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래의 웹툰작가 김웹툰 씨의 하루 : 희망편
김웹툰 씨는 웹툰을 그리고 싶었다
신규섭 (포스타입 대표) 2021.06.17



미래의 웹툰작가 김웹툰 씨의 하루 : 희망편

※편집자 주 : 본 칼럼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은 기사 업로드 시점인 2021년 6월을 기준으로는 곧 다가올 가까운 미래의 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읽으실 때 참고 부탁드립니다.


작가에게만 보이는 불쾌한 골짜기

만화창작과 졸업이 다가왔지만 웹툰 스튜디오 구직은 선택지에 없었다. 웹툰 스튜디오들은 그들이 공언했던 대로 헐리우드식 콘텐츠 프로덕션을 빠르게 답습했다. 집단 창작 시스템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스토리를 올려놓으면 일사불란하게 완성도 높은 슈퍼 IP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나는 웹툰을 그리고 싶었다.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나의 웹툰을.

스튜디오에서의 웹툰 창작이란 속도전이었다. 스토리, 콘티, 스케치, 선화화, 채색, 배경, 편집과 식자 등 일련의 창작 과정은 완전히 분업화되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몇몇 작업은 창의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AI의 손에 맡겨졌다. 작가는 단지 AI가 참고할 만한 ‘힌트’를 제공하고 ‘트레이닝 데이터’를 끊임없이 쌓는 일 또는 AI의 초벌 작업을 보정하는 일을 할 뿐이었다. 심지어 AI의 학습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런 일자리마저도 귀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탄생한 웹툰은 거의 실패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높은 완성도와 빠른 연재 주기에 열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스토리와 편집 과정 역시 AI 분석에 따라 대중성과 몰입도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이루어졌으니까.

하지만 학사모를 던진 채 스튜디오로 떠난 선배들은 비관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내가 그리도 좋아했던 웹툰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로봇이 기획하고 그린 만화라니…. 독자는 모르지만 작가에게만 보이는 ‘불쾌한 골짜기1)’를 지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웹툰을 그리고 싶었다. 대중적인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는 AI에 의해 간택된 스토리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인공신경망을 통해 놀라운 수준으로 모방한 작풍이 아닌 나의 손으로 그려진 선화를, 단숨에 덧입혀진 채색이 아닌 더디더라도 오로지 나의 결정에 의해 완성되는 웹툰을 그리고 싶었다. 

오픈 마켓 형태의 콘텐츠 플랫폼은 웹툰 작가를 지망하는 내가 기대를 걸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내 작품을 오로지 내 자유의지에 따라 공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한 ‘모 아니면 도’의 결정이었다.


AI 매니저가 말을 걸어오다

오픈 플랫폼이라는 형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유튜브를 떠올리면 된다더라. 단지 영상 포맷이 아니라 웹툰 혹은 다른 포맷이어도 괜찮다는 것. 다른 분야 창작자들이 패트리온, 서브스택 같은 플랫폼에 터를 잡았고 내가 선택한 오픈 플랫폼에도 적지 않은 웹툰 작가들이 발을 들인 상황이었다. 약간은 두려웠지만, 부담은 없었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오픈 플랫폼이 유독 ‘작가님의 독자’를 강조했던 점이었다. 학원물 독자, 일상물 독자, 로판 독자와 같은 식으로는 생각해봤지만 ‘작가님의 독자’, 그러니까 나만의 독자를 상정해본 적은 여태 없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유니콘 같은 존재로 느꼈다. 그래서 졸업작품이었던 SF 단편을 연재물로 확장한 웹툰을 처음 구상할 때도 일반적인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할지만을 막연하게 상상하며 대중적인 SF 웹툰의 성공 공식만을 돌이켜볼 뿐이었다.

그런데도 플랫폼은 가입하는 순간부터 “작가님의 독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화를 발행했지만 한 주간 겨우 두 자릿수 조회 수를 기록했을 때도 그랬다. 실망스럽게 그다음 화를 준비하고 있던 내게 가상의 창작 스튜디오 화면 한쪽에 자리한 AI 챗봇이 인사이트 매니저가 말을 걸어왔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면 작가님의 독자를 찾아드려요.”

제목, 부제, 장르, 태그 등 작품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AI 기반의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통해 독자들에게 작품을 연결해준다는 얘기였다. 작품을 발행할 때 작품 자동 분석을 통해 장르와 태그 등록을 추천받았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생각났다.

개인화 추천의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플랫폼에서 여러 작품을 열독하고 구매, 후원하고 좋아요나 댓글로 작가를 응원한 독자 A가 있다고 하자. AI는 독자 A의 활동과 유사한 활동을 하는 다른 독자들을 찾아낸 다음, 유사한 독자들이 즐겨보았지만 독자 A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콘텐츠를 독자 A에게 추천해준다고 했다. 이때 작품에 대한 정보는 분석과 추천 과정에서 중요한 신호이자 힌트라는 것이었다. 플랫폼은 무작위로 독자에게 작품을 추천해주는 것보다 개인화 추천을 거쳤을 때 작품을 조회할 가능성이 적어도 6배 이상 높다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SF 웹툰이라는 장르 정보,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와 같은 태그 정보를 추가했다. 놀랍게도 다음날부터 이전과는 다르게 적지 않은 독자들이 작품을 찾아왔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데려왔다”는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3화째 무료 연재를 진행했을 때쯤이었을까. 인사이트 매니저의 말대로 독자들의 열독 신호가 쌓일수록 더 많은 독자들의 추천 목록에 내 작품이 노출되어서인지 독자들이 물밀 듯이 늘어났다. 작은 힌트가 트리거가 되어 독자가 다른 독자를 ‘자동 영업’하듯 불러오는 구조가 신기했다. 그렇게 독자 1,000명이 모이자 인사이트 매니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자, 이제 김웹툰 작가님의 독자에 대해 알아볼까요?”

SF 독자겠지, 뭐……라고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왜인지 호기심이 생겨 무심코 ‘알아보기’ 버튼을 눌렀다.

20대 독자가 50%, 30대가 30%, 40대 이상 독자도 적지 않았다. 내 또래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독자층이 다양했다. 성별은 비슷. 독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는 SF, 스릴러,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펑크. 거기다 더해 A 작가님의 최신 웹툰과 과학 칼럼니스트 B님의 칼럼을 주로 즐겨본다고 했다. 아, 내게도 개인화 추천으로 자주 뜨던 작품들이라 반가웠지만 생각지도 못했다. 밤 10~12시에 가장 많이 접속하고 70% 이상이 이 플랫폼에서 유료로 콘텐츠를 소비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예상되는 결제 독자 비중과 대략적인 기대 수익을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고 용기가 생겼다.


AI의 추천 그리고 내 의지에 따른 결정

덕분에 4화부터는 용기를 내어 유료화를 감행했다. 별생각 없이 ‘시장가’로 정착한 500원 정도로 가격을 책정하고 한 화 전체를 유료 판매 모드로 올렸다. 그런데 작품을 올린 지 사흘이 지나도록 작품 수익이 저조하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료 연재분을 통해 새로운 독자가 꾸준히 유입되었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내 독자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사실은 내 독자가 아니었던 것일까. 첫 연재작부터 유료 연재를 결심한 게 문제였을까. 가격을 좀 더 낮춰보는 게 어떨까.

4화를 올린 지 나흘째가 되던 날, 인사이트 매니저가 다시 알림을 보냈다.

“이제 독자들의 콘텐츠 감상 분석을 확인해 영감을 얻어보세요.”

플랫폼이 보여준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내 독자들이 내 작품의 어떤 부분에서 스크롤이 느려지며 시선을 집중했는지, 또는 어떤 컷에서 독자들이 주로 감상을 멈추고 작품을 떠났는지 히트맵을 통해 세세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독자들의 몰입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 독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어떤 부분을 과감하게 덜어내야 할지 확연하게 느낌이 왔다. 이 분석 내용을 통해 얻은 영감을 통해 작품을 조금씩 뜯어고쳐 나갔다.

더불어 적절한 후킹 포인트에 결제선(paywall)을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위 매력적인 ‘맛보기’ 없이 한 화 전체를 유료화하면 독자들을 끌어당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사이트 매니저가 결제선을 달기에 적합한 컷을 추천해주었기에 이를 설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 화의 가격 역시 굳이 시장가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 역시 인사이트 매니저의 조언이었다.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일반 대중보다는 ‘작가님의 독자’를 타깃으로 한 이 창작 생태계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찾아준 진정한 독자들이 작품에 기꺼이 지불할 만한 가치를 책정하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따라 작품의 가격도 내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가치로 상향 조정했다. 인사이트 매니저의 분석과 팁에 따라 작품의 내용, 결제선, 가격을 수정하자 놀랍게도 작품을 결제하는 유료 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가격이 올라갔음에도 결제율은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문제는 이제 막 지망생 딱지를 떼어내려는 나 스스로 생각하기 어려웠던 셀링 포인트였다. 콘텐츠 감상 분석 데이터와 인사이트 매니저의 추천을 참고해 연재를 이어나가자 적지 않은 독자들이 유료 연재를 따라와 주었다. 독자들이 댓글로 남겨주는 응원도 큰 참고가 되었다. 대형 웹툰 서비스의 댓글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수익이 쌓이자 오픈 플랫폼을 통한 연재가 웹툰 작가로서의 밥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짬을 내서 하던 부정기 연재는 자연스레 격주 연재가 되어갔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플랫폼 내에 유료 자동 광고를 해보겠다고 결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플랫폼은 AI 취향 분석을 통해 작품을 유료로 감상할 가능성이 높은 독자들에 집중해 작품 광고를 게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회차가 쌓이고 수익도 지속해서 발생하니 '수익의 10%만 더 많은 독자를 모으는 데 투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플랫폼이 프로모션으로 밀어주는 작품이 되지 않더라도 약간의 투자와 함께 새롭게 유입되는 내 독자를 만나는 일에만 충실하면 됐다.

기술에는 죄를 물을 수 없었다

오픈 플랫폼에서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마음 한쪽에서는 웹툰 스튜디오라는 선택지가 미련처럼 떠올랐다. ‘인간’ 작가가 설 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그 암울한 미래에서조차, 나는 막차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창작 과정이 단축되면 더 많은 작가가 등용문에 오르고 창의적인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청사진은 빛이 바랜 지 오래였다. AI의 문하생이 되는 순간, 이미 창의적인 훈련의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스토리의 성공 여부를 AI가 판단하고 초벌 작화를 AI에 맡기고 결국에는 연재작의 출하마저 AI가 결정하는 공장의 세계에서 창의적인 스토리와 고유한 작풍을 담을 수 있는 작가의 자리로 오르는 사다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AI의 문제였을까. 오픈 플랫폼에서는 한 화의 분량과 가격, 심지어 작품을 홍보하는 것까지 나의 몫이었다. 이런 부담스러운 결정이 서툴렀던 건 나였고, 생업과 지속적인 창작을 위해 적당한 가격과 유료화 시점을 바로잡아준 것은 AI 챗봇이었던 인사이트 매니저였다. 물론 그 AI는 웹툰 작가인 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내 창작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존재였다. “이 컷은 지루하니 날려버리세요”가 아니라 “작가님의 독자는 이런 장면보다는 다른 매력에 끌려 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어요”라고.

무엇보다 이 시장은 제로섬 경쟁이 아니었다. 정식 연재라는 한정된 자리를 두고 다툴 필요도,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좁은 프로모션 기회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독자 행태 분석과 플랫폼 큐레이션을 결합한 AI 기반 개인화 추천 기술은 모든 창작자가 니치 마켓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스타 작가가 되지 않으면 실패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독자를 찾아 나선 SF 웹툰 작가로서, 더 나아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밀어붙이는 작가로서도 의미 있는 규모의 독자를 찾아갈 수 있었다. 

수익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창작과 수익화를 지원하는 다른 기술을 시도해 볼 기회도 생겼다. 웹툰 창작 툴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자동 선화화와 자동 채색 기술을 활용해 창작 속도를 올려보기로 했다. 차기작을 준비할 충분한 여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오픈 플랫폼이 외부 연동을 통해 제공하는 말풍선 자동 번역 기술을 활용해 한국어 화자를 넘어 글로벌 독자에게도 내 웹툰을 소개할 수 있었다.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웹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창작 기술의 대중화로 웹툰 창작이라는 장벽이 낮아졌듯, 결국 내가 작가로 거듭나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내가 내 독자와 만나는 일에 전념하도록 도운 것 역시 기술 덕분이었다. 기술은 분명 작가의 암울한 미래가 아니라 그 미래를 비추는 등대와 같은 희망이었다. 단지 그 기술과 기술이 내놓은 데이터와 산출물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던 것이었다.

웹툰이라는 스토리 포맷, 웹툰 생태계와 플랫폼, 웹툰을 창작하고 유통하는 기술이 끊임없이 변화해 왔듯이 웹툰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 역시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사실상 모든 것이 자동화될 수 있는 시대에 웹툰은 ‘그려지는’ 것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웹툰 창작을 능동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작가가 기술과 생태계의 변화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최대한 활용해 작가의 창의적인 수단으로 만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나, 김웹툰 씨는 웹툰을 그리고 싶었고, 기술은 그 희망을 가로막는 허들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발판이었다.



1) Uncanny valley. 인간이 일정 수준 인간과 흡사한 로봇의 외모와 행동을 볼 때 혐오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구간. AI의 발달로 외관뿐만 아니라 기술 그 자체에 대해서도 불쾌한 골짜기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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