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SNS의 딜레마 : 작가, 작품, 팬은 어떻게 서로 ‘절교’하는가?
박수민 2019.09.10



2019년 여름, 뒤로 가는 일본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시작된 무역 분쟁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여름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와 집권 자민당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고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나 우익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 역사의 가해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와 그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것. 2차 대전 때 군국주의 일본이 자행한 온갖 전쟁 범죄 중에서도 특히 위안부와 강제 징용은 일본 우익이 가장 먼저 지우고 싶어 하는 진실이다.


8월에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 전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지하는 일이 일어났다. 법의 문제에 정치를, 정치 문제에 경제를 개입시키다 급기야 예술에까지 정치가 관여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전시회의 주제가 무색해진 결과, 일본은 현재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임을 스스로 인증한 꼴이 되었다. 그간 온갖 매체를 통해 우리가 보았던 일본은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였다. 그 자유란 섹스와 폭력 표현에만 국한된 것이었던가? 여기에 SNS를 통하여 예상치 못한 몇몇 작가들의 편향된 사고와 가치관의 커밍아웃까지 더해졌다.

작가들의 문제는 후술하겠지만 우선 필자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건 일본 정부가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야 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이러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등 문화 강국으로서 전 세계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본이다. 세계 경제와 문화가 밀접하게 교류하며 국가와 이념의 경계는 점점 더 유명무실해지는 시대에 일본의 자국중심주의는 퇴행이다. 겉으로 ‘쿨 재팬’을 표방하고,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슈퍼마리오로 깜짝 분장했던 총리의 모습 뒤에는 이미 부활하는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나보다.

지금 일본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37년 전에 이미 자국에서 또 올림픽이 열리리라 예언했던 오토모 가쓰히로의 만화 <아키라>(1982) 속 도쿄를 연상시킨다. 또 본토에 핵을 맞고 3차 대전의 개막을 알렸던 도쿄는 ‘네오 도쿄’로 재건하여 내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었으나 실상은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NHK가 올림픽을 맞아 현대 배경 위에 <아키라>를 CG로 구현한 ‘Tokyo Reborn’ 영상에서 카네다의 붉은 바이크가 재개발 중인 도쿄 거리를 달리는 모습은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도쿄는 새로운 사람들이 만들어 가야 한다.” 오토모 감독은 영상에서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가? 통제하는 도시에 반항하여 폭주하는 청춘들이 내달렸던 전설이 이제 자국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관료와 엘리트 중심의 일본 사회는 정치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속에 변화 불가능한 시스템으로 굳어진 것 같다. 2000년대 들어 일본 만화에서 전일본적 재앙이 갑자기 발생하고, 시스템 자체가 무력화되는 플롯을 자주 발견하는 건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사회 기반이 무너지자 무력 앞에서 공평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지만, 결국 이런 신세계조차 약육강식의 구도로 시스템을 되돌려, 끝에 가선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로 귀결되고 만다. 민주주의는 요원하고, 시스템은 불변이다. 젊은이들은 싸울 의지보다 먼저 한계를 체감한다. 우리도 크게 다른 사정은 아닐진대, 일본은 이러한 절망에 가장 앞서 도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망언 이후, 한국 팬의 고민
일본 자국의 문제는 뒤로 하고, 한국의 일본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은 어느 날 느닷없이 모욕감을 느꼈다. 사랑이 뜻밖의 혐오로 돌아왔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SNS 상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모욕하고,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의 캐릭터 디자이너 유키 노부테루마저 이 발언에 동조한 것이다. 이들이 참여한 작품들이 특히 90년대에 틴에이저였던 팬들에게 준 영향과 가치를 생각하면, 정말 참담한 심정이다. 작가의 오만함은 도를 넘어 이후의 작품을 안 보고는 못 배길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도발로까지 이어졌고, 곧 유튜브 리뷰어와 연예인 등 애호가들의 보이콧 선언으로 이어졌다.

사랑했던 이와 헤어지면 영원히 안 보는 관계가 되듯, 작가(아티스트)와 작품에 대한 팬의 헤어짐은 절교와 같다. 누구나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고 어느 정도 내셔널리즘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견해와 망언은 구분되며 일방적 혐오는 이해의 한계를 넘는다. 역사왜곡과 인식부재보다 먼저 황당한 건 작가가 팬을 인식하는 범위다. 외국 팬에게 볼 테면 보라는 식의 도발은, 여전히 작품의 수요를 내수 위주로 판단하는 안일함에서 온 것이다. 비록 사다모토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시리즈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있긴 하나, 할리우드 같으면 제작사 명의의 ‘선긋기’용 사과 성명이 나왔을만한 일이다. 일본 문화의 갈라파고스화는 시장과 업계는 물론 작가 인식의 한계에서부터 온다는 증명이다. 이제 내/외수 구분은 무의미한데도, 전 세계에 내보일 작품이자 상품을 자국 오타쿠용 서브컬처 수준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다.

이제 고민은 팬의 몫이다. ‘인생작(품)’ 또는 ‘인생캐(릭터)’와 어떻게 헤어질 것인가?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이 집단 창작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의 경우, 우선 작품에 기여한 대표 작가의 창작적 지분을 따져야 할 것이다. IP나 저작권이 주로 제작/배급사에 귀속됨에도 결과물로서 영화에 책임을 지는 자는 감독으로 보듯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도 비슷할 것 같다. 팬은 또한 자신이 그 작품에 대해 갖는 관심도의 범위를 헤아려야 한다. 필자의 경우 ‘에바’를 책임져야 할 주인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다. 애증의 작품인 에반게리온에서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안노의 혁신적인 스토리와 파격의 연출이지 이미 상투적이었던 캐릭터 디자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 에바의 완결까지 보고 나면, 이후의 취급은 한 시대의 텍스트로만 남게 될 것 같다.



SNS 시대, 아티스트와 팬의 딜레마
작품이 훌륭하니 작가까지 인간적으로 훌륭할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과거에 작가란 미지의 인물이고 팬이 그의 심중이나 사상을 헤아리는 것은 작품을 통해서 짐작해볼 뿐이었다. 그나마 글로 쓴 작품이 그렇고, 그림이나 음악 작품만으로는 그 창작가의 사상까지 알기는 힘들었다. 작품으로 전하지 않은 작가의 생각이나 일상을 팬이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팬이 스토킹을 하거나 작가가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이상, 서로 간에는 팬레터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SNS 시대에 팬과 작가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가깝다. 작가가 SNS에 올린 말과 행동은 팬들에게 즉시 퍼지고, 작품의 매출에까지 영향을 준다. 영업을 병행해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 SNS는 안 하기도 곤란하다. 팬덤에게 SNS는 아티스트의 정보를 공유하며 동지들을 만나는 천국이다. 지금처럼 ‘덕질’하기 좋은 시대는 없다고 할 정도다.

필자 생각에 팬은 작가에 대해선 모르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팬을 너무 의식해서 좋을 게 없다. 일례로, 자신의 만화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을 모조리 읽고 있을 웹툰 작가들을 생각하면 문득 안쓰러워 질 때가 있다. 웹툰 댓글 란은 전문가 뺨치는 비평과 호불호의 격전장이다. 작가와 작품이 즉각적 판단에 좌우되는 조회 수의 노예가 되면 진정한 평가는 요원해진다. 작가는 작품이 성공한 것이지 자신이 성공한 게 아님에도, 팬들의 관심을 확인하고픈 욕망으로 사생활을 노출하고 스스로 유명인의 자리에 오르는 패착을 저지른다. 그러면 팬들은 한낱 작가일 뿐 실은 대단치 않은 인간에게 높은 수준의 인성이나 도덕성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작품 외적인 호감도 기대했던 팬과, 유명해지고 싶을 뿐 ‘공인’이 되는 부담은 원하지 않았던 작가는 민낯이 보이고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 서로에게 실망하기 쉽다.

지금 작가와 팬 사이 거리두기를 아쉬워하는 것은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온갖 작품의 팬인 우리가 겪는, 작가 또는 아티스트라 불리는 한낱 타인에 대한 실망을 조금이나마 추스르고 다독이고 싶다. 어쩌면 필자는 낡은 사고로 오늘날의 작가와 팬의 관계를 규정짓고 있는지 모른다. 현대의 아티스트, 작가란 작품으로만 말하기보다 스스로의 발언과 행동으로 대중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에 가깝고, 팬 역시 팔로워(follower)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뭔가를 주장하고 여론을 만들어 영향력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만으로 자분이 창출된다. 작가나 아티스트가 작품을 차곡차곡 쌓아 발전하여 거장이나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던 시대는 이미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짜 영향력은 언제나 팬에게 있고, 만남과 사랑과 절교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칼럼
[전문가 칼럼] 웹툰은 공짜? 웹툰 불법 소비의 심리와 극복방안
정민수
2019.11.11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법복제는 웹툰 뿐만 아니라 영화, 방송, 음악, 만화, 서적 등 많은 장르의 저작물 분야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나 웹툰은 2013년부터 레진코믹스를 시작으로 유료 웹툰 플랫폼이 생겨나기 시작하기 전에는 다음, 네이버를 통하여 무료로 서비스 되는 저작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사이트를 통하여 웹툰을 보는 소비의 심리에 대해서, 공짜를 좋아하는 일반 대중의 심리,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 이외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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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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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⑫ 김원빈
조관제
2019.11.06
온 산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보다 산을 더 좋아했던 김원빈 선생이 생각이 났다. 본래 이 칼럼은 생존하는 원로만화가를 만나 만화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이다. 하지만, 인터뷰하기를 싫어했던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던 필자가 들었던 단편적인 이야기나마 남기고 싶어 옮긴다.
[전문가 칼럼] 일본 불매 운동, 문화적 소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상준
2019.10.30
우선 근원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자. 문화 상품은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될 수 있다. 단, 모든 불매 운동이 그렇듯 이 역시 소비자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일본 문화를 소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든, 여전히 그것과는 무관히 소비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든 그것은 오로지 개인에 달린 문제다. 평점 테러와 같은 악의적인 군중심리를 동원하는 것이 애초에 불매 운동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언제든 개선될 수 있는 국제 관계에 작가 혹은 작가를 위시한 기업이나 단체, 작품 등을 고의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답 또한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이를 매국과 애국의 이분법으로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분위기야말로 가장 폭력적이고 부당한 처사일 것이다.
[전문가 칼럼] 웹툰 생태계의 변화와 작가 주도형 플랫폼의 부상
홍난지
2019.09.30
웹툰 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게 된 것은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이 등장하고서부터다. 포털 중심의 웹툰연재는 독자들을 폭넓게 설정한 작품들이 유리했다. 만화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그려왔으나 여기에 속하지 못한 작가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들어진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은 도전만화나 웹툰리그에서 꾸준히 작품을 내던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하며 성공적으로 웹툰 산업에 안착했다. 무료연재는 웹툰이 산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없게 하는 주요 요소로 손꼽혀 왔다. 유료플랫폼의 약진은 이러한 우려들을 상쇄할 수 있는 성과였다. 웹툰전문 유료플랫폼은 데뷔를 꿈꾸는 작가들에게는 꿈의 공간, 웹툰계에서는 좀처럼 시도되지 못했던 유료 결제를 안착시키면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작가와 유료 플랫폼의 신뢰가 깨지면서 일순간에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전문가 칼럼] 2019년 태국 웹툰 시장 현황과 진출 방안
Pasavon Tao
2019.09.27
태국에서 웹툰, 즉 온라인 만화 사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인 2014년이다. 태국에는 라인 웹툰(한국), 코미코(일본), 위코믹스(욱비코믹스의 신규 명칭으로, 2019년 텐센트로부터 투자 유치) 3개의 대형 플랫폼이 있으며, 모두 2014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세 개의 플랫폼 모두 초기에는 무료로 운영되었으나 2017년부터 이후 유료 모델(pay-to-read)을 도입해 콘텐츠 유료화를 시작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SNS의 딜레마 : 작가, 작품, 팬은 어떻게 서로 ‘절교’하는가?
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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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7 : 김영하, 황재
박기준
2019.08.26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크레이그 톰슨의 작품 읽기 1. <담요> : 어느 만화가의 소명(召命)
박수민
2019.08.07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 한 선배 감독이 내게 <담요>를 추천하면서 부터다. 그 선배는 내가 존경과 비아냥거림을 섞어 ‘영문학의 대가’라고 부르곤 하던 인물로, 영미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넓은 식견을 지녔다. 주로 일본만화 아니면 DC/마블의 슈퍼 히어로 중심 그래픽 노블만 즐겨 보던 나에 비하여 그는 미국 인디 계열의 자전적 만화를 많이 읽었고, 어느 작품은 국내 출판된 책 표지에 그럴듯한 추천 문장을 남긴 걸 자랑하기도 했다.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⑪ 박기준
조관제
2019.08.01
지금의 장년층 이상 국민들이 소년시절 함께 웃고 울었던 정겨운 친구 ‘두통이’ 캐릭터로 한양의 지가를 올렸던 박기준은, 다른 만화가들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전문가칼럼] '공포' 장르문학,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이다혜(씨네21 기자)
2019.07.09
공포에는 국경이 없다. 무엇이 공포의 요인인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먼저 반응한다.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공포를 구현하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표현양상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소설, 만화, 영화는 각기 어떻게 두려움을 빚어내는가.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6 : 계월희, 박진우
박기준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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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 근황과 전망
강태진
2019.07.02
한국 웹툰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빈약한 내수 시장을 극복하고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해외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제조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넘게 각고의 노력으로 꾸준히 해외 진출을 시도한 한국 콘텐츠는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는 게임, K-POP, 영화, 드라마가 있으며 최근에는 웹툰이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기술, 예술, 사업의 놀라운 삼위일체
박수민
2019.07.01
<토이 스토리 4>가 나온다는 소식에 처음엔 의아했다. 2010년에 나온 3편을 완벽한 3부작의 마무리로 보았고,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 친구들에게 더 나은 결말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 살아있는 장난감에겐 자신을 아껴줄 주인보다 좋은 건 없다. 또 모험을 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지어내 억지로 잇는 느낌일 것 같았다. 픽사가 한동안 오리지널보다 전작의 속편이나 스핀오프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도 의심을 더했다. 물론 안이한 기획이기 쉬운 속편마저 귀신같이 잘 만드는 픽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관제 漫步만보_ 원로 만화가 순례 ⑩ 임수
조관제
2019.06.19
임수의 작품은 이국적인 화풍과 꼼꼼한 그림체, 그리고 특유의 과장된 캐릭터로 한 번 본 50~60대 독자라면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임수 만화’를 보는 재미는 심각한 장면마다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辯士 같은 인물들이 만화 칸 밖에 나와 해설하는 장면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칼럼] IP의 확장-웹소설학과의 부상
홍난지
2019.05.31
모바일 시대의 대표 콘텐츠로 각광받는 웹소설은 여가시간에 손에 쥔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웹소설은 다양한 미디어 창구로 전환되어 성공사례를 만들어냄으로써 모바일 시대의 스낵컬처에서 대규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빅 킬러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다. 작가가 글을 웹에 공개하고 독자가 그것을 소비하는 형식은 인터넷 소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웹소설을 인터넷 소설의 모바일 적응 형식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인피니티 사가 10년과 대하 서사의 시대
박수민
2019.05.31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지난 10년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막을 내렸다. 아이언맨 1편부터 엔드게임까지 22편의 영화를 묶어 공식적으로 ‘인피니티 사가’로 명명하면서 각 히어로들의 탄생과 인피니티 스톤을 둘러싼 모험이 하나의 통일된 서사로 완료된 것이다. 영화역사상 유래가 없을 무모한 기획은 현시대 가장 인기 있는 거대 프랜차이즈로 보란 듯이 성공했고, 그 최종장으로서 2부로 쪼개진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은 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 이하 출연진과 제작진은 물론이고 전 세계 관객에게도 일생일대의 이벤트였다.
[전문가칼럼] 마블은 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할 것이다
최서윤
2019.05.28
2008년의 어느 날, 나는 꽤 흥분했다. <아이언맨>을 영화관에서 처음 본 날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영웅 서사에 기대한 바를 거의 완벽히 충족시켰다. 빛나는 두뇌를 가진 과학천재이자 엔지니어인 군수업체 사장이 테러집단에 납치되지만, 스스로 창조한 슈트를 착용해 탈출하고, 과거를 반성한 뒤 결자해지 하고자 재능 발휘하며 벌어지는 모험과 성장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5 : 이범기, 박수산, 윤애경
박기준
2019.05.21
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45 : 이범기, 박수산, 윤애경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콘텐츠, 비밀은 없다
박수민
2019.04.22
콘텐츠 업계에서 보낸 10년 이 칼럼 란에 필자의 직업은 영화감독으로 소개되어 있다. 허나 오래 전 저예산 장편영화 한 편을 연출해본 일천한 경력일 뿐. 실상은 시나리오 작가와 그 비슷한 무엇(?)으로 지난 10년의 밥벌이를 해왔다. 여러 영화사들을 오가며 최종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글을 써왔는데, 슬프게도 제대로 결과가 이어진 게 없어 이쪽 경력도 내세우긴 좀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냥 업계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를 이래저래 굴러다닌 ‘장돌뱅이’라 표현한다. 이 바닥에 나 같은 정체불명의 작가 나부랭이가 어디 한둘일까. 업계 종사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고, 망하거나 죽지 않고 아니, 포기하거나 굶지 않고 10년을 버텼으니 용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뭐 하나라도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옛말은 이과는 물론 문과도 마찬가지인 만고의 진리인데, 한평생 인문계 테크 트리만 찍은 필자의 밥벌이 능력은 기술이라 칭하기엔 애매하다. 아이템이 주어지면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 내용을 글로 옮기는 능력이 그것이기 때문. 이런 모호한 능력을 가지고 영화 일 외에도 스토밍(Storming)할 브레인이 필요한 출판, 디자인, IT 등의 분야에서 온갖 계약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 유령작가 등 용병 비슷한 삶을 유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