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수민의 탐독의 만화경] 리뷰와 댓글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아남기 :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논란에 관한 단상
박수민 2020.07.03



리뷰와 댓글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아남기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논란에 관한 단상


리뷰와 댓글은 심하면 작품 파괴 , 즉 반달리즘마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

의견을 내놓기 위한 자격은 스스로 작품을 플레이하거나 살펴본 경험이 선행. 

결국, 남의 말보다 정확한 것은 본인의 판단. 



박수민




스포일러에 취약한 영화와 게임 매체


매년 영화, 게임 등의 기대작이 나올 때마다 스포일러를 피해 스스로 인터넷 접속을 잠시 차단하는 수고를 한다. 영화의 경우 개봉일 전까지 예고편 감상 외에는 영상 댓글, 게시판 글, 언론 리뷰, 시사 반응 트윗 등을 읽는 일을 피한다. 당일 극장에 가서도 막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감상을 듣는 경우가 있기에 동선에서 최대한 멀리서 기다린다. 이 수고 끝에 상영관 안에만 들어서면 일단 안심이다. 영화는 길어도 두세 시간가량이면 본편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개봉 일자에서 며칠을 넘기지 않는다면 스포일러 방어를 하기 쉬운 편이다.

 

문제는 게임이다. 일반적으로 메이저 퍼블리셔가 유통하는 AAA급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경우 플레이 타임은 적어도 2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미만이면 비추 폭탄을 맞는다). 유행하는 오픈월드 장르의 경우 유저(=게이머)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 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간 동안 인터넷에 가득한 타인들의 감상을 차단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게임 스트리머와 유튜버들의 플레이 실황과 리뷰, 캡처, 이 커뮤니티에서 저 커뮤니티로 복사/전파되는 게시판 글, 댓글, SNS 감상 등이 인터넷 도처에 부비트랩처럼 깔리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은 (메이저의 경우) 출시 전 먼저 리뷰용 카피를 받아 플레이한 웹진 등 게임 언론의 비평적 평가가 나온 직후 발매되는 시스템이다. 걸작 혹은 망작의 평결이 내려진 다음 소비자의 손에 들어온다. 영화도 영화제나 언론 시사에서 평가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아 비슷해 보이지만, 게임 쪽은 리뷰 평점이 먼저 나오고 이후 유저 반응으로 평가의 진위(?)를 판별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게이머와 시네필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격의 소비자들이다. 영화 비평과 시네필의 관계가 예술 작품 감상의 자유 측면에서 상호보완적 비판을 주고받는다면, 게임 비평과 게이머는 오락 상품의 기능 관점에서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띠는 것 같다. 시네필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나?”를 물을 때, 게이머는 “그래서 재미가 있어? 없어?”를 따진다.

 

영화와 게임 등 서사를 보는 매체가 문학과 만화처럼 서사를 읽는 매체보다 스포일러에 훨씬 취약한 공통점도 있다. 이들 매체에서 스포일러가 뭐가 그렇게 나쁜지 묻는다면 먼저 개인의 완전한 감상을 방해하고, 나아가 작품에 대한 온전한 평가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다. 짧은 영상 클립과 장면 캡처 몇 장에 코멘트를 다는 것만으로 전체 맥락을 얼마든지 오독하고 곡해하게 만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단순하게 판단하기 쉽고, 쉬운 판단은 더 쉽게 부정과 조롱으로 변한다. 심하면 작품의 파괴, 즉 반달리즘마저 발생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짜 절박하게 스포일러를 피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헛소리가 내 판단과 감상을 흐리는 걸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13),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I>(2020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경우


인간에게 기생하는 동충하초 균이 퍼져 멸망한 미국에서 한 남자가 소녀를 데리고 함께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을 그린 너티독의 PS3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13). 2010년대 최고의 게임 목록과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게임들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게임의 서사가 얼마든지 문학과 영화에서 칭하는 걸작의 수준에 실제로 육박할 수 있으며, 캐릭터에 대한 플레이어의 몰입을 일체화하는 게임의 형식이 다른 어떤 매체보다 서사를 감정적으로 경험시키기에 강력하다는 증명이었다. 비평가와 유저 공통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했기에, 이 게임이 속편으로 프랜차이즈가 되는 건 상업적인 요구보다 업계와 게이머 전체의 엄청나게 높은 기대치, 즉 작품성에 부응할 수 있는지가 더 큰 문제였을 터다.

 

어쨌거나 팬들은 거의 완벽하다고 일컬어진 전작의 결말로 만족하기보다, 사랑해 마지않는 두 주인공 조엘과 엘리의 후일담과 계속되는 모험을 원했다. 속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의 PS4 개발 확정 이후, 트레일러와 플레이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팬들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절절한 환호성으로 답했다. 그런데 올해 출시를 앞두고 해킹으로 중요 스토리 구간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사 기반 매체로서 치명적인 스포일러 테러를 당한 최악의 상황을 만점 릴레이 같은 놀라운 비평적 평가가 해소하는 듯했으나, 발매 후 유저 평가가 곤두박질치며 거의 재앙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임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최악의 누설 사건을 딛고 가까스로 또 한 편의 걸작을 입증받나 했더니, 거의 유저들이 대동단결한 수준의 망작 취급을 쏟아내는 상황. 전작의 팬이자 유저로서 나는 이 상황에 먼저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들여야 했다. 평소 숨 쉬듯 들여다보는 인터넷을 멈추고 SNS의 타임라인과 친구들의 메시지까지 뮤트 하면서, 내가 직접 게임을 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결론도 미리 내리지 않으려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다행히 스토리상에서 중요한 전환이 있는 구간의 스포일러를 모두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제작진이 플레이어가 충격을 받길 바란 상황에서 정확하게 놀라고, 불편하길 의도한 선택에서 불편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창조한 세계관과 캐릭터와 서사가 질문하고 내린 답까지 오로지 나만의 관점으로 고심해볼 수 있었다. 인생의 30시간을 들여 엔딩을 본 게임은 이렇게 조롱까지 당해야 할 재앙 수준의 작품이 결코 아니었다.




△ 전편과 평점 비교. 파트 2의 유저 평점이 뚝 떨어졌다.
 2020년 6월 29일자 상황. 유저 평점이 그나마 올라간 것. (출처: metacritic.com)




맥락을 무시하는 극단적 가성비의 추구


게임 언론과 비평가들이 극찬하건 말건 유저는 게임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 얼마든지 자신의 감상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개진할 수 있다. 비판과 부정적 평가를 하는 일 자체는 유저 마음이다. 그런데 지금 이 게임을 둘러싼 목소리들 속에는 스트리머나 유튜버 같은 타인의 플레이 영상과 리뷰 소감,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위키에서 읽은 스토리와 평가만을 접하고서 비판에 가세하는 의견이 많아 보인다. 한 게임에 대한 의견을 내놓기 위해선 적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플레이해본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정한 판단과 비판을 위한 최소한의 바탕이자 자격이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고 있다.

 

원래 타인의 리뷰와 댓글로 가득했던 인터넷은 UCC 동영상 시대를 맞으며 일종의 대리 체험 수준의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언론이나 비평 등 기존 매체의 공신력을 인정하기보다 권위에 반감을 갖는 사용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유저가 직접 영상까지 보여주며 전하는 말은 더 쉽고 실질적이다. 폭발적으로 생산되는 콘텐츠에 비해 한정된 시간과 자원(=돈)을 가진 유저는 가치의 기준으로 무엇보다 ‘가성비’를 중요시하게 되었고, 가성비가 높은 콘텐츠를 찾고 선택하는 문제를 자신들이 직접 좋아요와 구독으로 인기와 권위를 만들어 준 네임드 유저들에게 대신 맡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네임드 유저의 의견을 반복적으로 접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은연중에 그의 취향은 물론 정치적인 성향까지도 영향을 받기 마련. 단순히 남의 평가를 참고하길 넘어, 중요한 가치 판단까지 남에게 대리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리뷰 영상의 조회 수가 해당 영화의 실제 관객 수를 초월한다. 보고픈 영화가 궁금해 리뷰를 참고하려던 일은 이제 유튜브에서 ‘결말 포함’이라고 붙어있는 10여 분짜리 하이라이트 정리 영상으로 영화를 다 본 걸로 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당장 극장 개봉하는 작품 외에 특히 옛날 영화를 굳이 수고롭게 찾아 전체를 보는 일은 이런 짧은 클립 앞에서 쉽게 무력해진다. 이런 영상의 광고 수익이 영화 제작진에게 가는지 여부보다 스포일러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더 문제다. 궁금함의 시간을 애써 지연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 심지어 스포일러부터 확인해서 영화가 자신이 원하는 결말일 때만 본다는 사례까지 접해봤다. 이런 것들은 맥락의 부정이다.

 

서사 기반 매체에서 거대한 맥락의 줄기가 하나의 결말로 맺어지는 과정은 인간이 스토리텔링에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맥락은 줄거리로 빨리 스킵하고 중요한 구간만 즐기겠다는 욕구는 혹시 현대 웹소설이나 웹툰 등에서 매회 독자가 원하는 쾌락만 제공하는 작품이 인기를 얻는 세태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그런 작품들조차 최소한의 내러티브를 위해 성미 급한 독자가 참고 기다리길 요구하는 구간이 있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설마, 전체 맥락은 따라가기 귀찮고 지루하니까 인스턴트 카타르시스만 달라는 것일까? 영화는 관객에게 러닝타임을 강제하기에 극장을 벗어나면 편집 욕구에 취약하더라도, 스스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정확한 반응을 체감할 수 없는 게임조차 남의 실황 영상을 봤으니 내가 플레이한 것과 같다고 믿는다. 




△ 친구와 실제로 나눈 대화 내용. 겜돌이들에겐 중요한 이슈다.



이상한 실용주의에 맞서 스스로 경험하기


맥락을 무시해도 괜찮고 대리 체험만으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의 바탕에는 (아직 정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지만) 이상한 실용주의가 깔려있는 것 같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은 즉각적인 재미를 제공해야만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서사 기반 매체에조차 이런 실용성을 요구하다 보니 작가가 작품을 통해 예술적 시도를 하고 개인적 이상과 철학, 특정한 메시지를 담으려 하면 반감마저 품는다. 특히 게임은 가전제품이고 액션과 상호작용의 실용적 재미만 있으면 되니까 대단한 서사나 메시지 따위 필요 없다는 주장은 게임 역시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개인과 집단의 작가적 총체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의 창조적 권리자가 제작진이 아니길 바라며 그냥 게임 엔진만 요구하는 거나 다름없다.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은, 사용자가 원하는 바로 그 재미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보다 공들인 서사가 필요하며, 서사는 본질적으로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라는 점이다. 사용자의 권리를 내세워 작품을 누리되 작가의 의도는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는 인간이 창작을 하는 이유와 스토리텔링의 본질적인 목적을 부정한다. 또한 나는 이상한 실용주의에 쉽사리 섞여드는 어떤 노골적인 반감들을 경계한다. 감상적이거나 이상에 치우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 대다수와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소수 의견에 대한 반감, 불평등을 지적하고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반감. 이 반감은 곧 혐오다. 가성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주로 콘텐츠 소비에 있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젊은 사용자들에게 있다고 볼 때, 이들에게 돈에 답하는 직접적인 쾌락이 즉각적으로 창출되지 않으면, 그래서 실용적이지 않으면 쓸모없고 죄다 그럴듯한 사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주입하려 의도할 때 내재된 혐오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과거 웹툰 회사에 몸담으면서 나는 웹툰 플랫폼의 일주일 단위 연재와 매회 평점 시스템과 무한정 달리는 댓글로부터 작가를 보호하는 방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점과 0점 사이, 지망생과 전문가의 경계를 오가며 팬덤과 혐오자의 양극단으로 치닫는 독자들이 플랫폼에 갓 데뷔한 작가를 평점으로 심판하고 연재 결정의 역차별을 논하며 웹툰이 무엇인지 가르치려 들 때, 이 업계는 돈만 벌고 있을 뿐 작가와 작품을 존중하는 어엿한 창작의 분야로 보기엔 도저히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웹툰 작가는 한 시즌 연재를 치르고 나면 병에 걸려 쓰러진다. 댓글에 시달리다 업계를 떠나거나 암에 걸린다. 작가와 작품을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보다 독자가 다친다. 평점과 댓글은 작품 선택과 감상의 자유를 방해한다.

 

영화, 게임, 만화, 문학, TV시리즈 등 그 어떤 매체라도 겨우 가성비에 입각한 이상한 실용주의는 진짜 재미와 카타르시스 체험하고는 별로 관련이 없다. 결국 관객, 플레이어, 독자 스스로가 직접 모든 맥락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붙잡을 콘텐츠가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 두자. 굳이 스포일러에 오염되어 남의 헛소리에 따라 미리 판단을 내리고 나중의 기회까지 날릴 이유가 없다. 인생은 스팀 라이브러리처럼 언제 실행해볼지 모를 콘텐츠로 가득하고, 그중에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 30년 이상 오타쿠로 살아보니 남의 말보다 정확한 건 언제나 내 판단이었다. 리뷰와 댓글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작품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마시고, 부디 살아남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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