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칼럼] 마블은 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할 것이다
최서윤 2019.05.28



뒤늦은 ‘입덕’
2008년의 어느 날, 나는 꽤 흥분했다. <아이언맨>을 영화관에서 처음 본 날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영웅 서사에 기대한 바를 거의 완벽히 충족시켰다. 빛나는 두뇌를 가진 과학천재이자 엔지니어인 군수업체 사장이 테러집단에 납치되지만, 스스로 창조한 슈트를 착용해 탈출하고, 과거를 반성한 뒤 결자해지 하고자 재능 발휘하며 벌어지는 모험과 성장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매력 있었다. 시종일관 여유롭고 능글맞은 태도와, 넘치는 자신감의 근거가 되는 재력과 지능 같은 장점이 스크린 너머로 생생히 전해졌다. 물론 단점도 뚜렷했다. 그와 같이 이기적이며 즉흥적이고, 시도 때도 없이 빈정대며 농담을 던지는 인물을 가까이 두면 멱살 잡고 싶어질 때가 여러 번일 것 같다. 하지만 멀리서 구경하기에는 재밌는걸. 그가 ‘관종’ 기질을 누르지 못하고 “내가 아이언맨”이라고 외치는 마지막은 백미였다. 아이언맨이 21세기를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로 부상한 때이기도 하다.

그 뒤 나를 비롯한 한국의 관객들은 아이언맨이 사고치고, 수습하고, 성장하고, 다시 사고치는 걸 구경하며 11년을 보냈다(<아이언맨3>의 국내 관객수는 무려 900만 명에 달했다). 마블 스튜디오가 만든 세계와 그 세계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정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블의 세계관과 캐릭터에 매료된 이들은 영화에 대해 열기 어린 대화를 나눌 때 일종의 공동체에 속해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의 추측 어린 기대와, 마침내 뚜껑을 연 뒤 다양한 감상과 해석을 뜨겁게 나누는 일은 축제와도 같았다.

그 과정에서 마블 코믹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니까, 마블 영화가 내게는 먼저였던 셈이다. 마블 영화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떠드는 시간을 가지며 코믹스의 설정을 시나브로 접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언맨3>의 빌런 만다린에 흥미를 느꼈는데, 여기서의 묘사는 코믹스와는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만다린은 코믹스에서는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악당이었다고. 영화에서는 경망스러운 성격의 허수아비일 뿐이었는데. ‘악의 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중동의 테러리스트 만다린 뒤에 흑막이 있었고, 그는 토니 스타크와 같은 미국인이었으며, ‘만다린’이라는 상징을 이용해 이익을 챙겨왔다는 사실이 영화의 반전이었다.

시대상을 반영한 마블의 창작 활동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였을 것이다. 마블 코믹스에서 만다린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9년. <아이언맨3>의 제작년도는 2013년이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국제 사회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국 대량살상무기는 없는 것으로 판명난 뒤의 당혹감과 허탈함이 미국에 감돌던 그 시기다. 이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아이언맨3>의 만다린이 빚어진 것이다.


올해 개봉한 <캡틴 마블>에 등장하는 스크럴 종족 역시 코믹스와 다르게 묘사된다. 코믹스에서는 전형적인 악당으로 묘사됐으나, 영화 <캡틴마블>에서 스크럴 종족은 크리 종족에 의해 삶의 터전이 파괴당한 난민들로 그려진다. 현재 전 지구적 난민 사태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자성적 태도를 가지고 녹여낸 설정은 아니었을까.

당대의 사회적 화두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창작 활동은 일찍이 코믹스에서도 있었다. 예를 들어 <판타스틱4> 시리즈에 등장한 블랙팬서는 고조된 흑인 인권 운동을 반영한 결과였다. 그 뒤 미국에 찾아온 70년대는 베트남전쟁, 마약, 반전 운동으로 얼룩졌고, 마블 코믹스에도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베트남전쟁 퇴역군인들의 정신적 고통과 처우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바탕에 둔 캐릭터, 퍼니셔의 탄생이 일례다. 히어로의 인종 다양성에 대한 의식도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첨단에 있던 관점도 오랜 시간 지난 뒤 다시 보면 낡아 보일 수 있다. 이점에서는 최근 제작되는 마블 영화가 유리할 수밖에. 마블 스튜디오의 총괄 책임자 케빈 파이기는 “코믹스의 내용과 정신에 충실한 것과 코믹스를 각색하고 진화시키고 변화시키는 것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즉 코믹스의 설정을 빌려오되 재해석하며 관점을 좀 더 진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70년대 아시아인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상치 역시 영화에서는 좀 더 아시아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려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마블의 ‘생명 연장의 꿈’
사회적 화두를 적극 반영하는 것은 콘텐츠의 수명을 연장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짧지 않은 미국의 히어로 코믹스 역사에서 마블도 여러 차례 위기를 맞이했다. 평행 우주 설정으로 끝없이 늘려가는 세계선, 인종 다양성을 기반에 둔 기존 캐릭터의 재해석 모두 ‘생명 연장의 꿈’의 일환이다.

가장 성공적인 것은 영화화 프로젝트였다. 2010년대에 마블 영화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는 만화에도 기회가 됐다. 영화를 통해 마블 만화의 세계에 신규 진입한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마블 영화 프랜차이즈의 대성공 이후, 한국에서 마블코믹스가 대량으로 정식 발간됐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아이언맨>의 경우,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캐릭터였으나 영화 제작 후 그 위상이 달라졌다. 게다가 <엔드게임>에서의 영웅적인 퇴장은 아이언맨의 신화를 완성하기 충분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분했던 아이언맨에 대한 향수는 한동안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고, 향수를 지닌 이들을 코믹스로 끌어당기는 것 역시 마블의 전략 아닐까. 한 가지 캐릭터로 고정되고 싶지 않은 배우의 고민과 노화 문제, 출연료에 대한 부담 등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은 코믹스에는 반영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2008년 이후 만화의 토니 스타크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점점 닮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히어로 장르는 결국 캐릭터 상품 팔아먹는 게 목적이라는 자조가 있을 정도로, ‘입덕’을 유발하고 작품의 세계에 몰입하게 만드는 데 캐릭터의 힘이 크다. 그간 마블은 코믹스에서 인기가 없던 캐릭터를 발굴해내 영화의 세계관에 안착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그 결과 많은 캐릭터 상품을 팔아먹을 수 있었다.

인종 다양성에 기반을 둔 캐릭터의 재해석 역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향뿐만 아니라 상업적 고려가 들어간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국적 배우 캐스팅이 해당 국가에서 화제를 모으며 영화 흥행으로 이어지고, 그 뒤 원작 만화에 관심을 두며 ‘입덕’하는 새로운 팬층이 생기는 선순환을 노리는 것이다. 나부터도 ‘마블리(a.k.a 마동석) in 마블’ 기대하고 있다.

아직 편입시킬 국적의 히어로들은 넉넉히 남아있으니, 적어도 몇 년간 마블의 프랜차이즈는 계속 흥행가도를 질주하지 않을까? 그밖에도 다양한 정체성의 집단들을 유혹하기 위해, 마블은 앞으로 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하게 될 것이다.
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리뷰와 댓글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아남기 :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논란에 관한 단상
박수민
2020.07.03
리뷰와 댓글은 심하면 작품의 파괴, 즉 반달리즘마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 의견을 내놓기 위한 자격은 스스로 작품을 플레이하거나 살펴본 경험이 선행. 결국, 남의 말 보다 정확한 것은 본인의 판단.
조관제 만보 / 원로만화가 순례 ⑯ 황정희
조관제
2020.06.23
[전문가 칼럼] 만화 작품 속에 반영된 전쟁과 표현: 전쟁의 참극을 묘사한 작품을 중심으로
김성훈
2020.06.18
홍지흔 <건너온 사람들>. 전투장면 없는 전쟁만화가 전하는 긴장감. 전투에서 비켜선 일반인의 고달픔
[글로벌리포트] 프랑스 만화 산업의 디지털화 현황
김형래
2020.06.09
프랑스 만화는 상업적 색채 띄는것을 꺼려 현재 아시아 시장에 뒤쳐지게 된 원인 프랑스 만화 디지털화 변화 조짐은 비교적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프랑스 웹툰 대중화에 뜻밖의 기여
[글로벌리포트] 일본은 왜 아직 종이만화에 열광할까?
이현석
2020.06.05
출판만화 강국 일본에서 웹툰의 약진 매섭지만 디지털에 특화된 만화형식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아, 종이 중심의 70년 전통 원고 공정은 여전히 건제, 일본 편집자는 웹툰만의 매커니즘과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와 인식 전환 필요
[전문가 칼럼] 출판만화 시대와 웹툰 시대의 그림체에 대하여
김성훈
2020.06.04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그림체의 변화 웹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다
[전문가 칼럼] SWOT 관점에서 본 웹툰 산업과 웹툰 생태계
박세현
2020.06.01
웹툰과 웹툰 산업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보완한다면 웹툰의 전성기는 지속될 것. 웹툰의 디지털 콘텐츠적 특징은 명과 암을 동시에 갖고 있다. 웹툰 아카이빙 제도화 마련 시급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신세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 션 머피 <펑크 록 지저스>
박수민
2020.05.28
《펑크 록 지저스》는 한 신앙인이 신이 없는 세계와 삶을 스스로 선택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고백까지 엔터테인먼트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펑크 록 지저스》는 코로나로 닥친 거리두기 생활 중에 내가 본 만화들 중 가장 끝내주는 작품이다.
[전문가 칼럼] 정부의 만화산업육성 정책과 개선방향
박석환
2020.05.25
기존 정책 내에서 새로운 시대와 수혜자의 요구를 수용할 숙의 필요, 2020년 현재 만화산업 육성 지원 예산은 210억, 2002년에 비해 비약적 증가, 만화 생산 및 소비 기반 강화 그리고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구조를 취하는 중
박기준의 사진으로 본 만화야사 49 : 이홍우, 손상익, 박봉성
박기준
2020.05.21
[전문가 칼럼] 웹툰의 시대? '만화산업백서'부터 바꿔야
박석환
2020.05.19
출판만화와 웹툰, 산업실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만화산업백서' 시장의 변화를 정확히 담아내기에는 미흡한 점 많아 만화소비자의 매체 이용 변화와 사업의 다각화에 따른 산업변화에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조관제 만보 / 원로만화가 순례 ⑮ 손의성
조관제
2020.04.30
60년대부터 20년을 ‘활극 만화’의 전성기를 만든 손의성
조관제 만보 / 원로만화가 순례 ⑭ 김마정
조관제
2020.03.30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⑬ 고유성
조관제
2020.03.09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모던 배트맨과 프랭크 밀러의 유산 :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배트맨 이어 원>
박수민
2019.12.20
2019년은 배트맨 탄생 8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 27호에 처음 등장한 배트맨은 여러 모로 한해 앞서 탄생한 슈퍼맨의 안티테제(Antithese)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슈퍼맨이 나오는 <액션 코믹스>를 본 만화 콤비 빌 핑거와 밥 케인은 이런 캐릭터는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의기투합했고, 모든 면에서 슈퍼맨과 반대인 영웅을 구상했다.
[글로벌리포트] 호주 만화 시장에 관하여 - 만화 활용과 전망
Brian Yecies/Riley Jones
2019.12.20
호주에는 OZ 코믹콘과 슈파노바(Supernova) 등 다양한 대중문화 행사가 있다. 슈퍼노바는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퍼스, 애들레이드, 골드 코스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다. 200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이 행사는 호주에서 진행되는 문화 행사 중 가장 눈에 띄고 참석자가 많은 행사 중 하나다.
[글로벌리포트] 호주 만화 시장에 관하여 - 자가출판 시장과 디지털만화의 유입
Brian Yecies/Riley Jones
2019.12.20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주 실무자들과 디지털 유통관행은 아직 한국과 세계의 추세를 따라잡지 못했다. 호주 만화가들은 코믹솔로지(ComiXolgy)같은 플랫폼에서 자신의 디지털콘텐츠를 홍보할 뿐만 아니라 개인 웹 페이지를 활용한다. 그러나 콘텐츠가 국가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수집, 확인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많은 호주 만화가들이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만화를 만들고 있지만 2019년 현재 호주에서 디지털콘텐츠와 디지털 유통에 초점을 맞춘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칼럼] BL 장르와 젠더 감성
정은숙
2019.12.20
 오늘날의 콘텐츠들은 모두 장르로 구분되고, 그렇게 구분된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 액션 등의 장르에는 자연스럽게 여성향과 남성향이라는 젠더가 따라붙는다. 각각의 젠더에 속한 장르들 중 여성이 주체적으로 만들고 소비해온 BL(BOYS LOVE) 장르가 최근 젠더 논란과 함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니 오랜 시간 BL 장르를 접하며 자란 필자에게는 조금 놀라운 상황이다.
[글로벌리포트] 2019 중국 웹툰시장 현황 및 변화
강태진
2019.12.19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현재 중국 만화 플랫폼의 월 이용자 수 TOP20는 아래와 같다. 콰이칸만화가 월 4,551만명으로 1위를 달리고 있고 텐센트동만이 약 1,379만의 사용자로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웨이보동만, 칸만화, 보동싱치우, 동만, 추만, 왕이만화, 띠이탄, 만화타이 등의 순으로 10위권 플랫폼 순위가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칼럼] 무엇이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만드는가?
성상민
2019.12.19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작가 개인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초기적인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의 ‘온라인 만화’는 2004년을 전후로 다음, 네이버, 파란 등 포털 사이트들의 ‘서비스’로 재편되며 ‘웹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고 초기적인 틀을 형성했다. 이후 2013년 레진코믹스, 탑툰을 비롯한 본격적인 유료 웹툰 플랫폼의 등장이 겹쳐지며 2019년 현재의 웹툰 환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비교적 그리기 간편했던 ‘에세이툰’이 대세를 이뤘다면 2000년대 중후반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나 다음의 ‘웹툰리그’(구, 나도 만화가)를 비롯한 아마추어 활동 공간 및 발굴 플랫폼의 등장, 디시인사이드나 루리웹을 비롯한 만화 연재 커뮤니티의 활성화, 그리고 ‘아마추어 작가’나 ‘지망생’들을 열심히 섭외하며 작가의 풀을 채운 신생 웹툰 플랫폼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이전보다 한국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대폭 신장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일상툰’을 비롯해 에세이 만화의 성격을 지닌 만화는 물론 액션이나 스릴러 같이 고도의 기획력이 필요한 작품, 이성애는 물론 다양한 성적 취향을 반영하는 작품도 속속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