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체 불가능 토큰(NFT)이 도대체 뭐길래 : 5가지 사례로 점쳐보는 만화계의 NFT 미래
강백호의 ‘왼손은 거들 뿐’과 흰수염의 죽음을 NFT로 기릴 수 있다?
김태권 2021.06.25


대체 불가능 토큰(NFT)이 도대체 뭐길래 : 5가지 사례로 점쳐보는 만화계의 NFT 미래

대체 불가능 토큰 NFT(Non-Fungible Token).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이름이다. 그런데 NFT를 다룬 기사는 이미 많다. 보통은 "누가 NFT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더라" 같은 소식이다. 여기에 나까지 똑같은 얘기로 말을 얹을 필요는 없겠다. 다만 이 문제는 함께 생각해보자. "앞으로 NFT가 만화의 세계에 어떻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NFT의 사례는 대략 너덧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발행한 NFT처럼, 예술작품이 비싼 값에 거래된 경우다. 둘째,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꺾은 대국이 NFT로 거래된 일이 있다. 기념할 만한 무형의 자산이 토큰으로 발행된 사례다. 셋째, NBA톱숏(NBA TOP SHOT)은 대퍼랩스라는 미국 회사에서 발행한 NFT다. 스포츠 스타 카드 같은 수집품이 디지털에서 거래됐다. 넷째,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NFT로 발행되어 판매된 적이 있다. 밈을 토큰으로 거래한 예인데, 나는 좋게 보지 않는다. 한 가지 더 살펴볼 일이 있다. 한국의 방역당국에서 백신접종 여부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사례다. NFT는 아니지만 나는 여기에도 만화계가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다섯 개의 얼굴로 NFT는 만화계에 다가올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비플이라는 디지털 아티스트의 작품이 NFT로 발행되어 지난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렸다. 한국 돈으로 780억 원이 넘는다. '가상화폐의 거품 덕분에 일확천금한 벼락부자'쯤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날마다 : 첫 5천 일"이 이번에 그가 판 작품의 제목이다. 비플은 5천 일 동안 날마다 디지털 작업을 올렸고 이 작품들을 통짜 파일로 묶어 NFT로 발행한 것이다. 디지털 아트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 온 역사와 이에 대한 비플의 공헌이 이 정도 가격을 받았다고 보면 어떨까.



△ 비플의 <날마다: 첫 5천 일> (출처 : 비플 인스타그램)

비플의 NFT와 비슷한 경우를 만화계에서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대우받기 바라는 중견 만화가가 있다. 만화 작품이 이른바 '고급 예술' 못지않게 존중받기를 원한다. 자존심 상하지 않을 가격을 받아 낯을 세우고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도 여기 포함된다. 기존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만화가도 물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린 최호철 선생님의 작품을 보며 만화가 지망생 시절의 나는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적지 않은 만화가가 미술관과 화랑의 문턱이 높다고 느낀다. 미술관에서 만화를 전시할 때면 사람들은 "이색 전시"라고 부른다. NFT는 이런 상황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코인데스크>는 블록체인 소식을 다루는 언론매체다. 며칠 전 한국어판에 "NFT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예술가들 : NFR는 필리핀의 돈 없는 아티스트들에게 희망이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예술가들이 탈중앙화된 (새로운) 공간에서 손해를 보고 악용당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기존의 예술품 시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서 하는 소리다." 스퀄터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의 주장이다. NFT 시장에서는 "누가 고객인지 투명하고 자기 작품이 어떤 가격에 재판매되는지 알 수 있고 아무도 작품을 검열하거나 취소할 수 없으며 재판매가 될 경우 수수료도 받을 수 있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표방한다. 기존의 미술시장에서 '변두리 예술가' 취급을 받던 분야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지난 5월에는 이세돌 9단의 대국이 NFT로 발행되어 경매에서 팔렸다. 2016년 3월에 인공지능 알파고를 꺾은 대국이었다. 결국 인간이 기계를 이긴 마지막 바둑 대국이 되었다. 이 NFT는 한국 돈으로 2억5천만 원에 팔렸다. 이 NFT를 발행하는 일에 나는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울 기회였다. 비플 작품의 경매는 "예술 작품이 NFT로 거래될 수 있다"는, 그전까지 몇 사람만 알던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세돌 9단의 NFT 경매는 "예술 작품이 아니어도 NFT로 발행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었다.



△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기보 NFT (출처 : 오픈씨)

역사를 통틀어,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대단한 일을 성취한 사람들이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 빛나는 순간을 기념하고 싶었다. 오늘날 올림픽의 기원이 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경기 때는 당시 으뜸가는 시인들이 인간 한계에 도전한 참가자들을 위해 시를 지었다.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가 올림픽 승리자를 읊은 시는 서양 문학 최초의 서정시로 역사에 남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지중해 세계 정복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산 하나를 알렉산드로스가 누워있는 모습으로 통째로 깎아 거대한 조각을 만들자는 계획도 검토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일찍 죽어 산은 제 모습을 지켰지만 말이다. 로마의 장군과 황제들은 눈부신 승리를 거둔 다음에는 개선문을 지었다. 로마 사람을 따라 하기 좋아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목판화로 개선문을 인쇄해 곳곳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런 일이 디지털로 가능하다. NFT를 발행하면 된다.



△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출처 : 프랑스 관광청)

만화가의 창작 인생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다. 세계정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오래 연재한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친다거나, 작품이 드라마 또는 영화로 만들어진다거나, 외국에 소개되어 눈에 띌 호응을 얻었다거나 하는 일은 작가도 팬도 기념하고 싶다. 작품의 원화나 희귀 인쇄본을 사고파는 일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 작품에 얽힌 사건은 주목을 끌지 못하거나 시간이 흐르며 잊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NFT로 발행하면 마치 작품의 원화처럼 다룰 수 있다. 주고받거나 사고팔거나 소유하거나 온라인 공간에 전시할 수도 있다.

한편 나는 이런 상상도 해본다. 만화가 말고 독자로서 말이다. 현실 속 만화가의 업적을 기념할 수 있다면, 작품 속 인물의 위대한 성취도 NFT로 만들어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이나 만화 속 캐릭터와 결혼하려 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가끔 가십처럼 입길에 오른다. 손가락질할 일만은 아니다. 옛날 소설 독자는 죽으며 자기 유산을 소설 속 인물에게 물려주려 했다니 말이다. 다만 작품 속 순간이나 캐릭터의 추억을 간직할 방법이 그동안 없었다. 그런데 NFT 덕분에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세돌 9단의 승리를 기리는 것처럼, 만화 속 주인공이 숙적을 물리치거나 사랑에 '골인'하는 장면을 간직하고 싶은 팬도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셋째, NFT로 비싼 상품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NBA톱숏은 2020년 5월에 미국 회사 대퍼랩스가 선보인 NFT플랫폼이다. 이름대로 미국 프로농구 NBA 선수들의 놀라운 경기 장면을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낯설지 않은 방법이다. 고대 그리스의 운동 선수가 놀라운 기록을 세우면 시인이 시를 읊어 기념한 예를 우리는 앞서 확인했다. 현대에 와서 스포츠 스타의 업적은 수집할 수 있는 카드로 발행되었다. '베이브 루스 야구 카드'의 사진은 한 번쯤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올해 5월에는 "올 초 코로나19로 숨진 미국 의사가 40년 넘게 수집한 스포츠 카드의 가치가 한국 돈으로 225억 원이 넘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런 스포츠 카드가 디지털 세상에 이식된 경우가 NBA톱숏이라 생각하면 쉽다.

 


△ NBA TOP SHOTS 중 르브론 제임스의 플레이를 담은 카드 (출처 : NBA)

만화는 대중 장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즐길 수 있다. 지금 NFT시장은 초창기다. 비싸게 팔린 물건일수록 입길에 오른다. 사람들 관심을 끌기 위해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중에게도 시장이 열릴 것이다. NBA톱숏을 보면 미국에서는 이미 그런 시장이 시작했나 보다.

이 상황은 만화가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오프라인 세계의 카드라고 하면 나는 스포츠 카드보다도 유희왕 카드가 먼저 떠오른다. 카드 게임 <유희왕>의 원작은 만화였다. 만화가에게 이것은 돈벌이 기회기도 하다.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기 작품의 세계관을 열심히 즐긴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큰 보람이고 영광이다. 트레이딩 게임 카드가 NFT 형태로 발행되면 분실과 파손의 위험도 사라진다.



△ 양키스의 전설 미키 맨틀의 트레이딩 카드. 거래액은 50억 원이 넘는다. (출처 : MLB닷컴)

넷째, 검토는 하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 사례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유행하는 밈에 NFT가 발행되는 사례가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걱정스럽다. 좋게 말하면 '밈'이고 '풍자' 지만 나쁘게 말하면 '박제'에 '조리돌림'이라 마음에 걸리는 경우다. 4월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은성수 NFT'가 발행되었다. "역사에 영원히 남겨야" 한다는 것이 취지. 공인의 발언이니 비판할 자유도 풍자할 자유도 있다.

그런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런 NFT가 발행된다면? 단톡방에서 쏟아낸 격한 발언을 캡처해 토큰으로 만든 사례가 있다. 싫어하는 사람의 '굴욕 샷' 같은 것이 앞으로 올라온다면 어떻게 될까. 판매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블록체인으로 영원히 저장될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지 모른다.

만화가로서 나는 걱정이다. 악플과 조리돌림과 스토킹 때문에 힘들어하는 만화가를 많이 보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NFT가 여기 악용될 가능성을 미리 염려한다. 만화가의 실언이나 실수가 블록체인으로 박제될 수 있고 만화가를 공격하는 악플이 '사이다 NFT'라며 인터넷 공간에 남을 수 있다. 나쁜 짓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어떤 기술이건 나쁘게 사용할 수 있다. 모든 기술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다섯째, 흥미로운 가능성을 나는 하나 더 소개하려 한다. 한국의 방역 당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여부를 블록체인으로 확인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글을 마무리 짓는 동안 운전면허증을 관리하는 일에도 앞으로 블록체인이 이용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계적인 구호단체 옥스팜은 공정무역에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하기로 했다.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코인부터 생각하지만 그 응용 가능성은 크다. 누가 언제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해두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기술이 NFT의 형태로 만화에 이용될 가능성은? 몇 가지 상상이 내 머리에 떠오른다. 독자님도 이런저런 기회를 상상해보시길. 그 가운데 몇 가지는 언젠가 실현될 것이다.

 

△ 질병관리청이 발행하는 백신 인증서 (출처=질병관리청)

만화계와 직접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조만간 관계가 생길" NFT의 두 가지 이슈를 짚으며 글을 마치려 한다. 하나는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잘 다루어지지 않는 질문이다. "NFT를 거래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사고파는 걸까?" 답부터 말하면 "작품이 아니라 토큰을 사고파는 것"이다. 나는 올봄부터 <코인데스크> 한국어판에 "창작자의 NFT 판매기"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토큰과 작품이 무슨 관계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토큰과 작품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는 없다"는, 어찌 보면 철렁한 설명을 두어 번 원고로 썼다. 물론 토큰에는 작품에 대한 정보가 담긴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작품에 토큰의 정보를 실을 방법은 없다. 남의 작품을 엉뚱한 사람이 NFT로 발행해 돈을 받거나, 이미 토큰을 발행해 판매까지 이루어진 작품의 똑같은 토큰을 또 발행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사례가 지난달 발생했다. 한 NFT 플랫폼 업체에서 김환기와 박수근의 그림을 NFT로 발행해 경매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해당 그림의 저작권자들이 '저작권을 협의한 적 없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경매는 중단되었다.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어떤 사람은 NFT를 두고 "작품을 샀다고 발행된 디지털 영수증일 뿐"이라고 말한다. 작품이 땅이라면 NFT는 등기 서류 같은 건데,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줄 관공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강연 때 이런 비유를 했었다. "잘 되면 집문서지만, 운 나쁘면 남한 정부에서 발행한 이북5도 도지사 임명장이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실제로  이렇게까지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랬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가능성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또 하나는 메타버스 이야기다. 얼마 전 4월 말에 개최된 스파크랩 데모데이의 컨퍼런스는 '메타버스와 NFT'를 주제로 다루었다. "디지털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 수집품 가운데 디지털의 비중도 커질 것이다." 그때 나온 이야기다. 올 6월 말에는 페이스북의 창업자 저커버그가 메타버스 이야기를 꺼냈다. 메타버스가 본격화되면 "많은 디지털 상품이 생겨날 것이다. 디지털이 된 나(아바타)가 입을 옷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사람들'이 입을 옷을 그릴 사람은 누구일까? 그 옷을 디자인할 사람은 만화가가 아닐까? 그리고 그 옷은 아마 NFT로 거래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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