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로벌리포트] 글로벌 시장에서의 일본 만화 시장 현 상황
김낙호 2019.10.28



글로벌 시장에서의 일본 만화 시장 현 상황
김낙호(만화연구가)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는 격언은 그저 곳간에 뭔가가 많이 쌓여서 오래 써도 남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공가도를 달리는 과정에서 구축하는 어떤 탄탄한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기반이 충분히 자리잡으면 심지어 망했다는 진단 자체 조차 그저 기존의 형태에 한정될 뿐, 다른 형태로 전환하여 복귀를 이뤄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본 내에서는 잡지 판매부수의 뚜렷한 쇠락 흐름 속에 지난 수년간 위기 의식이 제기되어온 일본 만화계가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그런 사례가 아닐까 한다.

만화 잡지와 애니메이션화, 단행본으로 묶이는 70년대 이래 일본 만화의 전통적 성공모델은 디지털 환경의 발달, 세대에 따른 문화 소비 성향의 변화, 안정적인 방식으로 지나치게 발달한 제작 관행의 경직성 등 여러 요인들이 겹치며, 일본 주류 만화의 산업적 성장 동력은 90년대-00년대의 전성기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일본 만화는 일본 바깥에서는 각국의 만화 팬덤 안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한 상태고, 일본 만화업계 자체도 점차 해외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눈을 열고 있다.


이 방향에서 최근의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소년 점프]의 슈에이샤가 출범시킨 망가플러스 앱으로, 자사 만화의 현지 최신 연재분을 영어와 스페인어로 거의 시차 없이 전세계 독자들에게 무료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는 최초 연재분 3-4화와 최근 연재분 3-4화를 제공하는 식이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해적판에 대항하여 아예 직접 서비스를 하는 울며 겨자 먹기식 대처 정도가 아니라, 원래 잡지로 최신 전개를 제공하되 단행본으로 앞의 내용을 소장하게 만드는 전통적 모델을 마침내 온라인으로 옮겨온 방식이다. 이미 지난 수년간 일본 국내에서 인기 잡지 말고 일종의 디지털 자매지 방식으로 구현된 바 있지만, 국제 시장을 두고는 아예 [원피스], [귀멸의 칼날], [마이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 명실상부하게 최고 인기작들을 공격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일본 국내 전통 모델을 국제 시장에 적용하는 시도의 다른 축은 애니메이션을 대중적 인기의 구심점으로 하여 원작이 되는 만화로 낙수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방식이 작동하려면 애니메이션이 일부 코어 팬층의 수집 대상이 아니라 주류 문화로서 인지도를 지니며 특히 국제적으로 동시다발적인 붐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포켓몬스터와 유희왕 같이 비디오 또는 카드 게임을 구심점으로 하는 경우, 아무래도 만화책이 지니는 이야기로서의 선도적 위치가 애매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확연하게 애니메이션이 앞에 나서며 붐을 조성하는 효과가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세계적 구독망을 지니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치 및 제작에 힘을 기울인 사업 방향의 기여도 적지 않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의식적으로 즐기며 자라난 이들이 이제 거의 두 세대에 이르게 되면서 관련 사업 책임자와 새로운 젊은 소비층까지 온전히 차지하게 되었다는 요인이 있다.

한 가지 뚜렷한 징조는 [진격의 거인] 현상에서 보였는데,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일본 신비화 요인을 내세운 [나루토]나 [블리치] 등 주류 소년 격투물과는 거리가 있는 암울한 대하 판타지물임에도 불구하고 주류적 인기를 끌며 다양한 관련상품이 등장한 사례였다. 그 기반은 바로 TV 애니메이션판을 퍼니메이션 등의 정식 유통사가 인터넷 스트리밍 방영을 한 것이었다. 그런 사례에 힘입어, 2019년에는 극장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가 일본 현지와 고작 한 달 간격으로 미국 시장에서 일반 개봉되고 아이맥스 상영까지 이뤄냈다. 덕분에 이미 팬덤이 40대까지도 충분히 포괄하는 상태인 [드래곤볼]은 미국 주류 슈퍼히어로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지로 만화책을 포함한 다양한 관련 상품의 범람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귀멸의 칼날]과 [마이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을 품질 좋은 애니메이션으로 화제를 얻고 원작이 되는 만화의 판매가 이어지는 현상의 최근 두드러지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입지는 시장에서의 구체적 성과로 전환되곤 한다. 북미 만화 시장의 시장 규모 집계와 추산을 전문으로 하는 업계 전문지 icv2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아시아권 만화 일반에 대한 총칭이지만 현실적으로 일본 만화가 대다수를 점유하는 출판 분류인 “망가” 범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1억 달러 남짓 규모의 전체 만화책 시장 가운데 25%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년 대비로도 매출이 7.24 퍼센트가 상승하여, 전체 만화류의 5.89퍼센트보다 우수한 시장 성장을 이뤄냈다. 시장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일본만화의 서구권 진출을 초창기부터 주도했던 비즈(VIZ)로, 50% 가량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일본 출판사의 직접 진출 또한 점차 활기를 띄게 되어, 이미 미국 시장의 4대 주요 일본만화 출판사에 속하는 코단샤의 뒤를 따르고 있다.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베스트셀러는 단연 [마이 히어로 아카데미아]이며, [드래곤볼 슈퍼], [흑집사], [포케몬 레드 앤 블루] 등이 확실한 지지층을 지니고 있다.

한편 유럽 만화시장의 주요 중심지인 프랑스에서도 일본 만화는 산업적 성공을 안정적으로 거두고 있다. 업계 보고서 Bilan Manga 2018에 따르면, 프랑스 역시 북미와 비슷하게 망가 범주의 책이 2018년에 전년 대비 11.1%의 성장을 이뤄내고 1,660만부가 판매되어 2008년의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이 시장에서 망가 분류는 전체 만화의 38%를 차지하며 미국보다도 더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베스트셀러는 미국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있는 [원피스]와 [페어리테일]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뒤를 곧바로 [마이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드래곤볼 슈퍼]가 점유하여 세계적인 인기 코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일본만화의 문화적 입지가 비슷하게 뚜렷한 독일 역시 약 4천만 유로 규모의 망가 판매 시장이 추산된다.

문화적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가까워서 일본만화가 더 일찍 뿌리내린 동남아시아의 경우, 거점으로 태국 시장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수년의 출판 트렌드에서 전자서적의 급격한 성장이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만화연합 태국지부의 추산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태국 만화시장 5400만 달러 규모 가운데 대부분을 일본 만화가 점유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일본만화의 기반을 토대로 하는 현지 창작 만화에 대한 투자 또한 적극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카도카와 출판사로, 태국에 카도카와 콘텐츠 아카데미라는 기관을 세워서 태국에서 일본 만화 제작 기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현지 대학교와 커리큘럼을 협력하여 현지의 창작자들을 키워내고 콘텐츠를 확보하고자 전략을 세우고 있다.

독일 컨설팅 회사 롤란트 버거의 2017년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에서 일본 작품의 지분은 4%, 게임 시장에서는 15%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무려 27%를 지닌다. 아무리 일본 자국에서 만화의 제작 체제가 노쇠함을 드러낸다고 한들, 전지구적으로 볼 때 만화는 일본이 아직 콘텐츠의 산업적 경쟁력을 압도적으로 지니고 있는 분야인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흐름이 생길지 몰라도, 일본 만화계가 현재의 문화적 기반과 산업적 성과의 고리를 손쉽게 사라지게 놔두지는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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