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망각된 『크리틱엠』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평론가-인플루언서의 출현
오혁진 2021.09.23



망각된 『크리틱엠』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이러한 여건에서 만화비평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사실, 비평의 역할이 장르의 힘을 기르고, 또한 사회적 역할 및 미적 탐구를 확장시켜야 하는 것이어야 정당하겠지만, 장르 자체가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한 상태에서 비평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될 수가 없었다. (...) 화 비평의 위치가, 혹은 발표 공간이 많이 축소된 최근의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만화 비평 자체의 전문성이 부족했음을 지적해야겠다.


김성훈, 「만화비평은 왜 주춤거리고 있나」, 『월간말』, 242, 월간말, 2006


 만화비평 자체가 만화생태계 안에서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까닭에 비평으로서의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할만한 원고 분량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10장에서 30장 내외의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이와 같이 만화비평의 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은 독립적인 비평가 집단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비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고, 그들이 지속적인 전문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매체나 지면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지 못한 탓이 크다.     

                                  

박기수, 「만화비평을 위한 방법론 試論」, 『만화포럼 칸 2016』,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6


 만화에 대한 공적 논의 활성화를 위한 작지만 유의미한 한 걸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지금, 만화』 만화 비평 대공모전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이렇게 정의해도 될 것이다. (...) 사실 만화 비평은 문학 비평이나 영화 비평처럼 평가 기준이 될 만한 전범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평가가 어렵다. 글의 질적 수준과 공적 논의로서의 실천적 맥락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서 그러하다. 


위근우, 「만화 비평 공모전 소개 및 작품평」, 『지금 만화, 2018 만화비평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


만화계의 기억상실증

만화 평론의 빈곤함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위의 상술에서 보이듯 만화 평론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시기와 상관없이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만화 평론의 재생산 실패, 만화 평론의 자의식 부제와 같은 문제들로 말이다. 이 글의 주제 역시 ‘만화 평론’인 걸 보면 2021년 현재에도 만화 평론의 열악한 상황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사실 평론의 위기는 만화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술, 문학, 영화와 같은 문화계 전반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럼에도 만화 평론의 위기를 논할 때면 만화 평론은 어떤 곤혹스러움과 직면해야 한다. 가령 문학계에서는 비평의 위기 및 비평의 회복이라는 논의를 전개할 때 문화 평론의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화 평론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만화 평론이 왜 필요한가’라는 불신이 따라붙으며 평론의 정당성조차 제대로 확보치 못한 상황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의 만화 평론 논의가 동일하게 반복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만화 평론의 문제는 여러 노력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만화 평론의 비판 또한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반복을 언제까지 수행해야 할까. 만화 평론의 거듭된 논의는 옳은 진단과 제안이라 할지라도 실제론 만화 평론만큼이나 무기력한 게 아닐까.


나는 만화 평론 웹진 『크리틱엠』이 사라진 것을 목도했을 때, 이 무기력한 반복이 어쩌면 한국 만화계의 기억상실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독자, 만화 관련 종사자 가릴 것 없이 행위와 망각 그리고 또다시 행위와 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만 같다. 예를 들어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의 ‘들어가는 글’을 보자. 

“왜 늘 ‘주류’ 만화와 금이 그어지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 현대 만화사 1945~2010>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만화사 초기부터 존재했고, 1990년대 한국 만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 거대한 집단을 ‘곁다리로’ 취급하는 태도에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다가 이참에 내가 직접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만화사를 한번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1)

작가의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순정만화는 과연 그가 생각한 만큼 ‘곁다리’에 불과할까. 한국 순정만화는 남성 중심의 만화계의 외면과 차별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해왔다. 현재, 90년대 만화 중 순정만화만큼이나 활발히 회자되고 소환되는 만화는 흔치 않다. 게다가 순정 만화의 평론 또한 90년대 여성 평론가 백정숙을 중심으로 전개됐으며 2000년대에도 순정만화는 평론과 학술지에서 꾸준하게 다뤄져 왔다.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는 순정만화를 망각으로부터 구원하려는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한편으로 그 작업은 순정만화에 관심을 기울인 많은 이들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만화계의 역사적 망각은 유감스럽게도 『지금, 만화』의 출간 직전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와 한국 애니메이션 학회가 공동 주최한 『만화·웹툰 정보지 발간 및 평론과 큐레이션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이 토론회에서는 휴간된 비평 웹진 『크리틱엠』과 『유어마나』가 이상하리만큼 언급되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 만화 평론의 역사 -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자료에 의존하였기에 토론회에서 『크리틱엠』과 『유어마나』의 논의가 얼마만큼 오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토론회의 관계자들은 『크리틱엠』과 『유어마나』를 또 한 번 반복된 실패로 인식한 것 같다. 정부 지원에 의존한 지속 불가능성의 사례로 말이다. 이 같은 비관적 인식은 충분히 납득할만하지만, 그렇다 해도 『크리틱엠』과 『유어마나』에 대한 망각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망각'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크리틱엠』의 수많은 글들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몇몇 글만이 운 좋게 인터넷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크리틱엠』에 관한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희미해진 기억과 인터넷에 흩어진 몇몇 글과 이미지만으로 『크리틱엠』을 재구성해야 한다. 불과 만든 지 몇 년 안 된, 그것도 만화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만화 비평 웹진이.



△ 『크리틱엠』 (http://criticm.com/)의 오픈 당시의 메인 페이지(좌)와과 현재의 메인 페이지(우).
지원 사업으로 운영되었던 크리틱엠은 지원 사업 종료 후 사이트가 방치되었다가 바이러스, 스팸 등의 문제가 생기자
크리틱엠을 운영했던 (주)씨엔씨레볼루션에서 자사의 다른 사업인 '코믹뱅'으로 크리틱엠의 도메인 연결 정보를 변경했다. 


‘평론가-인플루언서’의 출현

 만화 평론의 본격적 논의에 앞서 우선 『크리틱엠』과 『유어마나』 두 비평 전문 웹진의 활동을 간략히 살펴보자. 『크리틱엠』은 2015년 5월 12일 만화 평론 공모전 시상식을 기점으로 공식 출범했다. 『크리틱엠』는 'Cover Story‘, 'Critique', 'Review', 'Article' 의 섹션으로 구성됐으며 비록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양한 기획과 다량의 리뷰와 비평을 생산해냈다. 구체적으로 「웹툰 10년 톺아보기」, 「만화에서 그림이란 무엇인가」, 「소녀, 순정, 여성 만화의 세계」와 같은 ’Cover Story‘는 현재에도 참조할 만한 유효한 기획이었으며  「만화에서 표절의 법적인 정의와 의미 그리고 주요 사례」의 경우 만화 평론이 동시대 표절 문제에 신속히 반응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또한 <박상준의 SF 다이어리>, <오와라이와 개그망가의 계보>, <그래픽노블의 다채로운 세계 들여다보기> 등의 연재 시리즈는 이전 만화 평론에서 소외됐던 장르를 광범위하게 다뤘다. 이렇듯 『크리틱엠』은 '웹툰의 부상에 대한 만화계의 적극적 대응'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만화 평론의 공간을 창출하는 데는 결국 실패함으로써 만화 평론의 취약성과 정부 지원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케 했다.

 이러한 이유로 『크리틱엠』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기존의 구조적 접근을 잠시 철회하고, 대신 만화 평론의 주요 행위자인 ’만화 평론가‘에 집중하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만화 담론의 부재, 만화 매체의 비지속성과 같은 구조의 문제를 괄호치고 평론가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을 감내해서라도 『크리틱엠』의 평론가는 분명 주목할 만하다. 『크리틱엠』은 1991년에 시작한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이 중단된 후 약 20년 만에 만화 평론가를 배출했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평론가 선우훈, 이연숙, 손지상(글의 논지를 위해 필자는 제외)은 『크리틱엠』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만화와 관련된 동시대 사안을 적극 개진하거나(선우훈) 또는 동성애와 퀴어정치(이연숙), 장르와 서브컬처(손지상)같은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그런데 이 신진 평론가에게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선우훈, 이연숙, 손지상은 만화 평론가 이전에 그 무엇이었다. 만화가, 퀴어방송 진행자, SF 작가라고 말한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징후로 읽어내자면 그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인플루언서’였다. 인플루언서는 무엇인가. 인플루언서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팔로워를 다수 보유한 셀러브리티이면서,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을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다2).

  선우훈, 이연숙, 손지상 평론가가 인플루언서라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이전과 다른 논의를 기대했다면 동어반복처럼 들리는 결론에 다소 허탈해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려 하는 주제는 이런 것이다. 인플루언서인 선우훈, 이연숙, 손지상은 평론가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만화계에 진입한 게 아닐까. 만화계 또한 그들을 인플루언서로 의도해서 뽑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전략적으로 동원한 게 아닐까. 이러한 제도와 인플루언서와의 공모는 평론가이자 인플루언서인 윤아랑이 이미 명확히 지적한 바 있다. 

“인플루언서는 그저 인플루언서에 머물 생각이 없고, 또 남들이 그렇게 놔두지도 않는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웬만큼 궤도에 오른 인플루언서들은 대안적 권력으로 보다 명확히 말해 기존 권력을 대신할 권력으로 나서게 되며, 이때 제도는 축적된 것들 덕분에 인플루언서들의 인기를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최종 심급의 역할을 떠맡는다.3)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건 제도와 인플루언서와의 ‘공모’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이것은 부정적 가치 평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굳이 공모라고 말한 것은 만화계와 평론가-인플루언서가 중첩하면서 만들어낼 역동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크리틱엠』에 이어 『유어마나』를 검토해보자. 당시에는 명확히 인식하진 못했지만 『유어마나』는 어떠한 문화 영역에서보다 선제적이고 전면적으로 인플루언서 평론 공간을 구축했었다. 위근우 기자, 박인하 교수 등이 참여하긴 했지만 『유어마나』의 주요 필진은 어디까지나 『크리틱엠』의 평론가와 그리고 트위터를 거점으로 활동한 인플루언서였다. 『유어마나』 필진이 각기 다른 관심사에도 페미니즘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들의 주요 활동 공간인 트위터가 다름 아닌 페미니즘 리부트의 진원지여서다. 더욱이 『유어마나』는 평론가-인플루언서를 통해 『유어마나』의 리뷰와 비평에 매우 높은 이동성을 제공했다. SNS, 『유어마나』, 인플루언서가 강하게 결합되어 각기 다른 형식을 끌어들이며 『유어마나』 글의 이동성을 증폭시킨 것이다. 예컨대 리뷰와 비평은 『유어마나』 또는 평론가-인플루언서에 의해 SNS에 게재되고 더 나아가 그 글들은 SNS의 재전송과 평론가-인플루언서의 후속적 참여로 신속하고도 즉각적으로 확산된다. 

그러니 여기에서 만화계의 망각을 재차 언급할 수밖에 없겠다. 현재 『지금, 만화』가 『유어마나』와 대척점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만화』의 형식은 어떠한가. 초창기 <지금 만화>는 극악의 접근성을 보였다. 『지금, 만화』를 보기 위해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콘텐츠지식] > [정기간행물] > [지금, 만화]의 메뉴를 차례로 타고 들어가 PDF로 된 파일을 다운받아야 했다. 게다가 『지금, 만화』의 PDF 문서는 가독성마저 현저하게 떨어졌다. 6호부터는 다행히 저렴한 가격(3000원)의 출판으로 접근성을 확대하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온라인을 간과한 만화 평론 매체는 시대착오적이다. 최근 문화 담론이 매체에 한정되지 않고 SNS 공간 등에서 더욱 활발히 전개되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금, 만화』는 의도와 상관없이 만화 평론을 제한하는 형식이다.



△ 『유어마나』 필진들은 유어마나 사이트에 올라간 100자평을 자신이 활동하는 SNS인 트위터에도 올려 유어마나 글의 이동성을 증폭시켰다.

△ 『지금, 만화』 PDF 파일은 출력용 파일이었기 때문에 모바일에서 파일을 다운받아 읽기에는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후에 이를 위한 대안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네이버 포스트에서 『지금, 만화』를 시리즈로 발행하고, 카카오페이지에서 모바일 판형의 『지금, 만화』를 발행했다.


만화계와 평론가-인플루언서의 교차, 중첩, 충돌

 다시 『지금, 만화』가 발간하기 전 『만화·웹툰 정보지 발간 및 평론과 큐레이션을 위한 대토론회』로 되돌아가 보자. 위근우 편집장은 “만화에 대한 장르적 접근을 넘어 동시대적 이슈와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만화 평론의 부재에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단순히 만화 담론의 공백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무책임한 말의 범람 안에서의 문제”라는 언급에선 이전처럼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인터넷의 범람한 수많은 그 말 중 페미니즘 리부트 또는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인플루언서도 포함되지 않는가.

이와 관련해 문화연구자 오혜진은 “천태망상의 비평행위들이 모두 공동체의 생산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비평들이 아무리 반지성적, 반문화적이라 해도 그건 ‘아무나 비평을 활 수 있게 된 시대’ 탓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나쁜 비평일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4). 그러므로 ’아무나 비평을 할 수 있게 된 시대‘에 낙관과 비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것의 긍정적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싶다. 이를테면 만화 평론이 동시대적 이슈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의 평론가-인플루언서를 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앞선 논의에서 평론가-인플루언서의 파급력을 강조하긴 했지만, 평론가-인플루언서는 단순히 팔로워를 많이 가진 평론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오혜진의 시민-비평가 관점으로 말하자면 '동시대성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새로이 갱신된 문제의식과 윤리적 감각을 만화계에 기입하는 이들'이다. 또한 캘로라인 레빈의 형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의 형식은 만화계의 형식과 생산적 갈등 관계를 형성하며 만화계의 잠재적 사용성을 활성화하거나 지배적 사용성을 폐기할 수도 있다. 


 물론 낙관적인 기대이고 평론가-인플루언서의 역량만으로 만화 평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만화 평론을 게재할 지면은 계속 부족할 것이고, 인플루언서의 정체성이 만화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확장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이렇게라도 만화 평론가를 부각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인플루언서-평론가를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직시하기 위해서다. 『크리틱엠』의 징후적 현상은 이제 만화 평론가의 존재론적 조건이 되어버렸다. 만화 평론가들은 SNS, 웹진, 독립잡지, 팟캐스트를 오가며 인플루언서가 되었거나 또는 되기를 갈망한다. 

지금까지 나는 객관적 관찰자의 위치를 점하며 만화 평론을 논평했지만 이는 솔직하지 못한 행위였다. SNS를 소극적으로 사용한다며 인플루언서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지만, 나 역시 만화 평론 매체를 넘어선 잠정적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만화 평론가라는 소개서를 이용해 브런치와 주목도 높다고 생각되는 비평공유플랫폼으로 진입했다. 그렇다면 평론가 개인에서 뒤늦게 만화계 구조로 복귀해보자. 만화계는 디지털 미디어와 같은 새로운 매체 환경에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 그리고 동시대의 경험을 조직하는 평론가-인플러언서와 어떠한 생산적 관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아직까지 만화계는 충분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 조영주,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파사주, 2018, 8쪽

2) 이승윤, 안정기,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 인플루언서』, 넥서스BIZ, 2018

3) 윤아랑, 「네임드 유저의 수기」, 『한편 2호 인플루언서』, 민음사, 2020

4) 오혜진,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오월의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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