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칼럼] 무엇이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만드는가?
성상민 2019.12.19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작가 개인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초기적인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의 ‘온라인 만화’는 2004년을 전후로 다음, 네이버, 파란 등 포털 사이트들의 ‘서비스’로 재편되며 ‘웹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고 초기적인 틀을 형성했다. 이후 2013년 레진코믹스, 탑툰을 비롯한 본격적인 유료 웹툰 플랫폼의 등장이 겹쳐지며 2019년 현재의 웹툰 환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비교적 그리기 간편했던 ‘에세이툰’이 대세를 이뤘다면 2000년대 중후반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나 다음의 ‘웹툰리그’(구, 나도 만화가)를 비롯한 아마추어 활동 공간 및 발굴 플랫폼의 등장, 디시인사이드나 루리웹을 비롯한 만화 연재 커뮤니티의 활성화, 그리고 ‘아마추어 작가’나 ‘지망생’들을 열심히 섭외하며 작가의 풀을 채운 신생 웹툰 플랫폼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이전보다 한국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대폭 신장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일상툰’을 비롯해 에세이 만화의 성격을 지닌 만화는 물론 액션이나 스릴러 같이 고도의 기획력이 필요한 작품, 이성애는 물론 다양한 성적 취향을 반영하는 작품도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지속 가능성’이다. 지금 당장은 ‘다양’할 수 있어도, 그 다양함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이 가능한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마치 199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던 한국 출판만화가 빠른 속도로 몰락을 맞이했던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한국의 종래 출판 기반의 만화가 2000년대 초반 갑작스럽게 무너졌던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누군가는 청소년보호법으로 인한 일시적인 유통 제약을, 조금 더 경제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두는 이라면 IMF 경제위기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 전반을 구성하는 ‘생태계’의 차원으로 접근하자면 결국 ‘종 다양성’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지점을 짚어야만 할 것이다.

명시적으로 기록된 문서가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한국 잡지 만화가 한창 활황 시기에 놓였을 때 이미 ‘종 다양성’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지 오래였다. 예를 들어 <비바! 블루스> 등의 해외의 학원격투 만화가 인기를 끌자, 만화 전문 출판사들은 적극적으로 <짱>이나 <니나 잘해>, <핫도그> 등의 학원격투 만화로 소년/청년지를 도배하며 대응에 나섰다. 씨알기획이나 대명종 같은 대본소 또는 대여점 중심으로 영업을 이어나가던 만화 출판사 역시 학원격투 만화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흐름을 타려했다. 이제는 작품의 캐릭터나 대사 하나하나, 심지어는 작가 본인까지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김성모의 <럭키짱>은 그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었다. 단지 2000년대 이후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작품의 특이한 연출이나 대사가 유행하며 웃음거리로 취급을 받지만, 한동안 <럭키짱>을 비롯한 작품은 ‘한국 만화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비판의 대상으로 오르내기에 바빴다. 대중들이 이러한 작품들을 유행에 맞춰 우선적으로 소비했기에 만화 출판사들이 이러한 작품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소비했지만, 유행에만 치중한 작품 기획은 결국 한국 만화에 대한 불신을 낳기도 했다.


이렇게 쉽게 휩쓸리고, 쏠리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독자들은 한국 만화에서 손을 끊기 시작했다. 동시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한국의 여가 환경이 더욱 세분화되는 시기기도 했다. 옛날에는 청소년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기껏해야 오락실이나 당구장, 아니면 대본소나 만화방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에 조금만 돈을 더 보태면 영화관을 가는 것이 여가 활동의 전부였다. 소위 ‘날라리’였다면 오토바이를 타거나 술을 마시고, 일찌감치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거나 집안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공연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양자 모두 흔한 여가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PC방’ 문화가 생기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오락실에서만 즐기는 것이 고작이었던 게임은 물론, 만화나 영화 같은 멀티미디어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같이 가면 함께, 혼자 가면 혼자대로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여가가 가능했다. 어떤 의미로 PC방의 등장은 만화를 비롯한 전통적인 여가 수단을 모두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생태계가 빈약한 동시에 기초 체력이 허약했던 한국 출판 만화는 빠른 속도로 힘을 잃었다. 절대적인 수는 작아도, 꾸준히 작품을 바라보는 독자층을 유지하던 순정만화-여성만화 정도가 계속 세를 유지했지만 이 조차도 마냥 길게 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한국 만화는 ‘웹툰’이 새롭게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기적적인 부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만화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과정 자체 또한 바뀌었는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며 많은 논란을 만들었던 임총 작가의 <공감.jpg>는 이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작품 자체에 한계가 많았던 것은 물론 작품에 대한 여론도 무척이나 험악했다. 그러나 네이버는 이러한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작품의 연재를 중단하는 대신 결과적으로는 일 년 간 끊이지 않고 연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을까. 네이버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지만, 결국 작품에 대한 강한 부정 평가가 역설적으로 ‘높은 조회수’를 만든 것을 좀처럼 무시할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질적 평가 이전에, 실질적으로 페이지뷰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을 포털 웹툰에서는 선호할 수 밖에 없다. 페이지뷰를 높이는 작품은 일상툰이나 코미디 장르의 만화, 또는 액션이나 스릴러 작품이 대다수이다.

그나마 네이버 웹툰은 모회사부터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장악한 ‘네이버’이며,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많은 것이 상대적으로 작품의 개수나 수적인 장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지만 그 외의 웹툰 플랫폼에게는 결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가장 선도적으로 유료 웹툰 플랫폼의 모델을 만들었던 ‘레진코믹스’가 여전히 성인웹툰 확보에 골몰하며,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속하는 탑툰이나 봄툰, 투믹스(구, 짬툰) 등이 결국 ‘다양한 장르’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편성할 뿐 대다수의 작품을 성인웹툰으로 편성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나마 출판사 기반으로 활동을 시도한 위즈덤하우스의 ‘저스툰’이 한동안은 독립만화 작가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풀을 유지했지만, 수적에서는 경쟁 웹툰 플랫폼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장르의 다양성을 점차 줄이는 문제는 저스툰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경제나 수익 모델로서의 장르 다양성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웹툰을 기획하고 바라보는 입장 역시 함께 정체되었다. 작품의 기획부터 연재, 출판까지 모두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진행된 것은 물론 작품 자체로도 큰 호응을 모았던 수신지의 <며느라기>는 작가의 SNS를 통해 뒤늦게야 작품의 독립적인 연재 뒤에 놓인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며느라기>의 기획을 다른 웹툰 플랫폼에 찾아가서 연재를 논의했지만, 모조리 거부를 당해 할 수 없이 SNS를 통해 독립적인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대체 <며느라기>의 어떤 요소가 웹툰 플랫폼들로 하여금 작품의 연재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웹툰 플랫폼들이 사전에 판단하기에는 <며느라기>가 쉽게 ‘수익을 낳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한국 웹툰에 한 획을 긋고, 나아가서는 에세이 만화와 페미니즘 만화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며느라기>는 그렇게 하마터면 세상에 아예 나오지도 못할 수가 있었다.


결국 만화의 장르 다양성을 만드는 것은 한국 만화가 놓인 ‘구조’와 ‘환경’이다. 단순히 시장이 작다고 하여 장르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며, 시장이 크다고 무조건적으로 장르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나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구조는 결국 지금 당장 인기 있는 장르에 더 치중하며 여유가 있는 웹툰 플랫폼에게만 제한적으로 비주류적인 작품을 등장하게 만드는 현상을 반복하게 만든다. <며느라기>가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를 거부당한 것, 그리고 비슷한 시기 <공감.jpg>는 무수한 욕을 먹으면서도 연재가 가능했던 것은 주류적 시장 외부의 존재가 미약한 상황이 만든 웃지 못 할 역설이다. 다양한 작품을 논할 수 있는 공간과 매체, 독자가 구축되어야 한다. 지원체계 역시 단순한 제작 지원의 수준을 넘어, 해당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거나 감상할 수 있는 문화적인 틀의 구축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저 ‘시장 규모 1조원’이라는 수치적 지표에만 만족하며 문화 다양성을 고민하지 못한다면, 위기는 감지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또 닥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웹툰의 ‘장르 다양성’의 문제는 만화 생태계가 진정으로 건강하고 뿌리가 깊은지를 보이는 지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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