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제 만화 토론회 : 신화와 만화( Mythe et Bande dessinee)-11월 18일-20일
한상정 2004.12.01


프랑스 중부, 매년 열리는 단편영화제로 잘 알려진 클레르-몽페랑( Clermont-Ferrand)시의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 대학교 산하, <근현대 문학 연구센터( Le Centre de Recherche sur les litteratures Modernes et Contemporaines) > 에서 국제만화세미나를 조직했다. <만화와 신화> 라는 주테마 아래에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에서 초빙한35명의 강연자들이 참여한 이 행사는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발이라면 모를까, 심지어 파리에서도 보기 힘든 대규모이다.


( 멀리서 흔치않은 산이 보이는 클레르 몽페랑 풍경)

강연의 형태는 불합리하게 보였는데, 오전의 전체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오후엔 아틀리에 1과 2로 나누어서 세부 테마를 다룬다. 각 강연자는 약 20분에서 25분 사이에 발표를 끝내야 하고, 여러 강연이 끝나고 나면 한꺼번에 질의의답 시간을 가진다. 시간이 짧은 부분이야 그렇다 치고, 아틀리에가 1과 2로 나뉘는 바람에 전체가 모여서 논의를 진행할 시, 참가한 아틀리에에 따라서 공통점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청중보다 전체 강연자의 숫자가 훨씬 많은, 따라서 강연회라기 보다는 발표자들이 각기 다른 사람의 강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토론회> 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났다. 흔히 벌어지는 행사가 아닌 만큼, 어떤 테마로 진행이 되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청중과 강연자 사이에 그다지 구분이 없다. 흰 뱃지가 강연자들)

첫째날인 18일 오전, 정말로 간단한, 3명이 말했지만5분이 절대 넘지 않는 이상적인 주최측의 인사를 끝내고, 첫번째 테마인 <만화속에서의 신화에 대한 이론적 접근들> 의 개막강연으로 파리 1대학의 피에르 프레노 드뤼엘( Pierre Fresnault-Deruelle)의 <만화에서, 신화적인 읽기를 내재하는 선행장치들>이 우선적으로 발표되었다. 언어로 된 신화가 아니라 만화를 신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화에서 신화의 단위라고 볼 수 있는 <신화소( mytho-gramme)>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예컨대 <변형> 이라는 것을 그 형태 중의 하나로 다룰 수 있지 않은가를 제기했다. 이어서 루뱅대학의 필립 마리옹(Philippe Marion)은 <만화의 신화적이고 매체발생적인 두 형태들 : 지하와 추락> 이라는 테마로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시간부족으로 두 형태들을 모두 다루지는 못하고, 왜 만화라는 매체가 이러한 <통로> 를 잘 보유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분석을 흥미롭게 제기했다. 다른 두 연구자들은 <만화에 있어서의 여행이라는 신화> 등을 이야기했지만, 청중들에 의해 비난을 받았다. 


( 첫번째 강연의 4 발표자 모습)
 
오후의 두 아틀리에 중 하나는 <신화/국가적 정체성> , <프로파간다> 라는 테마를, 다른 아틀리에는 <신화와 테마들> 로 나누어서 진행했다. 첫번째 테마는 <땅땅의 지팡이와 아스테릭스의 방패가 나타내는 그들의 국가적 신화> , <아스테릭스와 두 신체의 왕 : 국가의 창건 신화에 대한 패러디> , <스페인에서의 민주주의 과도기 시대에 출판된 만화에서 보여지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신화> , <이탈리아에서의 파시스트 시기(1933-1939)에 어린이용 만화에서 보여진 영웅 신화> , <이탈리아에서의 파시스트 시기(1922-1943)에 나타난 만화에서의 인종 신화> 등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 각 나라의 상황과 더불어서 분석이 진행되었다. 아틀리에2는 <에르제와 보이스카우트 또는 서구의 선(善)의식에 대한 신화> , <이카루스의 신화 : 만화에서의 상징물들> , <만화에서의 미로의 신화> , <만화에서의 릴리트(Lilith)의 형상)> , <만화에서의 신데렐라의 신화> 가 다루어졌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만화의 내용에만 치중, 만화가 가지는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측면, 즉 시각적 측면이 너무나 가볍게 무시되었다고 역시 비판받았다.
19일 두번째 날은 <세계에 대한 시선, 나누기> 라는 테마로 벌어졌다. 낭트 대학의 피에르 마송(Pierre Masson)은 <신화와 프랑스-벨기에 학파의 신화> , 박사과정에 있는 소장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히야오 미야자키의 신화-시학적인 거대 사가> , <드래곤 볼, 아시아적인 신화론과 미국적 대중문화> , 그리고 <토르칼, 영웅 환타지의 북구적인 헤라클레스>, <슈퍼맨 : 신화> 로 유럽, 미국, 일본, 만화의 3 영역을 대표하는 만화들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오후의 아틀리에 1은 <신화와 비정형적인 이야기들> 이라는 주제하에 <피터 팡크( Peter Pank), 또는 스페인의 비정형적인 만화에 의해 야기된 신화)> , <지미 코리건 : 신화와 세계 사이에서> , <우리가 에덴의 동산에서 나왔을때, 우리는 거기로 되돌아갈 수 없다 : 라방의 고양이, 광신도적인 만화인가 ?> 등 구체적인 작품들이 다뤄졌다. 아깝게도 예정되어 있었던 <만화에서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에서의 신화의 자리> 는 강연자의 불참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패로디, 비웃음>이라는 주제하에 준비된 아틀리에 2는 <조로도프스키(Jodorowsky)적인 영웅, 메시아적인 신화와 개인적 신화 사이>., <아프리가에서의 이탈리아적인 현재 : 위고 프라트(Hugo Pratt)와 근원에 대한 신화> , <영웅 신화의 희화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아바타 : 트롱세(Tronchet)의 레이몽드 칼뷔트(Raymond Calbuth) > , < 모르방( Morvan)과 뮈뉘에라(Munuera)의 메를랑(Merlin) 시리즈, 중세적 신화, 만화와 비웃음 :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Isuet)> 등 거의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작품이 그 연구대상으로 올라왔다. 
두 아틀리에가 끝나고 나서, 관객들은 꽤나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시나리오 작가이자 이론가이자 기타등등….너무나 다양한 활동영역을 자랑하는 브느와 피터즈(Benoit Peeters)가 직접 제작 감독한 크리스 웨어에 대한 단편 필름이 상영되었다. 생생한 근접취재로 작가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자신과 작품에 대한 설명, 거의 하루종일 집안에서만 작업하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만화를 그리는 건 정말 괴롭다…라는 걸 죽죽 늘어놓다가, 파리가 날라다니는 소리에 ≪ 저 파리를 쫓아내지 않으면 마치 내가 시체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되겠다 ≫라고 그가 이야기하는 장면에선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탄성이 일기도 했다. 상영이 끝난 이후, 모든 강연자들이 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꽤나 감동을 자아냈는데, 가장 연장자측에 속하는 프레노-드뤼엘은 이렇게 많은 연구자들이 모여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 30여년이 걸렸다면서 주최측과 소장 연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이틀째의 강행군을 마친 강연자들은 주최측에서 준비한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누구도 <모두 다 함께 건배>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마주 앉은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건배를 하며 또 계속되는 만화에 대한 잡답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또 헤어지는 모습은 개최인사에 몇십분을 견뎌야하는 문화에 익숙한 필자에게 묘한 풍경이기도 했다.
마지막인 토요일3일째, <신화의 재활성화> 라는 테마는 예정되었던 두 강연자가 불참하고 주최측의 다른 연구자에 의해 대체되었고, 한 강연자가 스페인어로 강연하는 무리를 범했음에도 불구(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잘 알아듣고 있었다는…경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브느와 피터즈의 <암울한 도시> 에 대한 강연은 이 암울함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생방송에서만 가능한, 어떻게 이 시리즈가 스퀴텐가 자신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결국엔 이 프로젝트 자체가 자신들의 방어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다양한 반응을 가져왔다고 고백함으로써, 오히려 이 시리즈가 또 다른 매체, 또 다른 상상으로의 매개로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중적인 훌륭한 발표가 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35명이나 되는 강연자의 20분씩의 짧은 발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 또한 일개 국립대학 산하에 있는 이 조직에서 어떻게 이 수많은 강연자의 여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지 않는가 ? 또 이 많은 수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역시. 심지어 파리에 있는 대학들의 산하단체에서도 하기 힘든 일을 말이다. 간단한 추최측과의 인터뷰로 알게 된 사실은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형태의 심포지움이 프랑스에선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는 이 센터가 박사를 끝낸 연구자들과 교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구비 보조의 형태로 여러단체들, 클레르 몽페랑시, 지역연합 보조비, 등등을 따와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좌.세미나 추최 연구소 입구)                                     (우. 강연장소앞에 붙은 귀여운 포스터)
 
만화라는 주제로는 처음 열렸지만 다양한 문학들에 대한 심포지움이 자주 열리는 편이라고 했다. 다른 강연자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이 대학과 연구소가 벌이는 적극적인 활동이 프랑스의 대학계에서 꽤나 신선한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고 한다. 일단 그들이 먼저 선정한 적정한 기준을 기반으로 해서 각 단체 학교마다 공문을 보내고, 강연을 할 수 있다고 답변하는 연구자들 중에서 그들이 선정위원회를 만들어서 인원을 추스려낸다고 한다. 따라서 약간의 비전문성이 보인 것도 무시할 순 없다. 이런 전체적인 지형도를 제외하더라도, 강연자들의 반응은 꽤나 긍정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함께 모여있는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5년만이네 10년만이네 하면서 말하는 노장파들은, 유럽만화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인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네, 저런 일이 있었네 등등의 뒷담화에서 시작해, 최근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들, 만화언저리에 있는 여러 출판사와 재단들에 대한 비판들, 서로의 근황들, 함께 벌일 수 있는 일에 대한 모색들, 등등, 나이와 경력을 초월해서 이 매체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그들은 만난 것이다. 비록 어떤 특정 방송물의 시선을 끌어내지는 못했어도(프랑스에서의 만화도 그리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당연하지만 말이다), 이 행사가 가지는 의미고 뭣이고 다 떠나서(그건 책으로 나올테니까) 30여년의 세월의 축적이 이런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만은 정말 부럽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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