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막이 찢어져도 계속되는 마음 : <우리는 갈대>
유명하진 않아도 마음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작품
최윤주 2021.09.29



고막이 찢어져도 계속되는 마음
△ <우리는 갈대> 12화 中. <우리는 갈대>는 <얼룩말>, <롤랑롤랑> 등을 연재한 자유 작가가 데뷔 전에 그렸던 작품으로 현재는 작가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s://blog.naver.com/imjayu)

상반기 넉 달은 일기도 잘 쓰지 못하고 지나왔다. 글을 쓰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걷는 것만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귀찮아도 할 수밖에 없고 가만히 있으면 근질거려 결국 하고 싶어지는 일이었는데, 그 넉 달은 농담처럼 일기의 날짜가 텅 비어있다.

처음 본 뒤로 11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갈대>의 ‘찢어지는 고막’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다. 어느 세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고막이 찢어지는 저주에 걸린다. 두 사람은 겁에 질려 노래를 포기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기어코 노래를 불러 고막이 찢어진다. 아마도 이 부분 때문에 인상적이었을 터인데, 고막은 찢어졌지만 세간의 오해와 달리 사람은 고막이 찢어져도 들을 수 있다. 약간의 청력 손실만 있을 뿐 그는 여생 동안 원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독특한 이야기를 쓴 19살 고등학생 철이는, ‘찢어지는 고막’을 통해 순식간에 천재 문인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차기작은 족족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복제를 반복하며 창작자로서 완전한 탈진 상태에 접어든다. 처음 이야기를 써보라고 권유하고 작가가 되라고 부추긴 동생을 원망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애초 성공하기 위해 작정하고 작품을 쓴 것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10여 년 만에 작품을 다시 보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많았다. 이 작품에 이런 인물이 나왔었나, 주인공 이름이 이랬던가, ‘찢어지는 고막’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다른 이야기가 있었구나. 시간이 많이 지났다지만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잊어버린 게 더 많아 조금 놀랐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조차 새삼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작가로서 철이의 고민이 그랬다. 원고를 쓰기 위해 작품을 다시 들춘 터라, 요약본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그의 고민이 새롭게 다가왔다. 

해냈던 만큼 계속해야 하면서도 또 한 번 자기를 갱신해야 한다는 압박. 업무에 대한 압박은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문화예술계에 종사한다면 그것은 한층 더 투명한 형태로 날아와 박힌다. 어쩔 수 없이 일에 자아가 반영되고, 자유도 책임도 많은 부분 혼자만의 몫이기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거기다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나는 이게 아니면 안 되는데,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터와의 불균형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든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 오늘은 해냈지만 내일은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를 이유가 안으로나 밖으로나 이렇게나 많다. 다른 것들에는 공감하면서도, 출판사가 더는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철이의 의사를 무시한 채 계약을 강행한 대목이 어색하게 느껴진 건 그래서였다. 대단한 주목을 받으며 떠올랐던 스타도, 순식간에 유성처럼 사라지고 마는 게 현실이니까. 


요즘 나는 계속해 나가는 힘에 대해 고민하는 중인데,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찾아봤지만 어떤 조언의 말도 쉽게 와닿지는 않았다. ‘모든 걸 잃었으니 이제는 자유롭게 쓰면 된다. 너는 아직 어리니 다시 채워 넣을 시간인 거다.’ 고민하는 철이에게 조언으로 건네진 말도, 솔직히 말해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그런데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려온 자유 작가의 발자취에는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자유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릴 때면 서늘한 눈을 한 채 입만 조금 웃고 있는,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 비틀린 인물들이 곧잘 떠오른다. 그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꽤 건조하고 차분했다. 그 미적지근하고 가끔은 서늘해지기까지 하는 얼굴들을 보며, 어째서 오래 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베스트도전부터 정식 연재까지, 때로는 플랫폼을 옮기기도 하면서 쉬지 않고 작품을 해나가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면서, 막연한 직감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목격했을 뿐이다. 

고막이 찢어지는 일에 관해서 11년 만에야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막이 찢어지면 통증과 출혈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사실을 참 늦게도 알았다. 죽지도 않고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만, 신체의 일부인 고막이 찢어졌으니 어쨌거나 아프긴 아픈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서일까. 오래전 이 이야기는 불필요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로 읽혔는데, 지금은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상대적으로 덜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 그때의 통증까지도 감수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꾸준히 10여 년을 걸어온 작가의 출발점에 '찢어지는 고막'이 포함된 <우리는 갈대>가 놓여 있는 것이 나는 어쩐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고막이 찢어져도 노래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고막이 찢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렇게나 오래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오로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나만 아는 웹툰’이란 리뷰 주제를 듣자마자,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봤던 웹툰들이 떠올랐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알린다는 취지와는 약간 빗겨선 채, 다른 누구와 공유하기보다 내밀히 내 마음에 들어와 여전히 머물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창작 활동을 해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뤄 절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속상하게도 아꼈던 작품의 작가 중 대부분이 그 작품을 끝으로 다음 작품은 없는 듯했다. 다들 어떤 경로로 어디에 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섣부른 상상은 주제넘은 속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자유 작가의 조용한 끈기에 한 번은 지지를 보내고 싶었다. 내내 한 사람의 독자로, 요즘엔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으로서. 

특별히 하고 싶던 것도 없던, 적당히 회사에 취직이나 해야겠다 생각했던 2010년의 내가 19살의 철이와, 24살이었던 또 다른 주인공 현재보다도 나이 든 지금 이렇게 만화를 두고 기고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니, 삶은 참 엉뚱하다. 앞으로도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고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가끔은 펜을 쥔 손이 버겁고 가슴이 죄어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막이 찢어질까 봐 염려하면서도 끝내 노래를 멈추지 못하던 가수처럼, 나 또한 아직은 펜을 놓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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