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⑪ 박기준
한국 만화사 연구의 보물창고
조관제 2019.08.01



형님 그림으로 미술부장이 된 ‘두통이’.

지금의 장년층 이상 국민들이 소년시절 함께 웃고 울었던 정겨운 친구 ‘두통이’ 캐릭터로 한양의 지가를 올렸던 박기준은, 다른 만화가들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장충초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숙제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방안에 '굴러다니는' 바로 위의 형인 박기정 화백의 비행기 그림을 주워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낸 것이 평생을 만화와 함께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박기준의 그림을 본 미술 선생은 그의 실력으로 믿고 며칠 후 미술부장을 시켰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림을 대신 그려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지만, 형님은 박기준의 도움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 없음을 끝까지 숨길 수도 없었던 박기준은 뒤늦게 그림공부에 매달린다.

그 어려웠던 시절, 형제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푹 빠져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만화책이었다.
학교 근처 문구점 벽 쪽에 만화의 중간부분을 고무줄에 걸친 표지들이 보석처럼 보였던 박기준은, 좀 더 희귀한 만화와 잡지 등을 구하러 종로통에 있는 큰 책방에 가서 사야하는 수고쯤은 감내했다. 
형 박기정과 박기준은 좋은 작품들을 골라 사 온 날은 만화가라도 된 양 캐릭터를 흉내 내며 펜으로 따라 긁적이며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기정과 기준 두 동생이 밥 먹고 살 수 없는 그림에만 죽자 살자 매달리는 것에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큰 형님 박기반씨는, 한 제자로 인하여 만화에 대한 생각을 누그러뜨린다. 경복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던 큰 형님은 수업시간에 신문사 원고 마감 시간이 급해 수업을 듣지 않고 만화를 그리는 학생과 만나서부터이다. 야단치러 갔다가 칭찬까지 해 줬던 학생이 바로 종합일간지인 ‘연합신문’에 전속작가로 만화를 그려 학비를 조달하고 있던 ‘고바우’ 김성환이었다

큰 형님 박가반 교수는 일찍이 해외 유학한 영문학 전공자로서 그림만 그리는 형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세계문학’에서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읽고 보게 해서 틈틈이 책을 읽는 습관이 들도록 도움을 준 은인이다.

그림 못지않게 글과 기획력이 뛰어 났던 박기준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만화 월간지 <우리세계>에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입사, 컷과 도안을 해 주며 학비를 번다. 그 당시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이름 있는 작가의 문하에서 1~2년 정도 실력을 길러야 했지만 1958년에 ‘두통이’라는 캐릭터로 잡지에 바로 만화 연재를 할 수 있었다.

틈만 나면 명동 뒷골목에 가서 외국 만화를 섭렵한 박기준은 미국만화 ‘개구장이 데니스’에서 아이디어를, 일본의 유명한 작가 ‘바바노보로’의 그림체를 보며 만화공부를 했다.

캐릭터가 동글동글한 일반적인 만화 주인공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머리 둘을 붙인 것 같은 울퉁불퉁한 머리 모양과 단순히 점으로만 표현했던 빡빡머리를 짧은 점선으로 표현하여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만든 것이다.


데뷔작 ‘두통이’로 만화계 화풍의 변화를 주도하다.

<우리세계>에 연재된 박기준의 ‘두통이’ 만화를 본 <광문당> 출판사에서 80쪽 짜리 단행본 청탁을 한다. 그 당시의 만화 유행은 박광현, 박기당, 김종래 같은 사실적인 그림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라 ‘두통이’같은 약화체 그림은 어느 출판사고 눈여겨보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유행을 무시한 박기준의 '두통이'는 출판사에서도 놀랄 정도로 큰 인기를 얻는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 대한 검증이 되자 큰 출판사였던 ‘부엉이 시리즈’에서 박기준에게 청탁을 한다. 문학에 소질 있었던 박기준은 그 시대 독자들의 기호에 맞는 순정과 명랑만화를 섞은 스토리로 <누나를 찾아서>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확고부동하게 작가로서의 위상을 세운다.

연이은 단행본 작품의 성공으로 스스로 출판을 해서 좋은 만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 박기준은 큰 형님을 설득하여 <크로바 문고> 출판 등록을 한다.다행히 작은 형 박기정은 잡지와 신문에 연재하던 뛰어 난 작가였기 때문에 우선 두 사람부터 시작하며 주위에 있던 마땅한 작가들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만화 출판계의 후발주자인 <크로바 문고>에는 작가 확보가 문제였다. 기성작가들은 거의가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한 상태라 스카우트를 하기 어려워 박기준은 직접 신인작가를 찾아 나선다. 그림 소질은 있는데 발표할 지면을 구하지 못하는 작가, 그림 재주는 있지만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아 자작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하는 어시스트들을 우선적으로 접촉을 한다.

그 중에서도 ‘박부성’과 ‘이정민’은 <크로바 문고>에서 키워 준 <1호 작가>였다. 아무리 실력이 빼어 난 만화가라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작가는 상품성이 없어 외면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박부성의 재능을 발견한 박기준은 과감하게 데뷔를 시킨다. 독자에게 빨리 신인 만화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박기정의 ‘가고파’와 박기준의 ‘고향의 눈’과 같은 인기 작품의 속편을 박부성 이름으로 하여 독자에게 빨리 알려지도록 했다. 박기정은 언짢아했지만 어쨌든 박부성은 박기준의 도움으로 신인으로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낸 작가가 되었다.

또 <만화세계>에서 단편을 연재하던 ‘약동이와 영팔이’의 방영진과 ‘봉선이’의 권영섭도 단행본 작가로 데뷔해서 성공을 했다.


될성부른 떡잎 고르는 눈을 가진 최고의 감별사

만화가이면서도 출판 기획자였던 박기준은 독자성향 판단능력이 뛰어 나 기획한 작품마다 모두 성공시켰다.

이정민을 작품 기획과 콘티 테크닉을 지도하여 인기 작가 반열에 올렸는가 하면, 그림 재능 뛰어났던 박문윤에게는 스토리를 써 주는 것은 물론, 순정작가답게 ‘박정혜’라는 필명까지 지어 주는 열성으로 작품을 성공시켰지만 후속 작업이 되지를 않아 중도 하차한다. 

원로 여류작가인 ‘민애니’도 독자였을 적에 ‘박정혜’의 작품에 감동을 받고 방문했다고 한다.

이 때 발굴한 만화가로는 노석규, 김창수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잡지에서 1~2쪽 단편 만화만 해왔기 때문에 호흡이 긴 단행본 만화를 6개월이 지나 1년이 되어도 끝내지 못한 작가들이 많았다. 

여러 만화출판사에서 대본소에 배본할 권 수 경쟁 시대로 돌입하자 박기준도 권 수를 늘리기 위해 문하생을 두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단행본 뒤에 나온 광고와 <크로바 문고>라는 출판사를 보고 문하생으로 들어 와 배우겠다는 지망생이 몰려들었지만 박기준 만큼 문하생 선발 기준이 까다로운 작가도 드물었다.적어도 자기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그림은 물론 스토리를 쓸 줄 아는 기초 소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문하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문하생 선발 기준 덕에 그의 문하생은 3~4년만 지나면 거의 독립을 해서 훌륭하게 작품을 할 수 있었다.당시 <크로바 문고>의 소속 작가로는 박부성, 방영진, 권영섭, 박기정 등이 있었는데 유명한 박기정의 ‘도전자’도 이 출판사에서 발행됐다. 

<크로바 문고>를 통해 발표된 여러 작가들의 공통점은 당시 유행했던 극화를 벗어나 이른바 약화체 그림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극화는 지속적인 연재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유머가 넘치고 그림을 간략화한 만화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크로바 문고> 전속 작가들의 만화는 간략한 명랑 만화체와 반 삽화체, 순정체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경향은 한국 만화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 ‘이상무’로 알려진 박노철은 박기준 화실에서 5년 동안 일을 도왔다. 박노철을 독립을 시키려 했지만 무명 만화가의 작품 수명은 길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박기준은 1965년에 큰 형님과 창간한 월간 학생잡지 <여학생>에 ‘노미호와 주리혜’라는 만화를 콘티를 짜주고 데뷔를 시켰다.

그때 함께 연재 된 김성환의 ‘미스 앵두’나 정운경의 ‘난실이’같은 대가들의 작품보다 이상무의 만화 인기가 높았고 그 인기를 발판으로 삼아 그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박기준 문하생은 그림 공부 외 잡기雜技는 금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놀기 좋아할 시기의 문하생들에게는 고역이었다. 오죽했으면 이런 규제를 하는 박기준을 보고 주위에서 지독하다며 ‘구두쇠’, ‘짱꼴라’라고 별명까지 붙였다. 하지만 그의 문하생들은 독립을 해서도 스승에게 배운 금욕정신(?) 덕분에 생활이 탄탄해졌단다.

‘두통이 시리즈’로 주가를 올리던 박기준은 또 한 번 만화계에 대기록을 세운다. 1963년에 발표한 작품 ‘올림픽 소년’은 다양한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구성으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50권까지 시리즈로 발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항상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신촌 왕국 <합동문화사>의 횡포에 박기준과 <크로바 문고>도 고초를 당한다.

신촌 왕국 <합동>은 물량 공세와 덤핑작전으로 군소 출판사를 굴복, 합병 시켰지만 그래도 탄탄했던 <제일사> <부엉이 문고> 그리고 <크로바 문고>만은 어쩌지를 못했다.
그러자 '신촌대통령'은 새 건물을 지어 남아있던 사무실을 견디고 있던 출판사에 무료로 사용하라는 제의를 한다. 이 유혹에 <제일사>가 먼저 넘어 가 입주를 했는데 ‘신촌 대통령’은 <제일사>와 거래하는 작가를 건물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일 거수 일 투족을 감시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일사>와 거래하던 민화가들을 유혹 해 출판사 운영을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이 <부엉이 시리즈>가 넘어가고, <크로바 문고> 역시 역부족으로 손을 들게 된다.

“만화 시장을 독점한 <합동>이란 출판사로 인해, 좋은 만화 출판은 날 샌 거다. 게다가 작가를 화공으로 전락시키는 횡포에다, 만화계 발전은 안중에도 없고 폭리만 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 만화 지키는 만화가 키우던 ‘인큐베이터’ <제일만화학원>을 열다.

△ 울산 청소년 만화 대회 참가 학원장들
좌측부터 조득필, 박상원, 황정하, 필자, 김기백, 길문섭(회장), 이용진(고문), 장지연

1985년 박기준은 서울 남산부근에서 설립한 <제일만화학원>은 청량리와 동국대 입구 등 몇 군데를 옮겨가며 1999년 폐원(閉院)할 때까지 많은 신인을 배출한 우리 만화계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5년 동안 운영해 왔던 ‘제일만화예술원’을 통신 강좌로 바꾸고 전국에 있는 만화학원을 운영하는 후배들을 돕기 위해 울산으로 광주로 바쁘게 출장을 가기도 했었다.
만화가로서 그리고 만화 학원을 운영하면서 체득한 만화 이론과 실기에 관한 지침서 등 집필을 왕성하게 해 온 박기준은 만화가로서, 그리고 만화학원을 운영하면서 체득한 만화 이론과 실기에 관한 지침서 ‘만화 작법’ ‘만화 스토리 작법’ ‘만화가가 되려면’ 등을 왕성하게 집필을 했다.


당시 학생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여학생>을 창간했으며, 1975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에 취임해 회보를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협회의 위상을 올려놓기도 했다.
사회에서 홀대받던 우리 만화문화를 지켜온 선배들의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에 원로 만화가들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 보존하기 위해 <청강문화산업대학>의 지원을 받아 <만화박물관>을 탄생 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 대학 최초의 만화도서관 개관 (청강문화대 1998년 11월)
좌측부터 사이로, 필자, 이해광

1998년에는 세계 카툰 작가들의 모임인 국제만화가연맹 <페코 코리아(FECO KOREA)>회장을 역임했으며, 99년에는 일본 <만화신문> 편집고문에 위촉되어 한국의 만화계 소식을 일본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도 했고, 제자들을 일본의 만화 관련 대학에 추천, 만화 유학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만화가로서의 성공에 이어 출판편집자, 만화 연구가 그리고 교육자로 성공한 박기준은 오늘도 한국만화를 찾고 보듬는 길을 계속하고 있다.
만화학원을 통해 배금택, 고행석, 이상무, 윤필과 같은 중진 작가에서부터 박구원, 강동헌, 김진태, 김종섭 같은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를 50명이나 배출한 것을 보람으로 느낀다는 ‘만화사의 보물창고’ 박기준은 못 마시는 생맥주까지 들면서 늦도록 '만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박기준 朴基埈

1941년 평남 강서 생
1944년 월남
1956년 '어디로 가나', '두통이' 등으로 데뷔
1958년 서라벌 예고 시절 <만화세계>에 ‘두통이 만세’ 연재
1959년 ‘두통이’ 단행본으로 발표
‘누나를 찾아서’, ‘풍운아’, ‘두통이 일등병’시리즈 등 발표
1963년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장편만화 ‘올림픽 소년’ 발표
1965년 <소년한국일보>에 '푸른 하늘 저 멀리' 연재
1970년 이론서 '만화 스토리작법' 발간
1975년 (사)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역임 
1984년 3월 ‘제일 만화학원’ 개원
1987년 '만화가가 되려면' 발간
2009년 만화규장각지식총서 ‘한국만화야사’ 발간

약력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겸임교수
한국만화역사자료관 원고보존위원회 회장
제일만화예술연구원 원장
FECO KOREA회장. 일본만화신문 편집자문위원
만화박물관 고 만화 감정 위원 / 만화규장각 <한국만화야사> 집필.
칼럼
[글로벌리포트] 2019년 프랑스 만화계 정리 (디지털만화)
윤보경
2019.12.05
프랑스 출판조합(SNE, Syndicat National de l’édition)은 디지털 도서 시장에 대해서도 2018년의 수치를 정리, 조합하여 평가서를 공개했다. 그 전년 대비 5.1% 성장한 디지털 도서 시장의 총 수익은 2억 1200만유로(한화 약 2755억4천만원)로 집계되었다
[글로벌리포트] 2019년 프랑스 만화계 정리 (출판만화)
윤보경
2019.12.05
2019년 6월, 프랑스 출판조합(SNE, Syndicat National de l’édition)의 대규모 모임이 있었다. 그 기회를 통해 2018년 프랑스 출판종합 집계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해의 종합 집계는 항상 그 이듬해에 마무리 된다 (2019년의 결과 수치는 2020년 상반기에 발표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 인용된 집계는 2018년을 조사한 자료로, 비록 올해의 수치는 아니지만 가장 최근의 결과이므로 프랑스 출판계와 만화계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수렁에서 건진 내 만화 : 나가타 카비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 <나 혼자 교환일기>
박수민
2019.11.25
‘실록(實錄)’이라는 단어가 있다. 실록이라 하면 우리는 주로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지만 논픽션 다큐 같은 장르적 성격의 의미로 쓰인다. 나는 주로 70년대 실존 인물을 다룬 일본 임협물이나 한국의 <실록 김두한>(1974) 같은 옛날 폭력영화에서 이 단어를 보았던 기억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2.임금의 제위 기록이란 뜻을 제외하고, 1.사실을 실제로 적은 기록, 3.사실에 공상을 섞어서 그럴 듯하게 꾸민 이야기나 소설(=실록물)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나는 이 두 항목의 차이가 재미있다. 1번은 순수 논픽션이라는 건데, 3번은 사실 기반에 양념이 좀 가미된 장르물이라는 것. 아무튼 이 한자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잘 써먹는 듯하다. 작품 앞에 ‘실록’이 붙는 순간 생겨나는 이상한 무게가 있다.
[전문가 칼럼] 웹툰은 공짜? 웹툰 불법 소비의 심리와 극복방안
정민수
2019.11.11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법복제는 웹툰 뿐만 아니라 영화, 방송, 음악, 만화, 서적 등 많은 장르의 저작물 분야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나 웹툰은 2013년부터 레진코믹스를 시작으로 유료 웹툰 플랫폼이 생겨나기 시작하기 전에는 다음, 네이버를 통하여 무료로 서비스 되는 저작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사이트를 통하여 웹툰을 보는 소비의 심리에 대해서, 공짜를 좋아하는 일반 대중의 심리,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 이외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8 : 김마정, 최석중
박기준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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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⑫ 김원빈
조관제
2019.11.06
온 산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보다 산을 더 좋아했던 김원빈 선생이 생각이 났다. 본래 이 칼럼은 생존하는 원로만화가를 만나 만화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이다. 하지만, 인터뷰하기를 싫어했던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던 필자가 들었던 단편적인 이야기나마 남기고 싶어 옮긴다.
[전문가 칼럼] 일본 불매 운동, 문화적 소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상준
2019.10.30
우선 근원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자. 문화 상품은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될 수 있다. 단, 모든 불매 운동이 그렇듯 이 역시 소비자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일본 문화를 소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든, 여전히 그것과는 무관히 소비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든 그것은 오로지 개인에 달린 문제다. 평점 테러와 같은 악의적인 군중심리를 동원하는 것이 애초에 불매 운동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언제든 개선될 수 있는 국제 관계에 작가 혹은 작가를 위시한 기업이나 단체, 작품 등을 고의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답 또한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이를 매국과 애국의 이분법으로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분위기야말로 가장 폭력적이고 부당한 처사일 것이다.
[글로벌리포트] 글로벌 시장에서의 일본 만화 시장 현 상황
김낙호
2019.10.28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는 격언은 그저 곳간에 뭔가가 많이 쌓여서 오래 써도 남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공가도를 달리는 과정에서 구축하는 어떤 탄탄한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기반이 충분히 자리잡으면 심지어 망했다는 진단 자체 조차 그저 기존의 형태에 한정될 뿐, 다른 형태로 전환하여 복귀를 이뤄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본 내에서는 잡지 판매부수의 뚜렷한 쇠락 흐름 속에 지난 수년간 위기 의식이 제기되어온 일본 만화계가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그런 사례가 아닐까 한다.
[글로벌리포트] <알라딘>, <라이온킹>의 실사화와 디즈니의 전략
이다혜(씨네21 기자)
2019.10.11
이미 전세계에 알려진 유명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 영화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컴퓨터 그래픽(CG)과 시각효과 기술(VFX)의 발전 덕이다. <알라딘>에서 하늘을 나는 양탄자나 램프에서 나오는 요정 지니는 위화감 없이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실사 배우들의 연기와 한호흡으로 움직인다. <라이온 킹>의 경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처 세트장에 CG와 VFX로 무파사와 심바의 왕국 프라이드 랜드를 만들어냈다고 알려진다. 제작진은 아프리카 케냐와 나미비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에서 이른바 배경 소스화면 촬영을 마무리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90종에 가까운 동물들의 근육 움직임, 피부, 털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애니메이터가 130여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 칼럼] 웹툰 생태계의 변화와 작가 주도형 플랫폼의 부상
홍난지
2019.09.30
웹툰 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게 된 것은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이 등장하고서부터다. 포털 중심의 웹툰연재는 독자들을 폭넓게 설정한 작품들이 유리했다. 만화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그려왔으나 여기에 속하지 못한 작가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들어진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은 도전만화나 웹툰리그에서 꾸준히 작품을 내던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하며 성공적으로 웹툰 산업에 안착했다. 무료연재는 웹툰이 산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없게 하는 주요 요소로 손꼽혀 왔다. 유료플랫폼의 약진은 이러한 우려들을 상쇄할 수 있는 성과였다.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은 데뷔를 꿈꾸는 작가들에게는 꿈의 공간, 웹툰계에서는 좀처럼 시도되지 못했던 유료 결제를 안착시키면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작가와 유료 플랫폼의 신뢰가 깨지면서 일순간에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전문가 칼럼] 2019년 태국 웹툰 시장 현황과 진출 방안
Pasavon Tao
2019.09.27
태국에서 웹툰, 즉 온라인 만화 사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인 2014년이다. 태국에는 라인 웹툰(한국), 코미코(일본), 위코믹스(욱비코믹스의 신규 명칭으로, 2019년 텐센트로부터 투자 유치) 3개의 대형 플랫폼이 있으며, 모두 2014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세 개의 플랫폼 모두 초기에는 무료로 운영되었으나 2017년부터 이후 유료 모델(pay-to-read)을 도입해 콘텐츠 유료화를 시작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SNS의 딜레마 : 작가, 작품, 팬은 어떻게 서로 ‘절교’하는가?
박수민
2019.09.10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시작된 무역 분쟁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여름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와 집권 자민당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고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나 우익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 역사의 가해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와 그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것. 2차 대전 때 군국주의 일본이 자행한 온갖 전쟁 범죄 중에서도 특히 위안부와 강제 징용은 일본 우익이 가장 먼저 지우고 싶어 하는 진실이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7 : 김영하, 황재
박기준
2019.08.26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크레이그 톰슨의 작품 읽기 1. <담요> : 어느 만화가의 소명(召命)
박수민
2019.08.07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한 선배 감독이 내게 <담요>를 추천하면서 부터다. 그 선배는 내가 존경과 비아냥거림을 섞어 ‘영문학의 대가’라고 부르곤 하던 인물로, 영미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넓은 식견을 지녔다. 주로 일본만화 아니면 DC/마블의 슈퍼 히어로 중심 그래픽 노블만 즐겨 보던 나에 비하여 그는 미국 인디 계열의 자전적 만화를 많이 읽었고, 어느 작품은 국내 출판된 책 표지에 그럴듯한 추천 문장을 남긴 걸 자랑하기도 했다.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⑪ 박기준
조관제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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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공포' 장르문학,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이다혜(씨네21 기자)
2019.07.09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무엇이 공포의 요인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먼저 반응한다.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공포를 구현하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표현양상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소설, 만화, 영화는 각기 어떻게 두려움을 빚어내는가.
[글로벌리포트] 인도네시아 만화 시장
함종균
2019.07.05
인도네시아의 정식 국명은 인도네시아 공화국 (Republik Indonesia)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2017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6천만명을 가볍게 넘는다. 이 수치는 세계 4위, 동남아 1위로 콘텐츠 비즈니스는 ‘인구 기반 비즈니스’라는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6 : 계월희, 박진우
박기준
2019.07.03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6 : 계월희, 박진우
[전문가칼럼]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 근황과 전망
강태진
2019.07.02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빈약한 내수 시장을 극복하고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해외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제조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넘게 각고의 노력으로 꾸준히 해외 진출을 시도한 한국 콘텐츠는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는 게임, K-POP, 영화, 드라마가 있으며 최근에는 웹툰이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기술, 예술, 사업의 놀라운 삼위일체
박수민
2019.07.01
<토이 스토리 4>가 나온다는 소식에 처음엔 의아했다. 2010년에 나온 3편을 완벽한 3부작의 마무리로 보았고,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친구들에게 더 나은 결말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 살아있는 장난감에겐 자신을 아껴줄 주인보다 좋은 건 없다. 또 모험을 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지어내 억지로 잇는 느낌일 것 같았다. 픽사가 한동안 오리지널보다 전작의 속편이나 스핀오프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도 의심을 더했다. 물론 안이한 기획이기 쉬운 속편마저 귀신같이 잘 만드는 픽사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