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⑨ 차성진
순정만화를 그리는 섬세한 남자
조관제 2018.07.11




여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순정만화’는 이야기나 플롯 면에서는 드라마로 만들기에 어울리는 만화 장르로서 여성 만화가들이 많이 그리는데, 흔하지는 않지만 ‘달려라 하니’의 이진주, ‘기생 이야기’의 김동화 같은 남성 만화가도 순정만화를 그렸다. 몇 안 되는 한국 순정만화계의 남자 작가 중에서도 전형적인 ‘순정만화 그림체’와는 다른 화풍으로 여성만화가에 못지않은 ‘섬세한 서사구조’로 많은 여성독자를 확보했던 차성진을 만났다.

만화가를 꿈꾸던 시골 소년

소년 차성진이 살았던 목포는 문화 환경은 열악해서 일반적인 문화를 향유 할 기회가 드문 곳이어서 만화 문화는 언감생심 접하기조차 어려웠던 곳이었다. 동네 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는 ‘덕환’이란 형이 차성진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선전실에서 새 영화 홍보를 위해 극장 간판에 그리던 작업이 신기해서 그 영향을 받아 상영되는 영화의 스틸 사진을 보며 따라 흉내를 내기도 했다. 차성진의 그림을 본 ‘덕환’이 형의 칭찬에 용기를 얻은 그는 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린 김영주 화백의 삽화가 좋아서 본격적으로 약화를 따라 그려보기 시작한다.


만화 대본소가 드물었던 목포에서 만화 대본소가 있는 곳을 먼 길 마다하고 차성진은 찾아가서 좋아하는 만화가의 캐릭터를 따라 노트에다 그렸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공부는 안하고 만화나 그리니 나중에 거렁뱅이 환쟁이 되려고 그러느냐’는 형 ‘차성진’의 역정을 들으면서도 만화에 빠져있었다. 차성진은 본명은 ‘차성재’였는데, 필명을 형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차성진이 살던 동네에도 만화 대본소가 생기자 공부보다 만화 대본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던 차성진은 ‘산호’의 <라이파이>‘ ’오명천‘의 <산디만> 같은 만화를 보며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캐릭터를 너무 좋아했다. 좋아하는 만화가들의 그림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만화대본소 주인 몰래 마음에 드는 장면이 실린 페이지를 면도칼로 오려 숨기려고, 평소에 앉던 자리가 아닌 구석으로 가서 앉는 수상해서 표시 나는 범행(?)을 눈여겨 본 주인에게 차성진의 범죄는 ‘들통’이 나서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 시절 만화가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차성진도 만화 단행본 뒤의 독자 투고란에 작품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를 한다. 그림을 모조지에 그려 투고하라는 안내문대로 종이를 구하려고 했지만 목포에서는 한지(韓紙)는 많았지만, 모조지를 파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모조지 대신 갱지에다 그리는데, 아무리 정성들여 그려보지만, 질 낮은 갱지에 잉크로 그린 그림은 당연히 번져서 망치기를 여러 번했지만 조심스럽게 다시 그려 열심히 투고를 했다. 뿐만 아니라 만화단행본이 파란색으로 인쇄 된 것은 파란색으로 그려야 하는 줄 알고 파란색 잉크로 그리는 등 인쇄에 대한 무지함으로 많은 실패를 한다.
부친의 작고와 수술로 노동력을 상실한 모친을 모시고 외지로 나간 형님 대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던 차성진은 당시 인기 작가였던 조원기의 작품 뒤 독자란에 실린 ‘견습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차성진은 그 동안 그려 두었던 습작을 조원기에게 보냈는데 ‘부모님 허락을 받고 상경 할 수 있겠느냐’는 답장을 받는다. 만화만 그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감당 하리라는 생각을 가졌던 차성진은 서울에서 살던 큰 누님의 도움을 받아 불광동에 있던 조원기 화실에 합류를 한다.

만화 인생의 첫 출발지 ‘조원기 화실’

조원기 화실에는 차성진을 비롯하여, 문하생으로 오창길, 이성운, 엄희자의 동생 미자 그리고 조원기, 엄희자 모두 여섯 식구였다. 문하생으로 가장 후배인 차성진은 문하생의 가장 기본적인 일, 먹을 갈고 원고 뒤처리를 하다가 ‘배경 맨’으로 승급되어 2년 정도하면서도 틈틈이 데생 실력을 키우는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원기는 <흰구름 흘러가는 곳>이란 작품에 필요한 노래를 풍금을 치며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며, 문하생들과는 점심시간 뒤에 탁구로 체력을 키우도록 했던 좋은 환경의 화실 생활은 문하생 생활 하는 데 첫 단추를 잘 끼었다며 감사한 것도 잠시, 차성진은 귀향을 하게 된다. 조원기는 물론, 부인 엄희자도 어려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원고료를 양쪽 집의 생활비로 나누고 있었는데, 한정 된 수입으로 많은 식구들과 생활하는 것이 벅차다고 생각한 조원기는, 식구 하나 줄이기 위해 제일 늦게 합류한 문하생 차성진을 나가게 한 것이다.

차성진의 귀향 소식을 듣고 그의 능력을 알고 있던 ‘하고명’이 연락해서 상경하도록 한다. 1964년 ‘배짱 좋은 소년’으로 데뷔한 하고명은 조원기와도 알고 지내던 사이로 ‘일류 멋쟁이’ 등으로 당시 인기 절정에 있었던 박기정, 이근철, 손의성, 엄희자 등과 어깨를 겨루었던 A급 만화가였다. 하고명은 상경해서 화실에 합류한 차성진에게 오자마자 데생을 시킨다. 문하생으로서 최상위 실력자에게만 맡겼던 데생을 하라는 말에 마음속으로는 부담이 되었지만, 차성진은 ‘덤벼들었다’
하고명 화실로 자주 놀러 오던 조원기가 차성진의 데생 실력을 보고 놀라 다시 조원기 화실로 돌아오라는 제의를 한다. 조원기의 제의를 받은 차성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두 분 선생님이 결정한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인기 만화가 두 사람의 합의가 되어 다시 조원기 화실로 합류한 차성진은 ‘배경 맨’에서 엄희자의 ‘데생 맨’으로 승급을 하게 된다. 풋내기 신인만화가로 데뷔 했을 때, 신인만화가 원고료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던 차성진은, 엄희자는 물론 민애니, 김기백 부부의 데생도 맡아하는 전천후 데생 맨으로 열심히 살았다. 특히 엄희자의 데생료는 신인만화가의 원고료보다 많아 차성진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집안 일로 어려울 때 목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말없이 가불을 해 주며 도와준 끈끈한 정이 있던 스승으로 기억한다.
차성진의 스승 엄희자는 1959년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학원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길영’이 설립한 <한국만화 연구소>에 다녔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만화 배우기 위해 수강료 대신 학원 청소를 하며 수강했었다고 한다.6개월 교육 과정이었던 학원에서는 신동헌, 신동우, 송영방, 정파, 임수, 김경언이 강사였고, 그 학원애서 배출된 만화가로는 엄희자를 비롯 한희작, 임웅순, 김마정, 박문윤 등 지금은 쟁쟁한 만화가들이 수강을 했다.


만화가 지망생 차성진은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 당시 만화가 지망생들은 외국 잡지와 만화를 많이 볼 수 있는 명동의 ‘딸라 골목’을 많이 찾았는데 차성진도 틈만 나면 이곳을 찾았다. 다른 이들이 즐겨 찾는 일본만화 보다 미국만화에 더 관심을 가진 차성진은 미군을 위한 신문 <성조지>에 실린, 캐나다 출신 미국만화가 포스터(Foster, Harolo Rudolf tjatp)의 유럽 역사 대하드라마 만화 <밸리언트 왕자>를 보고, 그의 정확한 인체 소묘와 시대에 맞는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보고 그림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만화계에서 만난 차성진의 친구들

당시 인기 만화가였던 이종진, 손의성, 오명천의 작품 뒤에 실린 독자 투고란에 작품을 투고해서 경합(?)을 하면서 알았던 손의성 문하 ‘김창호’와 자기 작품을 하면서 이종진 일을 도왔던 ‘김형배’는 문하생 생활을 하면서 친해진 사이이다. 차성진은 죽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문하생들이 만화가들에게 받는 불공정한 처우에 저항하기 위해 <신화>라는 동인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하게 된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선생에게는 따지지도 못했고, 선생의 말에는 무조건 따라야 했던 당시 문하생들은, 데생을 시키면서 귀찮다며 선생 자신의 작품 스토리까지 맡기면서 당연히 지급해야 할 스토리 고료는 한 푼도 챙겨 주지 않은 파렴치한 만화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문하생 사이에 벌어지는 선배들의 ‘텃세’도 문제였다. 실력이 뛰어난 후배가 들어오면 자신의 자리 보존을 위해 후배들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온갖 빌미를 만들어 쫓아 버리는 일 외, 문하생으로 생활하면서 겪어야 했던 불공정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 될 때였다. 문하생들이 겪는 많은 문제와 불만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모임으로 결성하였지만, 시절이 어수선하던 때라 모이려면 집회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이런 모임을 이용해서 ‘튀려는 선배들’도 불편했고, 이들의 운동을 끌어 줄 순수한 ‘향도’가 없어 <신화>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신인작가 ‘차영숙’으로 데뷔하다.

<한국일보> 만화 출판부가 생기면서 인기 만화가들이 빠져 나가자 독과점 만화출판사였던 <합동>은 작가 부족 현상을 메우기 위해, 만화가들 문하생들 중 화실의 ‘기둥’ 역할을 하던 이들을 부추겨 데뷔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문하생이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만화를 발표하고 싶어 했지만 만화가협회 회원이 아니면 만화가로 데뷔할 수가 없었던 시절, 실력 있는 차성진도 당연히 <합동>의 제안을 받고 ‘최후의 곡예사’라는 작품으로 신인 만화가로 데뷔를 한다.
만화가로 데뷔는 하였지만, 만화가협회에서 회원 등록을 위해서는 ‘병적 확인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병역 미필자였던 차성진은 ‘멘붕’에 빠진다. 차성진의 고민을 들은 합동의 편집장은 여성 필명으로 작품을 하라는 권유에 신인만화가 ‘차영숙’이란 이름으로 <하얀 천사>를 시작으로 작품을 한다. ‘하얀 천사’는 부친의 병환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본 간호사의 정성스러운 간병 모습을 보고,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인턴 의사와 간호사의 러브 스토리를 구상해서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나 통금과 검문이 있었던 시절, 밤늦게 술자리에 있지도 못하고,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 시외여행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입영 기피자 차성진은 ‘걸리면 인생 끝난다’는 불안감 속에서 새로 진행해야했던 원고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던 차성진은, 고향에서 병무담당으로 근무하던 국민학교 동창에게 의논을 했는데, 차성진이 ‘만화를 그린다’는 걸 알고 입영 서류를 보류시켜 놓았던 동창의 배려 덕분에 무사히 입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신인만화가 ‘차영숙’이란 이름으로 겨우 자리를 잡을 만한 시기에 입영 때문에 3년이란 공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차성진에게, 출판사에서는 계속 작품 발표를 할 수 있도록 후배 ‘김동화’에게 차영숙 이름으로 작업을 하도록 해서 이름이 살아남도록 해 주겠다며 안심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차영숙의 원고료는 차성진과 김동화 두 집 생활비로 나누어 쓰도록 했다는 고마운 말을 군 입대한 후에 들었다고 한다.
차성진이 제대할 무렵, 통금이 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24시간 개방을 하던 만화 대본소에서 청소년들이 숙식을 하며 부적절한 문제까지 일으키자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쓴 기사들이 언론에 노출이 되면서 사회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위축되어 제대 후 특별한 작업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성진은 김형배의 권유로 인기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의 만화 단행본 제작에 참여했고 ‘황금날개’ 만화 단행본 제작에도 참여했다.

차성진 특유의 순정 만화

남자 만화가인 차성진은 여성독자들이 좋아하는 큰 눈에 화이트로 수많은 눈동자를 그려 넣거나, 옷의 무늬, 액세서리, 머리카락 등을 섬세하게 그리는 순정만화 특유의 캐릭터와 서사구조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순정만화가 아닌 차성진만의 독특한 순정만화, 일반적인 순정만화 화풍과 구성의 차별화하는 방법을 서사 구조부터 방향을 다르게 정하기로 마음 먹는다.
정적인 순정만화 대신 주인공은 소녀로 하되 서정적이지만 동적인 내용을 담은 스포츠 만화를 생각하고 피겨 만화 <은반 위의 요정>을 발표한다. 그런데, 피겨 선수의 유니폼을 보고 노출 심하다며 무지막지한 심의기준을 빌미로 빨간 유성 색연필로 유니폼을 입은 장면 마다 삭제 표시를 해서 수정도 할 수 없도록 표시를 한 원고를 돌려주며 새로 그리게 한 것이다.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선수 유니폼인데, 만화니까 그리지 말라는 거냐? 그럼 선수들에게 트레이닝 복을 입고 경기를 하도록 그려야 하느냐’며 항의를 해서 그 다음 원고부터는 원고 이미지를 수정 없이 그대로 통과시켜 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인기 만화가 차성진을 잡지와 신문에서도 그냥 둘리 없었다. 보물섬, 어깨동우, 소년 중앙. 소년경향. 르네상스 등 그 시절 인기 청소년 잡지에서 청탁을 해서 웬만한 정기 간행물에는 차성진의 작품이 게재되고 되었다. 전태일 이야기, 노동과 공해 문제 등으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화두로 떠올랐던 시기에 만화가도 시대의 아픔을 만화로 역할을 하자는 의기투합해서 발표한 작품이 김형배는 ‘개 같은 세상, 꽃처럼 살고 싶다’는 의미의 <개꽃 화실>, 차성진은 남자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 <남자 무용수>를 <여고시대>에 발표를 한다. 당시 군사정권의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문화예술을 퇴보 시키는 것에 대해 은유적으로 비판한 내용의 작품이었는데 시국에 관련된 기미만 보여도 민감했던 때여서 편집장에게 ‘회사를 망하게 할 작정이냐?’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소년 조선>에 연재를 할 때는 주간지 월간지 원고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토리작가를 소개 받아 시작을 했는데, 불성실한 스토리 작가의 매 번 늦게 나오는 스토리로 인해 차성진은 원고 펑크는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새벽까지 작업을 헤서 택시로 신문사에 전달하는 피 말리는 작업을 했었다. 일간 연재를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을 지경에 다다른 듯해서 당시 주간이었던 ‘유경환’에게 연재를 끝내겠다고 하자 “전국 학교에 배달되는 신문 200만이면, 눈이 400만이 됩니다. 400만 아이들이 기다리는 작품을 중단하겠다고요?” 라는 말에 차성진은 두 달을 버티다가 끝을 맺기도 했다.

만화와 광고와 완구의 콜라보레이션
차성진 만화의 캐릭터에 호의를 가진 <국민은행>에서 ‘호산 광고기획사’를 통해 새로운 여성 통장 개발을 하는데 통장에 들어 갈 이미지를 그려 달라는 청탁을 받아 제작을 했다. 그러나 통장에만 들어 간 줄만 알았던 차성진의 캐릭터가 버스 광고를 비롯하여 벽보 등 여기저기에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은행 지점에서 제작한 판촉물 부채에도 만화가의 이름은 없고 <에이 아트>라고 제작사 명칭만 적힌 걸 보고 국민은행과 출판사 대표에게 내용 증명을 보내며 항의를 한다.
대기업 같은 은행에서 매체에 출연하는 인기인에게는 억대 개런티를 지불하면서, 만화 일러스트라고 해서 적은 원고를 지불하고 마음대로 이미지를 사용하는 처사가 만화가를 홀대 하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고 기획사의 본사인 <주간 만화>에서 편집장을 보내 선처를 호소를 했고, 국민은행에서도 차성진을 찾아 와서 ‘너무 몰라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새로 출시하는 ‘차세대 통장’에 실릴 이미지를 부탁을 해서 상당한 원고료를 받고 마무리 지었던 일도 있다.
90년대에는 문구업체 <영 실업>에서도 아동대상 순정만화 잡지 <나나>에 연재 하던 차성진의 작품 ‘루루와 지지’라는 만화를 보고 연락을 한다. 원고료는 잡지사에서 받고 별도의 원고료를 지원해 줄 테니, <영 실업>에서 개발한 ‘쥬쥬’ 인형을 주인공 캐릭터로 한 만화 연재를 부탁한다. 조건은 <영 실업>이 제작한 ‘쥬쥬’ 인형에 맞는 의상도 함께 디자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만화를 통해 ‘쥬쥬’ 인형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게 되고, 만화에 등장하는 인형의 새 옷을 보고 아이들이 옷을 사서 입히고 싶도록 해서 ‘쥬쥬’ 인형과 인형 옷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마케팅 기획이었다.
<영 실업>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한 작품에 차성진은 만화 캐릭터에 맞는 의상 디자인을 계절과 분위기에 따라 바꿔 구상하면서 2년 가까이 <나나>에 연재를 했는데, 작품은 단행본으로도 4권 출간 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다. 전성기 때 차성진의 작업량은 한 달에 20일 정도는 철야를 했으며, 졸리면 침 흘리며 잠시 책상에 엎드려 눈 붙였던 그 시절에 발표했던 단행본과 정기 간행물과 단행본 작품의 발표 연도는 정리하고 보관하는데 서툴기도 하고 관심이 없어 기억 하지 못한다는 말에 인터뷰어로서 차성진의 작품연보를 체계적으로 구하지 못해 아쉬웠다.

차성진과 우리만화연대
만화가가 평생을 그려도 다 못할 작품을 일 년에 400편을 출간하는 만화가가 있는 만화계의 공장체제에 대해 차성진과 김형배, 그리고 윤필을 위시한 작가주의를 표방하던 만화가들은 개탄스러워 했다. 문화 개방으로 인하여 쏟아지는 일본 만화의 수입으로 피폐해진 한국 만화계의 환경에 대한 걱정부터, 작품을 제품 찍듯이 만화 제작하는 것도 모자라, 출판사와 ‘공장 만화가’의 야합으로 능력 있는 신인들을 공장체제 시스템 속의 소모품으로 사장 시키는 상업적이고 비문화적인 유착 시스템에도 분개했다. 신인 만화가가 데뷔를 해 보려고 출판사에 찾아가면, 신인만화가들을 데뷔시키기 보다는, 신인 만화 원고료보다 공장 작가의 스텝으로 일하는 것이 수입이 낫다는 감언이설로 속여 스텝이 모자라는 ‘공장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보내는 만화계의 팽배한 상업적인 시스템에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만화를 상업적 가치로만 따지며 만화가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몇 사람의 의견에 공감하는 만화인들을 결합해서 1999년 1월 15일에 <우리만화연대>를 설립한다. 기존의 <만화가협회>는 만화가 중심 단체로, <우리만화연대>는 만화가, 만화 평론가, 애니 감독 등을 회원으로 했다. 잠재력 있는 신인 만화가들 이런저런 이유로 기성 작가의 문하생으로 안주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작품을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주저앉는 안타까운 현상을 타개하여, 그들을 도와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는 만화계 풍토를 만들어 한국 만화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자는 취지로 설립한 <우리만화연대>에서 차성진도 깊이 참여하며 활동을 했다.
차성진의 작품 세계는 SF, 역사, 연애, 성인, 스포츠, 코믹 등 다루는 주제의 폭도 넓었지만, 여성 작가 못지않은 감성표현에 능했던 만화가로 오랫동안 만화도시 부천시 원미동에 있는 만화촌 <만화창작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었다. 최근 시흥으로 화실을 옮긴 차성진는, 예전에 작업했던 ‘로보트 태권V’ 복간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오래 전부터 봉사하던 부천 시청 로비에 있는 만화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에 나와서 시민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다.

차성진(본명 : 차성재)

1947년 목포에서 태어남.
1968년 엄희자, 조원기 문하에서 수업.
1972년 간호사와 인턴의 이야기를 엮은 ‘하얀천사’로 데뷔.
1974년 군 입대. 군복무 중 ‘파리의 하늘 밑’ 완성.
1976년 김형배를 도와 ‘로보트 태권V’, ‘황금날개’ 등을 함께 함.
‘최후의 곡예사’, ‘폭풍지대’, ‘은반 위의 요정’, ‘칼레아나’, ‘꽃바람 속에’, ‘늑대와 여우’, ‘비운의 공녀 아도라’, ‘에디뜨 피아프’, ‘천년의 바다’, ‘명기열전’, ‘조막새의 꿈’ 외 다수 발표.
1993년 <영혼이 부르는 사랑의 찬가>가 ‘Edith Piaf(에디뜨 삐아프)’로 복간,
1996년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활동.
조선시대 유랑예인이었던 올 컬러 만화 ‘바우덕이의 이야기’ 발표.
2014년 앙굴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국만화기획전 지지 않는 꽃>전시회 <그날이 오면>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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