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몇 분의 즐거움을 위해 일주일을 일한다 : 전업 웹툰 어시스턴트
전업 어시스턴트가 일하는 법
정예리 2021.08.31


몇 분의 즐거움을 위해 일주일을 일한다 : 전업 웹툰 어시스턴트



어느새 4년 차 전업 웹툰 어시스턴트인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데뷔 안 하세요?’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매번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웹툰 일을 하면 할수록 전업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바일 기기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웹툰은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볼 수 있는 ‘스낵 컬처’가 되었다. 접근성도 좋고 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짧아 빠르고 쉽게 소비된다. 스크롤 한 번을 후루룩 내리는 데에는 2~3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웹툰 제작과정도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 완성되었겠지, 라는 다소 잔인하고 무지한 편견도 부지기수다. 전업 어시스턴트로서 많은 작가와 어시스턴트들과 고난과 역경을 함께 나눈 나로서는 서운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가볍게 내려 읽히는 주간 연재 웹툰들은 사실 생각보다 많은 과정과 실험 요소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많은 작가들이 스토리, 콘티, 연출, 작화는 물론 캐릭터들의 포즈와 표정 연기까지 직접 연구하며 원고를 완성한다. 더군다나 까다롭고 수준 높은 그래픽을 선호하는 대한민국 독자들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요즘엔 에이전시나 제작사에서 팀 단위로 작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작가들이 개인 작가로 일하고 있으며, 개인 작가들은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져야 한다. 만약 작업을 도와줄 어시스턴트가 필요하다면 본인이 직접 인재를 찾아 팀을 꾸려야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주간연재라는 타임라인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웹툰 한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세부 과정들을 돕는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작가들에게 무한한 존경의 마음일 뿐이다.

 

마감을 위해 사활을 거는 어시스턴트

웹툰 작가가 아닌 전업 어시스턴트로 전문성을 쌓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내가 경험한 것들을 소개해보겠다. 어시스턴트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시스턴트는 항상 5분 대기조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기다리거나 마감에 내 생활 스케줄을 맞춰가며 늘 준비 태세에 있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어떤 작품들은 런칭 전부터 함께 준비한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중간에 투입되어 일한 적도 있었다. 어떤 경우이든 모든 작품이 결국에는 라이브 마감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아무리 세이브 원고가 있다 한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세이브 원고를 생명줄처럼, 마치 숨겨진 보물상자처럼 지니고 계신 작가님들도 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존경의 마음으로 소리 없는 갈채를 전달해본다. 주간 연재라는 압박에 짓눌려 매일같이 마감과 사투를 벌이는 것은 작가나 어시스턴트나 마찬가지다.  

물론 어시스턴트는 단연 작가와는 다른 루틴이 있다. 예를 들어 라이브 마감의 경우 매화 급박하게 원고를 받아 작업하고, 내가 작업한 원고를 다시 작가에게 전달하고, 또 다음 단계로 다듬어진 원고를 다시 받아서 작업하고 하는 반복적인 원고 주고받기를 밤낮으로 하고 나면 기진맥진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할 때가 태반이다. 그나마 이렇게 원고가 지속적으로 오고 가면 다행인데, 때때로 많은 기술적 요소를 필요로 하는 페이지를 작업해야 하는 경우에는 밀려오는 다음 페이지들에 숨이 막혀 졸음이 달아날 때도 있다. 코로나 시대라 집에 붙박이로 있는 지금은 이 같은 5분대기조 일상이 조금은 수월해졌지만 이 전에는 항상 아이패드를 지니고 다녔다. 외출을 할 때도, 해외여행을 갈 때도, 명절에도, 심지어 아이가 아파 입원을 했을 때도 병원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게 늘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세팅해놓고 전화기를 바라볼 때가 많았다. 이 때문인지 휴대가능한 전문 장비에 대한 끝없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어쨌든,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분 단위의 마감 시간과 싸울 때에도, 혹은 불가피한 기술적인 지연이 발생했을 때에도 나는 단 한 번도 늦지 않고 원고를 넘겨냈다. 이것은 나 스스로가 나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의 웹툰 어시스턴트로서의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웹툰 일을 하면서 작가들, 그리고 다른 어시스턴트들과 고뇌를 나누어보면 주간 연재의 마감 시간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아찔한 도전인지 더욱 실감하게 된다. 매주 쳇바퀴처럼 돌아오는 마감의 압력은 대부분의 어시스턴트들이 이유 없는 잠수를 타는 가장 큰 이유라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함께 일했던 작가들은 항상 휴대폰을 쥐고 상비군처럼 긴장 태세에 있는 나를 무척이나 고맙게 여겨주었다. 믿고 의지하는 파트너십 같은 이런 관계들은 나에게 더 중요한 자긍심이 되었다. 이는 개인적인 사정이나 어려움이 있던 시기에도 직업정신을 오롯이 지켜내며 전문 어시스턴트로서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큰 주춧돌이 되기도 했다.

 

어시스턴트는 작가가를 대신하는 게 아닌 작가를 돕는 사람

웹툰 어시스턴트로서 내 나름의 팁을 이야기해보자면 전체 원고의 흐름을 신중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고 여유가 없더라도 전체적인 스토리 맥락을 읽지 못하면 세부 작업의 톤과 무드가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또 이를 소홀히 하면 나중에 원고를 다시 수정해야 하므로 마감의 압박에서도 절대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작품의 콘티를 직접 가이드를 잡아 원고를 받을 때도 있고 이를 원작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지만, 주간 연재라는 압력 속에 무수한 질문과 컨펌은 서로를 날카롭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시간적 압박이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침착하게 콘티를 살펴보고 나름의 메모와 작업 방향을 설정해둔다. 콘티에는 정말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에 콘티만 보아도 변화하는 스토리와 이야기의 전개 상황 속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채색, 효과, 그리고 명암 등이 필요한지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원고의 전체적인 파악을 끝낸 후 그간 쌓아온 노하우로 최대한 빠르게 세부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야말로 노련미가 필요할 때다. 보통 나의 작업은 밑색, 소재와 질감 삽입, 다양한 효과 및 강조 표현 삽입, 명암, 마지막으로 후보정 등이다. 이것은 한 원고를 풀 채색할 경우의 단계이고, 후보정은 크게 요구사항이 있지 않은 이상 원작가의 의도가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그림작가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작품이 서로 다르듯 작가들이 작업 방식이나 스타일도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작업 진행 중에 디테일한 수정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혹은 완결까지 리터치 없이 진행될 때도 있다.

여기서 다음으로 중요한 웹툰 어시스턴트로서의 자질이 있는데 이는 수정제의를 받았을 때 무조건적으로 작가의 수정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수정요구는 명백한 이유로 내가 만든 결과물이 원작가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에, 나의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다음 원고에 같은 이유로 작업 속도가 지연되지 않도록 바로바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시스턴트는 작가를 돕는 역할이지 작가를 대신하는 역할이 아니다.

나는 학생 때 오답 노트를 만들 듯 각각의 수정사항에 대한 연구와 메모를 한다. 나보다 몇 배는 전문적인 눈으로 전체의 흐름을 읽는 작가의 수정 요구는 작품의 색과 형을 채워나가는 나의 시각과는 당연히 다르다는 것을 늘 인지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수정 요구는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작업의 속도감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공부가 된다.

수정 요구가 없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플랫폼에 업로드된 원고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어시스턴트의 중요한 덕목이다. 작가가 바꾼 표현들을 확인하고 내가 맡지 않은 다른 파트도 파악하면 전체 작품의 연출이 어떻게 발전되는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웹툰을 만드는 사람들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이 어시스턴트의 일이지만, 주어진 일 이상의 것을 해내야지만 전문 어시스턴트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전투적인' 마감을 끝내고 나면 대부분의 어시들이 이틀에서 삼일 정도의 휴식 시간이 있다. 작가들은 반나절도 채 안 되는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곧바로 다음 화의 콘티 작업을 시작한다. 전쟁 같은 마감 일정에 마치 필요한 보급품을 대어주는 어시스턴트의 존재는 이제 웹툰 시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고 작가와 어시스턴트의 공생관계도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되었다.

잔인하게도 꼬박 일주일이 걸려 만들어낸 한 편의 웹툰을 읽는 데는 일주일은커녕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많은 공이 들어가는 액션신의 경우, 스크롤 시간도 더 빨라지고 대사도 적기 때문에 되려 분량이 적게 느껴서 그 주의 연재물 분량이 짜다는 아우성을 듣기도 일쑤이다. 이러쿵저러쿵 웹툰에 대한 서운한 편견이나 핀잔에도 나는 오늘도 마감을 준비한다. 당신의 몇 분의 즐거움과 경쾌한 스크롤과 함께 읽어내는 스릴을 위해 밤을 새며 스크린을 몇 날 며칠 쳐다보는 우리들은 웹툰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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