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만화 출판사를 찾아서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6.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다 휴머니스트
홍지민 2014.06.10
휴머니스트는 만화 ‘전문’ 출판사는 아닙니다. 10여 년간 세상에 내놓은 만화는 모두 합쳐 100권에 미치지 못합니다. 휴머니스트의 전체 책 가운데 만화는 7분의 1정도에 불과합니다. 절반가량은 어린이 학습만화입니다. 그럼에도 ‘만화 출판사’로서 휴머니스트를 탐방하게 된 까닭은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머니스트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분야가 바로 교양만화입니다. 쉽게 말해 어른들을 위한 만화, 남녀노소가 모두 볼 수 있는 만화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식과 교양을 전달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으며 국내 만화의 독자층을 넓히고 두텁게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위원석 휴머니스트 교양만화 편집주간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휴머니스트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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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출판사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낡은 건물과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네요.
 
 

휴머니스트는 새길, 푸른숲의 편집주간을 거치며 1990년대 국내 최고의 인문 출판 기획자로 각광받았던 김학원 대표가 2001년 꾸린 출판사입니다. 주로 역사와 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분야에 걸쳐 교양서를 내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책을 내자는 게 출판 원칙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낸 책은 서양 철학자 김용석 교수와 동양 철학자 이승환 교수의 대담을 정리한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입니다. 출판 시장에 뛰어든 지 불과 몇 년이 안 돼 국내 인문 출판사 브랜드 1위에 올랐습니다. 인문학자인 도정일 교수와 자연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4년간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며 융합의 화두를 던졌던 ‘대담’, 진중권 교수의 ‘미학 오디세이’ 완결판, 전국역사교사모임과 함께 만든 대안교과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휴머니스트만의 이미지를 쌓은 결과입니다. 올해 출간 20주년을 맞은 ‘미학 오디세이’는 원래 1994년 새길에서 처음 발간됐습니다. 당시 김학원 대표가 편집을 맡았다고 합니다.

만화 출판에 대한 지향점도 휴머니스트의 출판 원칙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굉장히 빠르게 정보가 전파됩니다. 출판이 거기에 따라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죠. 출판이 할 일은 독자들이 더 넓게, 더 깊이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교양만화도 그러한 관점에 맞춰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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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만화 등 각 분야 편집팀들은
대부분 3층에 모여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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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만화 분야 편집자들의 공간입니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공간이기 때문에
비좁아 보이기도 하지만 아늑하게 느껴지네요. 사무실에 문이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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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어린이 학습 만화의 히트 브랜드 ‘살아있는 교과서’ 시리즈입니다.
 
어린이 학습만화는 초창기에 휴머니스트가 주력했던 분야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휴머니스트의 교양만화 중 절반이 어린이 학습만화입니다. 출간 목록을 살펴보면 만화책은 이제껏 94권(세트 제외)이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45권이 어린이 독자층을 겨냥했습니다. 2003년 처음 발간한 만화책 또한 ‘초등학생에 딱! 과학상식 100배’라는 어린이 학습만화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은 어린이 학습만화 시장이 점점 뜨거워지던 때입니다. 신생 출판사로서 어린이 학습만화는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분야였을 것입니다. 첫술에 배불렀던 것은 아닙니다. 반응이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휴머니스트다운 어린이 학습만화를 찾아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용인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어린이 눈높이의 만화로 옮긴 ‘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시리즈가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후 휴머니스트는 한자, 과학, 세계사, 근현대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살아있는 시리즈’를 꾸준히 발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내놨던 어린이 학습만화는 휴머니스트 브랜드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린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휴머니스트다운 학습 만화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검증 받은 텍스트를 만화로 풀어내는 작업은 어린이 학습만화 외의 분야에서도 눈에 띕니다. 바로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입니다. 진중권 교수의 ‘미학 오디세이’를 만화로 재구성한 책이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현태준 작가와 이우일 작가가 각각 1권과 2권을, ‘십자군이야기’를 그렸던 김태권 작가가 3권을 맡아 저마다의 개성으로 스테디셀러를 새롭게 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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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 휴머니스트가 출간한 대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비중이 크네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하 조조록)을 빼놓고는 휴머니스트의 교양만화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휴머니스트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조조록이라는 것에는 절대 이견이 없죠. 휴머니스트가 만화 출판사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도 조조록의 성공 때문입니다. 조조록은 1997년부터 4년 동안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한겨레신문의 만평 코너인 한겨레그림판을 담당했던 박시백 작가가 13년 동안 빚어낸 대작이죠.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인정한 조선왕조실록(국보 151호)을 바탕으로 정사(正史)를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역사를 읽는 재미를 빠뜨리지 않아 갈채를 받았습니다. 2003년에 첫 권이 나왔고, 지난해 20권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조만간 누적 판매부수가 150만부를 넘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라는 이두호 화백의 말처럼, 조조록은 오로지 작가의 뚝심이 일궈낸 걸작입니다. 박시백 작가는 역사 드라마를 보다가 조선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됐고, 2001년 잘 다니던 신문사도 그만 두고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옮기는 대장정에 뛰어들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한글 번역판이 담긴 CD를 교재 삼아 공부를 거듭했다고 하네요. 또 자료 조사에서부터 그림 구성과 작업, 채색에 이르기까지 어시스턴트 없이 홀로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만 1000여명. 컷수만 해도 2만 5000컷이 넘습니다.

백무현 전 서울신문 화백이 중간에 다리를 놓으며 박시백 작가와 휴머니스트가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합니다. 박 작가가 3년간 공부하며 그린 첫 권 원고를 견본 삼아 보여줬을 때 김학원 대표는 조조록이 휴머니스트에 전기를 마련해줄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이 느낌은 그대로 현실이 됐죠. 출간 초기 어린이 학습만화 코너에 깔렸던 조조록은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5권부터 역사 코너로 자리를 옮겼는데 반응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조조록은 국내 교양만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사실 조조록 이전에는 교양만화, 그것도 역사를 다룬 교양만화라고 하면 어린이 학습만화를 의미했습니다. 조조록의 성공은 성인 대상 교양만화 시장을 열어젖히는 지렛대 역할을 한 셈이죠. 조조록은 지난해 부천만화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조조록의 성공은 작가의 뚝심과 독자의 응원, 만화의 힘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위원석 편집주간은 조조록을 경이로운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2077책에 달하는 조선왕조실록을 현재적인 제본 방식을 통해 300쪽짜리 책으로 만들면 약400권이 나옵니다. 보통의 독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읽어도 5년이나 걸리는 분량이죠. 역사학자들도 쉽지 않다고 하는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고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고 독자들이 흐름을 쫓기 쉽게 요리하고 또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하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통독의 힘이 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도 높게 평가하고 있죠.”

만화의 힘이 제대로 발휘된 작품으로도 평가했습니다.

“만화가 아닌 텍스트였다면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만 읽는 등 독자층이 제한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죠. 실제로는 조조록에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만화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캐릭터가 있어 이야기를 따라가기 쉬웠죠. 만화가 가진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하네요.

“초창기엔 한 해에 네 권까지 출간을 생각할 정도로 속도를 냈어요. 워낙 장기 프로젝트라 시간이 갈수록 작가의 피로가 쌓여 나중엔 8~9개월에 한 권 정도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후속권을 기다리는 대기 독자들이 큰 힘이 됐죠. 5000명 이상으로 분석됐는데, 이러한 대기 독자들이 책이 나오면 바로 구입하고 서평을 달아주곤 했습니다. 한 달 안에 1만권 이상 빠질 정도였어요. 독자 반응이 썰렁했다면 작가가 중간에 힘이 빠져서 못했을 거예요.”

위 편집주간은 나아가 조조록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뛰어넘는 교양만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유럽인에게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고, 중국인에게 삼국지가 있다면 우리에겐 조선왕조실록이 있습니다. 요즘 사극 열풍이 일고 있는데 그 모든 원천소스가 실록에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실록에 적힌 한 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읽어야 할 국민 교양 콘텐츠입니다. 독자들이 실록을 접하려면 조조록 만한 게 없어요. ‘먼나라 이웃나라’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출판사에서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외 그래픽 노블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휴머니스트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입니다. 현재까지 나온 작품은 8개로 종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만화 팬이라면 쉽게 지나치지 못할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2009년 8월에 출간된 ‘엑시트운즈’가 첫 작품이죠.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의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 이스라엘 출신 여성 만화가 루트 모단이 그렸습니다. 세계 만화 관련 상을 휩쓴 ‘페르세폴리스’로 이름 높은 이란 출신 여성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작품은 세 개나 됩니다. 휴머니스트에서는 2011~12년에 ‘바느질 수다’, ‘자두치킨’, ‘인생은 한숨’을 잇따라 출간했습니다. 만화계의 카프카로 평가받는 프랑스 출신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작품도 두 종류를 발간했습니다. 2010년 프랑스 만화 비평가·저널리스트 협회(ACBD) 평론대상을 받았던 명작 ‘신신’이 그중 하나입니다.

이밖에도 휴머니스트는 보기 드물게 웹툰을 출판 만화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정연식 작가의 스릴러물 ‘더 파이브’입니다. 작가가 직접 연출하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화제를 모았던 웹툰이죠. 앞서 휴머니스트는 정 작가의 또 다른 웹툰 ‘달빛구두’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웹툰을 출판 만화로 잘 만들어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출판사들이 있는데, 휴머니스트는 웹툰 출판에 최적화 되어 있지는 않은 상태에요. 웹툰 작가들은 책을 내는 것 이상의 콘텐츠 비즈니스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 데 저희는 부족한 면이 있어요.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웹툰 출판과 관련한 추가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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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드물게 휴머니스트를 통해 출판된 웹툰 ‘더 파이브’입니다.
 

어른을 위한 만화잡지에 대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휴머니스트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웹툰이 활성화되고 출판 만화 시장이 위축되며 그 많던 만화 잡지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2011~12년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와 함께 발간한 다큐멘터리 만화 계간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첫 도전이었습니다. 리얼리즘 만화의 한 갈래인 다큐멘터리 만화를 표방한 이 잡지에서 픽션에 머무르기 쉬운 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논픽션 영역에 도전합니다. 최규석, 최호철, 김홍모 작가를 포함해 젊은 작가 14명이 꼼꼼한 취재와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 고발적이며 사회성이 짙은 작품을 담아냈는데 아쉽게도 2호까지 내놓고는 발간이 중단됩니다. 만화계 안팎에서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으나 대중성을 담보하지는 못한 결과로 보입니다.

휴머니스트는 2년 만에 또 도전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한국만화가협회와 함께 국내 양대 만화가 단체로 꼽히는 우리만화연대와 손을 잡았습니다. ‘월간 희망 만화 무크 보고’를 만든 것입니다. 원래 우리만화연대는 내부 소식지 성격의 잡지 ‘우리만화’를 꾸준히 발간했는데 정부 지원이 끊기며 3년가량 휴간했습니다. 재발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식지를 뛰어넘어 시장에서 판매되는 잡지를 기획한 것입니다. ‘보고’에는 하민석, 홍승우, 이강주, 유승하, 정용연, FOE, 최인선 작가 등이 작품을 싣고 있죠. 지난 3월 창간호에 이어 지난달 말 2호가 출간됐습니다. 이 잡지가 흥미로운 것은 만화에 대한 담론과 비평 등 읽을거리도 제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월간 희망이라는 문구에서 지속적으로 잡지를 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나 ‘보고’ 모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빛을 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보고’는 단명했던 ‘사람 사는 이야기’보다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10호 정도는 지속적으로 발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상태라고 합니다. 연재 작품들도 단행본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고’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속성과 자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되네요.

“현실적으로 만화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더 많이 수렴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종이 만화가 생존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에요. 건강한 만화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만화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이 만화는 종이 만화만의 매력과 밀도가 있어요. 어떻게든 종이 만화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만화 생태계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조록 같은 성공 사례를 모델화하거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게 힘든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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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석 교양만화 편집주간이 재발견 추천작으로 꼽았던
‘전쟁의 역사’와 ‘정가네 소사’도 눈에 띄네요.
 

재조명 받아야 할 만화

위원석 편집주간은 그동안 휴머니스트가 선보였던 교양만화 가운데 재조명 받고 싶은 작품으로 ‘정가네 소사’(전3권)와 ‘전쟁의 역사’(전3권)를 꼽았습니다. ‘정가네 소사’는 정용연 작가의 작품입니다. 우리만화연대의 소식지 ‘우리만화’에서 연재됐습니다. 우리 근현대사 100여년을 작가 자신의 집안 이야기로 풀어내 주목받았습니다. 지난해 부천만화대상에서 우수만화상을 받기도 했죠. 정 작가는 무려 7년에 걸쳐 600쪽에 달하는 원고를 그렸다고 합니다.

남문희 작가가 그린 ‘전쟁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전쟁과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쟁, 진나라 패권 전쟁 등 세계사에 등장하는 주요 전쟁을 치밀한 고증과 인문학적인 시선을 통해 재현한 작품입니다. 경향신문 등에서 시사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던 남 작가는 2006년부터 국제신문에 연재했던 역사 교양 만화 모아 ‘전쟁의 역사’ 1권에 해당하는 ‘이런 전쟁 저런 전쟁’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전업 만화가로 복귀해 2년간 전쟁사 자료를 파고든 끝에 ‘전쟁의 역사’를 내놨습니다.

“워낙 내용도 좋았지만 작가들이 투입한 공력에 비해 독자 반응이 적었다는 것은 무척 아쉬워요. ‘정가네 소사’가 만약 유럽에서 나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정가네 소사’의 경우 후반 작업에만 1년 이상 걸렸습니다. ‘전쟁의 역사’도 한 권을 진행하는 데 1년 이상 걸렸죠. 내용을 제대로 소화해서 교양만화를 하려면 최소 6개월은 걸려요. 창작 과정이 노동집약적인 것에 견줘 작가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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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의 유년시절
 


이쯤해서 휴머니스트의 차기작이 궁금해집니다. 사실 휴머니스트는 최근 1년 가까이 교양 만화와 관련해서는 조조록 마케팅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방송, 이벤트 프로모션에 팟캐스트 방송까지 빡빡한 일정 탓에 새 프로젝트를 선보일 여력이 없었다고 하네요. ‘박시백이 그리는 삶과 세상’(전2권)과 ‘보고’를 내놓은 게 전부입니다.

요즘 다시 시동을 걸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포스트 조조록’을 꿈꾸며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새로운 교양만화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휴머니스트는 그간 원맨 형식으로 꾸려가던 교양만화 분야에 편집자를 1명 보강하기도 했습니다. 차기 작품은 프랑스 출신 만화가 에마뉘엘 기베르의 ‘앨런의 유년시절’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ACBD 평론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앞서 휴머니스트는 기베르의 걸작인 ‘앨런의 전쟁’을 펴내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앨런의 전쟁’은 열 여덟 살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병사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입니다. 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잉크를 떨어트려 번지게 만드는 잉크워싱 기법으로 그려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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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석 교양만화 편집주간입니다.
2010년부터 휴머니스트의 만화 분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위원석 교양만화 편집주간은 어린이 책 편집자 출신입니다. 1995년 웅진출판사에서 입사해 어린이 교양서, 그림책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푸른숲에서 5년 정도 어린이 출판 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후 프리랜서 기획자로 5~6년 정도 활동하다가 2010년 휴머니스트에 합류했습니다. 만화를 담당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조조록 15권이 만화 편집자로서 첫 작품이라고 하네요. 어린이 책과 만화는 굉장히 다른 분야이긴 하나 글과 그림이 종이 안에서 유기적인 역할을 하고 편집자 또한 글, 그림 모두에 관심을 갖고 조율 및 조정을 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공교롭게도 위 편집주간이 휴머니스트에서 합류한 뒤 어린이 학습만화 발간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등 휴머니스트가 내놓는 교양만화가 이전과는 구분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린이 학습 만화를 아예 접은 것은 아닙니다. 성인 대상 만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성인 교양서를 어린이 눈높이의 만화로 재구성하는 작업들은 계속 필요할 것 같아요. 브랜드 색깔에도 잘 어울리고, 또 잘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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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과 독자, 동네 주민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 휴머니스트 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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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레스토랑에도 휴머니스트 대표 작가들의 사진과 작품이 전시되어 눈길을 끄네요.
 


휴머니스트 사옥은 책 못지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탐방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독자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을 둔 출판사는 언제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동네 마실 나가는 것처럼 독자들이 출판사를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회사 건물에 만화 카페와 전문 서점이 있는 학산 문화사가 그랬습니다. 휴머니스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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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기자회견, 다양한 강좌가 열리는 강의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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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입구에 조성된 스튜디오입니다.
이곳에서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 방송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휴머니스트 사옥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성중고 사거리 인근입니다. 큰 길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회색빛 콘크리트가 그대로 민낯을 드러낸 건물이 솟아 있습니다. 외벽은 부분적으로 그릴 모양의 목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또 수십 년 됐을 법한 동네슈퍼와 이웃하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이색적입니다.

원래 휴머니스트는 정원이 딸린 아담한 2층 양옥을 리모델링해 본거지 삼고 있었습니다. 신사옥을 짓는 동안 합정역 인근으로 보금자리를 잠시 옮겼다가 2012년 8월 약 1년 반 만에 돌아옵니다.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새 건물은 업무를 위한 공간만 있는 게 아닙니다. 1층 이하는 독자와 작가가 마주할 수 있는 강의실과 시원한 맥주를 들이킬 수 있는 카페, 레스토랑 등 열린 공간으로 꾸려져 있습니다. 작은 공연 무대도 있습니다. 때문에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업무 공간도 계단을 활용한 반층 개념으로 만들어져 무척 흥미롭습니다. 계단과 계단으로 공간이 연결되는 데, 영국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기숙사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계단과 계단으로 공간이 구분되기 때문에 화장실을 빼놓고는 문이 없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출판계와 인연이 깊은 김준성 건축가가 설계한 휴머니스트 사옥은 지난해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올 여름 휴머니스트에 나들이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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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7.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거북이 북스
홍지민
2014.06.27
일곱 번째로 탐방하는 만화출판사는 바로 ‘거북이북스’입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며 만화의 영역을 넓혀가는 출판사로 정평이 난 곳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6.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다 휴머니스트
홍지민
2014.06.10
휴머니스트는 만화 ‘전문’ 출판사는 아닙니다. 10여 년간 세상에 내놓은 만화는 모두 합쳐 100권에 미치지 못합니다. 휴머니스트의 전체 책 가운데 만화는 7분의 1정도에 불과합니다. 절반가량은 어린이 학습만화입니다. 그럼에도 ‘만화 출판사’로서 휴머니스트를 탐방하게 된 까닭은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의 새로운 흐름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5. 다음이 더 기대되는 개념 출판사 세미콜론
홍지민
2014.02.15
2000년 즈음부터 문예출판사들이 새 브랜드를 내세워 만화 출판에 뛰어듭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05년 문을 연 두 곳이 있습니다. 민음사의 ‘세미콜론(;)’과 열린책들의 ‘미메시스’입니다. 두 곳 모두 한 때 우리사회에서 사회 악(惡)으로 규정됐던 만화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4. 만화출판계의 용자 애니북스
홍지민
2014.01.29
‘애니북스’는 바로 그러한 용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장사가 되니까 지금까지도 용자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화 팬들이야 덕택에 그동안 ‘정발’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들을 즐길 수 있게 돼 그만입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3. 후발주자지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학산문화사
홍지민
2013.12.24
국내 만화출판사 빅3의 한 축인 학산문화사는 일본으로 치면 슈에이샤(集英社)와 닮은꼴입니다. 탄생 과정이 그러합니다. 슈에이샤는 쇼가쿠간(小學館)에서 독립해 일본 3대 만화 출판사로 성장한 출판사입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펴냈던 1980~1990년대가 정점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요즘도 일본 3대 소년 만화로 꼽히는 ‘나루토’와 ‘원피스’, ‘블리치’를 선보이며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2. 1990년대 이후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움직인 대원씨아이
홍지민
2013.11.27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2. 1990년대 이후 국내 만화 출판 시장을 움직인 대원씨아이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 빅3의 맏형 서울문화사
홍지민
2013.10.29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1. 빅3의 맏형 서울문화사
한국의 만화출판사를 찾아서 - 서론
홍지민
2013.09.24
이번 출판사 탐방이 한국 만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또 앞으로 만나는 우리 출판사 가운데 세계 만화 시장에 우리 만화를 널리 알리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름을 떨칠 출판사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