를 본격적인 기획만화의 출발점을 알린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축구 이야기는 오일룡 작가의 손을 통해 ‘춤추는 센터포드’로 탄생하게 되죠.  
 
황 대표는 앞서 허영만 작가 화실 출신인 김준범 작가의 ‘기계전사 109’를 연재하면서는 스토리작가 이름(노진수)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기존 만화가들의 이름 앞에 놓는 파격을 단행하기도 합니다. 이는 의도적으로 잡지 시장을 재편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단초가 됩니다.
 
“이전에는 스토리작가 이름을 밝히지 않았어요. 금기를 깼더니 몇몇 기성 작가들이 작품을 하지 않게 됐어요. 하지만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빈 자리를 기획만화가 비집고 들어간 거에요.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자연스럽게 다른 잡지와 차별화가 이뤄지며 아이큐점프가 다시 탄력을 받았어요. 1년 정도 지나자 기성 작가들은 한두 명밖에 남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림 실력이 뛰어난 신인에 이야기가 뛰어난 스토리 작가가 붙어 한 작품에 매진하니 다작을 하는 기성 작가들에게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일본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드래곤볼’ 연재가 아이큐점프의 인기를 주도했다는 평가에 대해 황 대표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드래곤볼 영향도 없지 않았으나 아이큐점프의 인기는 드래곤볼 하나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이미 언급한 기획만화들은 드래곤볼 등 일본 만화와의 격차를 조금씩 좁혀 나갔다고 합니다.
 
아이큐점프 판매 부수를 20만부 이상으로 끌어올렸던 황 대표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만화 잡지 창간을 저울질 하던 정욱 대원 회장이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리를 옮기면 언젠가는 대원도 떠나게 될지 모른다”고 거절했지만 정 회장은 6개월이 넘도록 끈질기게 설득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에 서울 심상기 회장이 경향신문 사장이 되며 회사를 비운 상태였고, 또 아이큐점프의 성공에 대한 시샘도 똬리를 트는 등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고 황 대표는 말합니다. 대원에서 챔프를 창간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서울 쪽에서 전속 작가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거금에 작가들을 묶어두게 된 것이죠. 챔프는 당연히 작가 섭외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황 대표는 챔프 창간호 라인업을 돌이키며 참담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대원은 출판 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터라 편집/기획자들이 인쇄 현장에도 직접 뛰어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갖은 고생 끝에 발간한 챔프였지만 시작부터 참패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위기의 탈출구는 바로 신인 작가였다고 하네요.  
 
기성작가 섭외에 어려움을 겪으며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신인 작가를 공모했는데 이게 전화위복이 된 것입니다. 신인 작가들을 대거 등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히트작이 줄줄이 쏟아졌습니다.(이미 대원씨아이 편에서 언급했던 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대원을 통해서 고2 때 데뷔했던 이명진 작가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입니다. 만화용지 석장에 깨알같이 적어온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어 과감하게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컬러 연재를 했는데 작가의 그림체가 처음에는 어설펐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였다고 하네요. 챔프에서는 어쩐지에 이어 소주완/지상월 작가의 ‘붉은매’, 이영일/이우영 작가의 ‘검정고무신’, 황용수/양경일 작가의 ‘소마신화전기’ 등이 떴고 영챔프에선 전극진/양재현 작가의 ‘열혈강호’, 윤인환/양경일 작가의 ‘아일랜드’ 등이 뜨며 대원의 만화 사업은 완전히 제자리를 잡게 됩니다. 검정고무신의 경우 황 대표가 작품 제목을 직접 지었다고 하네요.
 
만화가 어린이들에게 해가 된다고 두들겨 맞는 분위기라 교훈적인 작품을 만들어 보자며 기획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우영 작가는 로봇 만화를 그렸는데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전라도 시골 출신 작가를 붙여줬다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죠..
 
“어려운 시절을 살며 부모 세대가 겪었던 에피소드가 어린이들에게는 신기한 SF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교육적인 만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인기를 끌게 됐죠.”
 
20년 가까이 연재되고 있는 열혈강호도 편집자와의 피드백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작가가 가져온 작품은 열혈강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같은 무협물이었지만 캐릭터들이 서구식 투구와 갑옷 차림이어서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하네요. 결국 작가가 다른 작품을 그려 왔는데 그게 바로 열혈강호였다고 합니다.
 
“웬만한 신인들이 모두 데뷔하며 국내 출판 만화가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서울과 대원이 라이벌 구도를 갖고 경쟁을 펼친 결과라고 생각하죠. 역대 국내 인기 만화의 90는 1990년대 그 시절 작품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서울이나 대원이 일본 만화 수입의 첨병 노릇을 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건 생각이 달라요. 사실 이전에는 일본 만화를 베끼는 일이 많았어요. 심지어 그대로 베끼고는 국내 만화로 둔갑시키기도 했죠. 과연 그런 게 우리 만화 발전에 도움이 됐을까요? 서울과 대원이 한 일은 일본 만화라고 밝히고 작품을 들여온 것뿐입니다.”
 
 
 
 
 
 
 
 
 
 
 
 
 
 
 
 
 
 
 
 
 
황 대표는 서울에서는 기획만화를 통해, 대원에서는 신인 작가 등용을 통해 우리 만화 시장에 새 기운을 불어넣은 셈입니다. 1995년부터는 39세 나이에 학산을 맡으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그는 인생의 3막을 만화 사업의 다양화로 요약했습니다.
 
황 대표는 후발주자인 학산이 크게 도약하게 된 계기를 크게 두 가지로 꼽았는데요, 회사를 세우자마자 들이닥친 금융위기(IMF)가 배경입니다. 모두가 사업을 축소할 때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섰습니다. 팬시 시장에 진출한 것입니다. 시장 자체가 30~40로 줄어들었지만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외려 시장이 넓어졌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포켓몬스터’ 라이선스 등을 확보해 벌인 이 사업은 대박을 터뜨렸고, 회사 건물까지 짓게 됐다고 하네요.
 
단행본 출간도 외려 발행종수를 늘리는 등 여타 출판사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습니다. 특히 앞뒤 날개에 작가와 작품 소개를 싣는 겉표지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른 출판사는 한 해에 3억원 이상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겉표지를 모두 없애는 분위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학산에서 나오는 단행본은 만화 팬들 사이에서 고급 이미지로 인식되며 인지도를 높이게 되죠.
 
황 대표는 학산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꾸준히 벌여왔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탓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2000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만화 잡지 ‘코믹콜’과 ‘해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1년 어린이 전문 브랜드 ‘채우리’를 선보였고 2009년에는 그래픽노블 전문 브랜드 ‘스튜디오 아이’와 고품격 만화 단행본 브랜드 ‘시리얼’을 론칭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을 어린이를 위한 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작가 50명, 스토리 작가 50명이 달라붙었습니다. 전체 50권 발간 예정으로 현재 29권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인기 게임 ‘드래곤 빌리지’를 만화로 옮기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산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게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기획에서부터 벌써 2년 이상 공을 들여 벌써 200페이지 정도 작업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세계 최고 스토리텔러로 꼽히는 일본의 나가사키 다카시 작가에게 이야기를 받아 작품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가사키 작가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와 콤비를 이뤄 수많은 히트작을 선보이고 있는 스토리작가입니다. ‘마스터 키튼’을 시작으로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빌리 배트’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만화 편집/기획자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탑클래스 작가에게서 이야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황 대표와의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네요. 좀비물인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작화는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 작가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야 말로 파격입니다.
 
이를 두고 황 대표는 “언제나 도전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선 내년에 찬스플러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미국 시장에는 이미 출판 계약을 맺어놓은 상태이며 일본 쪽은 여러 출판사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하네요.
 
황 대표가 국내 만화 시장에서 만화 편집/기획자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웹툰이 국내 만화 시장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2000년대 이후에도집/기획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할까요. 황 대표는 해야 할 몫이 더욱 커졌다고 강조합니다.
 
“웹툰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지만 영화에 소재를 제공하는 역할 정도를 하고 있을 뿐 자체적으로 10년, 20년 이상 오랜 생명력을 갖는 작품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어요. 웹툰 쪽에서도 뛰어난 기획자들이 나와서 작품을 길게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해요. 만화가 나오면 대개 영화는 마지막 자리여야 해요. 애니메이션 판권 사업에 이어 팬시 사업이 있고, 드라마가 되고 또 영화가 나오는 등 산업을 다방면으로 끌고 가야 하는 데 현재 웹툰은 중간 과정이 드물죠.”
 
 
 
 
 
 
 
 
 
 
 
 
 
 
 
 
 
 
 
 
 
황 대표는 만화 편집/기획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첫째, 작가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가가 120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합니다. 작가는 기획자를 잔소리 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작가와 기획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라고 볼 수 있어요. 고부 관계가 좋으면 집안이 번성하고 좋지 않으면 집안이 망하잖아요? 기획자 입장에서는 작가를 이해시키지 못하면서까지 일을 밀어붙여서는 안돼요. 국내에선 기획자에 대한 예우를 해주는 풍토가 아쉬워요. 명예나 돈은 작가가 버는 곳이기 때문에 기획자에게는 최소한 의리는 지켜줘야 하는 게 그러한 점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저는 한국 만화와 일본 만화가 다른 점이 이 부분 같아요. 작가와 기획자가 서로 신뢰하니까 그만큼 뛰어난 작품과 성과가 나오는 겁니다. 모든 기획이나 작품은 95가 비슷합니다. 기획자는 나머지 5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한 걸음도 많습니다. 딱 반걸음만 앞서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순하게 만화를 만드는 곳이 아닌 만화를 즐기는 곳이라는 분위기를 갖고 있는 학산문화사 사옥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대원미디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유소 뒷길 건물 2층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업무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는데 퇴근하려고 나와 보면 정문이 닫힌 경우가 많아 담을 넘어 다녔다고 합니다. 어쨌든 학산은 법인 설립 5년 만인 2000년 동작구 상도동 상도역 인근에 7층 규모의 사옥을 짓고 둥지를 틀었습니다.
 
학산을 찾아가면 1층부터 이곳이 만화 출판사라는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만화를 보며 커피를 즐기자는 취지로 꾸며진 카페 코믹커즐(Comic Cozzle)이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2층에는 만화 전문 직영 매장이 있습니다. 2007년 3월 문을 열었습니다. 국내외 인기 만화 캐릭터의 스케치와 작가 사인이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4만권 안팎의 만화책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만화책만 꽂아놓은 게 아닙니다.
 
만화책 사이사이에 재미있는 피오피(POP)가 설치돼 있습니다. 작품마다 그 특성에 맞게 점장과 직원들이 손으로 종이를 오리고 글씨를 쓴 것들입니다. 만화 캐릭터 피규어도 곳곳에서 작품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황경태 대표는 코믹커즐에 대한 아이디어를 일본 만화 전문 매장에서 떠올렸다고 합니다. 제대로 만들기 위해 수차례 일본을 드나들었습니다. 또 일본에서 20여 년 동안 만화 전문 매장에서 일한 노다 마사토(46)씨를 점장으로 스카우트해 코믹커즐을 꾸밀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아이디어는 일본에서 얻었지만 일본 보다 매장을 훨씬 잘 꾸며놔 일본 만화 출판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반드시 거쳐 가는 장소가 됐다고 합니다. 만화 팬이라면 한 번은 들려볼만한 장소입니다.
한국의 만화 출판사를 찾아서
켜켜이 쌓아온 출판사의 전통과 가치를 만화책에도 담아내고 있는 창비
홍지민
2014.12.31
이번에 찾아간 곳은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창비입니다. 문학, 인문, 청소년, 어린이 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책을 선보이는 출판사입니다.
차근차근 의미 있는 울림을 쌓아가고 있는 사계절
홍지민
2014.12.02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대학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씁쓸한 일상을 담았습니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청소년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한 작품이 드물었던 터라 단번에 만화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1. 예술 만화 외고집의 길을 가는 미메시스
홍지민
2014.11.02
2000년을 전후로 국내 문학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만화 브랜드를 선보이며 국내 출판 만화 시장에 새 기운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빅3’인 서울·대원·학산이 대표하는 코믹스와는 달리 품격 높은 만화에 초점을 맞추며 국내 만화 시장의 작품 폭과 독자층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5년 등장한 열린책들의 ‘미메시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0. 우리 만화의 빈 고리를 메우고 있는 보리출판사
홍지민
2014.09.29
“보리에서 만화책을 발간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낯설어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작품수가 많지 않아 만화 출판사로 소개될 수 있을지 조심스럽네요.”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9. 한국웹툰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출판사, 재미주의
홍지민
2014.09.03
요즘 우리 만화는 웹툰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 입니다.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떤 작품들은 독자들의 사랑을 한껏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들은 쉽게 잊혀 지기도 합니다. 웹툰은 책으로도 만들어져 독자들과 만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다고 해서 모두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판사들은 소장 가치가 있고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8. 의식과 색깔에 취향을 보태가는 만화 전문 출판사 길찾기(이미지프레임)
홍지민
2014.08.12
뜨거운 여름을 맞아 찾아간 국내 만화 전문 출판사는 색깔 있는, 의식 있는 출판사로 정평이 난 ‘길찾기’입니다. 길찾기의 보금자리는 서울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 사이에 놓인 남태령 고개 너머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군부대 옆 삼거리로 들어서게 되면 유려한 자연을 벗 삼은 주택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길찾기 사무실도 바깥에서 보면 전원주택에 다름 아닙니다. 무심코 지나가다 보면 출판사가 있는 줄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7.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거북이 북스
홍지민
2014.06.27
일곱 번째로 탐방하는 만화출판사는 바로 ‘거북이북스’입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며 만화의 영역을 넓혀가는 출판사로 정평이 난 곳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6.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다 휴머니스트
홍지민
2014.06.10
휴머니스트는 만화 ‘전문’ 출판사는 아닙니다. 10여 년간 세상에 내놓은 만화는 모두 합쳐 100권에 미치지 못합니다. 휴머니스트의 전체 책 가운데 만화는 7분의 1정도에 불과합니다. 절반가량은 어린이 학습만화입니다. 그럼에도 ‘만화 출판사’로서 휴머니스트를 탐방하게 된 까닭은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5. 다음이 더 기대되는 개념 출판사 세미콜론
홍지민
2014.02.15
2000년 즈음부터 문예출판사들이 새 브랜드를 내세워 만화 출판에 뛰어듭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05년 문을 연 두 곳이 있습니다. 민음사의 ‘세미콜론(;)’과 열린책들의 ‘미메시스’입니다. 두 곳 모두 한 때 우리사회에서 사회 악(惡)으로 규정됐던 만화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4. 만화출판계의 용자 애니북스
홍지민
2014.01.29
‘애니북스’는 바로 그러한 용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장사가 되니까 지금까지도 용자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화 팬들이야 덕택에 그동안 ‘정발’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들을 즐길 수 있게 돼 그만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3. 후발주자지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학산문화사
홍지민
2013.12.24
국내 만화출판사 빅3의 한 축인 학산문화사는 일본으로 치면 슈에이샤(集英社)와 닮은꼴입니다. 탄생 과정이 그러합니다. 슈에이샤는 쇼가쿠간(小學館)에서 독립해 일본 3대 만화 출판사로 성장한 출판사입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펴냈던 1980~1990년대가 정점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요즘도 일본 3대 소년 만화로 꼽히는 ‘나루토’와 ‘원피스’, ‘블리치’를 선보이며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2. 1990년대 이후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움직인 대원씨아이
홍지민
2013.11.27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2. 1990년대 이후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움직인 대원씨아이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 빅3의 맏형 서울문화사
홍지민
2013.10.29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 빅3의 맏형 서울문화사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서론
홍지민
2013.09.24
이번 출판사 탐방이 한국 만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또 앞으로 만나는 우리 출판사 가운데 세계 만화 시장에 우리 만화를 널리 알리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름을 떨칠 출판사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