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⑩ 임수
원로 만화가 임수의 개인 전시를 꿈꾸며
조관제 2019.06.19




전쟁 중 임수의 무기는 총칼이 아닌, '펜촉'이었다.

임수의 작품은 이국적인 화풍과 꼼꼼한 그림체, 그리고 특유의 과장된 캐릭터로 한 번 본 50~60대 독자라면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임수 만화’를 보는 재미는 심각한 장면마다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辯士) 같은 인물들이 만화 칸 밖에 나와 해설하는 장면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부터 임수는 친구들이 골목에서 뛰놀 때 혼자 책상에 앉아 만화를 그렸고, 종이가 없으면 온 집안의 흰 벽마다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교 때는 교과서의 여백에까지 그림으로 채우다가 선생님께 혼이 날 만큼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중학교 때 그린 그림으로 전교생 앞에서 도지사 상을 받을 만큼 재능이 있었던 임수는 수채화를 전공하는 순수 미술가를 꿈꾸는 소년이었다.
'환쟁이는 배고프게 산다'라는 어른들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소년 임수는 일제가 일본 국민에게 군국주의 사상을 불어넣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내는데 큰 영향을 끼친 만화 '타가와 스이호(田川水泡)의 작품 <노라쿠로'(のらくろ)>라는 만화를 보며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난 만화로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 6.25전쟁 때문에 집안의 독자였던 그는 단신으로 월남해서 굶어죽지 않으려고 육군에 입대한다.
처음엔 국군 1사단 직속으로 편성됐다가 나중에 미군 소속으로 바뀐 부대로, 황해도 연백군, 개성 시와 개풍군 등에서 활약했던 '5816 유격대' '국군 특수부대'라고도 불렀던 곳이었다. 
고향에 혼자 남겨 두고 온 모친을 모시고 오고 싶다는 마음에, 기습작전에도 참가하여 고향집을 찾았으나 식량을 구하러 시골로 가버려 만나지를 못하고, 그날 밤에 철수해야 하는 작전이었기 때문에 임수는 눈물을 머금고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제1사단 소속 부대 심리 작전과에서 그는 중공군과 인민군의 귀순을 권하는 만화를 그렸는데 그때부터 만화가로서 '임수'라는 필명을 널리 알리게 되었는데, 이런 경험이 그에게 만화의 힘이란 것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전쟁 중 임수의 무기는 총칼이 아닌, 그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펜촉'이었던 것이다.



전쟁 후 1953년 서울로 상경한 그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신신백화점>의 미술 디자이너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임수는 문구점에 만화자료를 사러 갔다가, 백화점 사장과 친분이 있는 월간 <만화세계> 사주 ‘김성옥’을 만난다.
만화잡지 창간 준비를 위한 자료를 사러 왔던 김성옥은 만화 공부한다는 임수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창간 준비 사원으로 특채를 해서, 만화가를 꿈꾸던 그를 <신신백화점> 입사 8개월 만에 그만두게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만화가는 10여 명 정도가 있었는데, 서울미대 1학년이었던 신동우도 만화를 그리겠다고 <만화세계>를 찾아와 함께 동참하여 만화 그렸다.
임수와 신동우는 편집부원으로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만화세계> 지면에는, 미대 교수였고 동양화가인 송영방, '까불이'의 작가인 김경언, 그리고 그 당시 최고 작가였던 박광현, 박기당도 전속작가로 합류해서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유명했던 월간 <학원>잡지와도 겨룰 정도로 <만화세계>는 인기 있는 매체였다. 

임수의 대표작 '거짓말 박사'는 고서점에서 구입한 일본어로 번역된 독일의 명작 소설로, 주인공 허풍쟁이 남작의 모험 이야기이다. 임수는 특유의 만화적 감각으로 소설을 재구성하여 만화로 그려 <만화세계>에 연재한 데뷔작이었다.
요즘처럼 만화교육 전문기관이나 만화 실기 지침서도 없었고, 스승에게 그림을 배울 기회도 없었던 임수는 탄탄한 기본 실력에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외국 책을 참고하면서 독특한 캐릭터를 개발했다.


대표작 '거짓말 박사’로 일약 인기 스타가 되다

임수의 데뷔작 '거짓말 박사'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3판까지 찍을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꼼꼼하고 정확한 그의 그림은 만화가 지망생들에게는 만화 실기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만화 '거짓말 박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이듬해 흑석동에다 방 한 칸의 작은 작업실에다 '임수 프로덕션'이란 간판을 달고 작품 제작에 매진하였다. 
꼼꼼하고 정확한 성격 탓도 있지만 정밀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던 임수의 작품 대하는 자세는, 출판사 사장들은 물론 문하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했다. 
문하생들이 꼼꼼한 임수의 데생에 질려 펜 터치를 대충 해오면 찢어 버리고 다시 그렸다. 만화를 배우겠다는 정신이 틀렸다는 것이다. 
대충대충 그리는 그림을 보지 못하는 엄한 선생님에 질려 대다수의 문하생들은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달아날 정도로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했다.

‘그림 잘 그리고 인기도 좋은데 수입은 적은 만화가’라는 비아냥과 함께 ‘손해만 보는 작가’라는 주위의 놀림도 받았던 임수는, 비록 수입이 적더라도 꼼꼼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작가정신은 버릴 수가 없었다.
'작품을 소홀히 할 수 없다'라는 임수의 고집과, '빨리 그려 돈을 만들자'는 출판사 사장은 만날 때마다 다투었다.
1955년에 시작한 '거짓말 박사'는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한국판' 거짓말 박사, '중국판' 거짓말 박사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1960년대까지 60여 편을 발표했다. 

강렬한 고등계 형사의 캐릭터와 선글라스를 낀 멋있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독자의 사랑을 받은 <촤이나 박>은 임수가 두 살 때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하며 민족정기를 되살리자는 생각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중국 거리 배경에서부터 중국식 복장, 중국인의 머리 모양 등을 꼼꼼히 챙긴 자료로 현장감을 살린 작품은 <거짓말 박사>를 이은 또 한편의 대 히트작이었다. 임수 작품의 인기는 급기야 ‘가짜 임수’ 소동까지 벌어지는 일까지 생기기도 했었다.

최고 인기 작가였던 임수에 대한 출판사의 대접은 그야말로 칙사 대접이었다. 
매일 호화판 대접에다, 구두가 멀쩡한데도 새로 맞춰주는가 하면, 철마다 양복을 사 주며, 돈을 보자기에 싸 들고 원고 얻기를 바랐다. 뿐만 아니라 집과 화실까지 마련해 주는 업자까지 있었다.
하루 50~60여 통의 팬레터가 화실에 쌓였고, <촤이나 박>에 이어 <위대한 인디언>, <거인> 등 연속적으로 히트작을 발표하는 특급 작가로 만화계에 군림했다.
특히 스토리 구성력이 뛰어 났던 그는, 원고 마감에 쫓길 때는 문하생들 앞에서 스토리를 짜서 데생을 시작할 정도 바쁜 만화가였다.
천하통일, 위대한 인디언, 바우 형님, 하리마오, 쾌남 노 대령, 독립투사 촤이나 박 등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며 인기를 이어 나갔다.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만화학원 <한국만화연구소>

1960년대 임수가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문을 연 만화 학원 <한국만화연구소>에서 강사로 초빙을 받는다.
임수를 비롯한 신동헌, 정한기, 신동우, 김경언, 송방, 김정파 등 당시의 쟁쟁한 만화가들이 출강을 한 이곳에서 임수는 수강생들에게 구수한 비유법으로 기초실력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인기 강사로 대접받았다.

"요즘 젊은 만화가들은 기초 공부를 등한시하는 것 같다. 기초가 없는 만화는 사상누각과 같다. 남의 책 보고 베끼는 수준으로 만화가입네 하는 게 한심하다.
그리고 독서를 안 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작품의 스토리를 남에게 산다. 작가라면 혼자서 스토리, 콘티는 손댈 수 있어야 만화가이지. 자기 머리로 이야기를 짜는 작가가 드문 것 같다. 이런 만화가는 싫다. 자기 작품을 스스로 생각해서 그려야 진짜 아닌가.”

만화를 시작한 것은 돈을 보고 시작하지 않았고, 굶더라도 만화가 좋아서 그려 온 임수는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생물 등 각 방면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책 속의 내용에서 만화의 주제를 찾아내 쉴 사이 없이 그렸다.
만화를 그리려면 다양한 등장인물과 시대적 배경을 막힘없이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항상 준비를 해야 부끄럽지 않은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원고료를 타면 제일 먼저 서점부터 찾는다. 스토리 구상이 안 될 때는 며칠씩 영화관을 전전하기도 한 그였지만 영화관에 갈 때는 꼭 스케치 북을 들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돈과 명예를 얻고 있던 임수에게 1973년은 가정 문제로 좌절했던 시절이었다. 
5년 동안 방황하며 큰 시련을 겪은 그에게 남은 것은 피폐해진 가정과, 허리 디스크까지 생겨 거동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주는 병든 몸뿐이었다.
이런 고통을 극복하고 감당하기 위해 임수는 1978년부터 신앙을 갖게 된다. 

1974년 거래했던 상록문화사에다 ‘소녀를 구한 특별열차’를 마지막으로, “선교 이외는 어떤 만화도 안 그리겠다. 하나님이 주신 재주를 먹고사는데 쓴다는 것은 죄악이다. 하나님을 위해 내 재주를 써야 하겠다.”라고 선언을 하고 종교 활동에만 전념한다. 
우리나라 선교 만화는 주로 외국 성경 만화를 그대로 수입, 번역 출간하는 형태여서 재미가 없다는 통념을 깨기 위해 ‘기독 만화계의 1호 만화가’답게 흥미를 가지고 읽고 재미있어하는 선교 만화 제작을 위해, 만화적 기법 개발과 시대 상황에 맞는 그림 자료를 열심히 수집했다.

임수가 선교 만화가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에서 35년 전부터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 딸과 목사 사위의 지원 덕이었다. 러시아, 핀란드, 에스토니아를 답방하며 선교 영화와 만화를 제작했다. 
신앙인으로서 대중 만화가로서 누리던 인기를 팽개치고 선교 만화만 그리겠다고 선언한 임수의 말에 주위에서는 모두 임수가 '돌았다' '미쳤다'라고 했다.

원로 만화가 임수의 개인 전시를 꿈꾸며

얼마 전에 60년대 인기 작품으로 만화 전시에 필요하다면서, 임수 선생에게 소중한 작품을 빌려 간 사람이 있었는데, 전시는커녕, 책까지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무책임과 무지에 무척 언짢아했다.
만화사에 대한 식견이 짧은 사람들이라서 인지 원로 만화가의 작품을 전시한다면서 ‘진짜’를 찾아내지 못하고,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들만 아는 그룹끼리만 전시해 놓은 걸 보고 '아직도 만화계가 이 모양이로구나'하며 한탄하며 돌아왔다고 한다.

선배들이 다 잘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척박한 시대를 감당하며 만화만 잡고 고생한 선배 개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만화 전성시대를 이룬 것인데, 원로 만화가들을 알지도 못하고 일려고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세태를 섭섭해했다. 
잊혀져 가고 있는 원로들과 작품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자료도 정리해 주고, 관심을 가질 줄 아는 풍토, 주위도 돌아 볼 줄 아는 성숙된 만화계가 되기를 바라는 원로 선생님 말씀에 뜨끔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일주일이면 개성을 탈환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남쪽으로 왔는데 그게 벌써 반세기를 넘겼다며 아쉬워하는 선생님은, 만화가로서 무공훈장을 탄 사람은 없다며 몇 해 전에 국방부에서 받은 ‘화랑무공훈장’을 자랑스러워했다. 
6.25 전쟁 때 선생님이 그린 삐라로 중공군과 인민군을 귀순시킨 활약상을 몇 해 전에 다큐 프로그램으로 제작, MBC에서 방영한 것을 국방부에서 보고 그 공로를 인정해서 준 것이다.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며 사는 노인이, 한때 인기 있었던 원로 만화가라는 것을 안 이웃이 선생님에게 옛 시장판 그림을 그려 달라고 청탁을 했다.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취재하고 기억을 살려 완성 시킨 작품은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가치를 모르는 이가 지불한 수고료가 너무 적어 실망한 선생님은 그런 일도 접었다며 쓸쓸해하셨다.
국적 있고 예술적인 만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하며 작품을 하는 만화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인기란 돈벌이 수단 일뿐, 결국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한때의 인기를 세상에 묻고 신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원로작가 임수 선생님은, 앉을 자리도 없고 힘들어 다니기 불편해서, 사람 많은 곳도 싫지만, 9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붓을 놓지 않고 봉사하며 예술혼을 꺼트리지 않고 살고 계신다.
생전에 개인전을 해 보고 싶은 것이 꿈인 선생님이지만, 전시회를 열기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하는 후원자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말씀을 들으며, 숙제를 받은 기분이 들어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일어섰다.

임수 (본명 : 임영의)

1931년 경기도 개성 생.
1951년 육군 제5816부대 유격대 입대
1954년 월간 '만화세계' 창간사원 입사
'거짓말 박사' 연재
1955년 '거짓말 박사' 단행본 발간
1957년 '거인' '자랑스러운 소년' 발표
1958년 '위대한 인디언' '촤이나 박' '바우 형님' 등 발표
1960년 한국 최초 만화학원 '한국 만화연구소' 강사
1971년 (사)한국만화가협회 이사.
1973년 한국만화상 <윤리상> 수상
1974년 '소녀를 구한 특별열차'로 제4회 아동만화상 수상
1978년~84년 (사)한국만화가협회 상임이사
신앙지 '아름다운 별'에 간증만화 5년간 연재
1990년 성경연구원 수료
1992년 월간 '말씀과 함께'에 만화 연재
1993년 러시아 선교답사 여행
1996년 '김활란 선생님 그림전기' 출간
'공룡도 하나님이 만드셨을까' 러시아 판 발간.
1999년 ~ 러시아, 핀란드, 에스토니아에 선교여행
선교만화 사람으로 오신 예수, 죽으면 죽으리라 등 발표.
2002년 대한민국출판만화 시상식에서 공로상 수상
2005년 만화의 날 행사 황금 펜 촉상 수상

현재
8240전우회 사무국장 / 서울 영석교회 협동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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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
2019.11.25
‘실록(實錄)’이라는 단어가 있다. 실록이라 하면 우리는 주로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지만 논픽션 다큐 같은 장르적 성격의 의미로 쓰인다. 나는 주로 70년대 실존 인물을 다룬 일본 임협물이나 한국의 <실록 김두한>(1974) 같은 옛날 폭력영화에서 이 단어를 보았던 기억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2.임금의 제위 기록이란 뜻을 제외하고, 1.사실을 실제로 적은 기록, 3.사실에 공상을 섞어서 그럴 듯하게 꾸민 이야기나 소설(=실록물)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나는 이 두 항목의 차이가 재미있다. 1번은 순수 논픽션이라는 건데, 3번은 사실 기반에 양념이 좀 가미된 장르물이라는 것. 아무튼 이 한자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잘 써먹는 듯하다. 작품 앞에 ‘실록’이 붙는 순간 생겨나는 이상한 무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