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23회 파리 책 살롱(Salon du Livre de Paris)의 하모니
한상정 2003.04.01


제23회 파리 책 살롱(Salon du Livre de Paris : 3월 21-26일)의 하모니

“선입관은 나쁜 것이다”라는 관념은 항상 어느 구석에 남아있었다. 그게 무슨 도덕적인 습관 때문인지, 또는 마치 국민교육헌장이 지금도 튀어나올 수 있듯이,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주입되어져서, 기억 너머에 단단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래 그래, 선입관이란 나쁜거지...”라고 쉽게 지껄일게 틀림없다. 뭐, 이유야 어떠하건, 무엇인가를 보러, 또는 하러가기 전에, 나는 최대한 선입견을 생성한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겼을까? 손가락 마디는 어떻게 생겼으며 웃을땐 눈 모양이 어떻게 될까...등등의 요사스런 생각을 한다고 하면, 행사의 경우, 지루하지 않을까? 몇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썰렁할까? 동선은 재대로 되어있을까? 1시간이면 떡을 치고도 남겠지? 등등의 주로 부정적인 상상을 하면서 접근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므로...라는 자기방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6월에 열릴 만화전문 페어인 <만화살롱(Salon de la bande dessine : 6월 12일-15일)>을 3개월 앞두고 열리는 <책살롱>에도 만화섹션이?
뭐냐? 얘네들은 그 비용 투자 하는 것만큼 경비가 빠지긴 하는 거야? 1월에 앙굴렘, 3월에 책살롱, 6월에 만화살롱...아예 살롱 섹션이 있어야 되겠구만...몇 출판사들이나 참가했으려나...흐음...왠만한 프랑스 출판사들은 다 나오는구만...어쩌구 중얼중얼...하면서, 살롱전문 전시장인 파리 엑스포(Paris Expo)로 갔다. 수요일 할인 특별할인 3유로. 뭐...이 정도면 올 만하네. 표 사려고 기다리는데 한 3분. 흠. 참을 만 해...표 내고 들어가는 입구에 고객들을 위한 쇼핑백과 살롱지도가 쌓여져있었다. 접객상황 O.K.

억! 크....다. 왕 넓고 높다. 역시 엑스포 제 1관일만 하구만...솔직히 만화를 제외한 북페어는 처음 와보는 것이라, 다른 나라의 거대 페어들은 어떻게 조직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랑스에서 열리는 북페어로선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고 판단이 가능하다. 5만 평방미터의 넓이, 22만명의 관람객, 1200개의 프랑스내 출판사, 200여개의 외국 출판사, 1500여 작가의 사인회 조직 등이 이 행사와 관련된 수치들이다. 발을 들이자마자 눈치채듯이, 이 살롱은 칭찬 받을만한 행사이다.

올해 플랑드르(La Flandre :프랑스와 벨기에에 걸쳐있는 지역을 가르킴)와 네덜란드의 문학이 초대되었다. 암스테르담의 저명한 건축사들이 설계했다는 이 「영예의 초대관」은...사람들로 들 끓는 전시장안의 푸른 물결이 펼쳐지는 인상을 준다. 거의 10미터를 초과하는 듯한 높이로 쌓아진 푸른 색의 언덕. 아이들은 그 언덕을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가면 놀고 있었고, 푸른 옆면에 각 액자들과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파도의 뒷부분에 지베르 죠셉(Gibert Joseph)이 엄청난 크기의 서점을 통채로 전시하고 있다. 마치 유명한 학생가인 생 미쉘(st. Michel)의 서점가를 그대로 옮긴 듯 하다. 가장 큰 서적, 앨범, 비디오 등의 판매점중의 하나인 프낙(FNAC)도 역시 가만있지 않는다. 「문학까페」라는 공간을 차지하고, 18개의 토론회를 운영한다. 역시 그 크기로 프낙에 버금가는 버진 메가스토어(Vigin Magastore)에선 「폴라(Polar) 관」을 구성, 추리와 서스펜스물에 관련된 콩쿨, 사인회, 작가와의 만남을 조직한다. 그리고, 만화팬들을 위해 조직된 「만화의 별들」은 만화관련 행사들이 벌어지는 모든 장소를 표시해준다.
만화 출판사들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독자적인 만화출판사들도 있지만, 반면 거대 출판사에서 사들인 만화출판사들은 자신의 모기업과 함께 자리를 해야하기 때문이리라. 여하간 이 별표들은 각기 떨어져있는 이 출판사들을 잊지 않고 방문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아무래도 최대의 인기를 끈 곳은 「만화관」에 위치해 있는 <아스테릭스 학교>이다. 아예 조그만 교실처럼 설치된 곳에선 시간표를 짜서 지도자와 함께 교실에 앉아 아스테릭스를 함께 보고 그림을 그려보도록 설치되어있다.

그 옆의 붉은 휘장은 <책보는 곳>...순간적으로 아, 만화방? 이라고 생각을 하다가, 막상 들어가보니 아이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곳이다. 안팎으로 아이들이 가득 차있어서 그 인기를 실감했다. 흘끗 흘끗 안을 쳐다보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하다. 그리고 조그마한 전시들. 앙굴렘에서 전시되었던 것도 있고, 또 새로운 앨범 출간에 맞춰서 출판사들에서 준비한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전시회>등, 비록 새롭고 참신한 면은 많지 않지만, 볼 꺼리는 충분하게 만들어주었다. 만화관 옆에 붙어있는 「영화 관」은, 그 아이디어의 참신함이 잠시 꽤나 웃음을 짓게끔 만들어주었다. 한 편에선 영화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토론회를 진행한다. 테마는 <소설을 영화로 각색시키기>, <문인들이 영화를 만들 때...> 등등이다. 그러나 이거야 뭐, 사실 그다지 놀랄만한 건 아니지 않는가? 그 내용만 충실하다면 얼마든지 상상해 볼만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바로 그 옆에 설치된...“무료 시력 테스트”이다. 그리고 그 앞의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안경, 또는 화면용 먼지제거 샘플”인 것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대체 누가, 영화관 앞에 이런 걸 준비할 생각을 했을까요? 너무 재미있죠?”라고 안내데스크의 이쁘게 화장하고 앉아있는 아가씨한테 물었더니, 한마디로 썰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칫!) 시각의 청결성이 보장되지 않고서 어떻게 눈을 즐긴단 말인가?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연극의 도시」, 「과학의 바(Bar)」, 「젊은이들의 토론회」, 「젊은이들의 공간」, 「예술의 사거리」등, 각 섹션별로 어마어마한 설치를 보여준다.
이 각 섹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상 도저히 언급 불가능, 몇 가지 재미있는 부분만 지적하자. 이 살롱 내부에 참석해있는 「문화부 관」. 여러 국립단체들(국립서적센터, 국립도서관, 정보공립도서관 등)과 함께 연결되어 설치된 이 부스에선 현재 제기되고 있는 서적관련 문제들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조직한 심도 깊은 세미나를 벌인다. 올해 초대된 국가와 지역의 작가들을 모시고 사인회를 벌이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정부의 독서에 대한 지원방침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온 슈바르츠 쿤스트(Schwarze kunst)라는 곳에선 아주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옛날의 인쇄기, 수동식 종이 만드는 장치 등을 모두 싸 짊어지고 와서, 그걸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주변에 둘러싸서 현대의 서적이 출판되기 이전의 인쇄기의 형태와, 발모양의 소쿠리에 종이가루를 얹어서 종이를 만들었던 옛날식의 방법에 호기심을 가득 발산했다. 외국의 출판사들은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대부분은 국가별로 부스를 매력적으로 꾸려서 들고 참여했다.

카스터망(Casteman), 델쿠르(Delcourt), 글레나(Glenat), 다르고(Dargaud/Le Lombard)의 거대 출판사는 물론, 위에서 언급한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알베르 르네(Albert Rene), 솔레이으(Soleil) 등의 그 뒤를 잇는 출판사들도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만화부스만이 아니라 일반 부스에서들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중요한 관객들에 대한 접대는 역시, <사인회>. 요일 시간별로 명기되어 있는 각 작가들의 사인회 시간표가 각 부스들의 가장 앞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부스 안으로 들어가면 각 출판사들의 만화책들을 나열해놓고 있다. 모든 이 전통적인 출판사들이 각기 망가 섹션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망가출판사들을 사들임으로 인해 각 부스 내부에서 망가를 보는 것도 이젠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재미있는 점은, 역시 망가만을 출판하는 망가 전문 출판사는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그런 면에서 한국의 만화출판사나 그 관련자들에게 6월의 만화살롱은 훨씬 더 흥미를 끌게 될 것이다. 올해 6월에 열릴 『파리 만화살롱』에선, 『카투니스트』라는 망가전문 살롱을 포함시킴으로써, 실질적으로 만화독자들의 반 가량을 차지하는 망가 독자들까지 다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선점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살롱이 풍기는 이 문화적인 풍부함, 도처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세미나들에 혹하면서도, 내세우진 않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만화만을 포함하고 있는 자세는 정말 싫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책만 보면 침을 흘리는 수집가로써, “살롱”이라는 상업적 행사를 오로지 책을 다룬다는 이유로 이렇듯 문화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저력엔 솔직히 좀...침을 흘렸다. 정부와, 산하기관들과, 출판사들과, 작가들, 그리고 그곳을 찾는 관객들과의 하모니.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도 곧 연주할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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