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크레이그 톰슨의 작품 읽기 1. <담요> : 어느 만화가의 소명(召命)
박수민 2019.08.07



추천 받은 <담요>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한 선배 감독이 내게 <담요>를 추천하면서 부터다. 그 선배는 내가 존경과 비아냥거림을 섞어 ‘영문학의 대가’라고 부르곤 하던 인물로, 영미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넓은 식견을 지녔다. 주로 일본만화 아니면 DC/마블의 슈퍼 히어로 중심 그래픽 노블만 즐겨 보던 나에 비하여 그는 미국 인디 계열의 자전적 만화를 많이 읽었고, 어느 작품은 국내 출판된 책 표지에 그럴듯한 추천 문장을 남긴 걸 자랑하기도 했다.

선배는 특히 자신이 친애하는 영화나 소설, 만화 등을 매체에 리뷰 할 때, 자기 유년의 경험에 비추어 유별나게 감동적인 글을 써내곤 했다. 정작 추천한 작품보다 그의 사연만 뇌리에 남아 주객이 전도되곤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가 리뷰 했거나 가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을 항상 예의주시했다. 추천작을 접하고 나 역시도 감동받았던 일은 의외로 많지 않긴 하지만, 나중에 선배를 만나 “그저 그렇던 데요?” 한 마디 돌려주기 위해 열심히 찾아보곤 했다.

그가 <담요>를 추천했을 때는 아직 국내 정식 출판되기 이전이었다. 얼치기 작가나 어린 감독 나부랭이들이 같은 일을 하는 서로에게 자신이 발견한 걸작이나 레퍼런스를 권할 때는 대략 이런 식의 은근한 견제가 더해지곤 한다. 굉장한 책이니 꼭 보라고 해서 찾아보면 이미 절판되었거나,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거나. 난 이미 영문판으로 읽었는데 넌 알아서 잘 구해보라는 식이다. 이런 추천에 뿔이 난 내가 나중에 나의 관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선배에게 추천과 동시에 선물했던 책이 바로, 전에 다룬 적 있는 그래픽 노블 <지미 코리건>이었다.

아무튼 다행히 <담요>의 명성은 선배 혼자만의 찬사가 아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출간된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첫인상은 크고 두껍고, 겉이 아름다운 책이었다.


△ 크레이그 톰슨 <담요 Blankets> (2004) 박여영 옮김, 미메시스, 2012


처음 읽은 <담요>
그러나 책을 감싼 비닐을 뜯어 마침내 읽은 건 더 나중의 일이다.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고 날카로운 소감을 말하던 여자친구와 <담요>를 같이 읽기로 했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그만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 비슷한 이유로 방치된, 연인과 공유하려던 책이나 영화나 게임들이 많았다. 너티독의 명작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도 같이 플레이하자는 약속이 깨어진 이후 혼자 플레이하며 엉엉 울었다. 주인을 잃은 선물 상자를 세월이 지나 홀로 뜯어보듯이, 뒤늦게 <담요>의 랩핑을 뜯은 것도 혼자 울어나 볼 요량이었다. 띠지에 적힌 “최고의 만화 1위”보다 “2000년대 젊은 영혼의 가슴에 남을 러브스토리”가 얼마나 절절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처음 읽은 <담요>는 그렇게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작가가 그리는 자기 자신, ‘크레이그’라는 이름의 화자 ‘나’의 생각과 삶이 더 신경 쓰였다. 나는 남의 고백이 달갑지 않다. 그 고백은 나 자신이 억누르고 있는 고백의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위스콘신 주 시골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소년 크레이그의 삶을 이미 규정지어 버린 것은 ‘기독교’와 대체할 수 없는 신의 말씀이 적힌 ‘성경’의 존재였다. 그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를 매번 성경 구절에 빗대어 생각한다. 그는 그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내내 살아온 이 틀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경계를 벗어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품는 건 모두 신께 용서를 구해야 할 죄가 된다. 학교에서의 따돌림, 가정에서 부모의 무심한 폭력, 베이비시터의 성적 학대, 같은 고통을 당하게 내버려 둔 형제에 대한 죄책감, 자기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환멸에 시달리는 그의 어린 시절은 현존하는 지옥이다. 그가 도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교회가 약속한 ‘천국’뿐이다. 문제는 그곳이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이란 거다.



기독교인으로 자란 나는 개인적으로 기독교가 어린이에게 해롭다고 생각한다. 이 종교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에게 너는 죄인이고, 이미 네 죄를 위해 대신 죽은 이가 있다고 알려준다. 어린 아이에게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기독교는 어린이에게 죽음 이후의 삶, 지옥과 천국의 존재를 가르친다. 죄를 짓고 죽어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고통 받는다는 건 공포다. 기독교는 어린이에게 충격과 공포를 심는다. 어린이가 벌써부터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는 일은 슬프다.

<담요>에서 어린 크레이그가 성경 캠프에서 홀로 빠져나와 웅웅거리며 진동하는 보일러실 안에 숨어 “하나님. 방에서 몰래 빠져나오고 아까 거짓말 한 거, 그리고 성경책 안 읽고 전도도 안 하고, 동생 괴롭히고, 욕하고, 벌거벗은 여자 그림 그리고, 부모님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훌쩍이며 기도하는 장면은 어렸을 적에 집에 못 들어가고 방황하며 옥상에 올라가 비슷한 기도를 했던 나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 특히 힘들었다. 어린이가 삶 바깥의 구원을 원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는 죄가 없고, 있다 한들 용서받아야 한다.

한 인간이 자신이 속한 이 곳 외에도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단순히 다른 장소에 가보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와는 다른 존재, 타인과의 내밀한 소통과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연애라고 생각하고, <담요>의 크레이그 또한 같은 경험을 한다. 첫사랑 ‘레이나’와의 만남이 그에게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레이나는 그의 ‘뮤즈’가 된다. 그러나 <담요>의 러브스토리는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멈출 수밖에 없다. 크레이그가 원한 건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각성과 도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이렇게 이용하면서 어른이 된다.




다시 읽은 <담요>
애초에 선배가 내게 <담요>를 권한 까닭은 책에 담긴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저자의 기독교 가치관과 아픈 성장의 사례를 통해 아마 나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 선배는 늘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가 담긴 이야기의 진실함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것 같았으니까. 본격 종교 영화도 아니면서 이상한 고민을 담은 첫 영화를 만든 나와 이 책 사이 일종의 접점이 있을 거라고 보았을 거다. “난 기독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남자의 삶에 대해서는 약간 흥미가 있지.”라고 쏘쿨하게 말할 수 있는 그와 다르게 나는 <담요>를 읽고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백은 그저 고백일 뿐이다. 자전적 만화가 주는 고백의 감동은 내게는 늘 쉽게 휘발되는 것이었다.

<담요> 이후 나는 수많은 자전적 그래픽 노블들을 읽었다. 인디 만화계에서 자전적 만화는 하나의 장르화 되어, 요새는 ‘그래픽 자서전’이라고 부른다. 유년이 고통스럽지 않았던 이가 누가 있겠는가? 몇 작품의 예를 들자면, 데이비드 스몰의 <바늘땀 Stitches>(2009)에서 암에 걸린 소년은 어머니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만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폴 혼슈마이어의 <엄마, 돌아와요 Mother, Come Home>(2004)에서 소년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아버지의 등을 낭떠러지 앞에서 직접 떠밀어준다. <담요>의 기독교 소년 성장기 정도는 명함도 내밀기 힘든 사연들이다. 물론, 개인이 겪은 고통의 정도가 그래픽 자서전의 가치를 평가할 기준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삐딱한 독자인 나는 자전적인 무엇이 결국 자기 자신을 이야기의 질료로 쓰는 것밖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할뿐이다. 나는 픽션 뒤에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작가를 경외한다. 타인의 고통은 결코 객관화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철저하게 객관화해야만 한다.

오늘날 다시 읽은 <담요>의 가치는 러브스토리도, 한 개인의 성장기도 아니다. 이 두꺼운 만화책은 결국 ‘나(크레이그 톰슨)는 어찌하여 (종교를 버리고)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대답이다. 책의 말미에서, 그동안 ‘말씀’에 눌려 살던 크레이그는 성경 구절의 불확실성을 간파한다. 신의 입에서 곧장 나온 말씀이라 가르치던 그 구절들은 사실 수세기를 걸친 필사와 번역의 과정을 통해 희석되고 퇴색된 것임을 깨닫고, 신성한 무엇을 대량 생산한 물질의 형태로 고정시키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갖는다. 오랜 믿음이 무너진 그는 성경책을 집에 놔두고 도시로 나가, 공립 도서관에 꽂힌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가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 “혹은”의 각주를 찾는 지점이야말로 내게 있어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는 이제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의 불확실성과, 천국의 불확실성을. “하나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혹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신 외에 다른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에 따르면, 벌거벗은 여자를 그리곤 하던 크레이그의 그림 재능은 모두 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주위에서 권하는 성직과 자신이 그리고픈 그림 사이에서 미래를 고민하며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모두 불태우곤 했던 크레이그는 저 구절을 찾은 이후, 창고 상자에서 레이나가 선물했던 담요를 꺼낸다. 이 만화에서 담요는 처음에 어렸을 적 형제와 공유하던 이부자리였다. 침대 바깥은 상어들이 사는 망망대해라고 상상하던 시절, 담요는 무엇으로든 변형 가능한 창조의 바탕이었다. 레이나가 직접 천을 골라 조각으로 잘라내고 저마다의 질감과 리듬으로 이어붙인 담요는 패턴의 배열을 통해 반복되고 순환하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크레이그 톰슨은 이 두 가지 담요에게서 ‘만화’를 발견한다.

그는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부모님 집 밖으로 나가 밤새 내린 눈밭 위를 홀로 거닌다. 하얀 눈 위에 찍힌 자신의 시커먼 발자국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새하얀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지나온 발자취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 설령 그것이 한순간의 일이라 해도.” 만화가로서 소명(召命, Calling)이 생겨난 순간. 그의 죄는 신성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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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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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스토리 4>가 나온다는 소식에 처음엔 의아했다. 2010년에 나온 3편을 완벽한 3부작의 마무리로 보았고,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친구들에게 더 나은 결말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 살아있는 장난감에겐 자신을 아껴줄 주인보다 좋은 건 없다. 또 모험을 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지어내 억지로 잇는 느낌일 것 같았다. 픽사가 한동안 오리지널보다 전작의 속편이나 스핀오프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도 의심을 더했다. 물론 안이한 기획이기 쉬운 속편마저 귀신같이 잘 만드는 픽사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