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미디어 시대와 시사만화
권범철 2018.11.19

디지털미디어 시대와 시사만화

 

권범철(시사만화가, 한국시사만화협회 회장)

 

2002년 월드컵을 정점으로 종이신문의 전성기는 끝났다고들 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언론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었고, 종이신문의 독자는 꾸준히 줄고 있다. 언젠가부터 작은 회의실과 흡연실, 언론사 뒷골목 선술집 구석에서 둘만 모이면 서로의 불안과 설익은 전망을 낮은 소리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종이 신문은 끝났어. 홈페이지에 플래시 애니메이션도 넣고, 메일로 뉴스를 배달해주는 획기적인 최첨단 방식으로 확 바꿔야 해”와 같은 지금으로선 촌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전망들이 낯설게 다가오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쓰나미처럼 미디어업계를 삼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미디어시장을 단숨에 단순화 시켰다. 한때 각종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들로 붐볐던 지하철은 이제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뿐이다. 누군가 종이 신문을 읽고 있다면 ‘자연인’이란 우스갯소리의 소재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 모든 신문의 화두는 하나로 모아졌다. ‘디지털 퍼스트’가 그것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의 번역본이 미디어 시장에 돌기 시작하면서 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통’과 ‘실험’이라는 진취적인 단어들이 어느새 ‘올드 미디어’의 슬로건이 되었다. 하지만 각종 메신저와 SNS를 통한 밤낮을 가리지 않은 소통은 종사자들의 노동 강도만 높였다. 아울러 ‘디지털 퍼스트’라는 명분을 활용한 ‘합법적’ 구조조정이 일상화했다. 폭풍과도 같았던 격변기 이후 남은 것은 ‘카드뉴스’와 ‘어뷰징’, 그리고 언론사 내부의 ‘비정규직’이다.

 

△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그러나 카드뉴스의 전성기도 오래 가지 않았다. 영상의 시대가 온 것이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에 재미와 감동을 넣은 콘텐츠라면 뭔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기획력과 전달력에서 1인 미디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영상 제작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가 없었던 종이신문은 시행착오만 반복할 뿐이었다. 겉보기는 ‘종합 콘텐츠 미디어 그룹’이라는 화려한 간판이 걸렸지만, 어느새 신문은 빙산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방향을 틀 수 없는 타이타닉처럼 그냥 하루하루 사는 ‘생존’이 목적인 덩치 큰 유기체가 돼 가고 있었다. 포털에 대한 의전도도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는 사이 시사만화의 입지도 좁아졌다. 신문 종사자들이 보기에 시사만화가 없어도 신문의 ‘생존’엔 영향을 끼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시사만화의 경우뿐만이 아니었다. 편집, 미술, 사진 등의 부서가 축소가 되거나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외주화 했다. 그러면서 ‘대박’이 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는 분위기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치 로또를 사는 심리처럼.

 

결과는 참담했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이 말하는 ‘대박’ 콘텐츠를 위해 3~5명이 팀을 이뤄 최소 1개월에서 3개월 간 콘텐츠를 제작한다. 조회 수가 10만에 육박하고 미디어 비평 매체와 관련 단체에선 찬사를 쏟아내고 상을 주고받는다. 그리곤 조용히 사라진다. 팀도 사라지고 콘텐츠도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비싼 경험이었지만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비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면 그들이 외면한 시사만화는 어떠한가? 고정적인 독자층을 가진 시사만화의 홈페이지 조회 수는 보통 2만 내외로 알려져 있다. 주5회를 연재한다고 봤을 때, 주당10만 조회 수다. ‘단 한 명’의 시사만화가가 ‘단1주일’ 만에 낸 결과물이 ‘팀을 이뤄 한 달 이상 작업한 결과물’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신문사 내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네이버 뉴스 오피니언 ‘오늘의 만평’ 서비스 첫 화면

 

때문에 시사만화의 활용 범위는 앞으로 꾸준히 넓어질 것이다. 전통적인 ‘한 칸’, ‘네 칸’의 형식에도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사만화가를 준비하고 있는 작가들에겐 다양한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특히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의 개인 계정을 통한 작품 발표가 일상화 한 세상에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불과 10여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도제식 채용의 관행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임에 틀림없다. 오직 실력을 통한 평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회의 문은 이미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시사만화는 생소한 세계다. 시사만화가를 지망하는 작가들에게도 시사만화가의 일상은 흐릿한 창으로 보이는 저 너머 세상이다. 심지어 오랜 기간 같은 공간에서 일 해온 신문사 동료들도 시사만화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삽화가와 만평가의 차이를 모르거나, 어떤 도구로 어떤 과정을 거처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부족하다. 이런 ‘몰이해’는 가끔 소모적인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미디어 시대 시사만화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작업을 할까? <준비>와 <조직>, <발상>과 <작업>을 나눠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준비>

시사만화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은 특정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의 출신은 다양하다. 의외인 것은 미술(만화) 전공자가 드물다는 점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대학 학보사에서 시사만화를 연재하여 프로 작가로 뛰어든 경우다. 하지만 이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린 ‘박재동 만평’의 인기가 그 토양이 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 1988년 5월 15일 한겨레 그림판(박재동 작)

 

때문에 시사만화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은 없다. 다만 사건이나 현상의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은 필수다. 또한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훈련도 필요하다. 최근엔 젠더에서 외교문제까지 다뤄야 할 스펙트럼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이를 건강한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은 시사만화가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다.

 

또한 최근엔 그림의 ‘품질’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먹(잉크)’을 활용한 단순한 선을 통해 풍자했던 시기와 달리 현재 대부분의 시사만화는 높은 ‘디테일’을 요구하는 컬러 그림이다. 때문에 태블릿과 포토샵과 같은 디지털 소프트/하드웨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조직>

대부분의 시사만화가가 속한 조직은 신문사다. 때문에 어떤 조직에서 일 하느냐에 따라 시사만화가들의 작업 조건은 달라진다. 지역 신문에서 일을 하는 경우 미술기자의 일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한정된 인력과 지면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지역 일간지의 경우 그런 일은 없다. 다만 회사의 규모에 따라 처우에서 차이가 난다. 임금은 물론이거니와, 작업공간에 있어서도 회사마다 차이가 있다.

 

<발상>

대부분의 시사만화가는 출퇴근의 제약이 없다. 다만 시사만화가들 사이에선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라는 자조 썩은 농담이 있다. 그만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발상’과 뉴스 읽기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종이로만 편집회의 자료를 돌려보던 시절엔 시사만화가가 편집회의에 참석을 했다. 하지만 신문사 뉴스룸에 잘 정리한 기사와 자료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 특히 최근엔 ‘가짜뉴스’와 ‘오보’에 대한 독자들의 민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오류가 없는 시사만화’를 그리기 위해 확인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 2018년 11월 16일 한겨레 그림판(권범철 작)

 

<작업>

대부분 시사만화가들의 작업과정은 디지털화했다. 잉크에 펜촉을 담가 두꺼운 종이에 꾹꾹 눌러 그리던 시절은 빠른 속도로 과거가 됐다. 대신 그 자리를 태블릿이 차지했다. 물론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다. 특히 신문사 밖에서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작가들 중엔 그런 작업을 통해 묵직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런 작가들의 작품은 곧잘 출판물로도 나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때문에 특정한 작업 방식 옳다는 생각은 편견에 가깝다.

 

지금까지 디지털 환경에서의 시사만화의 가능성과 시사만화 작가들의 실제 작업 환경에 대해 알아 봤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시사만화가들에게 어떤 궁금증을 갖고 있을까? 독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엮어 봤다.

 

Q. 어떻게 매일 마감을 할 수 있나요?

A.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노동을 하고 있듯 시사만화가도 반복된 학습과 경험 속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다만, 매일 쏟아지는 뉴스라 할지라도 선거와 같은 반복하는 패턴 속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때문에 갑자기 터진 사건이라 할지라도 시사만화가에겐 익숙한 뉴스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마감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로 인한 매너리즘은 경계해야 합니다.

 

Q. 그리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A. 아이템을 선정하고 발상을 하는 시간까지 ‘그리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하루 종일 그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스케치나 터치 등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 본다면 과거보다 시간이 늘었습니다. ‘흑백 만평’의 시대엔 빠르면 30여 분 만에 그릴 수도 있었으나, 최근엔 대부분의 시사만화를 컬러로 작업하기 때문에 2 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Q. 악플이 걱정되지 않나요?

A. ‘악플’의 대부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글들이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신상을 공개하거나 심한 욕설을 할 경우엔 실제 맞은 것처럼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아픈 건, 진지하고 절절한 항의를 받는 경우입니다. 실력이 모자라 듣는 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시사만화가는 어떻게 될 수 있나요?

A.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풍자만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채나 문화생 등의 경로밖에 없었던 과거에 비해, 최근엔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스스로 독자층을 만드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또한 종이신문이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나 다양한 뉴스 플랫폼이 생겼기에 기회는 더 많을 것입니다.

 

Q. 돈은 많이 버나요?

A. 언론사에 소속된 시사만화가는 언론사 직원의 임금체계와 동일합니다. 때문에 소속된 언론사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연재하는 작가의 경우 편 당 원고료를 받습니다. 때문에 이 또한 언론사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인정받느냐가 가장 종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Q. 작업을 하면서 압력을 느낀 적이 있나요?

A. 편집권을 얼마나 폭 넓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신문사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일해야 할 회사를 선택해야 항 상황이 온다면 사내 ‘편집권 독립’의 정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엔 외부압력이 주로 정치권을 통해 들어왔다면, 최근엔 기업(광고주)를 통해 들어옵니다. 때문에 더 복잡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합니다. 회사 경영을 위해 뛰는 타 부서 사람들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누구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싸우는 것도 중요하고 타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Q. 여성 시사만화가는 왜 보기 힘들까요?

A. 남성 중심의 언론사 문화가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남성의 수와 비슷하거나 많은 수의 젊은 여성 언론인들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변화할 조건입니다. 다만, 언론사별로 많아야 두 명 정도인 시사만화가의 변화는 조금 느릴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이 부분은 시사만화가들에게도 숙제입니다.

 

Q. 시사만화가는 기자인가요? 만화가인가요?

A. 편집국에 소속된 시사만화는 직군 상 기자로 분류합니다. 지역 언론의 경우 시사만화가가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기자인지 만화가인지 정리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오히려 시사만화가의 그런 ‘중간자’적 성격이 시사만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풍자의 감수성과 저널리즘의 정확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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