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관제 만보 / 원로만화가 순례 ⑮ 손의성
조관제 2020.04.30






60년대부터 20년을 ‘활극 만화’의 전성기를 만든 손의성




손의성(孫義成)


1937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53년 부산 국제문고에서 '원수의 딸'로 데뷔

1958년 상경. 소년소녀문고에서 ‘손오공’ 등 약화체 작품 발표

1959년 한국문고에서 경마만화 ‘흑마’ 발표

1961년 징기스칸, 곰, 매국노 등 발표

              진영문고에서 중국무협만화 ‘사사사死死死’발표

1963년 ‘동경 4번지’ ‘혁 형사’ ‘싸이안’ ‘두 소경’ 등 발표

1973년 ‘복수’ ‘하인’ 등 성인만화 발표

1975년 소년한국에 ‘흑제비’ 연재

1986년 ‘도시의 사냥꾼’ 등 하드보일드 만화 발표.


우리 만화사에 1960년대만큼 작품이 다양했던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만화가들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과 서사구조로 작품을 발표하여, 비록 환경이 열악했던 대본소였지만, 그 당시 독자들에게 풍성한 읽을거리로 꿈을 키우게 했으니 말이다.

그런 시대에 유난히 독자들에게, 늘씬한 그림체에 강약을 시원스럽게 조절한 펜 터치, 그리고 힘 있는 효과 선과, 독특한 글씨체의 의태어 의성어로 작품에 몰입하도록 한 장치를 해서 독자들에게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든 만화가가 바로 ‘손의성’이다.

극적인 장면에는 언제나 칸 밖으로까지 나온,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다리를 쭉 뻗고 서서 총을 들고 악을 응징하던 주인공의 모습만으로도 독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중학생 손의성, 만화가의 길을 열다
6. 25전쟁으로 손의성은 가족을 따라 흥남에서 부산으로 피난 와서 정착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전쟁의 여파로 정규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미술교육은 시간표에만 있는 과목으로 그림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 


만화는 거의 없었고 당연히 만화가도 드물었던 시절, 다만 일본과 미국의 만화만 조금씩 유입되던 때였다. 부산 ‘국제시장’ 길바닥에서 팔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했던 만화를 본 손의성은 신기하기도 하고 느낌이 왔다고 한다.

자신도 만화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중학 2학년 때부터 만화책을 사 와서 따라 그려보기 시작했다.

손의성의 그림은 보는 사람마다 엄청나게 잘 그린다는 칭찬에 종이만 보이면 다 그림을 그렸는데, 심지어는 시험지 답안지 여백에다 그렸다가 선생님께 야단도 맞았다.


극장 영사실 책임자로 근무했던 부친 덕에, 일반인들은 몇 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아무 때나 가서 볼 수 있었던 손의성은, 영화 제목만 보면 내용은 물론 감독, 배우까지 이름을 외고 살았을 정도로 누구보다 많이 본 영화는 그에게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만화를 좋아했지만, 특별하게 보고 따라 그릴 작품이 귀해서 극화체 만화는 ‘김용환’, ‘박광현’ 선생의 작품을, 약화체 만화는 ‘신동헌’ 선생의 작품을 교재 삼아 습작을 한다.

동광초등학교 근방에 있었던 <동광인쇄소>에서 그가 좋아했던 만화가 ‘박광현’이 화공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 신분이었던 손의성은 찾아가서 그림 좀 가르쳐달라는 말을 할 엄두도 못 내고, 대 선배 만화가의 얼굴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1851년 중학교 3학년 때, ‘원수의 딸’이란 제목의 원고를 연필로만 그린 36쪽 만화 원고를 들고 국제시장 안에 있던 <국제출판사>라는 곳에 찾아간다. <국제문고>는 피난지 부산에 있는 유일했던 출판사였다.

작품을 본 출판사 사장은 손의성의 가능성을 높이 사서, 연필로 그려온 작품을 펜으로 작업을 하라고 가르쳐 주며, 조금 더 체계적이고 정확히 그려서 가져오라는 조언까지 해 주었다. 

이렇게 만든 작품으로 처음으로 많은 돈은 아니지만, 원고료를 받는다. 이때 손의성은 만화가 돈이 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손의성의 작품 가치를 알고 더 그려서 가져오라고 했다. 손의성은 이미 그 당시부터 스토리 짜는데 재간이 있었는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의 원고는 수정 없이 무사 통과되었다.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손의성은, 만화를 그려 돈을 벌자는 생각보다 ‘내 실력을 평가받고 알리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그리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노력한다.




새롭게 새롭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배고픈 환쟁이’ 되는 걸 반대하는 무서운 아버지에게는 숨기며,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책상에 꼬박 앉아 만화만 그린다. 

선배들의 만화를 보며 정적(靜的)인 그림도 따라 그려보고, 영화 같은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싶어 만화 칸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 연출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원고 제작에 필요한 먹물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처음에는 물감을 풀어 먹 대신으로 그렸지만, 물에 약한 먹물이라 침이라도 튀면 애써 그린 원고를 다 버린 적도 있었다.

물에 약한 물감의 단점을 고치려고 시장통을 찾아다니다, 염색할 때 염색 잉크에 소금을 뿌려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 ‘물에 강한 먹물’을 제조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소금 넣은 먹물’뿐만 아니라 펜 선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중국음식점 대나무 젓가락을 깎아 만든 대나무 펜도 개발한다. 

사무용 펜에 비해 굵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대나무 펜으로 작품 속의 의성어 의태어에 사용하여 손의성은 작품이 더욱 실감 나도록 만들었다. 

개발품 대나무 펜은 옆 방에서 작업하던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쓰던 만화가 ‘오명천’과 ‘신동우’에게도 사용하도록 권했다.

만화 말풍선 속의 글자는 일률적으로 고르게 쓴 글씨가 일반적이었는데, 손의성은 캐릭터들의 대화를 보다 감각적으로 살리기 위해 말풍선 안의 글자도 크고 작게 해서 몰입감을 높이는 노력을 했다.


피난지 부산에서는 서울에서 피난 온 만화가 그룹과 부산 토박이 만화가가 그룹이 함께 작품을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은근히 경쟁을 하고 있었다.

흥남에서 피난 와서 살고 있었던 이북 출신 손의성이었지만, 스스로 부산 만화가로 자처하며 오명천, 이상열, 전상균, 하고명, 조치원 등과 가까웠다.


서울이 수복되자, 손의성은 만화출판 시장이 좁은 부산을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긴다. 

요즘처럼 스승이나 선배라도 있다면 출판사 소개를 받았을 텐데, 그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손의성은 직접 원고를 들고 충무로에 있는 출판사 <소년소녀사>로 찾아가 거래를 하게 되었고, 작업 환경이 안정되면 부산에 있던 만화가들을 출판사에 소개를 시켜 한 명씩 상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상경한 손의성이 자리 잡았던 대한극장 근방의 화실에서는 ‘신동우’ ‘박광현’ ‘김원빈’이 함께 모여 작업을 했다.

‘징기스칸’, ‘곰’과 같은 그의 초기 작품들은 선배들의 그림체에 영향을 받아 캐릭터들이 우람하고 동양적이었다. 당시 인기 연예인이었던 신성균, 남진도 중후했고, 부자 사장들의 풍채도 풍만해야 호감을 가졌던 시대의 유행에 따른 것이다.


많은 극화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인기만화가 ‘박광현’의 그림은 손의성에게도 캐릭터 공부하는 데 영향을 주었지만, 독자들은 박광현을 비롯한 기성 만화가들의 만화 구성과 캐릭터에 대해 식상해 하는 흐름을 느낀다. 

선배들의 변화 없는 서사구조와 캐릭터들에 대해 독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는 분위기를 감지한 손의성은, 캐릭터의 키를 늘씬하게 키우고, 눈과 코도 서구식 인물로 접목해서 약화로 표현하며 독자들의 기호 변화에 맞춘 독창적인 그림체를 개발하여 발표한다

당시 일부 인기만화가들은 일본만화를 베낀 작품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손의성은 수도 없이 많이 봤던 영화 장면들의 기억을 떠올리고 스틸 컷을 보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살리는 작품 연출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돈 욕심보다 놀기 좋아했던 천재 만화가

새로운 화풍 개발에 성공한 손의성의 만화는 찍기만 하면 책이 잘 나갔다. 그러나, 놀기 좋아하는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언제나 원고 마감을 지키지 못해 출판사의 미움을 받아 거래가 자주 끊긴다.

손의성의 원고는 언제나 첫 권만 마감시키면 노느라 다음 편이 나오는 기간이 길어졌다. 당연히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이 잊혀지면서 독자들의 호응도 멀어져 판매 부수가 줄어드니 출판사에서는 ‘사업을 망치는 만화가’라며 싫어했던 것이다.

비단 손의성뿐만 아니라, 그를 비롯해 김원빈, 이강주, 이병주, 신동우, 김태형 등도 일보다 놀기를 더 좋아했던 만화가들이다. 

모두 돈에 욕심이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외상으로 마시고, 더 이상 외상이 안 되면 그때서야 작업을 하는 돈에 무심했던 예술가들이었다.


술을 좋아했던 손의성이 친구랑 노느라 작업을 하지 않아 출판사에서 미리 당겨 쓴 ‘가불금’이 쌓여 빚이 쌓이게 되면, <싼다만>, <탕> 등의 작품으로 인기가 높았던 친구 ‘오명천’의 일도 도왔다. 

돈이 떨어져야 일을 하는 손의성은 신용 불량으로 출판사와 거래가 끊어지면 새로운 출판사를 찾아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다른 그림체로 바꿔야 했다. 그림체를 바꾸지 않으면 새로 거래할 출판사에서는 원고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정한 환경에서 ‘운 좋게도’ 진영문고를 운영하던 <삼영사> 이종태 사장이 신용 불량 만화가 손의성의 저력을 믿고 거래를 제안한다.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더 날씬해 진 주인공 캐릭터로 구성한 작품 ‘매국노’는 책으로 나오자마자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그 인기 여세를 몰아 중국무협만화 ‘사사사(死死死)’를 비롯하여, ‘동경 4번지’, ‘혁 형사’, ‘싸이안’, ‘두 소경’ 등 히트 작품을 연이어 발표를 한다.

출판사를 옮길 때마다 바꾸어야만 했던 화풍 연구 덕분에 손의성 작품 속에 나오는 캐릭터는 점점 패션화되어 앞서 발표했던 작품들보다 더 많은 호응을 받았다.


특히 ‘동경 4번지’의 인기에 놀란 다른 출판사에서는 ‘난리’가 난다. 

손의성의 평소 작업 패턴대로라면 작업 속도를 그렇게 빨리 낼 수가 없다. 뚱뚱했던 주인공 캐릭터가 갑자기 날씬하게 바뀌고, 원고 마감도 놀랄 만큼 빨라 진 이유는 분명 일본만화를 베껴 쉽게 그리는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뜨리기도 했다. 

‘동경 4번지’의 성공은 본격적인 활극 만화가 없었던 그 시절에 연이어 발표한 ‘혁 시리즈’를 통해 손의성의 액션 활극 만화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캐릭터를 단순화시키고 역동적인 연출에 멋진 장면이 많았던 ‘동경 4번지’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이를 시기한 주위에서는 ‘깡패 만화’라며 폄하를 하기도 했다.


인체 비율을 길게 잡아 늘씬하게 변화시키고 다리를 휘게 한 독특한 자세의 주인공 캐릭터는 의도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원고 마감에 쫓겨 급히 데생한 선이 흘리면서 나온 자세였는데, 문하생이 그대로 펜으로 따라 그려 창조된 캐릭터이다. 이런 파격적인 화풍을 독자들은 매력적으로 보고 오히려 더 많은 호감을 주었다.







유명 영화배우보다 많이 받았던 팬레터

손의성 만화의 인기는 출판사마다 손의성 화풍을 따라 그리는 아류의 만화를 엄청 등장시키게도 한다. 

화풍의 원류인 손의성은 한 달에 5권 발표가 작업의 한계였는데, 손의성 화풍을 따라 그려 편승한 아류 만화가는 10 여권씩 발표를 하는가 하면, 작품 제목도 비슷하게 해서 재미를 본 만화가들도 많이 있었다. 


1960년대 만화책에는 만화가를 꿈꾸는 독자들이 인기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그려 보내는 독자의 투고 만화가 유행이었는데, 인기만화가 손의성 작품의 독자란은 만화가 인기만큼이나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예비 만화가들의 참여로 언제나 화려했었다.

독자 투고 만화를 그려 보내기 위해 대본소에 있던 그의 만화 속표지를 독자들이 주인 모르게 뜯어가서 대본소 주인을 곤혹스럽게 만든 일도 비일비재했다.

만화 속표지가 뜯겨 나간 손의성 만화를 봐야 했던 다른 독자들의 항의에 대본소 주인은 다른 만화보다 그의 작품을 몇 권씩 더 사서 구비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출판사에서는 인기만화가 손의성의 원고를 하루라도 더 빨리 받기 위해 부탁한다. 일반적인 원고 분량은 100쪽 만화에 98쪽 내외로 그리는 원고를, 손의성에게는 92쪽으로 해서 작업 시간을 줄여 마감을 당기고, 나머지 페이지는 독자란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동경 4번지’를 그릴 때는 손의성에게 오는 팬레터가 당시 유명 영화배우보다 많아서 매일 한 보따리 이상 쌓여, 신촌 우체국에서 주는 감사패까지 받았다. 

팬레터가 워낙 많아서 독자에게 답장을 담당하는 문하생을 따로 두었는가 하면, 신혼 초엔 부인도 하루종일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인기만화가였기 때문에 손의성은 자기 집 대문에 문패도 달지 못했다. 

열혈 팬들이 찾아와서 작업을 방해하는 것이 불편해서이기도 했지만, 인기 있는 사람의 문패를 뜯어가서 보관하면 뜻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구리 문패부터 나무 문패, 돌 문패, 심지어는 종이 문패까지 달아 놓기만 하면 다 뜯어 가 버리는 것이다. 

가짜 손의성까지 나타나 극성을 부려 가짜 손의성에게 피해 본 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거나 전화로 항의하는 일도 있어 유명세 때문에 치루는 낭패도 여러 번 겪었다.





1969년 5월, 사단법인 <한국아동만화가협회> 설립에 참여

60년대부터 만화출판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합동출판사>에서 인기만화가들은 전속으로 묶어두며 작품 활동을 통제했고, 능력 있는 문하생들은 회유해서 만화가로 데뷔시켜 주며 일본만화를 베낀 만화를 그리게 해서 대량 배포하는 물량 공세를 폈다. 

자본력과 대형 유통망으로 만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합동출판사>의 전횡으로 군소 출판사들은 견디지 못하고 거의 사업을 접게 되었다.


독과점 출판사 <합동>의 횡포에 반발한 원로만화가 ‘박기당’은 만화가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출판사 <오성문고>를 설립할 때 손의성도 합류했지만, 주위의 시샘과 이간질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고 빠진다.

그리고 다시, 이종진, 유세종, 김종래 등과 함께 다섯 명의 인기 작가가 주주가 되어, 만화가는 만화만 그리고,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자는 합의를 해서 출판사 <오복문고>를 설립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초빙했던 전문 경영인이라는 대표가 발행 부수를 속이는 등 금전적인 면에서 투명하지 못했고, 거짓말로 만화가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분위기에 염증을 느껴 그만둔다. 


이런 시기에 정부에서는 만화를 ‘사회악’ 운운하며 손의성을 위시한 많은 만화가들의 만화를 모두 불태우는 수모를 주며 여론몰이를 했다. 출판사에서는 겁을 먹고 책을 찍지 않았다.

원고를 팔 수 없게 된 만화가들도 생활이 힘들던 때, 중앙정보부에서 만화가들을 모아 놓고 ‘사회악’ 중의 하나인 불량만화 근절을 위한 건전만화 단체를 만들라는 지시와 함께 관련 기획서를 만들어 오라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때는 만화가들끼리 모이는 협회가 몇이 있었지만, 만화가들의 권익을 보호할 정도의 힘은 없었다. 취향이 같은 이들끼리 모이는 그룹 형태로, 협회 내부에서 말썽이나 반발이 생기면 또 다른 만화가가 협회를 만들었던 강제성이 없는 느슨한 모임이었다.

그중에서 세력이 가장 컸던 ‘박기당’이 주도하던 협회에서 손의성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활성화시켜 보라며 협회 사무실과 집기를 넘긴다. 


1968년, 손의성은 ‘최백산’ ‘이종진’ ‘이근철’ 등 일곱 명과 모여 의논해서 스무 명 정도 만화가들과 <사단법인 한국아동만화가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회장은 <합동출판사>에도 굽히지 않았던 고집과 배짱이 있던 선배 ‘박기정’을 추대하고, 부회장에는 ‘권영섭’ 그리고 손의성도 임원의 한 사람이 된다.

그동안 협회는 출판사의 지원금으로 운영해 왔기 때문에 출판사에 대해 만화가들이 눈치를 살폈다. 이런 과거의 협회 운영 체제 관행을 끊고, 만화가들이 스스로 갹출한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그해 10월에 한국만화계 최초의 법인체로 지금의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의 전신인 <사단법인 한국아동만화가협회>가 발족 되었다.

만협의 임원들이 인기만화가들이었기 때문에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협회 운영 예산으로 사용했다. 회비와 후원금은 박기정 회장이 제일 많이 내고, 그다음은 손의성이 많이 내는 형식으로 만화가들의 힘으로 운영 예산을 마련했다.


출판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 협회였기에 회원 가입 요건을 엄격하게 심사를 시작하니 협회의 힘은 막강해졌다. <아동만화가협회> 회원이 아니면 출판사에서 만화 원고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회원 가입 신청을 했던 이들 중에 일본만화를 복사하는 사이비 만화가를 가려내기 위해 그림 시험을 보게 했는데, 일본풍으로 그린 만화가들을 가려내는 데 손의성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합동출판사>의 사주를 받아 일본만화를 베끼던 사람들은 회원 자격 인정을 반대해서 출판사와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과 잘못을 지적할 때도 에둘러서 말할 줄 모르고 직설적으로 쏘아대니, 비주류 만화가들에게 불리한 안건 처리는 모두 손의성이 다했다는 소문도 내고, 괴팍한 인물로 찍혀 욕을 많이 먹는다.


<합동> 쪽과 거래를 하다가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만화가들에게 <만협>의 이사들 중에서 바른 소리 제일 많이 하는 손의성은 타켓이 된다.

‘손의성이 우리 밥줄을 끊는다’며 반발이 심했다. 심지어는 ‘손의성을 죽이겠다’고 나서는 만화가들도 있었다고 한다. 


후원금을 받지 않고 운영하는 <한국아동만화가협회>를 출판사에서는 사업에 불이익이 올 것을 걱정해서 은근히 견제하며, 비주류 쪽 만화가들 중에서 임원으로 선출되도록 운동을 했다. 

회원 자격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 비주류 그룹의 지원을 받아 협회 이사로 들어왔던 만화가도, 처음에는 풍문만 믿고 회의 때 손의성의 말에 부정적 의견으로 견제를 했지만, 거짓말 안 하고, 바른말 하는 손의성을 알고부터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감투 쓰는 걸 싫어하는 손의성은 <한국아동만화가협회>에서 임원을 그만 둘 때까지 이사 외에는 다른 직책을 맡지 않았다.


월간 <보물섬>과 일간지 <소년한국>에도 인기만화가 손의성에게 청탁을 해서 연재를 해 보지만, 시간도 없고 체질에 맞지 않아 연재를 오래 하지 못했다.





손의성에게는 원고도 책도 남아 있지 않다

60년대부터 80년대를 아우르는 20년을 인기 정상에 있었던 손의성이지만, 원고도 책도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인기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의 원고나 만화는 군소출판사에서 재판, 3판을 찍는다며 가져갔다가 출판사가 망하면서 함께 없어졌기 때문이다.

요즘도 손의성에게 옛날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오지만, 원고는 물론 남아 있는 책이 없어 출판을 못 한다.


80년대에 작업 했던 성인용 단편 작업도 새로운 잡지 창간하는 데 도움 달라는 군소 출판사의 청탁을 받고 한 5~6편 작업도 하고, 지난 원고로 재판을 찍기도 했지만, 젊은 만화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치고 올라오는 환경에서 계속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손을 놓는다. 

그동안 작업했던 작품들을 스캔해서 보여주는 인터넷 대여점에서 손의성의 작품을 올리고 있지만, 유명했던 작품들은 없어져서 인터넷에 올라있는 작품은 전체의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노력도 했지만, 운이 따라주어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손의성은, 스스로 매긴 인생 점수를 100점 만점에 80점을 주지만, 그림 점수는 50점이란다. 

너무 일찍 시작한 만화가로 살면서 마감에 치여 역량이 소진된 탓에 진지하게 원고를 하지 못한 일들을 후회했다.

누구보다 그림 공부를 더 많이 했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만화 잘 그리는 만화가를 꿈꾸던 손의성이지만,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없고, 좀 더 잘 그리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만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열렬한 팬이었던 청소년들이 지금은 교수, 소설가, 방송인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로 성장해서, 함께 추억을 더듬으며 사랑과 존경으로 함께 해 주는 팬클럽 회원들이 있어 손의성은 행복하다. 


좋아하는 술로 인해 일어났던 에피소드로 엮은 ‘술꾼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보고 싶은 손의성은 원고지에 선까지 쳐 놓았지만,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밥은 거의 먹지 않고 술만 마시다시피 해서 몸이 깡말랐던 총각 시절, 검문하던 경찰이 손의성을 아편 중독자인 줄 알고 팔에 주삿바늘을 찾았다는 에피소드를 비롯해서, 그동안 술로 인해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을 약화로 그려보고 싶어 했다.


후배와 제자들에게 항상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라.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도전 정신을 가져라!’라고 했던 말씀처럼, 손의성 선생의 새로운 도전인 ‘술꾼 이야기’를 어서 즐겁게 작업 해서 독자들과 만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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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Yecies/Riley Jones
2019.12.20
호주에는 OZ 코믹콘과 슈파노바(Supernova) 등 다양한 대중문화 행사가 있다. 슈퍼노바는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퍼스, 애들레이드, 골드 코스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다. 200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이 행사는 호주에서 진행되는 문화 행사 중 가장 눈에 띄고 참석자가 많은 행사 중 하나다.
[글로벌리포트] 호주 만화 시장에 관하여 - 자가출판 시장과 디지털만화의 유입
Brian Yecies/Riley Jones
2019.12.20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주 실무자들과 디지털 유통관행은 아직 한국과 세계의 추세를 따라잡지 못했다. 호주 만화가들은 코믹솔로지(ComiXolgy)같은 플랫폼에서 자신의 디지털콘텐츠를 홍보할 뿐만 아니라 개인 웹 페이지를 활용한다. 그러나 콘텐츠가 국가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수집, 확인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많은 호주 만화가들이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만화를 만들고 있지만 2019년 현재 호주에서 디지털콘텐츠와 디지털 유통에 초점을 맞춘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칼럼] BL 장르와 젠더 감성
정은숙
2019.12.20
 오늘날의 콘텐츠들은 모두 장르로 구분되고, 그렇게 구분된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 액션 등의 장르에는 자연스럽게 여성향과 남성향이라는 젠더가 따라붙는다. 각각의 젠더에 속한 장르들 중 여성이 주체적으로 만들고 소비해온 BL(BOYS LOVE) 장르가 최근 젠더 논란과 함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니 오랜 시간 BL 장르를 접하며 자란 필자에게는 조금 놀라운 상황이다.
[글로벌리포트] 2019 중국 웹툰시장 현황 및 변화
강태진
2019.12.19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현재 중국 만화 플랫폼의 월 이용자 수 TOP20는 아래와 같다. 콰이칸만화가 월 4,551만명으로 1위를 달리고 있고 텐센트동만이 약 1,379만의 사용자로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웨이보동만, 칸만화, 보동싱치우, 동만, 추만, 왕이만화, 띠이탄, 만화타이 등의 순으로 10위권 플랫폼 순위가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칼럼] 무엇이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만드는가?
성상민
2019.12.19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작가 개인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초기적인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의 ‘온라인 만화’는 2004년을 전후로 다음, 네이버, 파란 등 포털 사이트들의 ‘서비스’로 재편되며 ‘웹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고 초기적인 틀을 형성했다. 이후 2013년 레진코믹스, 탑툰을 비롯한 본격적인 유료 웹툰 플랫폼의 등장이 겹쳐지며 2019년 현재의 웹툰 환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비교적 그리기 간편했던 ‘에세이툰’이 대세를 이뤘다면 2000년대 중후반 네이버의 ‘도전 만화가’나 다음의 ‘웹툰리그’(구, 나도 만화가)를 비롯한 아마추어 활동 공간 및 발굴 플랫폼의 등장, 디시인사이드나 루리웹을 비롯한 만화 연재 커뮤니티의 활성화, 그리고 ‘아마추어 작가’나 ‘지망생’들을 열심히 섭외하며 작가의 풀을 채운 신생 웹툰 플랫폼의 등장은 표면적으로는 이전보다 한국 웹툰의 ‘장르 다양성’을 대폭 신장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일상툰’을 비롯해 에세이 만화의 성격을 지닌 만화는 물론 액션이나 스릴러 같이 고도의 기획력이 필요한 작품, 이성애는 물론 다양한 성적 취향을 반영하는 작품도 속속 등장했다.
[글로벌리포트] 일본 소프트 뱅크와 라인이 경영통합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서
이현석
2019.12.17
2019년 11월 13일 밤 한 뉴스가 일본 전국을 뒤흔들었다. 일본 제일의 거부라 불리는 손정의 의장이 이끄는 소프트 뱅크 그룹이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SNS서비스를 운용하는 라인 그룹이 전략적 경영 통합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전문가 칼럼] 스트리밍하는 디지털 콘텐츠 팬 문화
이재민
2019.12.16
바야흐로 IP의 시대다. IP(Intellectual Property)는 지적재산권을 뜻한다. 단순히 하나의 매체로 소비되던 것을 넘어 다른 장르와 매체로 전이되는 것을 IP확장이라고 한다. 4~5년 전에 웹툰의 미래라고 말하던 OSMU(One Source Multi Use)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OSMU는 ‘작품’의 활용을 중심으로 하지만, IP 확장은 지적 재산권에 포함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말하자면 작품이 아니라 그 창작자까지 모두 확장의 범주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확장하는 IP는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게임 스트리머로 시작해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까지 만들게 된 웹툰작가가 있다. 바로 침착맨이다.
[글로벌리포트] 2019년 프랑스 만화계 정리 (디지털만화)
윤보경
2019.12.05
프랑스 출판조합(SNE, Syndicat National de l’édition)은 디지털 도서 시장에 대해서도 2018년의 수치를 정리, 조합하여 평가서를 공개했다. 그 전년 대비 5.1% 성장한 디지털 도서 시장의 총 수익은 2억 1200만유로(한화 약 2755억4천만원)로 집계되었다
[글로벌리포트] 2019년 프랑스 만화계 정리 (출판만화)
윤보경
2019.12.05
2019년 6월, 프랑스 출판조합(SNE, Syndicat National de l’édition)의 대규모 모임이 있었다. 그 기회를 통해 2018년 프랑스 출판종합 집계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해의 종합 집계는 항상 그 이듬해에 마무리 된다 (2019년의 결과 수치는 2020년 상반기에 발표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 인용된 집계는 2018년을 조사한 자료로, 비록 올해의 수치는 아니지만 가장 최근의 결과이므로 프랑스 출판계와 만화계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수렁에서 건진 내 만화 : 나가타 카비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 <나 혼자 교환일기>
박수민
2019.11.25
‘실록(實錄)’이라는 단어가 있다. 실록이라 하면 우리는 주로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지만 논픽션 다큐 같은 장르적 성격의 의미로 쓰인다. 나는 주로 70년대 실존 인물을 다룬 일본 임협물이나 한국의 <실록 김두한>(1974) 같은 옛날 폭력영화에서 이 단어를 보았던 기억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2.임금의 제위 기록이란 뜻을 제외하고, 1.사실을 실제로 적은 기록, 3.사실에 공상을 섞어서 그럴 듯하게 꾸민 이야기나 소설(=실록물)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나는 이 두 항목의 차이가 재미있다. 1번은 순수 논픽션이라는 건데, 3번은 사실 기반에 양념이 좀 가미된 장르물이라는 것. 아무튼 이 한자단어는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잘 써먹는 듯하다. 작품 앞에 ‘실록’이 붙는 순간 생겨나는 이상한 무게가 있다.
[전문가 칼럼] 웹툰은 공짜? 웹툰 불법 소비의 심리와 극복방안
정민수
2019.11.11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 많이 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법복제는 웹툰 뿐만 아니라 영화, 방송, 음악, 만화, 서적 등 많은 장르의 저작물 분야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나 웹툰은 2013년부터 레진코믹스를 시작으로 유료 웹툰 플랫폼이 생겨나기 시작하기 전에는 다음, 네이버를 통하여 무료로 서비스 되는 저작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사이트를 통하여 웹툰을 보는 소비의 심리에 대해서, 공짜를 좋아하는 일반 대중의 심리,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 이외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