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웹툰이여 고전이 되어라
'고전 만화'란 무엇인가?
양세준 (만화가) 2021.10.27



웹툰이여 고전이 되어라


1, 손민수가 누군데?

 최근 유튜브 채널 dingo global DGG는 케이팝 아이돌의 스타일을 흉내내 보는 콘텐츠 시리즈의 제목을 “내 이름은 손민수”라고 지었다. “손민수? 그게 누군데?”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손민수’ 혹은 ‘손민수하다’는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다.

 ‘손민수하다’의 손민수는 순끼 작가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 <치즈인더트랩>의 등장인물이다. 그는 작중에서 주인공 홍설의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등을 그대로 따라 해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의 행동 양식은 ‘손민수하다’로 동사화되어 신조어가 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언론의 기사 제목에서도 해당 표현이 자주 눈에 띄는 등 웹툰 <치즈인더트랩>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미 일반명사 혹은 동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웹툰과 관계없이 '손민수하다'는 신조어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미지 출처 : 매3시리즈 페이스북)

 웹툰에서 나온 말이 유행어를 넘어 신조어로 굳은 사례는 ‘손민수하다’가 처음은 아니다. ‘나와 비교해서 모든 면에서 우월한 사람’을 의미하는 ‘엄마 친구 아들’, 줄여서 ‘엄친아’라는 단어 역시 지난 2005년 워니 작가의 웹툰 <골방환상곡> 8화 ‘우월한 자’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비슷한 비교를 당하며 자라온 수많은 독자들이 이 표현에 공감했고, 인터넷 유행어를 넘어 방송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차도남’, 즉 ‘차가운 도시남자’ 역시 조석 작가가 <마음의 소리>에서 수차례 반복해서 사용하여 독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긴 신조어였다. “차가운 도시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라는 허세 가득한 표현은 나쁜 남자 캐릭터가 유행이었던 당시 트랜드와도 잘 맞아떨어져 웹툰 댓글창을 벗어나 일반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웹툰의 영향력은 이만큼 강력해졌다. 원천 콘텐츠로서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로서의 침투력 역시 그야말로 막강하다.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를 ‘드래곤볼을 모은다’고 표현하고, 어떤 특징을 보이는 사람에게 ‘무슨무슨 열매를 먹었냐'고 묻는 등 일본 만화에 기원해 비유 표현이 이젠 웹툰에서 파생되고 있는 것이다. 웹툰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 언어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 그렇다면 만약 웹툰이 이대로 우리 생활 가까이서 계속 함께한다면, 고전 소설이나 고전 음악같이 '고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이 웹툰에도 나타날까?


2. 만화, 어디까지 봤니?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시대가 변하면서 취향의 파편화가 많이 진행된 것을 느낀다. 일요일 밤이면 모두가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콘텐츠 감상 시스템에서는 유튜브든 넷플릭스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지금까지의 패턴을 분석해서 감상자가 즐길만한 다음 영상의 리스트를 제공한다. 넘쳐나는 콘텐츠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로만 골라서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드라마가 너무 인기가 많아 방영 시간에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고릿적 이야기가 되었다. 

 영상물만 이럴까? 웹툰 플랫폼에는 한 주에도 여러 편의 신작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네이버웹툰에서 <인간의 온도>의 연재를 시작한 2019년 9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33편의 신작이 발표됐다. 하루에 한 편 이상의 작품이 소개된 셈이다. 모든 신작을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때문에 이른바 ‘신작 버프’ 같은 것도 많이 약해졌다. 

 예전만큼 일본 만화의 영향력이 강하지도 않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는 다시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 강력한 히트작이 많이 탄생했지만, 이미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모두가 본 콘텐츠를 찾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업에서 사용할 레퍼런스를 고르는 것도 어려워졌다. 작법 설명을 위해서는 참고 자료가 필요한데 강의를 듣는 학생 대다수가 함께 본 작품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어떤 작품을 봤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앞서 말한 취향의 파편화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나는 비교적 최근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학생들에겐 어린 시절 즐겁게 봤던 까마득히 오래전 작품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교수인 나와 학생들 사이에 세대 차이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같은 작품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는다는 건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어디까지를 ‘오래전 명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여러분에게 고전 만화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가요?”


3. ‘고전 만화’에 대한 가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고전 만화는 어디까지일까. 조사대상이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수십 명 정도였으니 딱히 유의미한 데이터는 아닐 수 있지만, 조사 결과 그들은 90년대 작품까지를 고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슬램덩크>와 <몬스터>까지는 고전이고, 2000년대의 히트작인 <데스노트>와 <강철의 연금술사>부터는 고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90년대 초반생의 20대 동료 작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들은 <드래곤볼>을 고전이라 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지만 <슬램덩크>와 <몬스터>는 고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런가 하면 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드래곤볼>도 딱히 고전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내일의 죠>나 <거인의 별> 정도는 돼야 고전 만화로 느껴진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 작품을 고전으로 여긴다. 어린 시절에라도 연재되는 중에 작품을 접했다면 그 작품은 최신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전으로 여기기에는 다소 모호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 내가 세운 가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고전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려면 당연히 메가 히트작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이 다음 세대에게까지 전해져 고전이 되는 셈이다. 

보통 한 세대는 3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이해하지만, 만화는 매체 특성상 세대 간의 간격이 다소 짧다고 느껴진다. H.O.T.를 대표되는 1세대 아이돌이 등장한 90년대 후반에서 불과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등장하는 팀들을 4세대 아이돌이라고 하는 걸 보면 원래 대중예술은 그 세대 간격이 비교적 촘촘하다고 이해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고전 만화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웹툰 작품의 이름이 돌아오는 건 언제쯤일까? 앞서 세운 가설로 돌아가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 작품을 고전으로 여기는데, 포털 웹툰이 등장한 2000년대 중반으로부터 아직 15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스무 살을 넘은 성인이 웹툰 작품을 고전으로 떠올리기는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1년 기준 2005년생은 이미 고등학생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될 10년 뒤쯤에는 포털 웹툰 초창기의 작품들은 고전 웹툰으로 분류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정만화> 등 강풀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나 양영순 작가의 <1001> 같은 작품이 가장 먼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2010년에 연재를 시작한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나 순끼 작가의 <치즈인더트랩> 역시 고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4. 만화, 일상이 되고 고전이 되다

십수 년 전 일본에 처음 여행 갔을 때 부러웠던 광경이 있다. 지하철에 탄 시민들이 저마다 만화 잡지나 단행본을 읽고 있던 모습이 그것이다. 그만큼이나 사람들의 일상 속에 만화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만화가로서 만화 팬으로서 매우 부러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가운데 웹툰을 보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손민수하다’나 ‘엄친아’, ‘차도남’처럼 웹툰에서 소개된 말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고 유행어처럼 번지는 것만 봐도 웹툰이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어느새 우리의 삶에도 만화가 들어온 것이다. 앞으로도 이 일상이 지속된다면, 사람들의 삶에 웹툰이 계속해서 함께한다면 우리 만화계는 자연스럽게 고전 웹툰을 갖게 될 것이다. 

흔히들 웹툰의 가치에 대해 말할 때 동시대성을 이야기한다. 연재되는 시기에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작품들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고전적 가치가 빛나는 웹툰 작품들도 계속해서 많이 만들어지기를,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고전 웹툰에 대해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만화계의 일원으로서 만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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