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콘텐츠, 비밀은 없다
가와카미 노부오 <콘텐츠의 비밀 -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
박수민 (영화감독) 2019.04.22

콘텐츠 업계에서 보낸 10년

이 칼럼 란에 필자의 직업은 영화감독으로 소개되어 있다. 허나 오래 전 저예산 장편영화 한 편을 연출해본 일천한 경력일 뿐. 실상은 시나리오 작가와 그 비슷한 무엇(?)으로 지난 10년의 밥벌이를 해왔다. 여러 영화사들을 오가며 최종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글을 써왔는데, 슬프게도 제대로 결과가 이어진 게 없어 이쪽 경력도 내세우긴 좀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냥 업계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를 이래저래 굴러다닌 ‘장돌뱅이’라 표현한다. 이 바닥에 나 같은 정체불명의 작가 나부랭이가 어디 한둘일까. 업계 종사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고, 망하거나 죽지 않고 아니, 포기하거나 굶지 않고 10년을 버텼으니 용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뭐 하나라도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옛말은 이과는 물론 문과도 마찬가지인 만고의 진리인데, 한평생 인문계 테크 트리만 찍은 필자의 밥벌이 능력은 기술이라 칭하기엔 애매하다. 아이템이 주어지면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 내용을 글로 옮기는 능력이 그것이기 때문. 이런 모호한 능력을 가지고 영화 일 외에도 스토밍(Storming)할 브레인이 필요한 출판, 디자인, IT 등의 분야에서 온갖 계약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 유령작가 등 용병 비슷한 삶을 유영해왔다. 공통적으로 모두 ‘콘텐츠’를 다루는, 앞뒤로 ‘기획’이라는 단어가 붙는 일들이었다. 그러다가 한 1년간은 모 웹툰 에이전시의 영상 사업부에서 기획 PD라는 정식 직함으로 일하기도 했다. 

콘텐츠 업계의 모든 일이 기획에서 비롯한다. 기획이란 정말이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처음 기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정은 고통스럽고 변수는 도처에 많으니 예상되는 거의 모든 것을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고민이 곧 결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콘텐츠업(業)의 재밌는 점은 오래 공들인 좋은 기획이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거다. 번갯불에 콩 굽다시피 한 나쁜 기획, 틀에 박힌 뻔한 기획이 의외의 휘황찬란한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콘텐츠의 만사가 기획에서 비롯하지만, 결과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일. 다행히 결과가 성공하더라도 그 열매를 가져가는 ‘기획’ 크레딧의 주인은 정작 아이템을 기안하거나 실제로 개발한 주체가 아닐 수 있다. 

“콘텐츠, 모른다.” 내가 잠시 다닌 회사의 대표께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다. 대중문화 콘텐츠 사업은 ‘흥행업’이고 일종의 도박이다. 일찍이 업계에 뛰어들어 온갖 경험치를 쌓은 전문가에게도 어떤 콘텐츠가 대중에게 어필하여 인기를 얻고 성공할지는 알 수 없는 일. 매일 온갖 플랫폼을 이용하며 그 안의 수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인 삶을 사는 세상이지만, 과연 어떤 콘텐츠가 ‘되는’ 콘텐츠일까? 누구나 가슴에 품은 아이템이 있고 자신의 취향과 보고들은 경향 사이에서 이런 게 성공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촉은 있다. 이걸 확신으로 만들기가 어려울 뿐.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계획한들, 이대로 진행하라는 오더가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그 기획은 스쳐간 프레젠테이션과 한낱 첨부파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결과의 열매는 아이템의 최초 기안자나 실질적 콘텐츠 개발자가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자에게 돌아간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 옛적 전설이다. 콘텐츠 성공의 권리는 플랫폼이 가져간다. 애초 이 조항이 명시된 계약에 사인하지 않는다면, 플랫폼은 겨우 한낱 콘텐츠일 뿐인 당신의 ‘작품’을 실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업계에서 굴러다닌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면 의도했던 건 아닌데 웹툰 원작을 영상물로 옮기는 일에 관여한 경험이 꽤나 쌓였다. 미디어믹스에서 웹툰 영상화의 유행 덕분에 나 같이 만화와 영화 사이를 오가는 맹랑한 글쟁이가 먹고 살 수 있었다. (이 칼럼을 맡게 된 계기도 영화연출과 만화연출의 차이를 논했던 이상한 글 덕분이다!) 감사한 일이나 다만 문제는 언제나 각색은 오리지널보다 높은 레벨을 요구한다는 사실. 원작의 본질을 끝까지 지키면서 실사영화 속에서 말이 되게 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내가 만화가가 되려던 처음 꿈에서 도망친 까닭에 오랜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의 10년은? 뭐, 여전히 위태롭다.

△ <콘텐츠의 비밀 -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 (황혜숙 옮김, 을유문화사, 2016)

이과(理科) 세계관으로 탐구한 콘텐츠의 본질

서점에서 이 책 <콘텐츠의 비밀>을 집어든 건 순전히 제목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이쪽 일을 한다는 괜한 생색으로 콘텐츠 어쩌고 하는 책은 평소 근처에도 안 가는 법인데, 더구나 ‘비밀’이라니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판형도 작고 두께도 얄팍한 게 흔한 자기계발서 같이 뻔한 책 같았다. 그런데 제목 아래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이란 부제를 발견하자 가벼운 책이 느닷없이 묵직해지는 느낌. 지은이 소개를 보니 저자 가와카미 노부오(川上量生)는 IT회사 ‘도완고’의 설립자로서 이후 합병한 거대 미디어 기업 ‘카도카와 도완고(지금은 그냥 카도카와)’의 대표였다. 일본의 유명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 동화’ 바로 그 니코동을 운영하던 대표이사가 2011년 스튜디오 지브리에 수습 프로듀서로 들어가 배운 것을 논한 책이었다.

△ 니코니코동화 사이트

일본의 IT 벤처 재벌이 그 나라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평균 연령이 높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인턴으로 들어가 작품 기획과 제작에 대해 배우면서 콘텐츠란 무엇인지 본질을 탐구한다니, 이 것부터가 내게는 놀라운 기획이었다. 왜? 이미 성공을 맛본 사람이라면 그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투자 대비 이윤이 발생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따지는 경제논리가 모든 세계관을 지배하는 기준이 되기 쉽다. 내가 만나본 IT 부자들은 그랬다. 역시 경험이 판단 기준이 된 나는 인문학이 결여된 이과적 세계관에 대해 편견을 가진 사고방식이 먼저 작동하여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삐딱해졌다. ‘니코동’을 만들어놓고 과연 ‘지브리’가 궁금할까?

나처럼 문과만 나와 일생 돈 잔치의 냄새를 맡을 일 없이 어두운 골방만 탐닉하며 작가의 인간적 고뇌와 작품의 예술적 가치 따위를 염려하는 근본주의자는 완전히 반대급부의 사고방식을 접하면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 가령, IT 업계의 투자자로부터 기획이나 글은 한국에서 뽑아 넘기고 그림은 중국에서 그려 컬러링까지 찍어내는 식으로 대량생산 방식 웹툰 제작의 아웃소싱 가능성을 들으면, 나는 곧바로 중국 상해의 어느 무명 만화가에 빙의하여 최소한의 작가적 자부심마저 차단된 상태에서 그림만 그리는 기계가 된 개미지옥의 작업실을 상상하게 되는 거다. 플랫폼 입장에서 콘텐츠는 너무 시간이 걸리고 작가는 너무 많은 권리를 요구한다. 싸게 만들고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기업의 욕망은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다. 

△ 노부오 카와카미 <출처 : www.asahi.com>

그런데 가와카미 노부오 회장은 자신의 이과 세계관을 가지고서 지브리에 들어가 2년간 수습 PD를 경험해보기로 한다. “콘텐츠는 무엇이고 작가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가? 천재 작가와 평범한 작가를 나누는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문과 세계관의 나는 이미 체감하여 안다고 믿고 묻지 않을 질문을 그는 최고 레벨로 일컬어지는 창작의 본진에 들어가 서슴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일흔 살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뭔가를 만들며 번민하는 영감탱이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감독은 첫 출근 날의 저자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뭣 하러 왔어? 여기엔 아무 것도 없어.”

내 편견에 지나지 않을 관점을 계속 앞세워 독자들께 송구하지만, 이 책이 흥미로운 건 바로 IT 업계 출신으로 이공계 세계관을 가진 저자 입장에서 콘텐츠와 창작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예술과 오락이 어떻게 다르고, 논리와 감성은 어떻게 차이가 나며, 독창성의 정체와 창작의 고통은 무엇인지 등을 계속 질문한다. 인문계 세계관의 감성놀음을 좋아하는 나로선 정말 몰라서 묻는가 싶은 화두들이다. 질문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콘텐츠를 접할 때 인간의 인식 차이를 정확히 데이터처럼 측량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가져갔더니 국면별 흥미도 증감 그래프로 돌려받은 일과 비슷하다.

저자는 ‘콘텐츠’라는 표현에 대해 창작자들이 가지는 반감을 안다. IT 산업과 관련된 상업적 표현으로 들려 작품을 덜 존중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콘텐츠를 어디까지나 ‘정보’의 관점으로 보길 주저하지 않는다. 나라면 화면의 ‘미장센’이라 표현하고플 개념을 ‘정보량’이라 쓰는 식이다. (물론 이 단어는 콘텐츠 업계는 물론 영화판에도 자주 쓴다)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건 콘텐츠 제작에 수많은 스태프가 함께 하는 요즘에도 굳이 작품의 주인으로 한 사람을 내세워 ‘작가가 콘텐츠를 만든 대표자로 행동해도 된다는 근거’가 무엇인지까지 의문을 품는 부분이다. 콘텐츠 대량 생산 아웃소싱이 또 떠오르면서 공포가 스멀스멀 엄습한다.

“콘텐츠는 현실을 모방한 시뮬레이션”이며, “창작자는 제한된 매체 포맷으로 콘텐츠를 표현하는 사람”이다. 콘텐츠의 범위는 ‘대량 복제가 가능한 마스터 데이터’와 복제한 데이터를 전달하는 포맷의 ‘패키지’까지 아우른다. 저자의 최초 정의는 인공지능의 대답 같긴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 정확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이미 콘텐츠(재현)의 개념에 플랫폼(매체)과 포맷(방법), 소비자(대상)가 존재했음을 집어내고 이들 요소 중 하나만 달라져도 별개의 콘텐츠가 되는 일종의 ‘원 소스 멀티 유즈’를 파악한 것도 신기하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정의를 계속 보강한다. 콘텐츠를 ‘객관적 정보량, 주관적 정보량’으로 나눠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 ‘뇌 속 이미지’의 정체를 풀어간다. 

페이지를 더해갈수록 그의 탐구는 인간의 뇌 신경세포 구조를 본뜬 인공지능의 ‘딥 러닝’과 대뇌 이미지 재현 과정과 흡사한 ‘오토 인코더’ 기술처럼 자가 학습을 통해 더욱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풍요롭게 더해진다. 콘텐츠와 창작 행위의 본질을 이해한 저자는 그 결과 마침내 콘텐츠가 가진 ‘비밀’의 정체를 깨닫는다. 작가 을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업자 갑은 어째 잘 모르는 그것, 작품마다 존재의 유무가 아주 미묘하지만 결국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그것은 바로 작가의 ‘비전(Vision)’이다. “콘텐츠란 창작가의 비전을 표현한 것”이었구나! 저자가 도달한 콘텐츠의 최종 정의는 감동적이다. 이게 그렇게 비밀스러운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기 있는 콘텐츠의 패턴은 진부해진다

작품(콘텐츠)과 작가에 대해서, 그리고 창작의 고통에 대하여 이 책만큼 단순명쾌하며 거의 정확한 개념정립은 이전에 못 본 것 같다. 특히 창작가의 고통에서 생활고와 세상의 몰이해를 제외하고 세 가지 어려움을 간파해낸 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그 세 가지는 앞서 제외한 두 가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거기다 IT 갑부의 깨달음이 마치 인공지능이 드디어 해석에 성공한 인간의 마음처럼 느껴져 감동적이었다는 걸 뒤로 하면 이 책의 진짜 쓸모는 따로 있다. 하나는 스튜디오 지브리 내부의 워크플로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 콘텐츠 업계의 최고 레벨에 있는 작가와 업자들이 내뱉는 통찰의 영역이다. 예고편에는 비싸 보이는 장면만 넣으라거나, 미남 미녀 캐릭터는 결국 똑같은 얼굴이 되는 거라 특징이 없어 그리기 싫다거나 하는 말들이 재미있다.

그중 가장 흥미롭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장은 콘텐츠의 ‘패턴’을 논하는 부분이다. 콘텐츠의 본질은 알았으나 좋은 콘텐츠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우수한 콘텐츠란 “알기 쉬운 특징을 강조하여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다. 미남 미녀란 유전적으로 균형 잡힌 평균적인 얼굴이기에 본능적으로 선호된다. 고전 건축물과 예술작품의 ‘황금률’과 마찬가지다. 작품을 접한 소비자가 스스로 ”주관적 정보를 꺼내기 쉬워야”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이며, “이해하기 쉽다는 것은 좋다=아름답다는 의미”다. 노래는 결국 가사가 들려야 하기에 보컬 음량을 늘리고, 휴대전화 착신 멜로디의 음색 품질보다는 음압을 올려 성공했다는 일화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건 세세한 차이는 전문가의 영역일 뿐 어차피 소비자 대다수는 신경도 안 쓴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는 ‘진짜’를 만들려고 연연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이해하기 쉬움’을 추구한다”고 단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는 결국 천편일률적이 되고 만다.

“콘텐츠는 가만히 놔두면 점점 비슷해진다”. 이 사례로서 그는 니코니코 동화의 소유주답게 ‘UGC(User-Generated Contents)’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UCC(User-Created Contents)’란 약자가 더 익숙할 것이다. 인터넷 시대 소비자=사용자 자신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하자 자유롭게 만들어 올리고 무료로 본다는 강력함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경쟁이 생기자 콘텐츠의 질은 점점 올라가고 엄청나게 다양한 콘텐츠가 발생한다. 그러나 콘텐츠 질의 향상과 다양성은 곧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 이전에 성공한 패턴을 똑같이 따라 하는 진부한 콘텐츠들만 양산되고 만 것이다. 라이트 노벨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이세계 전생물’ 장르가 쏟아져 나온 상황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놀랍게도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경쟁’을 지적한다. 소비자의 욕망에만 충실한, 사용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만 만들다보니 패턴은 반복되고 콘텐츠는 비슷해진다. 니코동의 몰락과 현대 한국 사회의 유튜브 열풍을 떠올려볼 때, “콘텐츠의 다양성을 지키려면 오히려 경쟁이 심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결론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플랫폼의 경쟁 시스템에서 인기 콘텐츠의 패턴이 비슷해지는 모습을 우리도 이미 유튜브와 웹툰에서 목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정 매체에서 ‘열풍이 분다’는 표현은 곧 매너리즘과 레드오션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 수많은 창작자와 너무 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변별력을 갖기란 쉽지 않다. 저자 말대로 “현대 사회에서 이미 콘텐츠는 자기 목적화되어” 있고,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릿해진 세상에서 예전처럼 창작 행위의 고고한 순수성을 추구하는 건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이제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 업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패턴에서 벗어난 새로운 콘텐츠의 고민은 결국 다시 창작하는 사람으로 향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독창성’의 정체를 파괴적으로 묻는다. 내 생각에 콘텐츠에 비밀은 없다. 결국 작가의 독창성과 비전에 달렸다. 콘텐츠 업계의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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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작가 개인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초기적인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의 ‘온라인 만화’는 2004년을 전후로 다음, 네이버, 파란 등 포털 사이트들의 ‘서비스’로 재편되며 ‘웹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고 초기적인 틀을 형성했다. 이후 2013년 레진코믹스, 탑툰을 비롯한 본격적인 유료 웹툰 플랫폼의 등장이 겹쳐지며 2019년 현재의 웹툰 환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비교적 그리기 간편했던 ‘에세이툰’이 대세를 이뤘다면 2000년대 중후반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나 다음의 ‘웹툰리그’(구, 나도 만화가)를 비롯한 아마추어 활동 공간 및 발굴 플랫폼의 등장, 디시인사이드나 루리웹을 비롯한 만화 연재 커뮤니티의 활성화, 그리고 ‘아마추어 작가’나 ‘지망생’들을 열심히 섭외하며 작가의 풀을 채운 신생 웹툰 플랫폼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이전보다 한국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대폭 신장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일상툰’을 비롯해 에세이 만화의 성격을 지닌 만화는 물론 액션이나 스릴러 같이 고도의 기획력이 필요한 작품, 이성애는 물론 다양한 성적 취향을 반영하는 작품도 속속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