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⑪ 박기준
조관제 2019.08.01


한국 만화사 연구의 보물창고
박기준 朴基埈
1941년 평남 강서 생
1944년 월남
1956년 '어디로 가나' '두통이' 등으로 데뷔
1958년 서라벌 예고 시절 <만화세계>에 ‘두통이 만세’ 연재
1959년 ‘두통이’ 단행본으로 발표
‘누나를 찾아서’ ‘풍운아’ ‘두통이 일등병’시리즈 등 발표
1963년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장편만화 ‘올림픽 소년’ 발표
1965년 <소년한국일보>에 '푸른 하늘 저 멀리' 연재
1970년 이론서 '만화 스토리작법' 발간
1975년 (사)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역임
1984년 3월 ‘제일 만화학원’ 개원
1987년 '만화가가 되려면' 발간
2009년 만화규장각지식총서 ‘한국만화야사’ 발간

약력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겸임교수
한국만화역사자료관 원고보존위원회 회장
제일만화예술연구원 원장
FECO KOREA회장. 일본만화신문 편집자문위원
만화박물관 고 만화 감정 위원 / 만화규장각 <한국만화야사> 집필.


형님 그림으로 미술부장이 된 ‘두통이’.

지금의 장년층 이상 국민들이 소년시절 함께 웃고 울었던 정겨운 친구 ‘두통이’ 캐릭터로 한양의 지가를 올렸던 박기준은, 다른 만화가들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장충초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숙제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방안에 '굴러다니는' 바로 위의 형인 박기정 화백의 비행기 그림을 주워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낸 것이 평생을 만화와 함께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박기준의 그림을 본 미술 선생은 그의 실력으로 믿고 며칠 후 미술부장을 시켰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림을 대신 그려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지만, 형님은 박기준의 도움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 없음을 끝까지 숨길 수도 없었던 박기준은 뒤늦게 그림공부에 매달린다.

그 어려웠던 시절, 형제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푹 빠져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만화책이었다.
학교 근처 문구점 벽 쪽에 만화의 중간부분을 고무줄에 걸친 표지들이 보석처럼 보였던 박기준은, 좀 더 희귀한 만화와 잡지 등을 구하러 종로통에 있는 큰 책방에 가서 사야하는 수고쯤은 감내했다.
형 박기정과 박기준은 좋은 작품들을 골라 사 온 날은 만화가라도 된 양 캐릭터를 흉내 내며 펜으로 따라 긁적이며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기정과 기준 두 동생이 밥 먹고 살 수 없는 그림에만 죽자 살자 매달리는 것에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큰 형님 박기반씨는, 한 제자로 인하여 만화에 대한 생각을 누그러뜨린다. 경복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던 큰 형님은 수업시간에 신문사 원고 마감 시간이 급해 수업을 듣지 않고 만화를 그리는 학생과 만나서부터이다. 
야단치러 갔다가 칭찬까지 해 줬던 학생이 바로 종합일간지인 ‘연합신문’에 전속작가로 만화를 그려 학비를 조달하고 있던 ‘고바우’ 김성환이었다

큰 형님 박가반 교수는 일찍이 해외 유학한 영문학 전공자로서 그림만 그리는 형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세계문학’에서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읽고 보게 해서 틈틈이 책을 읽는 습관이 들도록 도움을 준 은인이다.

그림 못지않게 글과 기획력이 뛰어 났던 박기준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만화 월간지 <우리세계>에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입사, 컷과 도안을 해 주며 학비를 번다. 그 당시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이름 있는 작가의 문하에서 1~2년 정도 실력을 길러야 했지만 1958년에 ‘두통이’라는 캐릭터로 잡지에 바로 만화 연재를 할 수 있었다.

틈만 나면 명동 뒷골목에 가서 외국 만화를 섭렵한 박기준은 미국만화 ‘개구장이 데니스’에서 아이디어를, 일본의 유명한 작가 ‘바바노보로’의 그림체를 보며 만화공부를 했다.

캐릭터가 동글동글한 일반적인 만화 주인공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머리 둘을 붙인 것 같은 울퉁불퉁한 머리 모양과 단순히 점으로만 표현했던 빡빡머리를 짧은 점선으로 표현하여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만든 것이다.



데뷔작 ‘두통이’로 만화계 화풍의 변화를 주도하다.

<우리세계>에 연재된 박기준의 ‘두통이’ 만화를 본 <광문당> 출판사에서 80쪽 짜리 단행본 청탁을 한다. 그 당시의 만화 유행은 박광현, 박기당, 김종래 같은 사실적인 그림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라 ‘두통이’같은 약화체 그림은 어느 출판사고 눈여겨보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유행을 무시한 박기준의 '두통이'는 출판사에서도 놀랄 정도로 큰 인기를 얻는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 대한 검증이 되자 큰 출판사였던 ‘부엉이 시리즈’에서 박기준에게 청탁을 한다. 문학에 소질 있었던 박기준은 그 시대 독자들의 기호에 맞는 순정과 명랑만화를 섞은 스토리로 <누나를 찾아서>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확고부동하게 작가로서의 위상을 세운다.

연이은 단행본 작품의 성공으로 스스로 출판을 해서 좋은 만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 박기준은 큰 형님을 설득하여 <크로바 문고> 출판 등록을 한다.다행히 작은 형 박기정은 잡지와 신문에 연재하던 뛰어 난 작가였기 때문에 우선 두 사람부터 시작하며 주위에 있던 마땅한 작가들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만화 출판계의 후발주자인 <크로바 문고>에는 작가 확보가 문제였다. 기성작가들은 거의가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한 상태라 스카우트를 하기 어려워 박기준은 직접 신인작가를 찾아 나선다. 그림 소질은 있는데 발표할 지면을 구하지 못하는 작가, 그림 재주는 있지만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아 자작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하는 어시스트들을 우선적으로 접촉을 한다.

그 중에서도 ‘박부성’과 ‘이정민’은 <크로바 문고>에서 키워 준 <1호 작가>였다. 아무리 실력이 빼어 난 만화가라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작가는 상품성이 없어 외면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박부성의 재능을 발견한 박기준은 과감하게 데뷔를 시킨다. 독자에게 빨리 신인 만화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박기정의 ‘가고파’와 박기준의 ‘고향의 눈’과 같은 인기 작품의 속편을 박부성 이름으로 하여 독자에게 빨리 알려지도록 했다. 
박기정은 언짢아했지만 어쨌든 박부성은 박기준의 도움으로 신인으로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낸 작가가 되었다.

또 <만화세계>에서 단편을 연재하던 ‘약동이와 영팔이’의 방영진과 ‘봉선이’의 권영섭도 단행본 작가로 데뷔해서 성공을 했다.





될성부른 떡잎 고르는 눈을 가진 최고의 감별사
만화가이면서도 출판 기획자였던 박기준은 독자성향 판단능력이 뛰어 나 기획한 작품마다 모두 성공시켰다.

이정민을 작품 기획과 콘티 테크닉을 지도하여 인기 작가 반열에 올렸는가 하면, 그림 재능 뛰어났던 박문윤에게는 스토리를 써 주는 것은 물론, 순정작가답게 ‘박정혜’라는 필명까지 지어 주는 열성으로 작품을 성공시켰지만 후속 작업이 되지를 않아 중도 하차한다. 

원로 여류작가인 ‘민애니’도 독자였을 적에 ‘박정혜’의 작품에 감동을 받고 방문했다고 한다.

이 때 발굴한 만화가로는 노석규, 김창수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잡지에서 1~2쪽 단편 만화만 해왔기 때문에 호흡이 긴 단행본 만화를 6개월이 지나 1년이 되어도 끝내지 못한 작가들이 많았다.

여러 만화출판사에서 대본소에 배본할 권 수 경쟁 시대로 돌입하자 박기준도 권 수를 늘리기 위해 문하생을 두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단행본 뒤에 나온 광고와 <크로바 문고>라는 출판사를 보고 문하생으로 들어 와 배우겠다는 지망생이 몰려들었지만 박기준 만큼 문하생 선발 기준이 까다로운 작가도 드물었다.적어도 자기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그림은 물론 스토리를 쓸 줄 아는 기초 소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문하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문하생 선발 기준 덕에 그의 문하생은 3~4년만 지나면 거의 독립을 해서 훌륭하게 작품을 할 수 있었다.당시 <크로바 문고>의 소속 작가로는 박부성, 방영진, 권영섭, 박기정 등이 있었는데 유명한 박기정의 ‘도전자’도 이 출판사에서 발행됐다. 

<크로바 문고>를 통해 발표된 여러 작가들의 공통점은 당시 유행했던 극화를 벗어나 이른바 약화체 그림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극화는 지속적인 연재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유머가 넘치고 그림을 간략화한 만화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크로바 문고> 전속 작가들의 만화는 간략한 명랑 만화체와 반 삽화체, 순정체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경향은 한국 만화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 ‘이상무’로 알려진 박노철은 박기준 화실에서 5년 동안 일을 도왔다. 박노철을 독립을 시키려 했지만 무명 만화가의 작품 수명은 길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박기준은 1965년에 큰 형님과 창간한 월간 학생잡지 <여학생>에 ‘노미호와 주리혜’라는 만화를 콘티를 짜주고 데뷔를 시켰다.

그때 함께 연재 된 김성환의 ‘미스 앵두’나 정운경의 ‘난실이’같은 대가들의 작품보다 이상무의 만화 인기가 높았고 그 인기를 발판으로 삼아 그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박기준 문하생은 그림 공부 외 잡기雜技는 금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놀기 좋아할 시기의 문하생들에게는 고역이었다. 오죽했으면 이런 규제를 하는 박기준을 보고 주위에서 지독하다며 ‘구두쇠’ ‘짱꼴라’라고 별명까지 붙였다. 하지만 그의 문하생들은 독립을 해서도 스승에게 배운 금욕정신(?) 덕분에 생활이 탄탄해졌단다.

‘두통이 시리즈’로 주가를 올리던 박기준은 또 한 번 만화계에 대기록을 세운다. 1963년에 발표한 작품 ‘올림픽 소년’은 다양한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구성으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50권까지 시리즈로 발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항상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신촌 왕국 <합동문화사>의 횡포에 박기준과 <크로바 문고>도 고초를 당한다.

신촌 왕국 <합동>은 물량 공세와 덤핑작전으로 군소 출판사를 굴복, 합병 시켰지만 그래도 탄탄했던 <제일사> <부엉이 문고> 그리고 <크로바 문고>만은 어쩌지를 못했다.
그러자 '신촌대통령'은 새 건물을 지어 남아있던 사무실을 견디고 있던 출판사에 무료로 사용하라는 제의를 한다. 이 유혹에 <제일사>가 먼저 넘어 가 입주를 했는데 ‘신촌 대통령’은 <제일사>와 거래하는 작가를 건물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일 거수 일 투족을 감시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일사>와 거래하던 민화가들을 유혹 해 출판사 운영을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이 <부엉이 시리즈>가 넘어가고, <크로바 문고> 역시 역부족으로 손을 들게 된다.

“만화 시장을 독점한 <합동>이란 출판사로 인해, 좋은 만화 출판은 날 샌 거다. 게다가 작가를 화공으로 전락시키는 횡포에다, 만화계 발전은 안중에도 없고 폭리만 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 만화 지키는 만화가 키우던 ‘인큐베이터’ <제일만화학원>을 열다.

△ 울산 청소년 만화 대회 참가 학원장들
좌측부터 조득필, 박상원, 황정하, 필자, 김기백, 길문섭(회장), 이용진(고문), 장지연

1985년 박기준은 서울 남산부근에서 설립한 <제일만화학원>은 청량리와 동국대 입구 등 몇 군데를 옮겨가며 1999년 폐원(閉院)할 때까지 많은 신인을 배출한 우리 만화계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5년 동안 운영해 왔던 ‘제일만화예술원’을 통신 강좌로 바꾸고 전국에 있는 만화학원을 운영하는 후배들을 돕기 위해 울산으로 광주로 바쁘게 출장을 가기도 했었다.
만화가로서 그리고 만화 학원을 운영하면서 체득한 만화 이론과 실기에 관한 지침서 등 집필을 왕성하게 해 온 박기준은 만화가로서, 그리고 만화학원을 운영하면서 체득한 만화 이론과 실기에 관한 지침서 ‘만화 작법’ ‘만화 스토리 작법’ ‘만화가가 되려면’ 등을 왕성하게 집필을 했다.

당시 학생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여학생>을 창간했으며, 1975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에 취임해 회보를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협회의 위상을 올려놓기도 했다.
사회에서 홀대받던 우리 만화문화를 지켜온 선배들의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에 원로 만화가들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 보존하기 위해 <청강문화산업대학>의 지원을 받아 <만화박물관>을 탄생 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 대학 최초의 만화도서관 개관 (청강문화대 1998년 11월)
좌측부터 사이로, 필자, 이해광


1998년에는 세계 카툰 작가들의 모임인 국제만화가연맹 <페코 코리아(FECO KOREA)>회장을 역임했으며, 99년에는 일본 <만화신문> 편집고문에 위촉되어 한국의 만화계 소식을 일본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도 했고, 제자들을 일본의 만화 관련 대학에 추천, 만화 유학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만화가로서의 성공에 이어 출판편집자, 만화 연구가 그리고 교육자로 성공한 박기준은 오늘도 한국만화를 찾고 보듬는 길을 계속하고 있다.
만화학원을 통해 배금택, 고행석, 이상무, 윤필과 같은 중진 작가에서부터 박구원, 강동헌, 김진태, 김종섭 같은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를 50명이나 배출한 것을 보람으로 느낀다는 ‘만화사의 보물창고’ 박기준은 못 마시는 생맥주까지 들면서 늦도록 '만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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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 근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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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툰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빈약한 내수 시장을 극복하고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해외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제조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넘게 각고의 노력으로 꾸준히 해외 진출을 시도한 한국 콘텐츠는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는 게임, K-POP, 영화, 드라마가 있으며 최근에는 웹툰이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기술, 예술, 사업의 놀라운 삼위일체
박수민
2019.07.01
<토이 스토리 4>가 나온다는 소식에 처음엔 의아했다. 2010년에 나온 3편을 완벽한 3부작의 마무리로 보았고,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친구들에게 더 나은 결말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 살아있는 장난감에겐 자신을 아껴줄 주인보다 좋은 건 없다. 또 모험을 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지어내 억지로 잇는 느낌일 것 같았다. 픽사가 한동안 오리지널보다 전작의 속편이나 스핀오프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도 의심을 더했다. 물론 안이한 기획이기 쉬운 속편마저 귀신같이 잘 만드는 픽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⑩ 임수(본명 : 임영의)
조관제
2019.06.19
임수의 작품은 이국적인 화풍과 꼼꼼한 그림체, 그리고 특유의 과장된 캐릭터로 한 번 본 50~60대 독자라면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임수 만화’를 보는 재미는 심각한 장면마다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辯士 같은 인물들이 만화 칸 밖에 나와 해설하는 장면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칼럼] IP의 확장-웹소설학과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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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모바일 시대의 대표 콘텐츠로 각광받는 웹소설은 여가시간에 손에 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웹소설은 다양한 미디어 창구로 전환되어 성공사례를 만들어냄으로써 모바일 시대의 스낵컬처에서 대규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빅 킬러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다. 작가가 글을 웹에 공개하고 독자가 그것을 소비하는 형식은 인터넷 소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웹소설을 인터넷 소설의 모바일 적응 형식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인피니티 사가 10년과 대하 서사의 시대
박수민
2019.05.31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지난 10년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막을 내렸다. 아이언맨 1편부터 엔드게임까지 22편의 영화를 묶어 공식적으로 ‘인피니티 사가’로 명명하면서 각 히어로들의 탄생과 인피니티 스톤을 둘러싼 모험이 하나의 통일된 서사로 완료된 것이다. 영화역사상 유래가 없을 무모한 기획은 현시대 가장 인기 있는 거대 프랜차이즈로 보란 듯이 성공했고, 그 최종장으로서 2부로 쪼개진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은 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 이하 출연진과 제작진은 물론이고 전 세계 관객에게도 일생일대의 이벤트였다.
[전문가칼럼] 마블은 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할 것이다
최서윤
2019.05.28
2008년의 어느 날, 나는 꽤 흥분했다. <아이언맨>을 영화관에서 처음 본 날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영웅 서사에 기대한 바를 거의 완벽히 충족시켰다. 빛나는 두뇌를 가진 과학천재이자 엔지니어인 군수업체 사장이 테러집단에 납치되지만, 스스로 창조한 슈트를 착용해 탈출하고, 과거를 반성한 뒤 결자해지 하고자 재능 발휘하며 벌어지는 모험과 성장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5 : 이범기, 박수산, 윤애경
박기준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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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콘텐츠, 비밀은 없다 : 가와카미 노부오 <콘텐츠의 비밀 -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
박수민
2019.04.22
콘텐츠 업계에서 보낸 10년 이 칼럼 란에 필자의 직업은 영화감독으로 소개되어 있다. 허나 오래 전 저예산 장편영화 한 편을 연출해본 일천한 경력일 뿐. 실상은 시나리오 작가와 그 비슷한 무엇(?)으로 지난 10년의 밥벌이를 해왔다. 여러 영화사들을 오가며 최종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글을 써왔는데, 슬프게도 제대로 결과가 이어진 게 없어 이쪽 경력도 내세우긴 좀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냥 업계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를 이래저래 굴러다닌 ‘장돌뱅이’라 표현한다. 이 바닥에 나 같은 정체불명의 작가 나부랭이가 어디 한둘일까. 업계 종사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고, 망하거나 죽지 않고 아니, 포기하거나 굶지 않고 10년을 버텼으니 용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뭐 하나라도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옛말은 이과는 물론 문과도 마찬가지인 만고의 진리인데, 한평생 인문계 테크 트리만 찍은 필자의 밥벌이 능력은 기술이라 칭하기엔 애매하다. 아이템이 주어지면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 내용을 글로 옮기는 능력이 그것이기 때문. 이런 모호한 능력을 가지고 영화 일 외에도 스토밍(Storming)할 브레인이 필요한 출판, 디자인, IT 등의 분야에서 온갖 계약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 유령작가 등 용병 비슷한 삶을 유영해왔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부끄러운 인간의 우주적 공포
박수민
2019.01.28
대학 시절 소설 창작 수업에서 들었는데, 세상에는 두 가지 작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남의 사연을 자기 이야기처럼 쓰는 작가, 다른 하나는 자기 사연을 남의 이야기처럼 쓰는 작가란다. 이 구분은 또 가지를 친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자기 이야기 그대로 쓰는 작가와, 남의 일을 남의 이야기로서 쓰는 작가로. 이 갈래에서 전자는 1인칭의 주관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사소설(私小說)을, 후자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쓴 하드보일드 문체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소재/테마와 저자간의 거리가 얼마나 가깝고 먼지에 따라 정해지겠다.
<이 만화를 밀어 주세요> 우리 주변의 흔한 물건들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템’ 이라면?
이승형
2019.01.05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익숙한 그 물건들이, 어쩌면 특별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특별한 ‘아이템’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만약 그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다면...?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8th Impact>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변론
웹투니스타
2019.01.04
밀레니얼 세대(The Millennials, Millennial Generation)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연구기관 퓨 리서치 센터는 밀레니얼 세대를 1981년부터 1996년생까지로 본다. 베이비 붐 세대(1946-1964)의 자녀 세대로, 어림잡아 말하자면 현재 40-50대가 10여 년 전쯤 ‘요즘 애들’이라고 부르던 세대라고 보면 된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대단히 박하다. 2013년 5월 9일자 표지를 보면 밀레니얼을 “ME, ME, ME Generation”이라고 표현했다. 자신밖에 모르고, 게으르며 자아도취적이고 독립심도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세대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프랜차이즈의 다중 우주
박수민
2018.12.31
재작년 나가이 고(永井豪) 선생 데뷔 50주년과 마징가 Z 탄생 45주년을 기념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순히 원작 만화와 과거 TV 시리즈의 내용을 리메이크하는 이벤트로만 생각했다. 필자가 기대한 건 과거 만화책과 TV판과 극장판 시리즈를 통해 이미 익숙한 마징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4 : 김수정, 김철호
박기준
2018.12.27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4 : 김수정, 김철호
<이 만화를 밀어주세요>2030세대의 현실을 담아내다
김성훈
2018.12.21
로맨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이 즐겨보는 장르물이다. <케세라세라>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품으로서 남녀 주인공의 밀고 당기기는 이야기를 통해 연재 기간 내내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취업과 연애 그리고 결혼과 임신 등과 같은 우리 시대 청춘들이 고민하는 부분들을 핵심적인 소재로 다룸으로써 비단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 독자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었으며, 덕분에 이른바 ‘K-COMICS’를 거론할 때 주요한 작품으로 내세울 만하다. 다만, 아직도 이 작품을 모르는 이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이들을 위해 <케세라세라>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만화를 밀어주세요>시대의 초상을 그린 만화가 오세영의 작품 세계를 만나다!
심상진
2018.12.21
2016년 5월, 만화가 오세영의 별세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신문사들은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뛰어난 문장력과 데생력으로 ‘만화가들의 선생님’으로 불린다.”, “한국적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한국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 “<토지>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작가”, “근·현대사의 풍경에 대한 한국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화가의 사회적 역할과 참여에 적극적이었으며, 만화 작가 양성에도 힘써” 등의 내용을 실은 수십 개의 기사가 작가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만화가 오세영을 기렸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3 : 이종진, 이해광
박기준
2018.12.20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3 : 이종진, 이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