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 칼럼] 정부의 만화산업육성 정책과 개선방향
박석환 2020.05.25



정부의 만화산업육성 정책과 개선 방향


 

기존 정책 내에서 새로운 시대와 수혜자의 요구를 수용할 숙의 필요

2020 현재 만화산업 육성 지원 예산은 210,  2002년에 비해 비약적 증가

만화 생산 소비 기반 강화 그리고 해외시장 확대를 위한 구조를 취하는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교수

 

 


 올 해 만화산업육성 예산은 210억원



 

△ 2019년 10월 17일 당시 국무현안점검조총회의 '만화산업발전계획' 발표


2020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은 512.3조원(2019년 12월 국회 의결 기준)이다. 이중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6조4,803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9.4% 증가했다. 콘텐츠 부문 예산은 9천650억원이고 이중 ‘만화산업육성’ 예산은 210억 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 설명 자료에 따르면 ‘만화산업육성’ 사업은 2001년 6월 발표한 ‘콘텐츠코리아비전21(문화콘텐츠산업 발전 추진계획)’에 따라 추진됐고 2002년부터 시작된 ‘단년도 계속사업’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 내용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현 한국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해 문화산업 관련 조직과 기능을 통합 육성한다는 것이고 만화산업도 그중 한 분야로 선정됐다.

 

2002년 당시 문화관광부의 전체 예산은 1조 1,152억 원이었다. 이중 ‘만화’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예산은 출판만화산업육성지원에 3억 2천 2백만 원,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운영지원에 3억 원, 만화영상산업지원에 8억 8천2백만 원, 만화이미지정보센터 설립(현 디지털만화규장각) 지원에 16억 8천 8백만 원이었다. 이중 1회성 사업과 애니메이션 지원 예산을 제외하면 6억 2천 2백만 원이다. 2002년 대비 2020년 현재 만화산업육성 예산 210억 원을 단순 비교하면 무려 3,276.2% 증가한 것이다.

 

 


만화산업육성 정책 18년의 성과와 세분화된 사업



△ 2019년 12월 17일 웹툰융합센터 및 예술인 주택 기공식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만화계 내‧외부 인사들의 노고와 정책입안자들의 이해가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 왔다. 2003년 만화계는 정부와 함께 ‘만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1차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고 현재 4차 중장기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2012년 만화계는 국회와 함께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만화산업육성 정책과 사업의 기본 방향은 이 법과 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기초한다. 2020년 만화산업육성 정책의 세부사업과 예산은 다음과 같다.

 

○ 만화콘텐츠 창작 지원(23억원) : 우수 만화콘텐츠 발굴을 위한 다양성만화 제작 등 만화콘텐츠 기획·개발지원

○ 만화콘텐츠 기업 육성(51억원) : 만화콘텐츠 기업 육성을 위한 만화 IP프로모션 지원, 글로벌 프로젝트 기업 지원

○ 만화산업 인력 양성(47.8억원) : 우수 만화작가 양성을 위한 웹툰창작체험관 및 웹툰캠퍼스 등 창작환경 조성, 취약계층 전문교육 운영, 만화 공모전 등 지원

○ 만화 유통 및 산업기반 조성(65억원) : 만화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만화 보존·활용시스템 마련, 부천웹툰융합센터 구축 등 지원

○ 만화 해외진출 지원(23.3억원) : 만화콘텐츠의 해외진출을 위한 번역 지원, 주요 해외마켓 및 해외 프로모션 행사 참가 등 지원

 

만화산업의 양 날개인 ‘작가의 창작’과 ‘기업의 제작’을 지원하고 만화의 생산과 소비 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미래세대 배출과 해외시장 확대를 통해 산업의 안정성과 발전성을 도모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올해 사업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창작지원, 인력양성, 유통기반조성 사업 부문을 위탁 수행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기업육성, 해외진출 지원 등의 사업 부문을 위탁 수행 중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정부 예산의 규모가 곧 정책의 성과라 할 수 없고 만화산업 자체의 질적 성장으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몇 억 수준이었던 만화산업육성 정책 예산이 몇 백억 수준으로 커졌다. 시상이나 공모전, 행사 수준에 그쳤던 육성 사업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입직경로나 생애주기, 가치사슬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분류별 지원사업으로 설계 되어 있다. ‘지원은 됐으니 방해만 하지 말아 달라’ 울부짖던 20세기 만화인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후배들은 아무 걱정 없이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믿을 것 같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만화인들, 특히 20세기를 경험하지 못한 만화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정책은 완전하지 않아, 수혜자 중심 사고 필요


‘2019 웹툰작가 실태 조사(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작가들은 여전히 창작 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조사에 응답한 작가(504명) 중 88.1%는 ‘작업시간 및 휴식시간 부족’, ‘정신적/육체적 건강악화’를 꼽았고 79.2%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한 웹툰작가(227명)의 39.6%는 ‘건강검진, 병원 진료비 지원’을 요구했고 34.4%는 ‘차기작 준비 과정의 작가 지원 기회 확대’를 희망했다. 52.2%의 작가는 불공정 계약 경험이 있다고 했고 22.1% ‘2차 저작권/해외판권 계약 시’ 회사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작가들의 파트너이자 미래의 동료인 어시스턴트들의 어려움은 더 컸다. ‘2019 웹툰 어시스턴트 실태 조사(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응답한 어시스턴트(251명)의 연 평균 수입은 658만 원이었다. 55.3%가 수입이 적다고 했고 50.8%는 직업인으로서의 안정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들 중 72.2%는 어시스턴트 활동 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고 했고 구인구직 중개(44%), 예술인으로서의 지위 인정(34.3%) 등을 요구했다. 어시스턴트들의 경우 작가와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가 22.3%에 불과했고 50.8%의 어시스턴트는 불공정 계약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만화산업계가 웹툰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의 호황기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기업들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2019 웹툰 사업체 실태 조사(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응답 기업(30곳)의 80%는 불법복제사이트의 범람, 53.3%는 신규 작가/작품 발굴, 기획제작인력 부족, 광고 및 유료 콘텐츠 이용료 등 수익 감소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외부 자금 및 투자 유치(50%), 각종 규제(46.7%), 해외진출 등 판로개척(40%), 업계 현황에 대한 투명한 정보 부족(36.7%), 기존 계약 관행 개선(36.7%) 등도 사업 추진의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웹툰이 만화산업의 주류가 됐다고 하지만 이 시장을 밑받침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다양했다. 과거라면 개인의 문제라 치부했을 것도 있고 자유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경쟁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이라 이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해왔던 방식대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서는 아무런 진화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만화산업 또는 웹툰생태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일지라도 현장의 목소리가 결국 현장의 변화를 추동한다.

 


불판을 바꾸거나, 운영의 묘를 살리거나

 

작가들이 시간부족과 건강악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웹툰의 주간연재 시스템과 제작 분량’이 지닌 문제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소비자는 연재주기가 더 짧아지고 분량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기업은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작가들의 시간과 건강을 더욱 악화 시킬 것이다. 작가에게 부여된 짐은 어시스턴트를 힘겹게 할 것이고 사업체의 작가 구인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 경우 정부의 정책이 개입할 창이 열리고 시장의 실패요인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 사업 모델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만화산업육성 사업 중 창작지원 항목에 ‘연재만화지원’을 ‘사전제작지원’으로 바꿔 볼 수 있다.


또, 작가들의 병원비 지원이나 어시스턴트의 직업 안정성 문제는 최근 제도화 된 예술인 산재보험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복지 문제여서 만화산업을 중심으로 수립된 정책과 예산이 관여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작가의 사회 보장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현재 수입의 감소는 명확하고 사업체의 부담 역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 수혜자 입장인 작가의 경우에도 상당 기간 저항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정부의 기업육성, 산업기반 조성, 해외진출 지원 등의 사업 참여 시 작가의 고용보험 가입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유사 사례로 표준계약서 사용 확대 캠페인이 있다. 지원사업 신청 시 사업체가 작가와 계약할 때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고 있는지 체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평가 반영 여부와 무관’하게 시장에 ‘건강한 압박’이 됐다.

 

올해 정부의 영화산업 예산은 1천 323억 원이다. 게임산업육성 예산은 447억원, 음악산업육성 예산은 250억 원이다. 만화산업육성 예산 210억 원은 국내 만화산업의 시장규모에 비춰 많을 수도 있고, 만화산업이 콘텐츠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미래 시장의 발전 가능성에 비춰 적을 수 있다. 정부의 만화산업육성 예산을 키우거나 관련 정책을 발굴해 신규 예산을 조성하는 것이 새로운 정책 수요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도 있는 만큼 만화만 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18년 내공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현재의 만화산업육성 정책과 세부 사업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현 산업계에 꼭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겠으나 한 어른의 표현대로 ‘같은 판’을 오래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수혜자를 중심에 두고 기존 정책의 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판을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닐 수 있다. 같은 판이라도 운영의 묘를 찾는다면 기존의 틀 내에서도 새로운 시대와 수혜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숙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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