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6th Impact> 지워져버린 이름들을 위해
웹투니스타 2018.11.16



<그녀의 심청>, (Seri 글, 비완 그림)
전래동화는 꽤나 매력적인 소재다. 먼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서사의 개연성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에 창작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채워 넣을 공간이 많다. 돌배 작가의 <계룡선녀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각색해 현대의 감각으로 되살려낸 작품이고, 이전에는 아예 동화처럼 익숙한 이야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무적핑크 작가의 <실질객관동화>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낯설게 보기’가 아니라, 한 이야기의 테마를 살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전래동화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맥락 밖에서 생각해 새로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이후, 이런 재해석에 새로운 관점이 대중화됐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고전을 재해석하는 방식을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뿐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게르 브란텐베르그가 1977년에 발표한 <이갈리아의 딸들>(남성과 여성의 역할, 사회적 지위 등 모두가 전도된 사회를 그린 작품)과 같은 시도부터, 지금부터 소개할 <그녀의 심청>처럼 이야기에 빈 곳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채워 넣는 시도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Seri, 비완 작가가 저스툰에서 연재중인 <그녀의 심청>은 우리에게 익숙한 심청전을 당대를 살았던 여성이자 청년인 심청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현대인에게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심청전은 조선 후기 한글로 쓰인 작자 미상, 연대 미상의 한글 소설이다. 다양한 판본으로 아직까지 전해지는 심청전의 줄거리는 심봉사가 젖동냥하며 키운 딸이 바르고 고운 아이로 자라 공양미 300석에 팔려가게 되자 공양미를 대신 내주겠다는 장승상부인의 말을 거절한 뒤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인당수 아래에서 용왕을 만나 다시 돌아와 황후가 되어 아버지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심청전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청이는 왜 공양미를 대신 내주겠다는 장승상부인의 말을 거절했을까? 거기에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심청은 없다
작품은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당연히 모두가 심청이라고 생각했을 주막에서 일하는 아이는 그냥 엑스트라일 뿐이었고, 청이는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다. 엉킬 대로 엉켜 엉망진창인 산발머리, 구걸을 하러 다니느라 굽은 등과 거친 손가락.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엉망인 차림새. 제대로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한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변변한 집도 없어 강가에 움막을 만들어 살고 있는 청이의 모습이다. 청이가 어릴 때는 사정을 딱하게 여겨 도와주던 사람들도 시간이 가고, 청이가 자랄수록 점점 차가워져 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서 끼니를 겨우 때우는 청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녀의 심청>은 이런 당연한 일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출발한다. 도대체 어떻게 끼니조차 때우지 못해 구걸을 해야 했던 청이가 열여섯이 되면 알아서 몸가짐이 바르고 예의범절을 아는 효녀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녀의 심청>은 이런 궁금증에 대해 합리적인 해석을 통한 해답을 내놓는다. 당연히 청이는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사느라 거친 아이가 되었고, 예의범절, 바른 몸가짐처럼 ‘살아남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담벼락 안쪽의 법도는 전혀 모르는 아이가 되었다. 대신 들키지 않고 소매치기를 하는 방법, 온 힘을 다해 싸워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선 아무런 해답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배운 청이는 누구도 믿지 않고, 마음속은 진흙탕처럼 질척거려 숨쉬기가 어렵게 만드는 삶을 살아온 아이였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공양을 드리는 절 몽은사에서는 멀끔하게 깨끗한 승복을 입은 화주승이 ‘여자라 업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열심히 공양을 드리고 업을 쌓으면 남자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세상에서, 자꾸만 마음속에 차오르는 흙탕물이 견디기 어려웠던 청이는 집에서 ‘자신이 눈을 뜨면 과거에 급제해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세상모르는 헛소리만 하는 아버지 때문에 또다시 흙탕물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바닥에 떨어져 더러워진 밥을 씻던 청이는 달을 바라보고 다른 무엇도 아닌 부디 ‘이 삶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빈다. 아버지가 눈을 뜨는 것도, 남자로 태어나는 것도 아닌 그저 이 삶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론 내지 못하고 되뇌던 순간, 누군가가 같은 소원을 비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마치 연꽃이 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물속에서 기절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재취 감으로 장승상이 들였다는 어린 신부, 그러니까 심청전 속 장승상 부인이었다. 그리고 그를 구해준 덕에 초대받은 청이는 간만에 배 터지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부의 모습은 마치 꽃 같았다. 마을에 혼기가 찬 여성들이 모두 가서 머리에 꽃을 꽂아주는 동안에도, 그의 모습은 마치 꽃 같았다. 그리고 혼례가 있던 그날 밤 장승상이 갑자기 쓰러진다. 그 다음부터 인당수에 안개가 끼고, 배는 길을 잃고 길을 가지 못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불공을 드리러 온 장승상 부인에게 화주승은 ‘재물을 탐해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이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다.

<그녀의 심청>이 캐릭터를 그리는 법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전과는 다르다. 원래의 심청전이 집안을 말아먹은 능력 없는 아버지라도 할 수 있는 한 극진히 모시며, 황후가 되어서도 아버지를 잊지 않는 청이의 효심을 칭송하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인간 심청의 모습을 다룬다. 동시에 장승상부인과 뺑덕어멈 등 조연들을 재조명한다. <그녀의 심청>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 바로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많은 서사물들은 남성 캐릭터에게 ‘이해받아야 할 구실’을 많이 만들어줬다. 덕분에 남성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개연성이 부여된 캐릭터들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배경 속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변화는 도드라지는 반면, 남성 캐릭터들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돋보이지 않는다. 뺑덕어멈은 중년에서 청이 또래로 각색된 승상부인과 더불어 <그녀의 심청>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캐릭터 중 하나다. 원작에서 악인으로 묘사되는 뺑덕어멈은 작품 속에서 ‘덕’이라는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아이를 홀로 키우던 뺑덕어멈은 덕이를 데리고 다니면 ‘아비도 모르는 자식을 데리고 다닌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이를 집에 홀로 두고 일을 했고, 그러다가 집에 불이 나 아이가 온몸에 화상을 입자 ‘아이를 팽 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닌’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원전에서 뺑덕어멈은 심봉사의 재물을 탐해 끝내는 모든 재물을 들고 다른 남자와 도망친 악인으로 묘사됐다.


<그녀의 심청>은 정반대로 캐릭터를 구축한다. 여성 캐릭터들에겐 반드시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지만, 남성 캐릭터들은 ‘원래 그런’ 캐릭터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이런 전형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이 승상부인의 오빠와 심봉사다. 과거의 모습이 나올 때에도 현재와 다르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는 오빠와 심봉사는 일관성을 가진 캐릭터로 변화의 가능성이 소거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독자들은 이런 모습에 일종의 충격을 받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두텁게 작품을 보는 필터로 작용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갈등을 쌓고 해소하는 데에도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승상부인과 가깝게 지내게 된 청이가 겪는 갈등 또한 여성-여성의 갈등구도에서 그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갈등의 원인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장승상부인과 며느리의 갈등이 일단락된 25화에서는 마지막 컷에서 ‘우리는 진짜 적에게 이긴 것일까?’라고 묻고, 26화에서는 ‘여자가 제일 무섭다’는 말에 청이가 ‘마님이 누굴 때리거나 죽이기라도 했어요? 따지고 보면 그날 칼부림을 한 아드님이 제일 무섭죠...’라고 대답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지워진 이름들을 위해
그러나 이것은 작품을 만드는 방법론일 뿐, 작품 속 인물들에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작품 속에서 청이와 승상부인은 장승상댁에서 특별히 만들어 두었다는 여성들을 위한 사당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모셔진 위패들에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한 줄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어떤 삶을 살았던 개인이 아니라, 현숙한 아내이자 자애로운 어머니, 정절을 지킨 여인이었다는 따위의 말만이 그들을 기리는 전부였다는 것을 확인한 청이와 승상부인은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면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메인 테마는 ‘이름’이다. 지워진 이름들이 머무르는 사당이 청이와 승상부인이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설정이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여성들이 소비되는 방식은 끔찍하다. 작품 서두의 혼례 장면에서 나오는 ‘꽃’에 여성을 비유하는 장면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화주승은 청이를 두고 ‘꽃 중에 제일인 연꽃 같다’고 청이를 평하는데, 청이는 ‘그깟 발깔개’라며 분개한다. 부처를 그린 그림에서 연꽃은 부처가 밟고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결국 꽃 중에 최고라고 해 봐야 부처가 발깔개로 쓰는 꽃밖에 더 되냐는 청이의 분노는 비완 작가의 유려한 작화를 통해 절절하게 전해진다. 승상부인이 청이에게 ‘모두에게 사랑받도록 해 주겠다’며 몸가짐을 가르치고, 옷가지를 선물해주자 정말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 것을 느낀다. 사람들을 청이를 ‘심청’이 아니라 ‘여자’로 대하기 시작한다. 늙은이들이 농담이라며 ‘첩으로 들어오면 어떠냐’고 묻는다거나,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성추행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겪으면서 청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을 포기한다.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도화동에 사는 건달들의 태도다. 작품 초반에 등장한 건달들은 청이에게 주먹을 휘두르지만, 이때는 청이를 성희롱한다. 폭력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 폭력이라는 본질은 그대로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심청’이라는 이름이 있었을 때의 폭력과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었을 때의 반응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처럼 <그녀의 심청>은 서사 전체를 활용해 이 ‘잊혀져버린 이름’들을 이야기한다. 원전인 심청전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는다. 장승상 부인, 뺑덕어멈과 같은 이름은 그들의 이름이 아니다.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어머니라는 것이 이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심청>은 집요하게 이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조명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한 두 사람을 통해 ‘여성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앞서 이야기한 2015년 페미니즘의 바람 이후 떠오른 슬로건 중 하나는 “우리는 서로의 용기”라는 말이다. 여성이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고, 서로를 위해 연대를 선언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시대의 흐름을 여성의 이름을 지워버린 전래동화 심청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름은 서사의 매개일 뿐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요소로도 사용되는데, 바로 승상부인의 이름이 그렇다. 용왕의 화를 풀도록 성대하게 연 축제에서 승상부인은 가면을 쓰고 춤을 춘다. 그리고 가면이 벗겨져 정체를 들키고 나서, 이름을 들려 달라는 청이에게 “내 이름은...!”이라고 말한 다음 말을 끝맺지 못한다. 이들이 과연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백합’ 장르의 활용

여성간의 로맨스를 그린 장르를 넓게 GL(Girl’s Love), 또는 ‘백합’이라고 부른다. 세부적인 장르의 구분보다, 이 작품이 로맨스로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은 작품을 보는 재미 중 하나다. 이 작품은 Seri 작가가 심청전 원전을 읽다가 승상부인이 공양미 300석을 대신 내준다는 이야기를 거절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뒤 청이를 그리워하며 시를 지어 노래 부르고, 청이의 초상화를 걸어 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는 구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내가 너를 여자로 만들어 줄게”, “내가 너를 살찌우면 그만큼은 내 지분이 되는 건가?” 같은 대사, 31화의 자수를 가르쳐 주는 장면 등에서는 둘 사이에 묘한 성적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로맨스를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두 사람간의 연대’보다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잠시 이야기했던 며느리와의 일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이와 승상부인이 한층 가까워지도록 하는 역할을 했지만, 그 승리가 둘의 로맨스를 완성시키지는 않는다. 마치 ‘썸 타는’ 관계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둘의 관계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공양을 드리러 갔다가 가마가 부숴져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절 앞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청이의 모습이라던지, 그런 승상부인을 집까지 업고 가는 청이의 모습은 마치 로맨스 소설에서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녀의 심청>은 고전 소설이나 전래동화를 각색하는 다양한 시도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전통적 요소를 완전히 뒤집어 우리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장면들은 눈에 익은 형태를 하고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굉장히 신선하다. 이런 신선함을 가진 이야기를 비완 작가의 뛰어난 작화와 색 활용, 그리고 매끄러운 만화적 연출로 훌륭한 만화로 만들어냈다. 때문에 2018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되었다. 더군다나 모두에게 익숙한 ‘심청전’을 활용함으로써 주인공들의 특수한 경우가 아닌, 좀 더 폭넓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삼은 것이 이야기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지워져 버린 여성들의 이름을 되찾고자 하는 현대의 흐름을 짚어냈다.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심청전 안에서 설득력을 갖추는 모습이 인상깊다. 이 작품 자체가 2015년 이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소위 ‘페미니즘 플로우’의 연장선에 있다. 작가는 그동안 남성 캐릭터에 수없이 핑계를 만들어주던 관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성 캐릭터를 같은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심청>이 보여주는 통쾌한 한방이다.
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부끄러운 인간의 우주적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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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대학 시절 소설 창작 수업에서 들었는데, 세상에는 두 가지 작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남의 사연을 자기 이야기처럼 쓰는 작가, 다른 하나는 자기 사연을 남의 이야기처럼 쓰는 작가란다. 이 구분은 또 가지를 친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자기 이야기 그대로 쓰는 작가와, 남의 일을 남의 이야기로서 쓰는 작가로. 이 갈래에서 전자는 1인칭의 주관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사소설(私小說)을, 후자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쓴 하드보일드 문체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소재/테마와 저자간의 거리가 얼마나 가깝고 먼지에 따라 정해지겠다.
<이 만화를 밀어 주세요> 우리 주변의 흔한 물건들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템’ 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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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5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익숙한 그 물건들이, 어쩌면 특별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특별한 ‘아이템’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만약 그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다면...?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8th Impact>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변론
웹투니스타
2019.01.04
밀레니얼 세대(The Millennials, Millennial Generation)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연구기관 퓨 리서치 센터는 밀레니얼 세대를 1981년부터 1996년생까지로 본다. 베이비 붐 세대(1946-1964)의 자녀 세대로, 어림잡아 말하자면 현재 40-50대가 10여 년 전쯤 ‘요즘 애들’이라고 부르던 세대라고 보면 된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대단히 박하다. 2013년 5월 9일자 표지를 보면 밀레니얼을 “ME, ME, ME Generation”이라고 표현했다. 자신밖에 모르고, 게으르며 자아도취적이고 독립심도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세대다.
경쟁 vs 상생
김재훈
2019.01.03
최근 웹툰계에 재연재의 바람이 불고 있다. 네이버 웹툰은 독자들이 선정한 7개의 완결 웹툰을 각각 월요일~일요일마다 배치하였고 다음 웹툰 또한 5개의 완결 작품을 다시 선보였다. 아직 역사가 깊지 않은 웹툰 시장에서 벌써 과거의 명작들을 그대로 다시 선보인다는 것은 이를 뛰어넘는 신작들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로망과 현실
김재훈
2019.01.03
수천 년 전 인류에게 ‘목욕’이란 문화가 생긴 이래로 여인들의 목욕이란 남성들에게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은밀하고 성스러운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기조는 신화와 동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만화로도 친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악타이온’과 전래동화의 ‘선녀와 나무꾼’이 대표적이다.
이태원 클라쓰
최윤석
2019.01.03
대개 음식이란 맛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기 마련이다. 웹툰 또한 보지 않고는 그 진가를 알 수 없는데, 이 작품은 겉만 보고 맛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맛을 보니 진짜 맛있는 음식을 놓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이태원 클라쓰’라는 작품이다. 제목만 봐서는 정말 내용을 1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냥 보기엔 학원물인 것 같기도 하고, 액션물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 설명도 대기업에 맞서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많이 만들어진 식상한 스토리... 하지만 실제론 뭔가 달랐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 익숙하기에 그랬던 걸까. 이 작품은 왜인지 모르게 끌리고 왜인지 모르게 통쾌한 그 맛이 있었다.
아 지갑놓고 나왔다
최윤석
2019.01.03
제목은 제목대로, 그림체는 그림체대로... 명확한 제목과 화려한 그림체가 쏟아지는 웹툰 시장에서 소외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호한 제목과 단순한 그림체였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는 작품,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내었다. 어떻게 이 작품 ‘아 지갑 놓고 나왔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작품이 되었을까.
길들여지지 않는 중간계급과 사회적 빈민층의 연대
임재환
2019.01.03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노사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TV 뉴스영상 속에 비치는 노동조합원의 과격하고 전투적이며 단편적인 면모의 이면에는 인간적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이웃이 생존권을 위해 몸부림친 결과라는 사실을 ‘송곳’은 표현하고 있다.
소외된 자의 무대 '소년의 마음'
임재환
2019.01.03
누구나 마음 속에는 그늘이 있다. ‘소년의 마음’의 무대는 과거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두 개의 방을 가진 작은 아파트이다. 어린 남동생이 외로이 차지한 거실은 연출 효과를 위하여 흔한 쇼파와 텔레비전 등 생활오브제는 생략되었다. 소복이 작가가 작품 후기에 동생과 같은 어둠을 지닌 아이와 어른에게 가만히 다가가 건네는 이야기라고 밝혔듯이 이 작품은 한 소년의 마음 속 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엄마 냄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는 어른들의 반성문
김산율
2019.01.03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어쩐지 가슴이 저릿해오는 소년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 중략 … 이 책을 본 후 혹여나 독자들의 마음에 ‘다이’가 그러한 소년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면 창작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작가의 말 중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낸 내 친구, 마로를 기억한다는 것
김산율
2019.01.03
공교롭게도 국어사전에서 ‘작별’과 ‘상봉’은 반대어로 규정한다. 작별과 상봉은 그 현장의 완성된 결과이다. 작별이면 헤어짐으로서, 상봉이면 만남으로서 행위가 종결된다. 두 단어는 함께 쓸 수 없는 조합이다. 작별상봉이란 말이 실제로 쓰이는 현장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에서다. 이산가족은 헤어지는 당일 작별상봉을 한다.
그들이 얼굴을 찾을 때까지 : <그해 봄>에 부치는 글
한기호
2019.01.03
고백하자면 이 글은 절대 평론이 아니다. 또 고백하자면 이 글의 제목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루이스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그해 봄>이 다루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여덟 명의 목숨이 사라지던 해에 나는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던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입사식 구조로 본 <여중생 A>
한기호
2019.01.03
초반에는 나약한 여성에 불과했던 <브이 포 밴데타>의 ‘이비’는 ‘브이’가 의도적으로 만든 감옥에 갇혀 고문과 처형의 위협을 이겨낸 후 불의에 저항하는 의지적인 인물로 거듭난다. 이처럼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특정한 위치로 격상되는 이야기를 ‘입사식(入社式, initiation) 구조’라고 본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프랜차이즈의 다중 우주
박수민
2018.12.31
재작년 나가이 고(永井豪) 선생 데뷔 50주년과 마징가 Z 탄생 45주년을 기념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순히 원작 만화와 과거 TV 시리즈의 내용을 리메이크하는 이벤트로만 생각했다. 필자가 기대한 건 과거 만화책과 TV판과 극장판 시리즈를 통해 이미 익숙한 마징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4
박기준
2018.12.27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4 : 김수정, 김철호
<이 만화를 밀어주세요>2030세대의 현실을 담아내다
김성훈
2018.12.21
로맨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이 즐겨보는 장르물이다. <케세라세라>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품으로서 남녀 주인공의 밀고 당기기는 이야기를 통해 연재 기간 내내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취업과 연애 그리고 결혼과 임신 등과 같은 우리 시대 청춘들이 고민하는 부분들을 핵심적인 소재로 다룸으로써 비단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 독자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었으며, 덕분에 이른바 ‘K-COMICS’를 거론할 때 주요한 작품으로 내세울 만하다. 다만, 아직도 이 작품을 모르는 이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이들을 위해 <케세라세라>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만화를 밀어주세요>시대의 초상을 그린 만화가 오세영의 작품 세계를 만나다!
심상진
2018.12.21
2016년 5월, 만화가 오세영의 별세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신문사들은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뛰어난 문장력과 데생력으로 ‘만화가들의 선생님’으로 불린다.”, “한국적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한국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 “<토지>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작가”, “근·현대사의 풍경에 대한 한국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화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만화 작가 양성에도 힘써” 등의 내용을 실은 수십 개의 기사가 작가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만화가 오세영을 기렸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3
박기준
2018.12.20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3 : 이종진, 이해광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2
박기준
2018.12.12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2 : 고행석, 조관제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7th Impact> 수많은 나, 그 모든 것이 나
웹투니스타
2018.12.09
2018년도 이제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다. 날이 추워져 코끝이 시려지는 계절이 왔다. 연말은 가장 많은 ‘나’를 만날 수 있는 때다. 삶을 지나오며 만났던 사람들과 송년회를 참석하다 보면 그때그때 다른 나를 꺼내는 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친구, 직장 동료들을 만날 때의 내가 다르고, 또 가족과 있을 때의 내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