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 칼럼] 일본 불매 운동, 문화적 소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상준 2019.10.30




▲ 일본 불매운동 포스터

 


지난 7월 초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고 수출 규제를 단행한 이후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100일이 넘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냄비근성’을 운운하며 곧 잠잠해질 거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웬걸. 예상과는 달리 그 파장은 결코 작지도 짧지도 않았다. 그동안 자사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혐한 메시지를 내놓은 DHC는 사실상 국내에서 퇴출됐으며, 단단한 입지를 다진 줄 알았던 일본산 맥주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매년 증가세를 보이던 일본 여행객의 숫자는 반 토막이 났고, 그 와중에 몇몇 행동파들이 발 벗고 나선 덕에 기존 일본 제품을 다른 상품으로 대체하는 리스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특히 일본 우익 기업 제품 사용을 ‘경고’하는 강경한 운동 또한 실효를 거두는 등 불매 운동의 성과는 곳곳에서 쉽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 불매 운동이 문화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여름방학을 겨냥해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엉덩이 탐정: 화려한 사건 수첩>은 개봉 첫 주 10만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지만, 2주차부터는 네티즌들의 고의적인 평점 테러와 함께 불매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최종 관객수 138,100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으로 막을 내렸다. 뒤이어 개봉한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 또한 국내에서도 많은 고정팬을 거느린 작품임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출판계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10주년 기념판 발간 연기를 시작으로, 일본 미스터리소설을 전문으로 번역, 출판하는 일부 출판사들은 사상 처음으로 정세에 영향을 받아 출간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또 지난 8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전시했던 ‘평화의 소녀상’이 주최 측에 의해 전시 하루 만에 철거된 데다, 이를 두고 몇몇 일본 작가들이 당연하다는 듯 혐한 발언을 얹어내면서 일본 문화 불매 역시 정당성을 인정받는 듯 보였다. 덕분에 일주일에도 수십 여 시간을 할애해 일본 여행지와 문화를 소개하던 TV프로그램은 이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며, 일본 영화 또한 적극적으로 편성에서 배제되고 있다. 


 소비자 역시 잔뜩 위축됐다. 실제로 여전히 일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알아서 쉬쉬하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다 싶어 이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자 벼르는 이들이 도처에 있으니 별 수 있겠는가. 예컨대 <신동아>는 여전히 팬들로 북적이는 한 만화 전문 서점의 풍경을 단서 삼아 한일 간 무역전쟁 와중에도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한국 팬들의 소비는 별로 줄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불매 운동의 무풍지대로 일본 만화와 게임을 언급했다. 기사의 논조는 지극히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기사의 제목은 “‘불매운동 국외자’ 일본만화 덕후”로, 문화 상품이 불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적정한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은 배제한 채 이곳 서점에서 만난 일본 만화 소비자들이 말하는 나름의 근거나 주장을 앞세워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들은 여전히 일본 상품을 소비하고 있노라며 그 ‘희한한’ 상황을 분석하려 한다. 마치 반일 감정은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피겨는 피겨일 뿐”이라는 무감한 ‘덕후’들이 야속하다는 것처럼 들릴 법하다. 게다가 오다 에이이치로의 <원피스> 애니메이션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을 두고 ‘이 시국’을 운운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 역시 마냥 일각의 이야기로 치부하긴 힘든 실정이다. 일본 만화를 불법으로 스캔해서 올리는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는 몇몇 치들의 황당한 주장에까지 이르면 확실히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근원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자. 문화 상품은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될 수 있다. 단, 모든 불매 운동이 그렇듯 이 역시 소비자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일본 문화를 소비하지 않기로 결정했든, 여전히 그것과는 무관히 소비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든 그것은 오로지 개인에 달린 문제다. 평점 테러와 같은 악의적인 군중심리를 동원하는 것이 애초에 불매 운동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언제든 개선될 수 있는 국제 관계에 작가 혹은 작가를 위시한 기업이나 단체, 작품 등을 고의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답 또한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이를 매국과 애국의 이분법으로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분위기야말로 가장 폭력적이고 부당한 처사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스스로 문화 상품에 대해 불매를 결정한 이력이 있다. 만화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가 자신의 비공식 트위터 계정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글을 게재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물론 해당 발언이 게재된 계정이 이사야마 하지메의 것이라는 것은 추정에 불과한 데다, 아직까지도 작가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이를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이 경우에도 단지 우익 성향의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작품까지 완전히 배제할지 여부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애니메이터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혐한 발언을 토대로 그가 참여했던 과거 모든 작품을 불매하기로 결정하는 것 역시 그렇다. 그가 현재 프리랜서로 내년 개봉이 예정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4부작’의 완결편 제작과는 거의 무관하고, 또한 그가 작품에 메시지나 작가 개인의 의도를 담을 만한 위치가 아니라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사다모토 요시유키라는 작가 그 자체에 대한 불매를 통해 그에게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과 달리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 문화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불매 조짐은 대체로 보이지 않는 편이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 아이즈원을 위시한 ‘K팝’은 여전히 일본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경직된 작금의 한일 관계 속에서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net Asian Music Awards, MAMA)’는 오는 12월 4일 일본 나고야 돔에서 개최되기로 최종 확정됐다. 이 경우 평화의 소녀상 철수 문제가 촉발된 나고야라는 점이 오히려 경색된 국제관계 속에서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결과로도 읽힐 법하다. 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부당한 결정이라는 주장이나 모종의 경제적 이유와는 별개로, 정치와 문화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그 벌어진 사이를 문화로 메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딱 하나다. 모든 불매 운동이 담고 있는 함의 그대로 일본 문화 불매를 강제하는 분위기야말로 불매 운동이 담고 있는 애초의 취지를 완전히 흐리는 것이다. 유니클로 매장 앞을 배회하며 이 시국에 몇몇은 아직도 일본 제품을 사고 있다며 체크하고 보고하는 대견한 나를 치켜세우는 사람만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저 몽둥이를 휘두를 타이밍만 엿보면서도 마치 스스로는 정당하게 욕하고 바람직한 애국을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자기기만이 그릇된 것임을 돌이켜본다면 일본 불매 운동의 가운데에서 문화 소비에 대한 적정한 자세 또한 분명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려 한류 불매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과거를 익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은 그 단단한 한한령마저도 해제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류가 중국 TV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말이다. 비록 일시적이더라도 반일(反日)에 동참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혐일(嫌日)만큼은 반드시,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 강상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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