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칼럼] '공포' 장르문학,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이다혜(씨네21 기자) 2019.07.09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무엇이 공포의 요인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먼저 반응한다.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공포를 구현하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표현양상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소설, 만화, 영화는 각기 어떻게 두려움을 빚어내는가.

공통점부터 이야기하자. 전통적인 공포는 ‘놀래키기’의 방식을 쓴다. ‘몸개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놀래키기’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비명을 끌어낸다. ‘무언가가 갑자기 당신을 덮친다.’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는데 이불 안에서 귀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몸에 올라타 있다. 으악. 복도 저쪽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 귀신이 갑자기 훅!훅!훅! 코앞까지 점프하듯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으악.



웹툰의 경우 놀래키키 기법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경우는 2011년 여름 네이버 웹툰 작가 20여명이 참여한 릴레이 연재 <2011 미스테리 단편>를 통해 발표된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이었는데, 웹툰을 보지 않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링크가 전달되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있었던 “절대 공공장소에서 보지 말 것!”이라는 주의사항을 기억하는가? 스크롤을 하다가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등 호들갑을 떨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래키는 방식의 공포는 ‘비주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경우는 금세 익숙해진다. 처음 한 두 번은 효과가 있지만 이후에는 식상한 느낌이 놀람을 상쇄시킨다. ‘귀신의 집’ 류의 ‘체험형 공포’는 그보다는 수명이 길다. 어둠속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뭔지 모르는 물컹한 것이 몸에 닿는 순간의 물리적인 놀람은 매번 갱신되는 종류의 두려움어서다. 다만 이 경우도 점점 예측이 가능해진다. 담력훈련에 단련된 학생들이 특정 ‘구간’을 지날 때 큰 나뭇가지를 휘둘러 귀신 분장한 선생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듯.


최근 인기있는 공포물은 깜짝쇼를 벗어나 발상의 전환과 동시대성을 둘 다 잘 담아내는 작품들일 때가 많다. <곤지암>의 경우 장작 작가의 웹툰 <0.0MHz>과의 유사성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일단 <0.0MHz>의 내용은 이렇다. 초자연 미스터리 탐사동호회 0.0MHz 회원들이 한 흉가에서 겪는 이야기. 끔찍한 그림이 있긴 해도 깜짝 놀래키는 방식은 쓰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일으키는 심령현상을 다루는 오컬트물에 과학적 해명을 합한 <0.0MHz>(2019)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정은지, 이성열 배우 주연으로 올해 5월29일 개봉했지만 누적관객 15만명을 넘기지 못했다. 웹툰상에서의 내리누르는 듯 묵직한 압박감이 2시간 남짓의 영화에서는 첫사랑 청춘물 분위기에 폐가에서 벌어지는 일로 요약되며 웹툰보다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곤지암>은 젊은이들이 공포 체험을 떠난다는 설정은 <0.0MHz>과 흡사하지만 ‘실화’ ‘도시괴담’ 등과 연결지어지고 독특한 관람 후기들이 인터넷 밈이 되면서 관람 붐이 불었다. 곤지암 정신병원이 ‘이 선정한 세계 7대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선정되어 각종 유튜버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생방송을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유명 인터넷 생방송 전문 채널 ‘호러타임즈’를 운영하는 하준(위하준). 그는 친구들과 지원자를 모집해 1979년 환자들과 병원장이 집단 자살을 했다는 곤지암 정신병원 탐험대를 결성한다.

<곤지암>은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영상물인데, <블레어 윗치>(1999)나 <클로버필드>(2008)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같은 영화들이 같은 범주로 분류되며, ‘(사건이 완료된 이후) 발견된 영상물’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장르는 생존자가 없어서 당시를 찍은 영상물로만 겨우 판단 가능한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느낌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대체로 홈비디오같은 양식의, 정말 ‘일반인’이 찍었을 법한 (다소) 허술한 촬영으로 찍힌,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의 흔들리는 영상이 고스란히 촬영자의 불안을 전달한다. (그래서 ‘파운드 푸티지’ 영화는 대체로 관람 후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는 불만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인기를 얻은 방식은 재치있는 후기와 인터넷 문화 등과 관련이 있는데, ‘곤지암 후기’로 검색하면 팝콘이 극장 바닥에 쏟아져 있는 사진들이 가장 먼저 뜬다. “너무 무서워서 팝콘을 먹지도 못하고 집어던졌다”를 사진으로 표현한 셈이 되는데, 처음 한 장의 사진이 돌기 시작하더니 이 자체가 영화 관람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즉, 보통의 경우라면 다른 관객에게 폐가 되기 때문에 하지 않던 행동이 <곤지암> 상영관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상황을 모르고 극장에 간 관객들의 당혹감도 그만큼 커졌음은 물론이다.) 일단 떼를 지어 온 십대, 이십대 관객들이 있다. 마치 수학여행처럼, 일부러 맨 뒷자리에 앉는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비명을 지르고 그 소리에 서로 웃는다. 적당한 때 팝콘을 집어던진다. 게다가 곤지암은 실재하는 지명이며, 곤지암 병원 역시 존재한다. 그러니 영화가 끝나고도 검색하는 재미가 남아 있는 셈이다.

단순히 관객으로 영상을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 촉각적, 경험적 즐거움으로 이어지며 영화의 재미가 계속되는데, 공포영화 중에서도 최근 인기를 끈 <겟 아웃>(2017), <유전>(2017)을 비롯한 영화들 모두 영화의 ‘해석’을 둘러싼 2차 감상이 영화의 이슈몰이를 주도하는 힘이 되었다. 이것은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인 셈이다. 특히 <겟 아웃>과 <어스>(2019)의 조던 필 감독과 <유전>과 <미드소마>(2019)의 아리 에스터 감독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무엇이 공포인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 인기를 얻었다.


최근 만화 중 공포물 수작으로 꼽을 작품은 외눈박이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고 박수봉 작가가 작화를 맡은 <먹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올 초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오래전부터 무서운 존재들을 봐 왔던 박윤영이 주인공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십대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이 장르의 걸작 <여고괴담>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지금까지의 연재분으로는 기대할 만한 공포물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예전부터 난 이상한게 자주 보였어. 머리가 아플수록 이상한 것들이 많이 보이더라.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잘못된 줄 알았지. 그동안 말을 걸거나 접촉하진 않았었는데, 언제부턴가 그것들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어. 마치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공포 소설은 철저하게 독자의 ‘상상력’과 싸운다. 독자가 맹렬하게 상상할수록 세상에 없는 존재가 형체를 갖춘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 해도 저마다의 경험과 상상력의 차이에 따라 다른 그림을 머릿속에 그린다. 공포 영화는 구체적인 ‘얼굴’을 갖춘 영상에 더해 ‘소리’로 사람들을 압박한다. 그렇다면 만화, 그 중에서도 웹툰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가. 스크롤을 하는 동안 컷과 컷 사이의 ‘틈’이다. 스크롤 한 번에 뭐가 끌려올라올지를, 내가 스크롤하지 않으면 올라오지 않을 그것을 끌어올린다. 속도감을 보는 사람이 조정할 수 있으며, 연재 분량만큼만 볼 수 있다.

<먹이>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는 윤영과 민지가 느끼는 압박감을,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 눈에는 선명한 괴물의 존재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각양각색의 끔찍해보이는 괴물들이 안기는 시각적 공포에 더해, 그 괴물들을 보는 두 십대 여자들이 겪어온 시간들에 대한 공포, 현실에 존재하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깔려있는 압박 상황, 자신들이 보이는 인간을 알아보고 먹으려 드는(그래서 제목이 <먹이>인 듯하다) 괴물들이 유발하는 서스펜스가 <먹이>를 보는 재미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보려 해도 신체적, 사회적 수단이 극히 제한적인 십대 여성들이 느끼는 무력함이야말로 <먹이>가 주는 고구마 식감의 공포의 참맛이다. 귀신이 아니어도 괴물이 아니어도, 충분히 두려운 존재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먹이> 속 주인공들도 바깥의 약자들도. 자려고 누워서 머릿속에 들어붙은 두려움과 찜찜함과 싸우는 ‘독자의 일’, 공포물 창작자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반응이리라.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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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포트] <알라딘>, <라이온킹>의 실사화와 디즈니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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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웹툰 생태계의 변화와 작가 주도형 플랫폼의 부상
홍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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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게 된 것은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이 등장하고서부터다. 포털 중심의 웹툰연재는 독자들을 폭넓게 설정한 작품들이 유리했다. 만화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그려왔으나 여기에 속하지 못한 작가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들어진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은 도전만화나 웹툰리그에서 꾸준히 작품을 내던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하며 성공적으로 웹툰 산업에 안착했다. 무료연재는 웹툰이 산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없게 하는 주요 요소로 손꼽혀 왔다. 유료플랫폼의 약진은 이러한 우려들을 상쇄할 수 있는 성과였다.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은 데뷔를 꿈꾸는 작가들에게는 꿈의 공간, 웹툰계에서는 좀처럼 시도되지 못했던 유료 결제를 안착시키면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작가와 유료 플랫폼의 신뢰가 깨지면서 일순간에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전문가 칼럼] 2019년 태국 웹툰 시장 현황과 진출 방안
Pasavon 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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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SNS의 딜레마 : 작가, 작품, 팬은 어떻게 서로 ‘절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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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7 : 김영하, 황재
박기준
2019.08.26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크레이그 톰슨의 작품 읽기 1. <담요> : 어느 만화가의 소명(召命)
박수민
2019.08.07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한 선배 감독이 내게 <담요>를 추천하면서 부터다. 그 선배는 내가 존경과 비아냥거림을 섞어 ‘영문학의 대가’라고 부르곤 하던 인물로, 영미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넓은 식견을 지녔다. 주로 일본만화 아니면 DC/마블의 슈퍼 히어로 중심 그래픽 노블만 즐겨 보던 나에 비하여 그는 미국 인디 계열의 자전적 만화를 많이 읽었고, 어느 작품은 국내 출판된 책 표지에 그럴듯한 추천 문장을 남긴 걸 자랑하기도 했다.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⑪ 박기준
조관제
2019.08.01
지금의 장년층 이상 국민들이 소년시절 함께 웃고 울었던 정겨운 친구 ‘두통이’ 캐릭터로 한양의 지가를 올렸던 박기준은, 다른 만화가들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전문가칼럼] '공포' 장르문학,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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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포트] 인도네시아 만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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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인도네시아의 정식 국명은 인도네시아 공화국 (Republik Indonesia)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2017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6천만명을 가볍게 넘는다. 이 수치는 세계 4위, 동남아 1위로 콘텐츠 비즈니스는 ‘인구 기반 비즈니스’라는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6 : 계월희, 박진우
박기준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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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 근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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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빈약한 내수 시장을 극복하고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해외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제조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넘게 각고의 노력으로 꾸준히 해외 진출을 시도한 한국 콘텐츠는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는 게임, K-POP, 영화, 드라마가 있으며 최근에는 웹툰이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기술, 예술, 사업의 놀라운 삼위일체
박수민
2019.07.01
<토이 스토리 4>가 나온다는 소식에 처음엔 의아했다. 2010년에 나온 3편을 완벽한 3부작의 마무리로 보았고,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친구들에게 더 나은 결말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 살아있는 장난감에겐 자신을 아껴줄 주인보다 좋은 건 없다. 또 모험을 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지어내 억지로 잇는 느낌일 것 같았다. 픽사가 한동안 오리지널보다 전작의 속편이나 스핀오프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도 의심을 더했다. 물론 안이한 기획이기 쉬운 속편마저 귀신같이 잘 만드는 픽사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