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CNBDI 전시소식
한상정 2002.11.01

만화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태생이 건방지거나 뒹굴리즘에 물들어서는 결코 아니다. 관심있고 재미있는 전시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갈 정도로 성의도 있는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흥미를 유발시키는 전시란 정말...드물다는데 있다. "전시하다"의 동사는 엑스포제(exposer), 개개의 낱말로 분리시켜 해석하자면 ex(바깥), poser(위치시키다), 즉 둘을 합하면 일종의 "외화(外化)"를 의미한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포장술"이란 의미로 접근한다. 어떤 사물에 대한 기대를 제시하는 것, 어떻게 본다면 "있는 그대로"와는 다른 것,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주는 것. 그것만이 제대로 된 전시라고 강경하게 주장한다.

게다가,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전시는 더 까다롭다. 만화가가 그린 오리지널 버전과 만화책에서의 인쇄된 버전의 시각적인 차이가 얼마나 큰가 라고 자문해본다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예컨대 커다란 3차원적 공간을 차지하는 설치미술 작품을 떠올려보자. 이 작품에 대한 어떠한 서적도 그 작품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느낌을 대신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만화는 이미 대중과의 접촉공간인 만화책에서 그 인쇄상태와 인쇄능력을 가정하고 제작되기에 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권에 비해 서구권, 특히 프랑스의 경우는 그 차이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래피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 자체의 차이도 무시하지 못한다. 유럽권은 일반적으로 한 칸에 더 많은 것을 담기 때문이다.

또 상기해야 할 것은, 만화의 경우 오리지널 패널을 직접적으로 본다는 것은(즉 낱장으로 분리된 상태는), 이미 만화책으로 읽는 것과는 판이하다. 오른쪽 페이지에서 왼쪽 페이지로 넘어가는, 또는 페이지를 넘기도록 장치된 만화책과는 다른 평가기준이 작동한다. 따라서 "만화전시"란 까탈스러운 것이다. 만화책을 통채로 가져다 놓는 것도 무의미하며(개개인이 보는것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만화의 오리지널 패널을 가져다 놓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래피즘만이 만화의 전체가 아니며, 만화책으로 접할 때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므로). 따라서 만화의 전시는 다른 식으로 모색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화전시에서 오리지날 패널의 몇 십배, 몇 백배를 확대하여 전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 구질구질한 전제를 까는 건 그만두고, 새로운 전시를 한번 기대해보자. 프랑스의 CNBDI(국립 만화와 이미지 센터)에서 꽤나 큰 규모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관심가는 전시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CNBDI의 전시는 한번쯤은 관심을 기울 일만 해 왔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장이 바뀐 이후 최초의 큰 전시라서 더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름하야, <만화의 상상적 박물관들>. 올해 7월 3일부터 시작된 이 전시는 앙굴렘의 만화 박물관의 컬렉션들, 즉 오리지널 페이지들, 옛날 만화잡지들, 그리고 만화 초판들, 만화관련 물품들을 <자연사 박물관>과 <역사 박물관> 속에서 만날 것이다. 이 전시는 올해 10월엔 <미술박물관>, 그리고 2003년 1월엔 <민족학 박물관>과 <과학과 기술 박물관>, <현대예술 갤러리>을 더 덧붙일 것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거대한 박물관의 형태들을 따라 만들어진 임시적인 건물들에서 전시될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역사 박물관>에선, 1830년부터 1960년까지의 불어권 만화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이 기간은 5개로 분리되는데, 첫번째 시기는 1830년부터 1890년까지의 만화의 전(前)역사 시대. 만화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토페르(Topffer)에서 카랑 다쉬Caran dAche), 도레(Dore)등의 작품들이 선보여진다. 두번째 시기는 20세기 초. 얇은 만화잡지에 실렸던 최초의 히트 시리즈들이 선보인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크리스토프(Christophe)의 <프누이야르 가족(La famille Fenouillard)>이라든가, 팽숑(Pinchon)과 코메리(Caumery)의 <베카신느(Becassine)>등의 작품들이 해당되는 시기이다. 세번째는 1930년대. 프랑스에선 최초로 알랭 생 오간(Alain Saint-Ogan)이 그의 <지그와 퓌스(Zig et Puce)>라는 작품 속에서 말풍선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만화의 근대적인 형태를 프랑스에도 불러온 시기이며, 에르제(Herge)가 <땅땅>과 더불어 "단정한 선(ligne claire: 묘사선들이 단 하나의 윤곽선으로 말끔하게 그려지는 형태를 지시하는 용어이다. 에르제와 그 일파를 지칭하는 용어.)"을 선보인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만화의 황금시대이기도 했고, 미국의 많은 작품들-플래쉬 고든이나 미키 시리즈 등-이 프랑스에서 직접적으로 출판되던 때이다. < 그림 -네번째시기의작품들>네번째로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전멸했던 만화잡지들은 전후 서서히 활약을 재개했지만, 1949년 언론감시법이 설치되면서 그 창작활동이 줄어들었던 시기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는, 50-60년대. 이 시기는 간략히 말하면 벨기에 만화의 활약시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어권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블레이크와 모르티메(Blake et Mortimer), 가스통 라가프(Gaston Lagaffe), 뤽키 루크(Lucky Luke)등은 현재에도 그 영향력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을 정도로 유럽권의 만화에선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자연사 박물관>에선 만화의 등장인물들과 더불어 항상 존재해왔던 친숙하고도 때론 상징적이고 환상적이었으며, 패러디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들을 다룬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동물들, 예를 들자면 만화에 출현했던 강아지들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등등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배경의 묘사의 변화는 어떤가? 타잔이 활약하던 정글은 어떤 분위기 였으며, 미국만화의 슈퍼 영웅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건물들 사이를 뛰어다니던 그 도시의 분위기는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역시 이 박물관의 주제의 하나이다.

등장인물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어떻게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소리를 질렀는가? 만약 이런 묘사들이 말풍선에 의해서 더 풍부해진 것이 사실이라면, 각기의 말풍선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는가 역시 다뤄질 것이다. 또한 플로랑스 세스탁(Florence Cestac)이 이 시끌법석한 것들을 다시 한번 그려 넣을 것이라고 한다.


전시에 대한 선전만을 듣고 전시를 상상하는 것은 꽤나 벅찬 일이다. 그렇다고 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 앙굴렘까지 내려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전자의 전시 같은 경우라면, 너무나 일반적인 사적 분류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므로 솔직히 의심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작년의 <유럽만화의 거장들>이라는 전시를 통해서 거의 보여진 작품들일텐데, 그것을 대체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까? 박물관이라는 원주들이나 지붕을 배치해두는 장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텐데...말이다. 그러나 후자의 전시 같은 경우는 또 모른다. 물론 세부상황은 직접 가서 보아야만 알겠지만, 특히 만화의 배경 같은 경우는 사실 유럽권 만화의 장점 중의 하나이므로, 기대해 볼만 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여러 번 쓰인 적이 있는 테마이고...동물들의 변천사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자. 이 뻔한 것들은 어떻게 뻔하지 않게 만드는지, 내년 앙굴렘 페스티발에 가면 나머지 모든 남아있는 전시까지 확인해볼 수 있을 터이다. 이 전시들에 대한 평가는 내년 1월이 되어야 가능할 듯하다. 그럼,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전시가 있는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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