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1st Impact> 흘러간 시간, 다가올 미래.
웹투니스타 2018.06.26

돌배 작가가 네이버에서 2018년 봄 완결한 <계룡선녀전>은 그의 두번째 작품이다. 전작이자 데뷔작인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이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이 가지는 특징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이 갖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이야기 했다면,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기반으로 한 현재의 - 또는 환상속의 - 대한민국과 한국의 무속신앙에 이야기의 뿌리를 두고 있어 전작이 담고있던 이야기보다 더 깊고 넓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이루어진 전래동화를 재해석한 작품들 중에서 이 작품을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오래된 이야기를 재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별을 뒤집는다거나, 역할의 역전이나 시점의 전환으로 단순히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본 작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한, 돌배 작가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이런 내용들을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신화적으로도 풀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할 담론의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내용은 앞서 말했다시피 이 웹툰의 모티브가 <선녀와 나무꾼>에서 차용되었다는 점이다.
이 웹툰에서 날개옷을 빼앗긴 선녀(탐랑성 선옥남)는 인간계에서 남편을 잃고, 거대한 알로 환생한 아들 점돌과 호랑이로 환생한 딸 점순이와 함께 그가 환생하길 벌써 699년째 기다리고 있다.
이야기는 대학에서 꽤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재직중인 정이현과 그의 제자 김금이 추석을 맞아 함께 김금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계룡산 근처에 있는 김금의 고향집에 가던 중, 카페인을 급하게 찾는 정이현을 위해 계룡산에 있는 ‘선녀다방’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는 할머니의 모습을 한 바리스타 선옥남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다방을 떠난 정이현과 김금은 마치 봄이 온 것처럼 따뜻하고 아름다고 신비로운 계곡 아래 연못에서 목욕을 하는 탐랑성 선옥남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선옥남은 드디어 남편을 만났다는 확신을 하게 되고, 한양, 즉 서울로 정이현과 김금을 따라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대학의 미니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들 둘의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이런 전개 때문에 처음에는 이 웹툰이 가벼운 유머를 섞은 가벼운 웹툰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교수와 김금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와 선옥남의 정체, 그리고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주제부로 파고들며 무거운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선옥남은 선인이다. 그것도 북두칠성의 첫번째 별 탐랑성을 관장하는 선녀였다. 그녀가 ‘남편이다’라는 직감을 한 정교수와 그 제자인 김금도 전생에는 모두 선인으로 북두칠성의 거문성 이지와 북두칠성의 마지막별 파군성을 담당하는 바우새 였다. 이들은 벌을 받아 인간계로 내려왔고, 한명은 사냥꾼에게 쫓기다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훔치라고 말하는 사슴으로 그리고 한명은 그 나무꾼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선옥남은 그 날개옷을 도둑맞은 선녀였다.
하지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이야기의 흐름을 독자들이 매끄럽게 이해하도록 돕는 장치였을 뿐, 그 너머에 작가가 창조해낸 이야기가 진면목을 드러낸다. 바우새와 이지는 선인이 되기 전, 원래는 인간이었고, 모든 이야기는 그때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천년묵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근이 든 마을에서 버림받아 죽어가던 이지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직전, 북극성을 관장하는 북두성군은 그에게 이지라는 이름을 주고 선인으로 임명한다.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 작품은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설화를 웹툰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지만, 작품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소재들 때문에 특별하다. 이 웹툰을 관통하는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먼저 꼽자면 선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인간본위의 세상을 논한다는 점이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 아마도 니체의 풀 네임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보다 더 유명한 이 말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신에게서 찾던 중세를 지나 마침내 인간 본위의 세상이 열렸다는 일종의 선언 - 사실, 그 이전에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내 존재의 이유에 신이 끼어들지 않음을 선언하는 신호들이 있었지만 - 이다. 신과 인간을 분리하는 근대의 시작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탐랑성 선옥남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선인인 자신의 입으로 ‘신들이 사모하는 대상은 신들을 만든 인간’이라는 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선인은 인간의 믿음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전통적 관점에서의 선인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며, 인간은 물론 이 세상을 창조한 존재다. 창조자로서의 신과 그가 존재하는 세상, 그리고 그의 창조물인 인간계의 중간인 선계가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고 거꾸로 인간과 신을 잇는 존재로서의 신선을 이야기한다. 전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고정관념을 완전히 해체한 시도가 참신하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 100년 동안 알로 살고 있던 선옥남의 아들(의 환생)인 점돌이가 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마치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점돌이 부화하고 남은 알 속에는 우주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점돌은 말 그대로 한 세계를 파괴하고 뛰쳐나왔다. 그렇다면 점돌은 성스러운 것과 악마적인 것이 결합한 존재일까? 점돌은 태어나길 청룡으로 태어났다. 말하자면, 자연의 모습이다. 번개를 관장하고 비를 내리며 구름을 움직이는 청룡인 점돌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세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지 않을까.

다중우주론

점돌이 깨고 나온 알은 우리의 우주이며 동시에 우리의 우주가 아니다. 최신 과학이론 중 요즘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개념 이 바로 다중우주론이다. 우주가 여러 조건에 의해 갈래가 나뉘고, 다중의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점돌의 알이 담고 있는 우주를 보면, 이 작품에서는 다중우주론, 또는 거품우주론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중으로 분화하는 우주 중 하나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점돌이 깨고 나온 알이다. 앞서 말한 대로 모든 비극의 시작점에 있던 이면의 이야기를 분노에 찬 이지에게 보여주고, 그를 설득시키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준비해온 선인들의 모습은, 마치 입자 몇 개를 광속에 가깝게 가속해 서로 충돌하도록 만드는 것과 같이 기적과도 같은 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작가는 45화의 자료화면 이미지를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 CERN에서 직접 관측해 공개한 이미지를 차용했다. 선인과 전래동화의 이야기를 통해 최신 과학이론을 다루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고정관념 비틀기

지금까지 근대의 시작부터 최신의 과학이론을 다루었다는걸 받아들이기에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면, 작가는 이 다음 이야기를 준비해 놓으니 따라가 보자. 독자들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다중우주론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감탄하고 있던 자신들에게 작가는 우리에게 더 가깝지만 더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를 것들을 풀어놓기 때문이다.

작가는 <계룡선녀전> 전체를 통해 신선 - 선녀에 덧씌워진 고정관념마저 정면으로 비틀어버린다. 작품 후반부 에피소드인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사슴’ 에피소드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작가의 각색을 더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 작품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가진 이성애 기반 애정관계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신선이라면, 또는 선녀라면 당연히 이성애를 기반으로 애정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은, 파군성 바우새와 탐랑성 선옥남, 그리고 거문성 이지의 관계를 통해 산산조각난다.
신선 바우새와 선녀 선옥남을 질투한 선녀 이지’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잘 정리해두자. 이지는 누구를 왜 질투했을까? 아마 당신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선녀 이지는 바우새를 사랑했고, 때문에 선옥남을 미워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여성형으로 표현된 이지의 질투는, 당연히 바우새에 대한 연정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지점을 이지의 현신의 대사를 통해 부숴버린다. 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거문성은… 이지는 탐랑성을 마음 아프게 사모해 왔답니다.”

이지의 질투는, 바우새에 대한 연정이 아니라 탐랑성을 마음 아프게 사모했기 때문에 바우새에게 느끼는 질투의 감정이었다. 이지는 선계에서 벌을 받아 인간계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지가 벌을 받은 이유는 인간계에 직접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지, 같은 선녀인 선옥남을 사모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폴리아모리

심지어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선옥남은 현생에서 처음으로 남편의 환생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대상은 나무꾼이었던 바우새의 환생인 김금이 아니라 정교수의 환생인 이지였다. 여기까지는 이성연애 위주의 세계관을 비틀었다면, 당연히 동성연애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상상했던 사람들에게 성별을 바꾸어 환생한 이지의 모습을 보며 시대를 건너뛴 애절한 사랑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는 ‘폴리아모리’ 개념을 엿볼 수 있다. 다자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는 연애 당사자간의 합의를 기반으로 문자 그대로 다자간의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700년을 살아온 선옥남은 바우새와 이지 모두를 끌어안지만, 이지의 환생인 정교수는 ‘김금이 괴롭히면 나에게 오라’는 말로 모노가미(1:1의 연애, 또는 독점연애를 뜻하는 말)를 보여준다. 당사자 간의 합의에 기반에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돌배 작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 예를 들면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니 당연히 두 사람간의 이성애를 중심으로 다루지 않을까 - 했던 지점을 완벽하게 비틀어버린다.

앞서 말한대로 전작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배경 지역의 위치적 특성을 활용해 이민자와 해외 거주 노동자를 중심인물로 배치했다. 때문에 전작에서는 다양성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독자들이 받아들였지만, <계룡선녀전>은 오히려 전래동화 기반에 토속신앙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 때문에, 작가가 꾸준히 해왔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은 반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작품이 가장 놀라운 지점은 다양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전통적인 미덕인 정직, 협동, 배려, 소통과 같은 가치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잊고 사는 값어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전통적인 신선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부를 다룰 때에는 과감하게 전통적인 관점을 비틀지만, 그것이 어색하지 않다.
때문에 돌배 작가가 작품을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는 소중하다. 거문성 이지의 과거처럼 혐오와 분노가 가득한 시대에 따뜻한 시선으로 메시지를 명징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계룡산 주변 시골마을에 살지만 아일랜드산 싱글몰트 위스키를 좋아하는 김금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처럼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돌배 작가는 흘러간 시간들에 남은 이야기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최신 과학, 그리고 철학적인 담론까지 담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정신적 포만감을 주기는 당연히 쉽지 않다. 그렇기에, 오늘날 이 작품이 소중하다.
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부끄러운 인간의 우주적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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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대학 시절 소설 창작 수업에서 들었는데, 세상에는 두 가지 작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남의 사연을 자기 이야기처럼 쓰는 작가, 다른 하나는 자기 사연을 남의 이야기처럼 쓰는 작가란다. 이 구분은 또 가지를 친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자기 이야기 그대로 쓰는 작가와, 남의 일을 남의 이야기로서 쓰는 작가로. 이 갈래에서 전자는 1인칭의 주관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사소설(私小說)을, 후자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쓴 하드보일드 문체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소재/테마와 저자간의 거리가 얼마나 가깝고 먼지에 따라 정해지겠다.
<이 만화를 밀어 주세요> 우리 주변의 흔한 물건들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템’ 이라면?
이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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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익숙한 그 물건들이, 어쩌면 특별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특별한 ‘아이템’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만약 그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다면...?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8th Impact>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변론
웹투니스타
2019.01.04
밀레니얼 세대(The Millennials, Millennial Generation)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연구기관 퓨 리서치 센터는 밀레니얼 세대를 1981년부터 1996년생까지로 본다. 베이비 붐 세대(1946-1964)의 자녀 세대로, 어림잡아 말하자면 현재 40-50대가 10여 년 전쯤 ‘요즘 애들’이라고 부르던 세대라고 보면 된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대단히 박하다. 2013년 5월 9일자 표지를 보면 밀레니얼을 “ME, ME, ME Generation”이라고 표현했다. 자신밖에 모르고, 게으르며 자아도취적이고 독립심도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세대다.
경쟁 vs 상생
김재훈
2019.01.03
최근 웹툰계에 재연재의 바람이 불고 있다. 네이버 웹툰은 독자들이 선정한 7개의 완결 웹툰을 각각 월요일~일요일마다 배치하였고 다음 웹툰 또한 5개의 완결 작품을 다시 선보였다. 아직 역사가 깊지 않은 웹툰 시장에서 벌써 과거의 명작들을 그대로 다시 선보인다는 것은 이를 뛰어넘는 신작들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로망과 현실
김재훈
2019.01.03
수천 년 전 인류에게 ‘목욕’이란 문화가 생긴 이래로 여인들의 목욕이란 남성들에게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은밀하고 성스러운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기조는 신화와 동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만화로도 친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악타이온’과 전래동화의 ‘선녀와 나무꾼’이 대표적이다.
이태원 클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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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대개 음식이란 맛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기 마련이다. 웹툰 또한 보지 않고는 그 진가를 알 수 없는데, 이 작품은 겉만 보고 맛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맛을 보니 진짜 맛있는 음식을 놓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이태원 클라쓰’라는 작품이다. 제목만 봐서는 정말 내용을 1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냥 보기엔 학원물인 것 같기도 하고, 액션물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 설명도 대기업에 맞서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많이 만들어진 식상한 스토리... 하지만 실제론 뭔가 달랐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 익숙하기에 그랬던 걸까. 이 작품은 왜인지 모르게 끌리고 왜인지 모르게 통쾌한 그 맛이 있었다.
아 지갑놓고 나왔다
최윤석
2019.01.03
제목은 제목대로, 그림체는 그림체대로... 명확한 제목과 화려한 그림체가 쏟아지는 웹툰 시장에서 소외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호한 제목과 단순한 그림체였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 작품,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내었다. 어떻게 이 작품 ‘아 지갑 놓고 나왔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작품이 되었을까.
길들여지지 않는 중간계급과 사회적 빈민층의 연대
임재환
2019.01.03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노사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TV 뉴스영상 속에 비치는 노동조합원의 과격하고 전투적이며 단편적인 면모의 이면에는 인간적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이웃이 생존권을 위해 몸부림친 결과라는 사실을 ‘송곳’은 표현하고 있다.
소외된 자의 무대 '소년의 마음'
임재환
2019.01.03
누구나 마음 속에는 그늘이 있다. ‘소년의 마음’의 무대는 과거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두 개의 방을 가진 작은 아파트이다. 어린 남동생이 외로이 차지한 거실은 연출 효과를 위하여 흔한 쇼파와 텔레비전 등 생활오브제는 생략되었다. 소복이 작가가 작품 후기에 동생과 같은 어둠을 지닌 아이와 어른에게 가만히 다가가 건네는 이야기라고 밝혔듯이 이 작품은 한 소년의 마음 속 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엄마 냄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는 어른들의 반성문
김산율
2019.01.03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어쩐지 가슴이 저릿해오는 소년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 중략 … 이 책을 본 후 혹여나 독자들의 마음에 ‘다이’가 그러한 소년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면 창작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작가의 말 중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낸 내 친구, 마로를 기억한다는 것
김산율
2019.01.03
공교롭게도 국어사전에서 ‘작별’과 ‘상봉’은 반대어로 규정한다. 작별과 상봉은 그 현장의 완성된 결과이다. 작별이면 헤어짐으로서, 상봉이면 만남으로서 행위가 종결된다. 두 단어는 함께 쓸 수 없는 조합이다. 작별상봉이란 말이 실제로 쓰이는 현장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에서다. 이산가족은 헤어지는 당일 작별상봉을 한다.
그들이 얼굴을 찾을 때까지 : <그해 봄>에 부치는 글
한기호
2019.01.03
고백하자면 이 글은 절대 평론이 아니다. 또 고백하자면 이 글의 제목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루이스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그해 봄>이 다루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여덟 명의 목숨이 사라지던 해에 나는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던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입사식 구조로 본 <여중생 A>
한기호
2019.01.03
초반에는 나약한 여성에 불과했던 <브이 포 밴데타>의 ‘이비’는 ‘브이’가 의도적으로 만든 감옥에 갇혀 고문과 처형의 위협을 이겨낸 후 불의에 저항하는 의지적인 인물로 거듭난다. 이처럼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특정한 위치로 격상되는 이야기를 ‘입사식(入社式, initiation) 구조’라고 본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프랜차이즈의 다중 우주
박수민
2018.12.31
재작년 나가이 고(永井豪) 선생 데뷔 50주년과 마징가 Z 탄생 45주년을 기념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순히 원작 만화와 과거 TV 시리즈의 내용을 리메이크하는 이벤트로만 생각했다. 필자가 기대한 건 과거 만화책과 TV판과 극장판 시리즈를 통해 이미 익숙한 마징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4
박기준
2018.12.27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4 : 김수정, 김철호
<이 만화를 밀어주세요>2030세대의 현실을 담아내다
김성훈
2018.12.21
로맨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이 즐겨보는 장르물이다. <케세라세라>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품으로서 남녀 주인공의 밀고 당기기는 이야기를 통해 연재 기간 내내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취업과 연애 그리고 결혼과 임신 등과 같은 우리 시대 청춘들이 고민하는 부분들을 핵심적인 소재로 다룸으로써 비단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 독자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었으며, 덕분에 이른바 ‘K-COMICS’를 거론할 때 주요한 작품으로 내세울 만하다. 다만, 아직도 이 작품을 모르는 이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이들을 위해 <케세라세라>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만화를 밀어주세요>시대의 초상을 그린 만화가 오세영의 작품 세계를 만나다!
심상진
2018.12.21
2016년 5월, 만화가 오세영의 별세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신문사들은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뛰어난 문장력과 데생력으로 ‘만화가들의 선생님’으로 불린다.”, “한국적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한국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 “<토지>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작가”, “근·현대사의 풍경에 대한 한국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화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만화 작가 양성에도 힘써” 등의 내용을 실은 수십 개의 기사가 작가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만화가 오세영을 기렸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3
박기준
2018.12.20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3 : 이종진, 이해광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2
박기준
2018.12.12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2 : 고행석, 조관제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7th Impact> 수많은 나, 그 모든 것이 나
웹투니스타
2018.12.09
2018년도 이제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다. 날이 추워져 코끝이 시려지는 계절이 왔다. 연말은 가장 많은 ‘나’를 만날 수 있는 때다. 삶을 지나오며 만났던 사람들과 송년회를 참석하다 보면 그때그때 다른 나를 꺼내는 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친구, 직장 동료들을 만날 때의 내가 다르고, 또 가족과 있을 때의 내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