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 칼럼] 만화 작품 속에 반영된 전쟁과 표현: 전쟁의 참극을 묘사한 작품을 중심으로
김성훈 2020.06.18



만화 작품 속에 반영된 전쟁과 표현: 전쟁의 참극을 묘사한 작품을 중심으로


홍지흔의 <건너온 사람들>

전투장면 없는 전쟁만화가 전하는 긴장감

전투에서 비켜선 일반인의 고달픔


김성훈 만화평론가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나라 전역에 완연했던 1953년에 발표된 곡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비롯된 실향민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노래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건너온 사람들>은 그 ‘흥남부두’를 배경으로 피난길에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 홍지흔 작가 <건너온 사람들>


역사적 현장 속 개인들

1950년 6월에 시작됐던 한국전쟁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이 한반도 끝자락에 이르면서 통일로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그해 겨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 함경남도 흥남 근교에서 살고 있던 어느 일가족과 그들이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부탁받은 아이까지 더해진 일행이 남쪽으로 피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으로 내려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깬 가족들은 아침 식사로 소고기 떡국을 마주한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라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기꺼이 밥상 앞에 둘러앉는다. 하지만 곧바로 인근에 살고 있는 친척으로부터 남쪽으로 가는 배가 곧 당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가족 모두 몇 숟가락 들지도 못한 채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한다. 만일 그 식사가 고향에서 취하는 마지막 만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여유 있게 온전히 식사를 마친 후 길을 떠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작품 속에는 급작스럽게 피난길에 오르는 이들의 모습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장면들로부터 진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역사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그날의 일들을 마치 옆에서 친구에게 들려주듯 전달하는 내레이션 덕분이기도 하다. 작품 속 아이들의 어머니를 ‘할머니’로 지칭하며, 그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1인칭 화법은 70년의 세월이 흘러 작품을 마주하는 독자들에게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그것은 전쟁에 대한 경험이 그저 교과서 혹은 역사책에 기록된 활자뿐이었을 우리 시대 많은 이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가를 생생하게 증명해 보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적과 마주하지 않는 전쟁만화

한편, 이 작품은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전투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 너머로 총소리가 난무하고 포탄이 떨어져 화염은 솟을지라도 적군과 아군이 등장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장면은 없다. 대신 전투로부터 한걸음 벗어나 있는 일반인들의 고달픔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피난 인파 속에서 아차 하는 순간에 부모 손을 놓아버린 아이들의 울음소리 혹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애통함이 그려지고, 군인과 물자를 먼저 실어 보낸 후 가장 마지막에서야 배에 탈 수 있는 민간인들의 초조한 기다림이 묘사되고 있다. 그렇게 전쟁이 한창인 공간에서 총칼을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여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은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위태로움으로 증폭된다.

 

이렇듯 전투장면이 없는 전쟁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는 소재가 지녀야 할 극적 긴장감은 다른 어떤 작품에도 뒤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주인공 일행의 안전을 위협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갖가지 위기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먹을 것을 쫓아 형제들과 헤어질 뻔한 나이 어린 동생, 다친 친구를 구하려다가 가족과 멀어진 누이, 혹은 노역에 강제로 차출되어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아버지 등등 작품은 전쟁으로부터 파급되는 불행과 위기가 단지 포탄과 총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쟁 그 자체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동시에 왜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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